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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인생의 등불 (시 119:97~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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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홍문수 목사

우리 인생을 흔히 길을 가는 것에 비유하곤 합니다. 그런데 그냥 길을 가는 것도 아니고, 캄캄한 밤길을 가는 것과 같습니다. 캄캄한 밤길을 가노라면 위험한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위험한 것은 올바른 방향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요즘 도시에서야 표지판도 있고 등불도 있어서 괜찮지만, 시골길이나 산길을 가게 되면 늘 다니는 사람이 아닌 경우 정말 당황하게 됩니다. 안개까지 끼면 문자 그대로 ‘오리무중’입니다.

부끄러운 기억입니다만, 수년 전 제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기도원에서 설교 요청이 있어서 찾아 간 적이 있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밤늦게 나오는데, 주최 측에서 에스코트 안 해줘도 되겠냐고 묻습니다. 큰 길까지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폐가 될 것도 같고, 밝을 때지만 그래도 찾아 들어왔는데 돌아가는 게 뭐 그리 어렵겠나 싶어 사양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기도원을 나서자마자 칠흑같이 캄캄합니다. 가로등도 없고 표지판도 없고 길은 여러 갈래이고 ... 지레짐작으로 가는데 여기가 저기 같고, 저기가 여기 같습니다. 더듬거리며 한 2,30분 갔는데 자세히 보니 다시 그 자리입니다. 얼마나 황당했던지! 한참 헤매다 길을 찾기는 했지만 혼났던 기억이 납니다.

어두운 밤길을 찾아간다는 게 이렇게 어렵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세상의 길은 이와 같이 뱅글 뱅글 돌다가도 나중에 찾아갈 수 있지만, 인생은 단 한 번뿐인지라 길을 한 번 잘못 가면 인생이 휘청거리고, 심한 경우 쫄딱 망하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에 승리하려면 마치 어둔 밤길에 등불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 인생길을 비춰줄 ‘등불’이 꼭 필요합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이 그 등불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 말씀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 성경 중 105절을 보십시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인생길에 빛이 되고 등불이 된다고 고백합니다. 이런 고백을 가지고 말씀과 더불어 인생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반드시 승리하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동행하시고 보증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부디 이 사실을 믿으시고, 오늘 이 사간 다시 한번 말씀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말씀을 잘 활용함으로 복되고 아름다운 인생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말씀의 중요성 : 말씀 중심의 신앙

본문 시편119편은 아주 흥미로운 장(chapter)입니다. 성경 한 가운데 위치해 있어 성경을 놓고 대충 가운데를 펴면 시편 119편이 나옵니다. 그리고 성경을 수많은 장들 가운데 가장 긴 장입니다. 무려 176절이나 됩니다. 그리고 그 주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찬양과 열정! 그리고 한 가지 참고로 기억하실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명칭이 여러 가지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법, 법도, 계명, 규례, 율례, 율법, 하나님의 약속, 증거, 판단, ... 이렇게 명칭이 많은 것은 하나님 말씀의 다양함과 풍성함을 나타냅니다. 그 명칭 하나하나의 뉘앙스가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런 내용들을 통해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귀한 것으로 강조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중시하므로 흔히 기독교를 가리켜 ‘말씀의 종교’라 부르기도 합니다. 말씀이 없으면 신앙생활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처음 믿음이 생기는 것도 말씀을 통해서이고(롬10:17, 벧전1:23), 신앙생활을 해 나아가는 과정도 말씀의 인도로 이뤄집니다.(시119:105)

*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 벧전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 시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따라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얼마나 잘 할 수 있느냐, 그리고 인생을 얼마나 크게 승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잘 활용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제일 좋은 신앙은 말씀 중심의 신앙인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의 증거 : 성경 말씀을 사랑하고 가까이 하는 것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 나타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말씀을 사랑하고 가까이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그대로 지키고 순종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입술로 사랑하노라 하면서 말씀에 대해 무덤덤하다면 그 신앙과 사랑의 고백은 거짓이라는 겁니다.

97절(상).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102절.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103절.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시119:131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시119:164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예수님도 동일한 내용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14: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주님을 사랑한 자는 당연히 그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그 결과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시며 주님이 그와 함께 해 주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갈수록 사람들이 성경을 잘 안 읽습니다. 성경 공부에도 소극적입니다. 세상 지식,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정치 이야기 등에 대해서는 훤한데 성경에 대해서는 얼마나 무식한지 모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어느 교회에서 목사님이 오랜 만에 주일학교 부서들을 시찰하게 되었습니다. 복도에서 한 아이를 만나 질문을 던집니다. 성경 실력을 알고 싶었던 겁니다. “얘, 여리고 성을 누가 무너뜨렸니?” 그랬더니 그 아이가 화들짝 놀라면서 대답합니다. “제가 안 그랬는데요.” 어이가 없어서 옆에 있던 교사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이 아이가 여리고 성 누가 무너뜨렸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안 했다고 그러니 어찌된 겁니까?” 교사가 이렇대 대답합니다. “그 아이는 정직합니다. 정말 그 아이가 그러지 않았을 겁니다.” 너무 황당해진 목사님이 부장 집사님을 불렀습니다. “여리고 성을 누가 무너뜨렸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자기가 안 했다고 말하고, 교사는 그럴 거라니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랬더니 부장 집사님이 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기왕에 무너진 거 다시 잘 쌓도록 하죠.” 지어낸 이야기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특히 점점 세대가 내려갈수록 성경에 대해 무식한 현실을 풍자한 것 같아 씁쓸합니다.

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주일학교 교사가 매 주일 성경 인물을 하나씩 가르쳤습니다. 지난 주일 공부한 기드온에 관해 잠시 복습하고 다음 인물로 넘어갈 생각으로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얘들아, 지난 주일 누구에 대해 배웠지? 아는 사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힌트를 줍니다. “나팔, 횃불, 항아리 갖고 전쟁터에 나간 사람인데 ... ” 그래도 반응이 없자 힌트를 하나 더 줍니다. “양털 갖고 하나님의 뜻을 시험한 사람인데 ... 누구니?” 여전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힌트 하나 더 주겠다고 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호텔에 가 보면 그 사람 이름으로 방마다 성경책 갖다 두는데 ... ”(기드온 협회에서 무료러 성경을 호텔에 배포함) 그제서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듭니다. 반가워서 그 사람이 누구인지 말해보라고 했더니 그 아이가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힐튼이요 ... ”

여러분, 우리는 명심해야 됩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의 신앙이 진실한 것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하고 가까이 해야 마땅합니다. 세상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성경을 멀리하면 결코 신앙 생활과 인생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3] 성경 말씀을 가까이 하며 활용하는 법 세 가지

성경을 멀리 하고 읽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건성으로 지식적으로 읽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러면 그저 스토리나 나는 것이지 실질적으로 신앙과 삶에 큰 유익이 없습니다. 성경 말씀이 정말 나에게 큰 유익이 되고 축복이 되려면 올바른 자세로 성경을 읽고(쓰고, 공부하고), 적절하게 활용해야 됩니다. 적어도 다음의 세 가지를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① 말씀을 하나님 대하듯 대할 것 :  

성경 말씀을 잘 활용하기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잘못되면 성경이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을 혼자 읽을 때나 혹은 설교자 혹은 교사로부터 들을 때나 올바른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마치 하나님이 앞에 와 계시는 것처럼 대해야 됩니다.

옛날 임금이 신하를 시켜서 멀리 있는 사람에게 명령을 내릴 때가 있습니다. 사극을 보면 말을 타고 달려갑니다. 그리고 당도하면 “어명이요!” 하고 외칩니다. 그러면 넙죽 엎드리죠. 어명을 가지고 온 사람이 받는 사람보다 계급이 낮은 경우에도 동일하게 엎드립니다. 그 이유는 어명을 통해 임금님 앞에 엎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말씀을 대할 때 혼자서 읽을 때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전달받을 때도 하나님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고넬료가 나옵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편견에 사로잡혀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하지 않고 있던 시절 베드로의 편견을 깨뜨리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선교 역사의 전환점을 가져오는 데 기여한 인물입니다. 그가 기도 중에 환상을 봅니다. 주님께서 옆 도시에 와 있는 베드로를 초청하라고 합니다. 그 지시대로 사람을 보냈고, 집에다 일가 친척을 다 모아놓고 기다립니다. 드디어 베드로가 그의 집에 당도합니다. 그때 고넬료가 어떻게 했죠? 넙죽 엎드립니다. 베드로는 당황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자기가 가로챌 수 없어서 그랬습니다. 그리고 고넬료는 그 당시 지체가 높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넙죽 엎으리니까 민망했겠죠. 그래서 그를 일으키며 말합니다.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행10:26) 이제 베드로가 막 말씀을 전하려 할 때 고넬료가 한 말이 아주 멋집니다. 뭐라고 말합니까?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행10:33) 그는 인간 베드로를 통해 말씀을 받지만 그 말씀이 하나님으로부터 옴을 믿고 하나님 앞에 서 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받을 때마다 하나님을 대하듯 한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말씀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겠으며, 얼마나 그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겠습니까? 그럴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겁니다.

② 말씀을 꼭 묵상할 것 :

성경 말씀을 읽는 것, 듣는 것, 쓰는 것, 공부하는 것, 암송하는 것 다 좋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묵상하는 겁니다. 묵상을 거치지 않고 건성으로 지나가면 큰 유익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 말씀은 그 자체로는 일반적인 말씀이거든요.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되는 말씀이란 겁니다. 일반적인 원리만 설명해 줍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나에게 주시는 구체적인 하나님의 뜻, 즉 특별한 말씀이 필요한 겁니다. 성경에는 나에게만 해당되는 구체적인 말씀은 없죠. 그러나 우리가 말씀을 깊이 묵상할 때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역사하셔서 개인적인 깨달음을 갖게 합니다. 그게 곧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죠. 그걸 캐치해야 합니다. 그럴 때 생생하게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묵상이란 무엇입니까? 묵상은 한 마디로 말씀을 되새김질 하는 겁니다. 돼새김질 하면 소가 생각납니다. 소는 이상하죠. 풀만 먹는데도 덩치가 큽니다. 왜 그럴까? 하나님이 그런 종류로 창조하시기도 했지만, 돼새김질에 그 비결이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소는 여물을 먹으면 위가 여러 개라 넣었다가 다시 꺼내서 계속 돼새김질을 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번 듣고 지나치는 게 아니라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되새김질을 해야 됩니다. 그게 곧 묵상이죠. 특별히 나의 신앙과 삶과의 연관성(relevance)을 따지면서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를 가리켜 적용이라고 하죠. 묵상을 통해서 적용이 가능해지는 겁니다. 그리고 적용이 구체적으로 될 때 말씀을 실천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칠 때 말씀이 비로소 복이 됩니다. 시1:2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본문 97절입니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묵상의 축복을 놓치곤 합니다. 세상사에 너무 분주하다 보니까 묵상할 시간적, 정신적 여유를 갖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바빠도 정말 중요한 것은 다 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병에 걸리면 아무리 다른 일이 쌓여 있어도 병원으로 달려갑니다. 말씀 묵상의 중요성을 안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묵상의 시간늘 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루 일과 전에 무엇보다 먼저 묵상의 시간을 가지셨습니다.(막1:35 참조) 우리도 묵상을 삶의 최우선순위로 두면 정말 좋겠습니다.

③ 깨달은 바를 꼭 실천할 것 :

성경 말씀은 그냥 알고 있으라고 주는 게 아니라, 순종하라고 주신 겁니다. 다시 말하면 깨달은 대로 순종하고 구체적으로 실천하라고 주신 겁니다. 거듭 말씀드리거니와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어도 묵상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별 다른 유익이 없습니다.

유명한 전도자 D. L. 무디의 이야기입니다. 시카고에 가면 무디 신학교가 있는데, 그 안에 무디 기념관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무디에 관한 자료가 많이 비치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그가 사용하던 성경책이 놓여져 있습니다. 성경책 여백에 그의 친필로 T 혹은 P 등으로 표시를 군데 군데 해 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T는 Tried(실천해 보았다)이고, P는 Proved(검증되었다)의 약자입니다. 무디는 성경 구절마다 묵상하고 구체적으로 실천해 보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이 그대로 이뤄주시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시편 기자도 말씀의 실천을 강조합니다. 시편 119편을 시작하면서 대전제로 실천을 강조합니다.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시119:1~2)

[4] 말씀을 묵상하고 순종함으로 얻는 축복 : 지혜, 성결, 형통

우리가 말씀을 하나님 대하듯 하면서 묵상하고 실천하면 분명히 축복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① 지혜 :

사람이 망하고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는 무지입니다. 사람이 지혜가 막히면 얼마나 미련해지는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옆에서 보면 망하는 데로 기어들어갑니다. 권면하고 만류하면 손을 뿌리치고 갑니다. 결국은 망합니다. 안타깝죠. 그러므로 우리는 올바른 인생의 길을 찾아가는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시편 기자는 체험적으로 고백합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실천할 때 지혜를 얻는다는 겁니다. 98절에서는 원수보다 더 나은 지혜를 얻는다고 말합니다.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우리 인생에 원수가 얼마나 많습니까? 사람, 환경, 문제, 그리고 마귀 등 ... 그들이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들보다 더 큰 지혜를 주시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99절에서는 스승보다 나은 지혜, 100절에서는 경험으로 많은 지혜를 가지고 있는 노인보다 나은 지혜를 말씀을 통해 얻는다고 말합니다. 이렇게만 되면 세상에 그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반드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이 있죠.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있다.” 그런데 나는 자 위에 날뛰는 자가 있다고 합니다. 날면서 뛰니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런데 날뛰는 자 위에 또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일까요? 말씀을 붙들고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와 동행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무적인생이 됩니다.

세계인 흑인 농학자 조지 카이버 박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수백 종의 씨와 농작물에서 기름을 추출해 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공로를 치하하고 강연을 듣고자 미국 상원에서 그를 초청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사회자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박사님, 어떻게 다른 사람이 생각지도 못한 그런 대단한 업적을 이루셨습니까? 그 비결을 말씀해 주십시오.” 카이버 박사는 마친 손에 들고 잇던 성경책을 치켜올리면서 대답했습니다. “모든 비결이 다 여기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자 한 의원이 빈정거리며 질문합니다. “아니, 박사님! 성경에 낙화생 기름 짜는 법도 나옵니까?” 그러자 카이버 박사가 대답했습니다. “물론 낙화생 기름 짜는 법은 성경에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나에게 말씀하시고 동행해 주셨습니다. 그 가운데 그 모든 것을 배우게 된 겁니다.” 그는 성경 말씀을 통해 남들이 감히 흉낼 수 없는 지혜를 얻었던 것입니다.

② 성결 :

사람이 망하는 것은 무지 때문이기도 하지만 죄악 때문이기도 합니다. 인생이 약해서, 뭐가 부족해서 망하는 게 아닙니다. 악해서 망하는 겁니다. 우리 주변에서 보잖아요? 오랜 세월 공을 쌓고, 권세와 부를 쌓은 사람이 하루 아침에 범죄 사실이나 비리가 밝혀저서 추락하는 모습을 봅니다. 한 사회가 성숙해질수록 정직한 사람이 성공하게 됩니다. 미성숙한 사회에서는 약삭 빠르고 사악한 자들이 잘 됩니다. 우리 사회가 이제는 제법 성숙해졌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갈수록 정직하고 의로운 사람이 성공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공직자에 취임하려 할 때 다 뒤지잖아요. 병역 비리 없나, 탈세하지 않았나, 나쁜 짓 하지 않았나, ... 여기에 걸리면 끝장납니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잘립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정직한 삶을 살려고 해도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본래 죄인인고로 유혹이 오면 그냥 끌려다니다 범죄하게 되고 결국은 무너집니다. 그런데 말씀이 그 마음에 있으면 절제가 됩니다. 말씀의 브레이크! 그래서 죄악된 길로 빠지지 않습니다. 본문 101절, 104절을 보십시오.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 주의 법도로 인하여 내가 명철케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시119:9~11에서도 동일한 내용으로 말씀합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이처럼 말씀을 통해 우리는 성결을 지킵니다. 그리고 성결이 우리의 인생을 안전하게 지켜줍니다.

③ 형통한 삶 :

우리가 말씀을 통해 지혜를 얻고 성결을 지키면 하나님이 분명히 함께 해 주십니다. 그리고 축복하십니다. 거칠 것이 없는 형통의 복을 주십니다. 시119:165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가나안 땅에 막 들어가려고 합니다. 인간적으로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낯선 땅, 원주민이 강력한 군대로 방어하고 있는 땅에 혼자 몸도 아니고 수백만명의 백성을 인솔해서 들어가야 하는데 ... 그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여호수아를 격려하십니다. 수1:7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잘 지키면 하나님이 동행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여러분, 전능하신 하나님이 동행해 주시면 다 된 것 아닙니까? 언제(Whenever), 어디서(Wherever), 무엇을 하든지(Whatever) 형통하게 된다는 약속입니다. 정말 그렇게 됐죠. 여호수아가 말씀대로 순종하며 나아갔을 때 가나안 땅을 넉넉히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말씀으로 형통케 된 사람입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A. 링컨의 이야기입니다. 하도 훌륭한 신앙인이라 자주 인용하게 됩니다. 그는 어린 시절 인디아나 주의 아주 가난한, 학교조차 없는 시골 마을에 살았습니다. 어머니 낸시로부터 신앙과 기초 지식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가 11세 되던 해에 어머니가 임종을 맞이하게 됩니다. 어머니는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이렇게 유언합니다. “아들아, 너를 두고 먼저 아버지 집으로 가게 됐단다. 그 어느 것도 네게 줄 게 없지만 내가 소중히 여기던 이 성경책 한 권을 유일한 유산으로 준다. 이 책을 인생의 보배 삼고, 재산 삼아 그 교훈대로 살거라. 그러면 분명히 성공할 수 있고, 나를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다.” 정말 그렇게 됐죠. 그는 아무 것도 없었지만 성경책 하나 붙들고 살았을 때, 오늘날까지 존경받는 위대한 그리스도인이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정보의 홍수 시대가 됐습니다. 얼마나 많은 지식과 정보들이 인터넷과 서적들과 매스컴을 통해 유통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많은 것들 가운데 생명과 진리를 찾기 힘듭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만이 생명이요 진리입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홍수의 때에 가장 아쉬운 게 식수라는 사실입니다. 지식의 홍수 시대에 영적인 기갈이 있습니다. 암8:11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그리고 세상에 현란한 빛이 있지만 참 진리와 생명의 등불이 희귀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기갈에 괴로워하고 어두움 가운데 헤매고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영적인 기갈 중에 있는 인생들에게 말씀의 생수를, 어둠 속에 방황하는 인생들에게 말씀의 등불을 주셨습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은 이 가을에 더욱더 성경 말씀을 가까이 하면서 묵상하고 실천함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어두운 밤길과 같이 험한 세상에서 말씀의 등불로 늘 승리하는 복된 인생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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