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불 꺼지지 않게 하라 ② (레 6:8-13)

  • 잡초 잡초
  • 493
  • 0

첨부 1


- 설교 : 박재신 목사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명하여 이르라 번제의 규례는 이러 하니라 번제물은 단 윗 석쇠 위에 아침까지 두고 단의 불로 그 위에서 꺼지지 않게 할 것이요 단 위에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 제사장은 아침마다 나무를 그 위에 태우고 번제물을 그 위에 벌여 놓고 화목제의 기름을 그 위에 사를 지며 불은 끊이지 않고 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

  오늘 본문에 불 꺼지지 않게 하라는 문구가 세 번이나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성경 전체의 내용에서 우리가 천국 갈 때 까지 꺼뜨리면 안 되는 불이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믿음의 불입니다. 둘째는 사랑의 불입니다. 셋째는 선교 즉 전도의 불입니다.
  이 세 가지의 불은 계속 활활 타오르게 하여야 합니다. 교회가 존재하고 성도가 이 땅에 존재하는 동안 계속 타오르게 하여야 합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면 불 꺼뜨리지 말라고 하면서 “단위의 불”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우리가 꺼뜨리면 안 되는 불은 바로 단위의 불입니다.
  여기서 단이라는 말은 제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제단입니다. 번제물을 하나님께 태워드리는 제단입니다. 하나님의 제단에는 언제나 불이 타올라야 합니다.

  영국의 종교개혁자이며 신학자로서 1555년에 순교한 휴 래티머(Hugh Latimer)는 그가 묶여 있는 화형 틀에 불이 붙어 타오르자 옆에 묶여 있던 동료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리들리, 부디 마음을 편히 갖고 용기를 잃지 말게나.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영국에다 결코 꺼지지 않는 불을 밝히는 것이라네”
  오늘 우리는 과연 결코 꺼지지 않는 불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까?

  불은 두 가지 속성이 있습니다.

  첫째는 열정입니다.
  불은 뜨겁습니다. 즉 타오르는 정열과 열정이 있는 것입니다. 겔 39:25절에서 하나님이 열심을 내어 사로잡힌 백성들을 돌아오게 하고 온 족속에게 긍휼을 베풀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이제 내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열심을 내어 야곱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며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긍휼을 베풀지라”
  사 37:32절에서도 여호와의 열심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이는 남는 자가 예루살렘에서 나오며 피하는 자가 시온에서 나올 것임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이다”
  하나님은 열정의 하나님이십니다. 인생을 들을 사랑하시는 일에 열정을 쏟으셨습니다.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일에 열정을 쏟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열정이 없는 기독교는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정열소진(情熱燒盡) 증후군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매사에 의욕에 넘쳐서 활기차게 일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마치 정열이 소진된 것처럼 의기를 상실하는 현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치 고속도로를 달리던 차가 기름이 떨어지면서 도로에 서버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정열이 소진되어서는 안됩니다.
  제단의 불을 꺼뜨리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계속해서 열정을 불태우라는 것입니다.
  롬 12:11절을 보십시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계 3:19절에서는 차지도 덮지도 않은 라오디게야 지역의 교인들에게 말하기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라고 했습니다.
  ① 게으름은 불 꺼진 현상입니다.
  우리 마음의 성령의 불이 꺼져 버리면 매사에 게을러집니다. 기도하는 일에도 전도하는 일에도 게으름에 점령 당해 버립니다.
  ② 냉소주의 또는 비판주의 도 불 꺼진 증거입니다.
  이 시대에 우리가 극복하고 조심하여야 할 것이 냉소주의입니다. 남이 하는 일이나 교회에서 진행되는 어떤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으며 계속해서 비난만 하는 것은 냉소주의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부정적이며 소극적인 태도를 버리고 적극적으로 불을 피워봅시다.
 
  종교분야에서 인류를 위해 공헌한 사람에게 주는 템플턴 상을 제정한 템플턴은 “열정, 행복한 변화로 이끄는 내 삶의 기관차” 라는 책에서 “열정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나의 열정을 주위로 전염시켜라. 위대한 열정의 씨앗은 이미 내 안에 있다. 당신의 삶을 열정으로 변화시켜라."라고 말하였습니다.
  열정은 전등을 밝히는 발전기와 같은 것으로 인간을 빛나게 만드는 힘입니다.
  웹스터 사전에서는 이 단어를 '정열' 그리고 '불타는 열의 또는 관심'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열정이 없는 사람은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열정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허무함과 공허함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 종일 빈둥빈둥하며 아무 일에도 열중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날의 허무함과 공허함에 지쳐 버리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매사에 열정이 식은 사람이 있습니까? 
  열정이 식은 사람은 제단의 불이 꺼진 사람입니다.
  불이 꺼졌다면 다시 피워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시대에 불타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고, 교회와 이 세상의 병든 것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가득 차며,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잃어버린 자들을 구원하기 위한 열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 말입니다.
  불타는 마음의 전도자 요한 웨슬리에게 동료 사역자가 어떻게 청중을 모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전도자가 불탄다면 다른 사람들이 그 불을 보기 위하여 모여들 것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초기 감리교 학자요, 웨슬리의 보살핌을 받았던 아담 클라크(Adam Clarke)의 묘비에는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살다가 나는 타서 없어졌노라"는 내용의 비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링컨이 사사건건 딴지를 거는 각료를 해고하지 않자 한 친구가 링컨에게 왜 그를 해임하지 않느냐고 물었답니다. 그 때 링컨은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고 합니다.
  링컨이 어느 한가 한 날 시골길을 걷고 있는데 한 농부가 말을 몰아 쟁기로 밭을 갈고 있었답니다. 그때 말 엉덩이에 파리가 붙어 말을 귀찮게 하고 괴롭히고 있었는데 링컨이 파리를 털어 버리려고 손을 든 순간 농부가 "그만두세요. 그 파리 때문에 이 늙은 말이 그나마 움직이고 있답니다."라고 말했답니다.

  때로 열정이 식어버린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열정을 새롭게 하기 위해 고난을 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난의 불속에서 열정을 태우지 마시고 우리삶속에 주님을 향한 열정을 불태우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빛입니다.
  불의 두 번째 속성은 빛입니다. 빛은 밝습니다. 어둠은 하나님의 성품이 아닙니다. 착한 마음 밝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밝은 마음은 바로 주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성도들은 예수님의 빛을 발하는 등대여야 합니다. 등대로서 어둠에 밝은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빛나는 불을 꺼뜨리면 안됩니다. 
  구약 시대에 그렇게도 하나님께서 강조하셨던 불 꺼트리지 말라고 그렇게 강조했던 이 말씀은 오늘날은 통하지 않는 말 그대로 구약이 되었습니다.
  신약 시대의 등대인 교회의 불 빛은 꺼지고 세상의 어둠이 등대 즉 교회 안에까지 들어와서 등대인 교회조차도 어두워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 욕먹고 있습니다.
  빛이 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빛을 내는 불을 꺼뜨리면 안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신 말씀입니다. 교회가 불을 꺼뜨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교회를 보면서 배울 것이 없다고 합니다.
 
  착한 행실을 가져야 합니다.
  마 5:1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성령 받은 사람으로서 심령에 성령의 불이 타오르는 사람일수록 착한 행실이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그 착한 행실이란 바로 따듯한 친절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정직성을 가져야 합니다. 빛은 곧게 나갑니다. 비뚫어지게 나아가지 않습니다. 성령 받은 사람일수록 더욱 헌신적입니다.

  현재 한국 교회는 국민의 1/4일이나 되는 숫자를 신도로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 2위의 선교대국입니다. 세계 10대 대형 교회 중 5개가 한국 교회입니다. 국회의원 재적수 255명 중 120명이 개신교 신자며 상장기업 임원의 43%가 기독교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놀라운 성장을 이룬 한국교회의 교인 수가 급속히 감소하고 있습니다. 선교위기가 닥쳐 온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교회가 본받을 것이 없는데 전도가 되겠습니까?
  최근 불신자들을 상대로 하여 kbs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불신자들의 59%가 한국교회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 되었습니다.
 
  사랑의 불을 태웁시다.
  하나님의 제단에서는 어떤 불이 타올라야 할까요? 그것은 바로 사랑의 불입니다. 사랑은 불입니다.
  타오르는 불꽃처럼 강렬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제단에서 꺼지지 않게 하여야 하는 불이 바로 사랑의 불입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인들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요일 4:11-12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여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요한 사도는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 안에 형제요 자매라고 하는 것은 틀린 말입니다. 불은 뜨겁습니다. 이것은 열심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불을 꺼뜨리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 항상 타오르게 하여야 할 불은 사랑의 불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문제는 사랑의 문제입니다.
  돈의 문제도 아니고 권력의 문제도 압니다. 정치나 외교문제도 아닙니다. 사랑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입니다.

  미국 작가 잭 캔필드가 쓴 글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직장여성이 저녁 귀가 길에 다른 차를 들이 받았습니다. 두 차의 앞뒤 범퍼가 크게 망가졌습니다. 그녀의 차는 출고된 지 며칠 밖에 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넉넉하지 못한 살림 탓에 남편을 졸라 겨우 마련한 차였습니다. 이를 남편에게 어떻게 얘기해야 한단 말인가? 억장이 무너지는듯했습니다. 하지만 사건은 처리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자동차 등록증을 꺼내기 위해 차 안에 있는 큰 봉투를 열었습니다. 그 때 종이쪽지 하나가 봉투에서 떨어졌습니다.
  거기에는 큼지막한 필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사고가 날 경우에 이것을 잊지 말아요.내가 사랑하는 건 차가 아니라 당신이라는 걸!"

  그렇습니다.
  요일 4:18절에서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형제와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사랑이 있다면 상처 받은 마음들이 나의 사랑을 통해서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이 있다면 서로를 감싸주고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은 바로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내가 사랑해야 할 대상입니다.

  어느 도시에 있는 빵 가게에 벌써 이십분 째 물건을 안사고 진열된 빵들을 이리저리 뒤적거리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주인은 참다못해 말을 걸었습니다.
  "손님, 어떤 빵을 찾고 계십니까?"
  그러자 청년은 “유통기한을 봤어요. 혹시 유통기한이 지난 빵을 진열하지 않았나 해서요”
  빵가게 주인은 "몇 개는 유통기한이 오늘까지지만 안심하고 드셔도 좋을 빵만 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 청년은 언뜻 보기에도 지저분했습니다. 오랫동안 씻지 않았는지 몸에선 이상한 냄새가 났지만 주인은 그런 청년을 내쫓지 않았습니다. 자정 무렵이 되자 청년은 조심스레 빵 하나를 집어 진열대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곤 시계가 열두 시를 막 넘어서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그 빵을 들고 계산대로 가져가더니 갑자기 밖으로 뛰어나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힘이 없는지 얼마 못 가 털썩 주저앉는 청년의 어깨 위로 잠시 후 누군가의 손이 다가왔습니다. 돌아보니 놀랍게도 편의점 주인이었습니다. 당황한 청년은 들고 있던 빵을 서둘러 내밀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며칠 째 아무것도 먹지 못해 훔쳤습니다. 이 빵은 자정이 넘었기 때문에 유통기한이 지난 거예요."
  그러자 편의점 주인은 주머니에서 우유를 꺼내 건네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젊은이, 사랑에는 유통 기한이 없다네 이것과 함께 천천히 먹게나."

  그렇습니다.
  사랑에는 유통기한이 없습니다
  사랑은 영원합니다. 고전 13:13절에서 “믿음소망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왜 사랑이 제일입니까? 그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믿음도 천국이 오면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소망도 그 나라가 이루어지면 더 이상 필요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천국에까지 유효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불을 꺼트리지 않아야합니다.
  요일 4:20-21절을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라고 했습니다.

  생 텍쥐페리는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마주 보는 게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서로 마주보고 싸우지 말고 같은 방향을 함께 봅시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신앙의 불길을 바라봅시다. 열정이 있는 신앙 빛이 있는 신앙 그래서 사랑의 불꽃을 타오르게 합시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