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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동으로 지은 성전 (학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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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곽주환 목사

아름다운 성전 건축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모든 성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가득하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 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우리가 지금 성전건축하는 일을 통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신다. 여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제 후로는 더 풍성한 은혜로 채워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내려주실 축복을 믿고 감사하기를 바란다.

본문에 나타난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을 재건할 때에 모든 백성의 마음이 감동되어 성전을 공사를 진행하게 된다. 본문의 말씀은 흥분이 되어 성전 건축을 진행하였다고 번역했고, 개정 개역판 성경에는 모든 백성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감동시키셔서 성전 건축이 진행되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 교회를 짓는 일에도 온 성도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감동으로 지은 성전이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신다. 하나님의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그 모습을 보신다.

어떤 왕이 업적을 크게 남기고 싶어서 큰 교회를 혼자 설계하고 필요한 건축비도 다 대어 아주 훌륭하게 지었다. 그리고 교회 앞에 자기 이름을 새긴 큰 대리석판을 붙였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한 천사가 나타나 왕의 이름 판을 떼버리고 다른 이름 판을 붙이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꿈에서 깬 왕은 신하를 시켜 당장 그 이름의 주인을 찾아오도록 했다. 얼마 후 왕 앞에 온 사람은 교회 언덕 밑에 사는 가난한 여인이었다. 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저 교회를 짓는데 무엇이든 바친 것이 있으면 솔직하게 말해 보거라" 그러자 그 여인은 두려워 떨면서 대답했다. "저는 가난하여 바치고 싶어도 바칠 것이 없습니다. 다만 교회를 지을 재목을 나르는 말이 힘들어하기에 짚 한 단을 먹이로 준 일이 있을 뿐입니다." 왕은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그렇구나! 나를 자랑하기 위해 들인 많은 공보다 진정한 마음을 담아 수고한 한 줌의 볏단이 하나님께 더 기쁜 일이 되었구나!"

왕은 자기의 이름을 알리는데 관심이 있었지만 이 여인은 마음이 움직였다. 마음을 담아서 드린 그 정성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했다.
그러기에 여기에서 나타난 분명한 점은 인간의 눈으로 볼 때에는 헌금에는 몇 억, 몇 천만원, 몇백만원의 크고 작음이 있을 수 있어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다른 기준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몇 억의 헌금보다 몇 백만원의 헌금이 더 클 수도 있다. 어느 왕이 성전 건축의 전액을 드려서 자기의 이름을 드러내려는 그 마음보다, 성전을 짓는데 참여하지 못하여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에게 짚 한 단을 먹이로 준 그 여인의 간절한 마음을 주님은 더욱 칭찬하셨다.
사랑하는 성도여! 우리는 성전을 돈으로 짓기 보다는 우리의 감동된 마음으로 짓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움직여지는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일을 앞장서서 감당했던 사람들을 보면 대개 말씀에 마음이 움직인 사람들이다. 말씀에 감동을 받아 그 마음이 움직였던 사람들이다. 노아에게 말씀하신다. 배를 지어라. 그 당시에 노아가 배를 짓는 다는 것은 상황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그의 마음이 움직였다. 많은 사람들의 비난이 있었지만 노아는 말씀 데로 배를 지었다. 그의 마음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나이 칠십 오세 때에 내가 살 던 곳을 정리하고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말씀을 들은 아브라함은 마음이 움직였다. 하나님의 말씀에 감동을 받아 아브라함은 주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길을 떠난다.

베드로는 고기를 잡는 어부이었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으려고 하는데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포기하고 들어가려고 하는데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다가서신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겠나이다. 많은 양의 고기를 잡았다. 친구들에게 손짓하여 도움을 요청한다. 두 배에 넘치도록 채웠다. 베드로는 예수의 무릎에 엎드려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신다.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예수님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같다. 마치 로또 번호를 모두 알고서 엄청난 부자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다.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이 말씀을 들은 베드로의 마음이 움직였다. 베드로의 마음이 감동되어 배를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갔다.

말씀에 사로잡혀, 말씀에 감동받고, 말씀에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신다.
그런데 참으로 재미있는 현상은 감동을 받은 사람들은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있지 않는다. 본문의 말씀에 모든 백성의 마음을 흥분시키매, 이 표현은 모든 백성의 마음이 감동이 되었다는 영어의 표현은 Stir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커피를 마실 때 커피와 프림 설탕을 넣는다. 그리고 뜨거운 물을 넣는다. 그리고는 숟가락으로 젓는다. 가만히 가라 앉아있지 않기 위해서 휘휘 젓는다. 또한 stir라는 표현은 말을 탈 때에 사용되는 용어이다. 말을 빨리 달리기 위해서 박차를 가한다. 그러면 말은 열심히 앞을 향하여 달려간다.

우리가 감동을 받는 다는 표현은 내가 가만히 가라 앉은 상태에서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 말이 앞으로 가려고하지 않을 때에 박차를 가하여 앞으로 가게 하는 것이 바로 감동의 역사이다.
사복길 장로님이 붕어를 잡아다가 기도원 작은 연못에 넣는 것을 보았다. 들어간 붕어는 어느 사이에 돌 틈으로 자기의 몸을 숨긴다. 그리고 가만히 없는 것처럼 숨을 죽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성도들 중에 이렇게 신앙생활하는 분들도 많이 있는 것 같다. 가만히 주저 앉아 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우리 성전이 감동으로 지은 성전이 되기를 바란다. 모든 백성이 감동하여 성전을 지었다. 몇 사람만 감동을 받아 지은 성전이 아니다. 모든 백성의 마음이 움직여서 함께 일어나 힘을 합하여 성전을 지었다.
그러면 어떻게 그들의 마음이 감동되었는가? 여기에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 준다. “그들이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들었으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보냈음이라 백성이 다 여호와를 경외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위임을 받아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가 말하나니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학개가 하나님의 말씀을 위임받아 말씀을 전할 때에 온 백성이 그 말씀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드리게 되었다. 학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지금 말씀하신다고 그들이 믿었을 때에 온 백성에게 감동의 역사가 일어났다. 온 백성에게 마음이 움직이는 결과가 나타났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법궤를 갖고 내려왔다. 안식일을 지키라. 그리고 성소를 짓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가져오라. 모세가 말씀하였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그 말씀은 모세가 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드렸을 때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하여 가져온다. “마음이 감동된 모든 자와 자원하는 모든 자가 와서 회막을 짓기 위하여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하여 가져왔다.”
우리 교회도 이렇게 감동으로 지어지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학개가 말씀할 때에 온 백성이 하나님께서 학개를 통하여 지금 말씀하신다고 믿었을 때에 온 백성에게 감동의 역사가 일어났다. 모세가 말씀할 때에 하나님께서 지금 모세를 통해서 말씀하신다고 믿었을 때에 온 백성에게 감동의 역사가 일어났다.

어거스틴이 영적으로 많은 번뇌가 있었다. 왜 하나님은 과거에 예언자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는데 왜 지금은 말씀하지 않고 침묵하고 계시는가? 하나님,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옵소서. 그럴 때에 어거스틴이 깊은 깨달음을 얻는다. 강단을 통하여 지금도 세우신 종을 통하여 말씀하고 있는데 왜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가? 그 후에 어거스틴은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하나님 나라의 생중계로 듣게 된다. 지금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드리게 된다.
설교자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말씀에 근거하여 말씀을 선포할 때에 인간 곽주환이가 하는 말로 생각하면 우리의 마음에 어찌 감동이 있겠는가? 어찌 마음이 움직이겠는가? 그렇지 않다. 이스라엘 백성이 학개의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지금 학개를 통하여 지금 말씀하고 계심을 확신하였을 때에 온 백성이 감동된 마음으로 성전을 완성하였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1871년 시카고의 대화재 때 부흥사 무디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와 그의 집도 다 타버리고 말았다. 그때 어떤 신문기자가 그에게 와서는 짓궂게 물었다. “선생님, 몽땅 다 타버렸네요. 이제 어떻게 하시겠어요?” 무디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오.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은 타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아름답고 큰 교회를 지어 하나님께 봉헌하고자 하는 꿈이 있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이 화재를 통해 우리의 꿈을 이루어주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과연 무디는 그의 믿음대로 큰 부흥운동을 일으켜서 모아진 헌금으로 그 자리에 더 크고 아름다운 성전을 지을 수 있었다.
무디 목사님의 가진 꿈과 비전, 그리고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개인 무디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디 목사님을 통하여 지금 말씀하고 계심을 성도들이 함께 고백했을 때에 그들의 마음이 움직였고, 그들이 감동된 마음으로 성전을 지을 수 있었다.

사랑하는 성도여! 우리 교회가 감동으로 지어진 성전이 되기를 바란다. 말씀을 들을 때에 마음이 움직여지는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강단을 통하여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하고 계심을 믿음으로 확신하기를 바란다. 그럴 때에 분명히 우리의 마음이 움직여 지고, 거룩한 성전을 감동으로 짓게 될 줄로 확신한다.
그래서 이 성전이 지어져 가는 과정을 통하여 각 사람의 마음 속에 크고 작은 감동이 묻어있는 그러한 성전이 되기를 바란다. 감동의 스토리가 이 성전을 짓는 과정에 많이 담겨져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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