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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라나라 (벧전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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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 설교 : 홍요셉 목사                                   

[1] 신분에 걸맞는 삶을 살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건강 관리를 무섭게 합니다. 건강하게 살려고 노력을 합니다. 하지만 자기 몸을 아무리 잘 보살피고 아무리 잘 관리해도 그 몸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24절에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풀이 말라죽듯이 사람의 몸은 다 죽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영광, 사람의 명예도 귀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면 신분이 변하고 존재가 변하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이 신앙 행위는 교리를 배워서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 순간에 즉시로 하나님의 신이 우리 안에 쑥 들어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이론적으로 그냥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이 우리에게 들어오는 것입니다. 말씀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풀과 같고 풀의 꽃과 같은 존재인 우리가 하나님과 똑같이 영생하는 존재가 됩니다.  굉장한 신분의 변화, 존재의 변화가 온 것입니다. 더구나 얼마나 귀한 신분이 되었습니까?
그런데 구원을 받으면 우리의 신분이 천사가 부러워하는 존재로 바뀌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왜입니까?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받아들이면 우리의 신분이 천사 이상의 신분,  하나님의 자녀로 승격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말씀하십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칙입니다.
이것이 놀라워서 천사들이 '저 죄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나?'하고 우리를 살펴봅니다. 베드로전서 1장 12절에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천사도 부러워하는 신분, 존재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천사도 부러워하는 신분이 된 우리는 이제 여기에 걸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본문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2] 하나님의 자녀로 자라나라

하나님 자녀의 신분에 걸맞는 생활은 무엇입니까?

1. 먼저 영적 쓰레기들을 벗어 버리라

먼저 벗어버리고 입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1) 모든 악독을 벗어 버리라

  이태리에 아주 무서운 독거미가 있는데, 이 독거미가 사람을 물지 않고 지나가기만 해도 사람이 죽는답니다. 독거미가 지나간 음식만 먹어도 죽는답니다.
그래서 이태리 사람들은 독거미가 지나간 흔적이 있는 음식은 무서울 정도로 재빨리 버린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악독을 무섭게 버려야 한다고 본문의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악독이 무엇입니까?
악한 의도로 형제를, 이웃을 해치려는, 파괴하려는 악한 생각, 악한 행위를 말합니다. 이 모든 악을 다 벗어버려야 합니다.
왜입니까? 악은 마귀 자식의 신분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악은 마귀가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는 그것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우리 아버지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는 선함이 가득합니다.
오늘 본문 3절에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 인자하심, 용서하심, 거룩하심을 다 맛보았습니다.
하나님께는 선함이 가득합니다. 진실함, 용서함이 가득합니다.
그러니 우리에게도 선함과 용서함, 의로움이 가득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 아내가 날마다 나에게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야 합니다. 내 남편이 매일 나에게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야 합니다.  내 자녀가, 내 이웃이 나에게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을 만나는 모든 사람이 여러분에게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악독을 벗어버리고 선함으로 옷을 갈아입어야 합니다.

(2) 모든 궤휼을 벗어 버리라

다음으로는 '모든 궤휼을 벗어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궤휼이 영어로 deceit인데, deceit는 사기 치고, 거짓말하고, 속이는 것을 말합니다. 거짓의 아비는 마귀입니다. 그러므로 거짓말하고 속이는 것은 마귀의 자녀가 되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속여서도 안 되고 거짓말해서도 안 되고 진실해야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진실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혹 때때로 진실하지 못하게, 거짓 되게 사신 분이 계시면, 성령께서 오늘 이 시간에 그 거짓을 끊어주시기를 바랍니다.
거짓을 끊어버리고 진실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에게 걸맞는 생활입니다.

(3) 외식을 버리라

외식은 연극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영화 배우가 연출하는 것이 외식입니다. 영화 배우는 의과대학을 나오지 않았어도 마치 의사처럼 나타납니다. 왕도 아닌 사람이 상감마마가 되어서 나타납니다. 가정 주부가 배우가 되면 어느 날 "김상궁!"하며 중전마마가 되어서 나타납니다. 연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연극하는 것을 외식, 위선이라고 합니다.
마귀는 천사의 탈을 씁니다.
이리가 양의 옷을 입고 나타나는 것, 외식하는 것, 그것이 마귀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는 있는 그대로 아기처럼 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8장 2절, 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세우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권사님이 되고, 장로님이 되고, 목사님이 되고, 팔십 세가 되어도 아기처럼 순진한 마음, 천진난만한 마음으로 생활하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우리 모두의 마땅한 삶의 길인 것입니다.  신앙 생활은 아기같이 해야 됩니다.
기도도 아기같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에서 기도하시든, 집에서 기도하시든 아기처럼 순진한 마음으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기처럼 순진하게 기도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응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외식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갓난아기처럼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4) 시기를 벗어 버리라

또 하나님 자녀에 걸맞는 생활을 하려면 '시기를 벗어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시기를 버려야 합니다.
독거미가 지나간 음식을 버리듯이, 피 묻은 옷을 벗어버리듯이, 시기와 질투는 벗어버려야 합니다.
시기는 우리를 서로 파괴하도록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미리암과 아론은 모세의 친누나와 친형인데, 모세를 시기합니다. 모세가 카리스마로 민족 앞에 서니 그것을 시기합니다. 그래서  "아니! 구스 여자를 취한 주제에…. 너만 하나님과 이야기 하냐? 우리도 하나님과 대화한다." 하면서 모세에게 대듭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적 질서를 파괴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는 하나님의 지도자로서의 직분을 주셨고, 아론에게는 대 제사장의 직분을 그리고 미리암에게는 선지자의 직분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질서를 무시하고 시기하고 대든 것입니다.
  모세가 괴로워합니다. 다른 사람이 그래도 마음이 아플 텐데, 친형과 친누나가 그러니까 그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미리암을 나병환자가 되게 하십니다.
시기는 마귀의 일이니 하나님께서 벌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시기하면 서로 망합니다.

  랍스터라는 바닷게는 아주 커서 닭만큼 큰 것도 있습니다. 가격이 비싸서 미국이나 호주에서도 출세한 사람들이나 먹을 수 있는 고급 음식입니다.
랍스터는 잘 기어오를 수 있어서 통에 넣어 놓아도 얼마든지 통 밖으로 기어나와 바다로 들어갈 수 있답니다. 그런데 바다에서 랍스터를 잡는 사람들은 그것을 잡아 놓은 다음에는 돌아보지도 않고 계속 잡는 일만 한답니다.
왜입니까? 랍스터가 도망가지 못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랍니다.
랍스터는 한 마리가 기어올라가면 다른 것이 반드시 물고늘어지는 습성이 있답니다. 이것이 기어올라가면 저것이 물고늘어지고, 저것이 올라가면 이것이 물고늘어지고…. 올라가면 끌어당기고, 올라가면 끌어당기니 결국 통에 넣어 놓은 랍스터는 한 마리도 올라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랍스터를 잡는 사람들이 통 안에 든 랍스터는 걱정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시기는 랍스터와 같습니다. 서로 파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우리에게 시기의 무기를 주어서 교회 안에서도 시기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교회마다 시기하게 만들어서 하나님의 교회를 아주 어렵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귀의 궤계인 시기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시기하게 만드는 것은 마귀입니다. 
  만일 사울 왕이 골리앗을 죽이고 나라를 회복시킨 자기 사위 다윗을 격려하고 함께 기뻐했으면 사울 왕국이 얼마나 든든히 섰겠습니까? 장인은 왕이고, 사위는 사령관이니 누가 그 나라를 엿보겠습니까? 다윗 같은 의로운 장군이 장인을 밀어내고 왕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사울 왕에게 시기가 들어가니, 사위인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니 사위도 십 년 간 아팠고, 자신은 아들과 함께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시기를 다 벗어버려야 합니다. 오히려 잘 된 사람을 보면, 격려해 주고 기뻐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자녀의 심성인 것입니다.

(5) 비방을 벗어 버리라

또 '비방을 벗어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비방은 남이 실수할 때 험담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을 험담할 수 있는 분은 주님뿐이십니다. 남을 비판할 수 있는 분은 예수님뿐이십니다. 정죄권은 주님만이 갖고 계십니다.
 
  노아도 술에 취해 옷을 벗기도 했고, 아브라함도 거짓말을 했고, 모세도 화를 내어 사람을 죽이기도 했고 구스 여자를 취했습니다. 다윗 같은 성군도 잠시 정욕에 눈이 어두워 자기 부하 장군의 아내를 빼앗아 취했습니다.
허물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끌려온 여자를 돌로 치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있으면 먼저 이 여자를 치라."고 말씀하시니, 모두 부끄러워 돌을 두고 집으로 갔습니다.
왜입니까? 죄가 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에 남을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남을 비판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슨 권한으로 남을 비판합니까?
비방하고 험담하는 것은 마귀의 일입니다. 그것은 남을 아프게 하는 일입니다.
허물을 덮어 주는 것이 하나님 자녀의 길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합니다. 그러니 남의 말을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누가 실수하면 빨리 덮어주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 8절에 말씀하십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할렐루야!
사랑하면 아내가 실수해도 덮어주고, 남편이 실수해도 덮어줍니다.
그래서 저는 누가 실수를 하면 사랑하는 마음과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냥 딱 덮어버립니다.  사랑과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기도해 주고, 그 처리를 하나님과 성령께 맡겨 버립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하나님의 뜻에 맞게 반드시 처리하십니다.

    어떤 장로님이 실수를 했을 때, 그것을 여러분 자녀에게 말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자녀가 파괴당합니다. 그 장로님이 강단에 나오셔서 대표 기도할 때 여러분의 자녀가 절대로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만일 제가 어떤 실수를 했을 때 그것을 여러분의 자녀에게 알려 주면 여러분의 자녀를 죽이는 일이 됩니다. 제가 아무리 천사처럼 말하고 설교해도 여러분 자녀의 귀에는 그것이 들리지 않습니다. 제 실수만 생각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험담을 하지 않는 것은 상대방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험담, 비방을 벗어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독거미가 먹었던 음식처럼 벗어 던져버리라는 것입니다. 

2.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라

그리고 이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것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이 말씀을 받고, '아, 아직 구원이 부족하구나. 구원받게 노력해야지.'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따라합시다.  "영적 구원은 일회적이다."

벌써, 예수님을 믿은 첫날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갓난아기, 엄마가 금방 낳은 그 핏덩이 같은 아기가 짐승입니까? 사람입니까?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람 노릇을 하지 못합니다. 말도 못하고 자기 몸도 가누지 못하고 옷도 입지 못합니다. 자라야, 젖을 먹고 자라야 사람 노릇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새 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은 받았지만 구원받은 사람답게 구원 역사를 이루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라야 합니다. 예배 드리고, 전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기 위해서는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는 말씀은 무슨 말씀입니까?
아주 건강한 아이가 배가 고파서 엄마 젖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하라는 뜻입니다.  목이 말라서 죽어가는 사슴이 헐떡이며 물을 찾듯이, 건강한 아기가 배가 고파서 젖을 찾듯이 갈망하라는 것입니다.
갈망해서 신령한 젖, 하나님 말씀을 먹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장성한 백성, 예수님의 분량에 이르는 구원받은 백성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젖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성경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할렐루야!
성경 한 권에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성경만, 말씀만 먹으면 쑥쑥쑥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3] 결 론

  미국의 카버박사는 흑인 노예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가 태어난 날짜는 아무도 모릅니다.  1942년에 죽은 날짜만 알려진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단 한가지 재산이 있었습니다.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이 자기를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확고한 신앙심이었습니다. 그는 확고한 어린 아이같은 순전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는 온갖 시련을 극복하며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계속 공부하여 농학박사가 되었습니다. 그의 모교인 아이오와 주립농대에서 그에게 교수로 남으라 하였으나 그는 가난한 농민들의 친구가 되겠다고 알라바마주의 초라한 농업학교에 교사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평생을 살면서 농민들을 돕는 일에 자신의 학문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는 농민들이 경작하는 목화가 바구미 벌레의 피해로 폐농하는 것을 보고 목화에 대한 대체작물로 땅콩을 개발하여 농민들에게 권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듣고 땅콩을 심었던 농가들이 과잉 생산으로 빚더미에 앉게 되었습니다.

온갖 비난에 상심한 그는 땅콩 한 주먹을 들고 숲 속으로 들어가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이 땅콩을 왜 만들었습니까?“ 하나님께서 땅콩을 들고 기도하는 그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이르시기를 ”땅콩을 들고 연구실로 들어라가“ 하셨습니다. 그는 연구실에서 땅콩 하나만으로 300여 가지가 넘는 제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공장을 세워 그 지역이 부촌이 되게 하였습니다.

땅콩 하나에서도 이런 가능성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가 한 말에 “땅콩은 모든 사람에게 복을 갖다 줄 것이며 그 장래성은 땅콩 농민들의 상상력과 노력에 달려 있다”고 하였습니다. 땅콩이 그러하거늘 하물며 사람에게서야 얼마나 엄청난 가능성이 숨겨져 있겠습니까? 우리 각자가 노력과 상상력으로 그리고 어린 아이같은 순전한 믿음으로 자신을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의 신령한 젖을 사모하며 갈망하십시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영적 쓰레기 같은 것들을 버리십시오,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오직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 본대로 다른 이들에게 나타내십시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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