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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한 청지기처럼 (벧전 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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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익로 목사

지난 주일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 무덤에 장사지낸바 되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신 날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구주가 되심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할 생활철학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청지기 의식입니다. 본문 10절에 말씀하시기를“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하셨습니다. 청지기란“집안의 재산을 관리하는 하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주관자이신 주인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 빈손으로 와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을 잠깐 맡아서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주어진 시간이 다 되어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모든 것을 두고 이 세상에 왔던 모습 그대로 빈손으로 떠나게 됩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청지기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말씀하시기를 청지기의식으로 살아가되 선한청지기처럼 살아가기를 당부하셨습니다. 선한 청지기란 자기 멋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뜻대로 사용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에 대해 고린도전서 4:2에 말씀하시기를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맡은 자란 “청지기”라는 뜻입니다. 청지기의 사명은 충성입니다. 즉 선한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Ⅰ. 성경에 나타난 청지기에 대한 교훈

1. 천지를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1) 이 말씀은 성경 첫 책, 첫 장, 첫 절의 말씀인데,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자이심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시편 42:1)하셨습니다.

2. 은금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구약성경 학개서 2:8말씀에는“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하셨습니다. 땅속에 묻혀있는 금은보석도 모두 하나님의 소유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 대자연에 속한 모든 보물이 하나님의 것임을 기억하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3. 모든 짐승들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시편 50:10-12에는“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천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하셨습니다.

우리가 생활필수품들을 구입할 때“값을 주고 샀다.”라고 말합니다. 사실 그것은 값이 아닙니다. 한 예로 우리들이 즐겨먹는 생선의 경우, 그 물고기는 어부들이 잡았습니다. 하지만 어부는 그 물고기를 만들거나 키운 적이 없습니다. 어부는 물고기들이 살아가는 바닷물을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만들 수도 없습니다. 그냥 바다 속에서 자란 물고기를 건져 올린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생선 값은 무료입니다. 그 다양한 종류의 생선, 그 많은 생선 값은 모두 무료입니다. 우리들이 돈을 주는 것은 생선 값이 아니라 어부들의 수고비와 유통과정의 비용을 주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착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내 것이며, 그 소유가 영원할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느 농촌에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해에 농사가 잘되어 곡식을 쌓아둘 창고가 부족했습니다. 곳간을 넓히고 거기에 곡식을 가득 쌓았습니다. 이 농부는 만족한 표정으로 말하기를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눅 16:19)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농부를 향해 말씀하시기를“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 16:21)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 부자를 향하여 “어리석은 자여!”라고 하셨을까요? 이 부자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청지기인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4. 우리들의 몸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19-20에“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하셨습니다.

우리의 몸도 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몸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흙으로 지으셨기에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사람의 몸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은 모두가 죄를 지어 타락했습니다. 인간의 타락상에 대하여 성경은 말씀하시기를“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마는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예레미야 17:9-10)라고 하셨습니다. 만물보다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인데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심장을 살피시는 하나님의 눈에 비췬 인간의 모습은 심히 부패했습니다. 만물보다 더 부패했다는 것입니다. 부패한 음식은 음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음식쓰레기입니다. 쓰리기는 버리게 됩니다. 한 곳에 모여진 쓰레기는 쓰레기 소각장에서 불태워버립니다. 하나님은 쓰레기처럼 부패한 인간을 한 곳에 모아 불태우는 곳을 예비하셨습니다. 그곳이 지옥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버리는 모든 쓰레기를 태우는 쓰레기 소각장이 힌놈의 골짜기라는 곳에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항상 쓰리기가 타는 불과 악취가 끊임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유래된 말이 지옥입니다. 지옥은 하나님께서 쓰레기처럼 타락한 인간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예비한 장소입니다.

모든 사람은 다 이곳에 갈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러한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지옥의 형벌에서 면하는 길을 만드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에 대한 성경말씀이 요한복음 3:16입니다.“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지만 하나님의 이 크신 사랑을 깨닫는 지혜가 인간에게는 없었습니다. 타락한 사람은 모두 눈먼 소경과 같아 진리를 분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또 다른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구원받을 사람을 한사람 한사람씩 부르신 것입니다. 주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요한복음 6:44)하셨습니다. 아무나 주님 앞에 나와 예수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신 사람만이 교회에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말씀하시기를“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린도전서 12:3)하셨습니다. 아무나 예수님을 나의 구주라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두 번 지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한번은 흙으로 지음을 받은 것이요, 또 한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린도전서 6:19-20) 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하셨습니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렇게나 사용할 수 없습니다.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선한 청지기 같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Ⅱ. 선한 청지기의 삶이란?

선한 청지기의 삶은 봉사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에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하셨습니다.

봉사란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을 위해 섬김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섬김의 삶을 가리켜“신앙의 꽃”이라 부릅니다. 섬김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많이 닮은 삶이기 때문입니다. 이 섬김의 삶은 사랑이 가득한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만 아는 이기주의자는 남을 섬길 수 없습니다. 섬김의 삶은 겸손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삶입니다. 남을 멸시하는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없습니다. 섬김은 온유한 사람만이 할 수가 있습니다. 성격이 사납고 포악한 사람은 누구를 섬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가르치신 교훈이 무엇입니까?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섬김의 삶 즉 봉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3:13-15의 말씀에“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가장 소중한 삶의 교훈이 남의 발을 씻기는 섬김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봉사하는 삶은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천사가 귀한 보물을 가지고 지상에 내려왔습니다. 천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을 가진 사람에게 보물을 선물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아름다운 손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천사에게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천사의 마음에 쏙 드는 손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천사는 마을에서 가장 예쁜 세 딸을 둔 가정을 찾아갔습니다. 그때 큰 딸이 손을 내밀었습니다.“제 손을 좀 보세요. 항상 이렇게 부드럽습니다. 그리도 향기가 납니다.”둘째 딸도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제 손은 항상 깨끗하답니다. 보세요.”그러나 한 쪽에서 열심히 일을 하던 셋째 딸은 손을 감추면서 말했습니다.“제 손은 너무 거칠어요. 매일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만드느라 손에 물기가 마를 날이 없어요.”천사는 셋째 딸에게 보물을 주면서“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손이 왜 아름다울까요? 그것은 죄인들을 위해 못 박히신 상처의 흔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봉사하는 삶이 아름답고 귀합니다만 봉사하는 데도 방법이 있습니다. 이 방법을 무시하면 사탄이 틈을 타게 됩니다.

1. 서로 봉사해야 합니다.

본문 10절에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하셨습니다. 봉사란 말의 어원은 본래“합창하다.”라는 의미였습니다. 봉사하되 합창하는 것처럼 해야 합니다. 성가대는 모두 네 파트로 나누어 합창을 합니다. 부르는 악보가 다릅니다. 그렇다하여 혼자 아무렇게나 부르지 않습니다. 다른 파트와의 조화에 세심한 신경을 씁니다. 그렇지 않을 때 그 성가는 은혜롭지 못합니다. 봉사를 하되 이러한 자세로 하라는 것입니다.“상대방을 배려하는 협동정신이 없이 독불장군식의 봉사는 언제나 일을 하고도 욕을 먹게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독불장군식의 성가대원이 있다고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 까닭에 성가는 엉망이 되고 말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상 주심을 믿고 해야 합니다.

봉사란 말은 본래“하나님이 아낌없이 주는 것”이란 뜻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유익과 덕을 세우기 위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사를 따라 봉사해야 합니다. 봉사하되 하나님께서 봉사자에게 아낌없이 공급해주시는 것을 염두에 두고 힘껏 봉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봉사자에 대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6:38 말씀에“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하셨습니다.

3. 겸손한 자세로 해야 합니다.

본문 11절에“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하셨습니다. 봉사하되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봉사한다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 까닭은“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높이며, 하나님만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기 때문입니다.

20세기의 성자로 부렸던‘헨리 나우렌’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30대에 노틀담 대학 교수를 지냈습니다. 그 후 20년 동안 예일 대학과 하버드대학교에서 신학, 상담, 영성분야를 가르쳤습니다. 나이 50세에 그는 이런 질문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사람들은 내게 성공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성공이 나의 영혼을 위험에 빠트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괴로운 마음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들과 함께 살아라.”
그는 즉시 모든 명예와 직분을 내려놓고 프랑스 파리의 한 정신장애인 공동체를 찾아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199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장애인들의 손과 발이 되어 살았습니다. 말년에 그는 세상을 향해 교훈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두 팔을 벌리고 낮은 데로 임하는 행복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실속 추구에서 사랑으로, 유명세에서 섬기는 자리로, 인도하는 자리에서 인도함을 받는 자리로 내려오십시오. 진정 당신은 행복해질 것입니다.”

스코틀랜드 한 가정의 표어 가운데 “봉사하기 위하여 구원받았다.”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왜 세상에 오셨습니까? 섬기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보이신 체험적인 교훈은 남의 발을 씻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시면서“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하셨습니다. 섬김을 모르는 삶은 구원의 감격이 없는 삶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섬기기 위함입니다.

우리들의 섬김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섬김의 삶을 살아가는 심령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풍성히 임하게 됩니다. 섬김의 삶은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서 받을 상급 심사의 기준이 됩니다. 섬김의 삶은 자신을 존귀하게 만드는 삶의 지혜입니다. 섬김의 삶은 참된 보람과 행복을 누리는 삶의 지혜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의 공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아야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입니다.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가장 고귀한 삶은 섬김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섬김의 삶을 본받아 이 세상을 밝히는 그리스도의 빛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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