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복음에 참예한 자 (고전 9:23 - 27)

  • 잡초 잡초
  • 552
  • 0

첨부 1


- 설교 : 김성덕 목사

매년 10월이 되면 노벨 문학상 발표가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노벨상을 받은 사람도 위대하지만 노벨상을 제정한 사람이 더 위대하지 않습니까?
노벨상의 창시자 노벨은 본래 그런 사람이 아니고 발명가입니다.
그는 일생을 통해서
기록에 의하면 355가지 발명 특허권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다어너마이트고 ,그리고 인조가죽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가 결혼도 하지 않고 처음에는 발명에만 열중하고 돈을 굉장히 많이 모았습니다.
그래서 큰 부자가 되었는 데 어느 날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자기의 동생이 그만 불의의 사고를 당해서 죽게 되었습니다.
자기의 이름은 알프레드 노벨인데, 자기 동생은 에밀 노벨이예요.
그런데 신문기자가 하나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알프레드가 죽을 줄 알고 알프레드 노벨이 죽었다고 기사를 낸 것입니다.
그리고 평소에는 별 얘기가 없다가
사람이 죽고 나니 자기에 대한 평가가 신문에 났습니다.
대부분 뭐라고 했느냐면
그 사람은 자기 밖에 모르고 돈만 되면 무슨 일이라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전연 다른 사람을 돌아볼 줄 모르는 그런 사람이라고 난 것입니다.
그래서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는 그래도 대사업가이고 성공한 사람이라고
그 동안 칭찬만 받고 굉장한 사람이라고 자부심 같고 살았는데
죽었다고 하니 벌써 사람들의 평가가 달라진 것입니다.
그러니 생각이 달라진 것입니다.
내가 안 죽고 살아 있다고 말할 때는
내가 새로운 각오로 살아야 겠구나 싶어서 그때부터 생각을 바꿨다고 합니다.
할 수만 있으면 남을 위하고 남을 도와주며 살아야겠구나
그래서 자기 전재산 900만 달러를 바쳐
인류사회에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공헌한 사람들에게 이 상을 주시오
노벨상이 제정된 것입니다.

오늘 이 아침에 우리가요. 이 세상을 하직 했다고 생각했을 때
그러면 여러분 주변 사람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 인간 잘 죽었어! 하나님! 빨리 그런 인간은 빨리 진작에 데려가야지. 그렇게 평가를 받는 사람도 있겠고
정말 아쉬워서 그분이 떠나가니 빈자리가 너무 크다.
우리 교회에 그 대를 이어서 누가 충성할 것인가? 그런 교인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있으나 마나 한 존재로 <2>
장례가 나도 돌아보지도 않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내일교회 하나님의 가족 여러분 !
우리도 하나님의 많은 복을 받아 남에게 뭔가 줄 것이 있고
남길 것이 있는 삶을 살다 가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줄 수 있는 최대의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복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 중에 축복이
바로 복음에 참예한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복음에 참예한 자들입니다.
복음에 참예한 자란 복음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즉 전도하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말씀에서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복음을 위하여 얼마나 열정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역설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복음에 참예한 자로
복음을 위하여 열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내일의 가족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참예한다는 말은 <슁코이노노스> 함께 공유한다는 말이면서
본래 한 상에 둘러앉아 먹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그 상이 임금님의 상일 때 그 영광이 어떻겠습니까?

삼하9장에 보면 다윗이 왕이 된 후
당시 몰락한 사울왕의 손자 요나단의아들 장애자 므비보셋을
예루살렘 왕궁으로 데려와 왕의 식탁에서 먹게 할 때에
므비보셋이 하는 말이
[ 이 종이 무엇이관데 죽은 개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 합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성도가 주님의 은혜에 동참함의 비유이기도 합니다.

그랬다잖아요.
3공화국 시절에 박정희 대통령이 경기도 어느 농촌에서
동네 주민들과 설렁탄 점심을 함께 먹었는데
그 마을 촌로 한 분이 그 다음부터 만나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
나 각하하고 설렁탕 먹었다고 자랑하더랍니다.
나 왕의 복음에 참예한 것을 자랑할 줄 아는 교우들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복음에 참예한다는 것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전도에 참예한다는 것 바로 왕의 상에 둘러앉는 영광이 있다는 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3>
복음에 참예하는 것을 자신의 삶에 최우선 적인 것으로 여기며
어느 정도 열정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면

23절에 [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 고 말합니다.
여기에 복음에 참예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이란 말은
바울의 전도 정신을 나타내 주는 말입니다.
군대에 가면 전쟁에 필요한 전술도 훈련을 받지만
전술 못지 않게 필요한 것이 있는데 바로 군인 정신훈련입니다.
군인 정신이 희미하게 되면 전시 때 대장은 앞으로 돌격하라고 하는데 이 사람은 뒤로 돌격해서 집에 가버립니다.
그래서 군대에 정신교육을 많이 시킵니다.
바울에게 이러한 전도의 정신이 있었기에 많은 열매가 있었습니다.
바울의 전도의 정신은
1) 19절 전도에 있어서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 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
전도에 관해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전도 제일 못하는 사람들이 목사 장로 권사라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오늘날 중직자들이 전도를 하지 못하는 근본 이유가
하나님의 종은 되어도 사람의 종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전도하려면 먼저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하는 바울의 전도 정신입니다.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가진 특권과 자유를 가졌을 뿐 아니라,
복음 안에서 참 자유를 소유하였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자유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종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울의 관심사는 한 영혼이라도 더 복음으로 구원받는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바울의 전도 정신은
22절에 모든 사람과 같이 되는 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라 ]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 같이 되고,
율법아래 있는 자는 율법아래 있는 자 같이
율법이 없는 자는 율법 없는 자 같이
약한 자들에게 약한 자들같이 되었으며
유대인을 얻기 위해서는 유대의 어떤 관습들을 지켰으며 <4>
동시에 이방인을 얻기 위해서는 유대의 관습들을 포기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여려 모양이 된 것은
여려 모양에 있는 사람을 구원 하고자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이 같은 일에 뛰어난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과도 함께 식사하셨으며,
세리와 병자들과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셨으며,
심지어 창기들과도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마음을 얻어 구원코자함 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사도 바울이 능력이 모자라서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려 한 것이겠습니까? 이것은 능력 이전에 사랑이요, 관심이요,
희생이요, 섬김으로 그들을 구원코자 한 것입니다.

아프리카 나무에 사는 카멜레온이라는 동물이 있습니다.
이 카멜레온을 일컬어 변신의 전사라고 합니다.
이 카멜레온은 자기의 몸의 색깔을 자유롭게 변화하여
적의 공격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한다고 합니다.
카멜레온은 빛의 강약, 온도, 감정의 변화에 몸의 색깔이 바뀐다고 합니다.
우리도 이 카멜래온 같이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그들에게 접근 할 수 있는 복음의 카멜래온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클리닉 이병욱원장
현장에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전도 원칙 7무를 숙달해야 한다
“무조건, 무시로, 무차별, 무수히, 무엇보다, 무릎으로, 무안을 당해도”
오늘도 우리가 전도할 대상은 다양한 사람들입니다.
이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가는 것이 바울의 전도 정신입니다.

그런데 이 보다 더 중요한 전도의 정신이 있습니다.
바로 16절에
[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 ]
이 고백은 바울은 자신의 소명이 바로 전도에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뿐만이 아니라
교회의 사명 나아가 그리스도인의 소명이 바로 전도임을 말합니다.
소명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부르신 목적입니다.
만약 제가 이 시계를 차고 다니는 이유는 시간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시계가 어떻게 사시장철 불철주야 일할 수 있느냐? 하고
나도 잠도 자야지 하고 잠들면 그로서 끝입니다.
그게 바로 바울의 전도정신에 있어서 전도의 불가피성인 것입니다.
1968년 12월 5일 발표된 국민교육헌장 기억나시죠? <5>
[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
[ 우리 내일교회는 대구 구원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세워졌다 ]

오늘날 교회들이 도덕적인 범행과 윤리적인 타락
그리고 율법이나 십계명을 어기는 것들은 큰 죄로 여기고 있어도, 주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해 하고 있습니다.
정작 전도하지 않는 죄에 대하여는 전혀 무지할 뿐 아니라
깨닫지도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바울은 전도하지 않는 죄가 얼마나 큰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전도하지 않는 죄가 얼마나 큰 죄인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바울이 전도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한다는 말은
때로는 종이 되고 때로는 복음의 카멜리온이 되어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겼기 때문에
이 복음 전하지 아니하면 존재가치가 없다는 의미에서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가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 할만큼
복음을 전하는데 전심전력함을 보여줍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전도는 최고의 영예요 영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경기자의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경기자의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24절 [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
당시 고린도 지역에는 매 2년마다 <이스미안> 이라는 경기가 열렸습니다.
당시 그리스 사회에서는 스포츠가 바로 저들의 종교였습니다.
아들을 낳으면 훌륭한 군인이 되든지 스포츠 선수가 되든지
그래서 당시 부모들은 아들이 다섯 살이 되면
동네 헬스클럽에 보내어 체력을 단련시켰습니다.
운동장에 달음질한다는 것은
이 운동장은 스타디오 라는 말인데 경기장 - 스타디움이란 말입니다.
200m 길이의 경주장을 말합니다. 그러니 트랙경기이죠.
그런데 당시 육상 경기에 있어서 단거리든 장거리든
우승자에게만 월계관을 씌워주었습니다.
그 월계관은 바로 영광이요 영예인 것입니다.
선수들이 그 영광스러운 월계관을 바라보고 달려 가듯이 <6>
먼저 바울은
1) 전도한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 것을 말합니다.
요즘 문화관광부 통계를 보니 95년부터 기독교인이 7 %가 줄어들었습니다. 천만 명이 넘었었는데 이젠 모자랍니다.
갓피풀 닷컴에서 전도에 대한 교인들의 의식을 조사했습니다.
86.3 퍼센트의 교인들이 전도를 어렵고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복음의 능력을 상실한 한국교회의 모습입니다.
세상에 나가 복음 전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전도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왜 이렇게 영광스러운 일인냐?
“예수 믿으세요.” 이 말을 현대인들은
괴쬐쬐한 예수쟁이들의 상투적인 이야기로 일축해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간단한 한 마디, 인기 없는 말이지만
이 말 속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나타나는 몇 가지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약한 것을 강하게 합니다.
사람은 세상에 대하여, 장래 일에 대하여, 마귀에 대하여,
신령한 일에 대하여 연약한 존재이지만
예수님은 믿는 사람에게 이런 일에 대하여 강하게 하십니다.

둘째,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근본적으로
죽은 자, 멸망할 사람을 살리십니다.
아무리 명의사라도 죽은 자는 살릴 수 없습니다.
죄의 값으로 영원한 사망에 떨어진 사람을
속량하여 살리는 일은 예수님께 나와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영원한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어주십니다.
죄와 저주에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영생을 얻게 하여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문둥병 환자처럼 “나는 저주받은 사람입니다”라고 소리쳐야 될 사람들이 감사와 찬양을 하게 된 것입니다.
악한 세력에 사로잡혀 인격과 의지를 빼앗긴 사람들에게
참된 기쁨과 자유를 주십니다.
악의 요구대로 행할 수밖에 없던 사람, 귀신의 노예가 된 사람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완전한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으세요~! 이 단순한 말이 엄청난 축복을 앉겨다 줌을 믿고 복음을 전하는데 긍지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2) 전도할 때는 이와 같이 일등의식 가지고 해야한다는 것입니다<7>
왜 일등의식을 가져야 하는가 하면 ?

근성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근성을 가진 전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제가 근성이란 말을 사용한 것은 달리 성경에 다른 표현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도 성공하는 사람 이면에 꼭 따라 다니는 말이
바로 근성이라는 말입니다.
차범근 감독 - 프로근성
본프레오 감독 - 승부근성이 부족하다.
공부근성 예수근성
이 근성이란 것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몸에 갖다 붙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 바로 일등의식 가진 사람에게 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은혜 받으면 이 일등의식이 싹 터는 것 있지요
전도왕들 보세요 전도 훈련 받아서 된 사람 없습니다.
어느 날 은혜 받아 내가 우리 교회에서 전도왕 되겠습니다.
그러면 방법은 다 다르지만 전도에 근성이 달라붙는 것입니다.

그런데 경기자에게 있어서 일등 하는 것만큼 아니 더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바로 절제입니다.

25절 [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
당시 운동경기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육상경기이지요
사도 바울은 24절에서는 달리기에다 비유하고 있고
또 한가지는 격투기입니다.
레슬링이나 권투 같은 종목인데
체급별로 하는 격투기에 있어서 가장 힘든 일이 체중조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은 지금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절제하나니 라고 한 것입니다.
거의 참피온들이 다음 시합에서 예선 탈락하는 것을 종종 보는데
바로 체중조절 즉 절제하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옛날 헬라 사람들의 도덕적 사상에서도 네 가지 덕을 명할 때에
근신, 절제, 공의 그리고 용기를 말했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어요 <8>
왜 사도 바울이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최선을 다하라" 라 든지 "목숨을 걸어라" 고 하지 않고
절제하라고 했을까?
그것은 최선을 다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절제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절제라는 말은 자르고(節) 통제(制)한다는 뜻입니다.
저는 제가 새벽마다 기도하는 자기원칙 5가지 가운데
두 번째가 절제이고 다음이 집중력입니다.
무슨 일을 하다보니 결국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가니
이기느냐 지느냐?의 차이가 바로 집중력의 차이더라고요
성취의 조건에서 항상 빠지지 않은 것이 집중력인 것입니다.
그것이 학업이든, 사업이든 특히 경건생활에도
시간의 집중, 생각의 집중, 열정의 집중이 있어야 성취하게 됩니다.
그러나 유혹과 욕구가 내 생활에 뒤섞여 버리면 삶이 산만해 집니다.
집중이 안됩니다. 그러면 다 된 밥에 코 빠뜨린다는 말처럼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맙니다.
사실 우리는 유혹과 욕구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요즘은 공기 중에 질소와 산소와 매스컴이 있다고 말하곤 합니다.
온갖 유혹과 욕구는 매스컴과 뒤섞이고
정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가면을 쓰고 다가옵니다.
온갖 종류의 일간지, 스포츠 신문, 지하철 공짜 신문, 인터넷, 텔레비전, 인터넷 헨드폰 등..
이 속에 꼭 필요한 정보도 있지만 쓰레기만도 못한 정보도 많습니다.
쓰레기 같은 정보가 우리의 생각을 혼란 시키고,
음탕한 정보가 우리의 마음을 흐트려 놓습니다.
억지로 알려고 하지 않아도,
공기 중에 떠다니는 산소를 마시듯 우리는 매스컴을 접하고 있습니다.
어디 그것뿐입니까? 마귀가 집어 넣어주는 온갖 불신앙적인 생각과 잡념들
이런 것들을 끊어버려야만이 삶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됩니다.
전도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온갖 정보 쓰레기에 마음 다 빼앗기고
잡다스러운 일 다 챙기고 전도할 수는 없습니다.
마귀가 그냥 두지를 않습니다. 전도하는 일에 집중해야만 전도가 되어집니다.
전도에 집중하는데 방해되는 요소들 절제할 줄 아는 내일교우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바울의 신앙의 경주에 있어서 특징이 무엇입니까?

26절 [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
즉 푯대가 있고 목표가 있다는 것입니다. <9>
오늘 우리의 신앙의 경주에도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그 목표가 무엇인냐? 바로 전도지향적인 삶인 것입니다.

얼마전에 시청자가 보내온 코믹 비디오를 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유치원 어린이들의 운동회 장면인데
릴레이 달리기에서
한 어린이가 자기에게 바톤을 주려고 달려오는 아이를 마주보고 있다가 바톤을 받아서는 그대로 달려가는 장면을 보고
온 학부형들의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이었습니다.
방향을 잘못 잡은 것입니다.
전도 지향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자기의 맡은 분야에서 전도 지향적인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 복된 삶을 앉겨다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느 목사님은 미국에 유학 가서
새벽에 신문을 돌리며 돈을 벌어 공부를 하였습니다.
목사님은 이 일을 통하여 예수를 전하자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래서 신문에 매일 이렇게 전단을 만들어 넣었습니다.
“나는 목사로서 신문을 돌리고 있습니다.
매일 당신의 집에 신문을 넣으며 당신의 가정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복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
신문을 받아 보는 이들이 흐뭇해 했습니다.
실제로 대화가 통하게 된 이들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매일 자기 집을 방문하여 축복기도를 하고 있으니
하나님이 지키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이들도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예수를 영접하는 이들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이 등록금을 낼 때가 되면 얼마쯤 협조하여 주었습니다. 신문을 통하여 전도도 하고 학비도 벌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들의 전도지향적인 삶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 성장학의 권위자 <피터 와그너>는
[ 목표가 없다면 회개할 일도 없다 ] 고 했습니다.
전도 지향적인 삶을 살아가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목표점을 향해 달리지 않으면
아무리 빨리 달려도 이길 수 없고,
싸우는 사람이 상대를 치지 못하고 허공만 때린다면 그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향방 없이 인생을 살고 있는 교우들 <10>
허공을 치는 허송세월을 살고 있다면
다시 한번 전도지향적인 삶의 목표를 설정하시기를 바랍니다.

절제회 회장 여귀옥 권사님
미국에서 온 라이스 목사란 분이
[ 만약 사도행전을 계속 쓰게 된다면
바로 여귀옥 회장님과 김영주 화가의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
여귀옥 권사님의 간증에 보면
[ 이 책을 마지막 정리하고 있는 이 시간에도 불란서에서 반가운 전화가 왔다.
사업차 파리에 간 막내딸 성주가
파리 공항에서 제일 모직 중역 한 분을 전도했더니,
부인이 믿어도 교회에 발을 들여놓지 않던 분이
그 다음날 파리 한인교회에 나와서 예수님을 영접하는 놀라운 기적을 보았다는 기쁜 소식이다 ]
온통 전도 이야기 밖에 없어요.
참 하늘과 땅의 복을 넘치게 받은 가정입니다.
전도하면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의 복을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목표가 있는 신앙의 경주자로서
즉 전도 지향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훈련이 있다고 강조합니다.
바로 자기를 쳐 복종시키는 자기훈련입니다.
27절 [ 내가 내 몸을 쳐 복종케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나는 나 스스로를 쳐서 길들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영적으로 만난 사람으로서 가장 많은 교회를 세운 사도였지만 아직도 자신을 길들이는 중이라고 말하고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비결은
자신을 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뭣 때문에 자신을 쳐 복종시키고 있습니까?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봐 먼저 예방하는 것입니다.
버림이 된다는 것은 불합격자 란 말입니다.
남은 구원시키고 자신은 불합격자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항상 자기를 훈련시킨다는 말입니다.

그만큼 그리스도인은 자기훈련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훈련시킬 줄 모르면 <11>
하나님께서 그를 일군으로 들어 쓰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자기를 쳐 복종시켜야 하는가?
어느 목사님의 설교 예화에
그리스도인은 복음의 종이 도어야 한다
종은 쳐야만이 소리를 낼 수 있듯이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쳐 복종 시킬 때만이
남에게 복음의 종소리를 들려 줄 수 있다고 합니다.
자기를 훈련 시킬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은 복음에 참예자입니다.
오늘 나는 복음에 참예한 자로서 어느 정도 열정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정검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어느 날 여 집사님 한 분이 인천 주안 전철역에서 나오는 한 청년에게 " 예수 믿으세요”하고 전도를 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집사님은 따라가면서 또 전도를 했습니다.
“꼭 예수 믿고 구원받아야 됩니다. 구원받지 못하고 죽으면 지옥갑니다.”
그러자 이 청년은 돌아서서 주먹으로 집사님의 얼굴을 쳤습니다.
집사님은 역 광장 아스팔트 바닥에 코피를 흘리면서 쓰러졌습니다.
청년은 다시 집사님의 얼굴을 구둣발로 짓밟아버리고 지나갔습니다.
역 주변의 상인들은 그 청년이 깡패니까 상대하지 말라고 하면서
택시를 태워서 집으로 보내주었습니다.
일주일 후에 그 청년으로부터 사과의 전화가 왔습니다.
[ 지금까지 수 없는 사람을 때리면서 살아왔지만 아무 일이 없었는데..
아주머니를 때리고 난 그 날부터 저는
밤마다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아주머니의 얼굴이 제 눈앞에 어른거려서
일주일 동안 꼬박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저를 용서하시고, 저도 아주머니가 믿는 그 예수님을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
청년은 집사님의 안내로 교회에 왔고 신학을 공부하여
지금 필리핀에서 선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전도한 집사님은 주안교회 전도 왕 안 강자 집사님이고
회개한 깡패는 필리핀 김기영 선교사님입니다

오늘 나는 전도에 대해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 점검하며
전도에 일등의식 갖고 달려가는 신앙의 경주자
전도지향적인 삶을 살아가는 신앙의 경주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