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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갈등은 해소되어야 합니다 (창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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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백장흠 목사

평안이 없다면 행복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에 근심이 있고 불안한데 돈이 있다고 권세를 가졌다고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마음에 평안함이 있어야 합니다.  죄를 짓고 평안한 사람이 있을 수 없고 전쟁하면서 평화를 논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불확실한 시대에 사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게 세 가지가 있는데, 그 하나는 의미 보람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면 모든 것을 희생할 수도 있습니다.  둘째는 소속감이라고 합니다.  고독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안전성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불안을 싫어합니다.

이와 같이 화목함 없이는 평안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화목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어떤 집을 가보면 가화만사성이라는 글을 써 붙인 집을 봅니다.  가정이 화목하면 만사가 잘된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왜 화목함이 깨어집니까? 욕심과 시기, 질투 그리고 갈등 때문입니다.
불행의 원인이 갈등입니다.  아직도 계속되는 게 고부간의 갈등입니다. 문명으로 새로운 사회가 된 것 같은데 신세대 시어머니와 신세대 며느리가 생겼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갈등이라고 합니다.  건강에 야채가 좋다고 해도 시금치는 먹지 않는 젊은이 그리고 그렇게 믿음이 좋아서 성경을 많이 읽어도 시편은 읽지 않는 답니다.  왜 시어머니 시누이 시아버지 시자에 질려서 그런다는 말도 있을 정도입니다.  오늘의 사회도 문제는 갈등입니다.  동서간에 갈등, 세대간에 갈등 그리고 이념적인 갈등까지 대두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아브라함과 조카 롯과의 갈등이 생겼습니다.  이것을 감지한 아브라함은 갈등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갖습니다.

1.  갈등이 왜 있게 됩니까?

  1)  이기주의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아무리 상하질서가 없는 때라도 조카의 집사람들이 어찌 삼촌 집사람들과 문제가 생깁니까? 이권문제 때문입니다.  이권 앞에는 질서도 예의도 없게 된 것입니다.  이기주의는 다른 이에게 해가 되어도 자신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시대가 왜 어려워집니까? 이기주의 때문입니다.  개인 이기주의와 집단 이기주의가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회사는 망해도 주인이 어찌 되던지 우리는 더 많은 대접을 받겠다는 행동이 파산 부도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신앙인들도 교회에 나와서 말할 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성도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만 자기에게 불리하면 용서하지 못합니다.  참지 못합니다.  이기주의를 초월하면 갈등은 생기지 않습니다.

일요 신자가 이런 기도를 한다고 합니다.   주여! 주님이 자게 십자가를 지라 하시면 기꺼이 지겠습니다.  그 대신 짐꾼은 주님이 불러 주세요.  제게 정직하라 하시는 말씀을 이행하겠습니다.  다만 장사할 때 남과 계산할 때만은 예외로 해주세요.  원수를 사랑하라구요 아멘입니다. 그대신 원수의 항복부터 받고 용서하겠습니다.  그런답니다.  희생은 말로 하는 게 아닙니다.  이기주의자들은 이론은 그럴듯하게 하면서 실제는 계산 먼저 합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자신은 북 치는 사람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북은 쳐야 소리가 납니다.  자신이 희생할 때에 진리의 소리가 난다는 것입니다.  항상 자기밖에 모르는 노신사가 기차에 탔습니다.  제일 좋은 자리에 앉아 바로 옆자리에 여행용 가방을 올려놓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옆자리에 앉지 못하게 하고 평안하게 여행하기 위함입니다.  기차가 떠날 무렵에 한 소년이 같은 차간에 뛰어올라 그 노인에게 옆자리에 앉아도 되느냐 물어 보았습니다.  자리가 있어요.  그 친구가 곧 올라올거예요.  이 가방이 그 사람의 가방이거든요.  소년은 가방주인이 올 때까지 앉아있겠다고 하며 가방을 안고 그 자리에 앉았습니다.  기적이 울리고 열차는 출발합니다.  출발하자마자 소년은 여행용 가방을 창 밖으로 던져 버렸습니다.  노인이 깜짝 놀라 아니 왜 가방을 창 밖으로 던지느냐 소년이 대답합니다.  가방 주인이 기차를 타지 못했으니 가방을 찾아가라고 던진거라고요.  이기주의자들은 갈등을 일으키면서 마지막은 손해를 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비참하게 되는 방법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사람이 비참하게 되려면 이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1)  당신 자신에 대해서만 생각하라.  2) 당신에 관한 이야기만 하라.  3) 나 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라.  나는 내가 4) 상대방의 의견 속에 계속 자신만을 반영하라.  어떤 사람이 돈을 많이 벌었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도 우리 집안에서 돈을 벌어준답니다.  내가 아프지 않고 병원에 가지 않는 것만도 돈 벌어 주는 거 아니에요 이런 식입니다.  5) 인정받기를 기대하라.  인정 안 해주면 화냅니다.  나와 의논도 없이 그런 일을 합니까 식입니다.  6) 아무도 믿지 말고 자신만 믿어라. 등 이런 일을 계속하면 자신이 비참해진다는 말입니다.  한 마디로 이기주의를 가지면 자신이 비참해진다는 말입니다.

  2) 시기심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잘못된 게 바로 시기와 질투심입니다.  잠언 14:30절에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시기심이란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의 성공이나 행복을 볼 때 화가 나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인이 왜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까? 시기심 때문이었습니다.  사울 임금은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왜 몰락이 왔습니까? 다윗에 대한 시기심 때문이었습니다.(삼상 18:8-9)  시기와 질투 이것이 갈등의 요소입니다.  질투심은 자기와 관계가 없는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아니한다는 것이 특색입니다.  같은 옷가게 주인끼리는 문제가 되지만 식당주인과는 질투하지 아니합니다.  즉, 경쟁관계에서 질투심이 나오는 것입니다.  질투심은 일종의 열등감에서 나온다는 보고입니다.  야곱의 가정에 두 여인의 시기 질투로 인하여 갈등이 계속되는 것을 찾아볼 수 있게 됩니다.(창 30:14-30)  두 여인은 자매입니다.  언니가 아이를 낳으면 질투심가운데서 안달을 하다가 동생이 아이를 낳습니다.  나중에는 몸종을 통해서까지 아이를 낳아서 야곱은 열 두 아들이나 낳은 것입니다.  질투심이 생기면 그것이 변하여 자신에 대한 불평이 됩니다.  그러다가 죄에 빠지게 됩니다.  시기나 질투와 다툼의 근원은 마귀입니다.  이런 마음이 생길 때 과감하게 물리쳐야 합니다.  시기심이나 질투심은 추한 마음입니다.  간음이나 음난보다 더 추한 마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갈등은 한 마디로 사랑의 부족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대하여야 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랑에 빠지면 눈이 먼다고 합니다.  며느리를 대할 때에도 사랑으로 대하면 단점은 보이지 아니합니다.  영국 런던에 있는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연구진이 사랑하면 객관적인 사고가 둔화되고 다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능력이 줄어든다고 밝혔습니다.  사랑하면 자기 만족을 느끼게 되고 결국 민첩한 사고나 냉철한 판단력이 감소하게 돼 결국 사랑은 눈을 멀게 한다는 옛말이 사실임을 증명했습니다.  시기심이나 질투보다는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마음을 넓게 하는 작업을 전개합시다.

  3) 갈등은 잘못 처리된 감정 때문입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라고 합니다.  나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만날 때마다 화나게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나요? 갈등관계가 됩니다.  예를 들어 봅니다.  아들이 그렇게 원해서 그렇지 자기는 그런 며느리를 데려오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새 며느리가 말할 때마다 시어머니를 화나게 합니다.  그러면 자연히 갈등 관계가 되어집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종들이 서로가 다툽니다.  이해관계보다는 감정관계로 돌변합니다.  갈등관계가 되었습니다.  나를 화나게 할 때에 우리는 감정처리를 잘해야 합니다.  최고의 방법은 긍정적인 감정표현입니다. 나이 드신 어른이 나를 화나게 합니다.  어른이니까 젊은 사람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래 나이가 들면 섭섭한 게 많다더라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합니다.
부부간에도 감정처리를 잘못하여 커다란 상처를 입고 갈등으로 인하여 가정이 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다가 잠잠할 때는 고요하고 평화롭지만 일단파도가 일기 시작하면 순간적으로 커다란 두려움의 존재가 되는 거와 같이 감정도 그러합니다.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합니까?
(1)침착해야 합니다.
  감정처리를 정수하지 않고 그대로 표현하면 갈등이 생깁니다.  어디까지는 말해도 되는지 생각 좀 해보아야 합니다.  차라리 먼저 침묵해야 합니다.  이런 훈련을 계속해야 합니다.
(2)상대방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 여기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반대로 듣기는 안 하고 자기 말만합니다.  그런 때에 상처는 깊어집니다.
(3)비난하지 말아야 합니다.
  속이 상합니다.  저는 뭐 잘 났다고 아니 뭐 잘한 게 있어서 그러느냐 대들거나 비난하면 감정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비난하지 말라 이건 계명입니다.  왜 사건 외에 다른 것까지 들추면서 비난합니까? 그 사건만 갖고 다루어야 합니다.  말 때문에 갈등이 깊어집니다.  타우라스산( Mount Tauras)의 정상 후미진 골짜기는 독수리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독수리들에게 있어 가장 좋은 먹이 감으로는 두루미라고 합니다.  두루미들이 날아갈 때에 소리를 냅니다.  여행 중에 떠들어대는 두루미들을 독수리는 힘들이지 않고 잡아먹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경험 많고 나이든 어른두루미는 약점을 방지하기 위하여 두루미들의 입에 큰돌을 물린다고 합니다.  우리가 왜 시험에 듭니까? 마귀들이 찾아오도록 하는 것은 상대방을 비난하고 나쁘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비난하지 말아야 합니다.
(4)자신의 잘못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요.  나도 잘못했어.  나도 잘못했어요.  우리가 감정처리를 잘못해서 엎질러진 물이 되면 안 됩니다.
5)휴전을 선포하세요. 
  다음에 말합시다.  오늘은 이만 끝입니다. 그런데 끝장을 보려고 하면 문제가 깊어집니다.  부부간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앞으로 더 살날이 있는데 다음에 합시다 라고 미루세요.  이것이 지혜입니다.  그리고 기도로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회개도 하고 다짐도 해야 합니다.  갈등은 해소되어야 합니다.

2.  갈등을 어떻게 해소합니까?

아브라함을 보세요.  그는 진짜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은 입으로만 믿습니다.  아멘, 할렐루야가 아닙니다.  삶 속에서 지혜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갈등문제를 잘 해소하였습니다.

1)알았습니다.
  우리는 한 골육이라는 것입니다.(8절)  우리는 한 골육이라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한 골육이다.  서로가 갈등을 가지고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지식이 없어 이 백성이 망한다고 하십니다.  무지해서 갈등을 해소하지 못합니다.  안다는 것이 글자를 알고 다른 나라 말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당신은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독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인간이 가져야 할 4가지 감각에 대하여 말하기를 첫째는 소속감이라 하였습니다.  나는 어디에 속했나.  어디에 소속되어야 행복한 건가? 를 본능처럼 알고 살아야 합니다.  둘째는 한계성입니다.  나의 끝이 있음을 알고 사는 것입니다.  모든 게 마지막이 있다는 것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셋째는 유일성입니다.  세상 어디에도 나와 같은 사람은 나 하나 뿐입니다.  넷째는 정체성입니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태어나 어디로 가는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소속감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한 골육이다.  갈등을 일으킬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입니까? 원리에 충실한 것입니다.  기본에 성실하라는 말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에 김일성이나 김정일 같은 사람이 우리는 한 골육이다 라고 알았더라면 6?25라는 비극의 전쟁은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게 의식입니다.  바른 의식을 가져야 바르게 됩니다.  하나라는 의식을 가지면 갈등이 해소됩니다.  부부간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그 여자는 내가 사랑하여야 할 사람이다.  남편 되는 이가 형편없어 보입니다.  그때 저런 남자를 내가 도와주어야 한다 라는 생각을 가져보세요.  왜 우리는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 부름을 입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예수의 피로 연결된 형제요 자매입니다.  조직사회에서 계급이 있고 교회 안에서는 업무상 직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우리는 한 형제와 자매입니다.  하나요 같은 목적을 갖고 사는 그리스도의 지체들입니다.

2)양보해야 합니다.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고 네게 좌하면 나는 우하겠다는 것입니다.  롯에게 아브라함이 취한 태도가 양보입니다.  어른이라고 충고할 수도 있습니다.  아들 같은 조카입니다.  우리는 이론은 많은데 양보가 적습니다.  자기에게 도전해 오는 사람을 대할 때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버릇을 고쳐주겠다.  아닙니다.  이는 착각입니다.  하나님도 고쳐주지 아니하시는데 어떻게 자기가 고쳐줍니까? 차라리 사랑하여야 합니다.  사실을 인정하고 해결점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충돌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갈등 해소법은 문제는 인정했습니다.  사실파악이 중요합니다.  어려운데 어렵지 않다고 해서 동의를 얻어 낼 수는 없습니다.  사실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문제를 상대방의 관점에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입장에서 보면 자기는 다 잘하고 상대가 잘못하는 것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희생하고 양보해야 합니다.  즉, 손해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양보하는 운전사는 사고나지 아니합니다.  삶에도 양보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충돌하지 않고 화해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양보하는 것입니다.  양보하는 데는 의사가 통해야 합니다.  왜 그러는가? 그 뜻을 알아야 합니다.  상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의사가 통하지 아니합니다.  고집만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계속 갈등입니다.  6?25사변을 지난지 54년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20% 외에는 그 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 답답하다는 것입니다.  북쪽 사람들은 철저한 사상으로 무장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보안법도 사상적인 것도 통일의 장애가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성세대는 공산주의를 체험하여 보았습니다.  그건 용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공산주의 철학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 정치입니다.  반세기 동안 남북갈등으로 인하여 이제는 의사도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랑한다는 말은 북쪽에서는 감정 있습네다 라고 해야 한답니다.  나도 사랑합네다 라고 표현하려고 하면 뭐라 하느냐 접수합네다.  머리 쓴다는 말은 골 쓴다 라고 하고 일하는 것은 질 한다고, 교장 질합네다.  말이 통하지 아니하여 답답하다는 것입니다.  말이 통하지 아니하니까 통일이 안 되는 것입니다.  충돌하지 않아야 합니다.  서로 다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갈등은 해소되어야 합니다.  부부간에 갈등이 있습니까? 풀려져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예수는 잘 믿는 것 같은데 갈등이 있다면 잘 믿는 게 아닙니다.  사랑으로 해소합시다.
고부간의 갈등, 교역자와 신자간의 갈등, 성도와 성도의 갈등을 해소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입니다.  양보합시다.  그러므로 갈등이 없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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