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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을 정했습니다! (시 1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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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intro

오늘 주신 본문, 시편 108편은 <다윗의 찬양 시>입니다. 다윗은 이 시편을 통하여, 모든 원수를 물리쳐 마침내 승리하게 해 주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시편 108편이 다윗이 직접 만든 창작시가 아니라, 이미 오래 전에 써놓았던 두 편의 시에서 한 부분씩 가져다가 완성한 혼합시라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 시편 108편의 전반부는 시편 57편에서, 후반부는 시편 60편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시편 108편은 찬양(讚揚) 시인데 반하여, 이 시의 원문인 다른 두 편의 시는 비탄(悲歎)의 시라는 점입니다. 더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시편 57편은 다윗이 사울 왕의 박해를 피하여 도망가 숨었던 어느 동굴에서 적어 놓은 비탄의 시요, 시편 60편은 그가 왕이 된 직후 <에돔>과 전쟁을 치르다 일시적으로 패배를 당해 궁지에 몰렸을 때 하나님께 탄원했던 비탄의 시입니다. 한 마디로 원시(原詩)들은 비탄의 시인데, 거기서 한 부분씩 발췌해서 완성한 오늘의 시편은 찬양의 시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시편 108편이 더욱 소중합니다. 인간적으론 도저히 찬양할 수 없는 자리에서 터져 나온 찬양의 노래이기 때문이요, 탄식의 자리에서 마침내 이루고야 말 승리를 예감하고 그 기쁨을 선취하며 노래한 시편이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비탄의 자리를 찬양의 자리로 바꾸어 내는 영적 힘을 지닌 시편인데요, 하여 오늘은 시편 108편의 말씀을 가지고, <마음을 정했습니다!>라는 제목의 하나님의 말씀, 받으려고 합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 모두 비탄을 넘어 찬양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2
108:1 / (읽기) / 주목할 대목은 내 마음을 정했다는 고백입니다. 지금 다윗이 비탄이 자리, 곧 동굴에 앉아 탄식하다, 두 주먹 불끈 쥐고 하나님께 고백하는 말, 내 마음을 정했다는 겁니다. 여기서 오늘의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비탄의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을 잘 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내 마음을 어떻게 정하느냐가 관건이라는 겁니다. 그럼요, 조건의 문제가 아닙니다. 상황이 좋고 나쁜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나를 죽이려는 상대가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 내 마음이 문제입니다. 다윗이 고백합니다. <마음을 정했습니다. 하나님, 마음을 정했습니다.>

여기서 시편 108편의 원문인 시편 57편으로 가 보겠습니다. / 57:7 / (읽기) / 여기서도 다윗은 두 번 반복해서 자기 마음을 확정했노라고 고백합니다. 문제는 아직도 자기 몸은 동굴 속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57장 4절을 보니, 언제 사자가 공격해 올지, 언제 전갈과 독사에 물릴 지, 사울 왕의 창과 칼이 언제 자기 목을 향해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지금 그는 쫓겨 다닌 지 벌써 10년째, 이젠 지칠 만도 합니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여 달라고 애원함직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인생의 막장,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는 비탄의 자리에서 다윗은 다시 한번 자기 마음을 다잡고 있다는 점입니다. 새롭게 마음을 추스르면서 하나님께 고백하는 말이 정말 감동적입니다. <하나님, 제가 마음을 정했습니다. 여기가 끝이 아닌 줄 믿습니다. 저 하나님만 믿고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제 마음을 정했습니다.>

여러분, 다시 강조합니다. 무엇보다 내 마음이 중요합니다. 비탄의 자리를 털고 일어나, 마침내 승리를 쟁취할 수 있는 출발점엔 내 마음이 있습니다. 그럼요, 몸은 동굴에 숨어 있어도, 마음만은 저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어야 합니다. 몸은 오늘 힘겨운 여기를 살아도, 마음만은 저 영원한 천국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해서 마음을 정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마음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오늘의 삶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다윗은 어떻게 마음을 정하였기에, 인생 최대의 위기를 극복하고, 마침내 모두가 다 흠모하는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나도 비탄의 자리를 벗어나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해선 내 마음을 어떻게 정해야 하는 것일까? 오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인데요, 다윗의 찬양 시의 세계로 여행을 하며, 그 비법을 배우고자 합니다. 오늘 잘 들이시고, 꼭 가슴에 새겨 주시기 바랍니다.

# 3

1. 다윗은 노래하며 심령으로 찬양하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다시 시편 108편으로 돌아옵니다. / 18:1 / (읽기) / 다윗이 고백하기를 내가 마음을 정하였는데, 어떻게 정했느냐, 노래하며 찬양하기로 정했다는 겁니다. 그랬습니다. 다윗은 그 동굴 속에서 놀랍게도 노래하고 찬양하기로 마음을 정했던 것입니다. 그가 노래할 만 해서 노래하는 것 아닙니다. 찬양할 만 해서 찬양하는 것 아닙니다. 아직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요, 여전히 몸은 동굴 속에 숨어있는 신세이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노래하고 찬양하기로 정했다는 겁니다.

어떤 이들은 조금만 어려워도 자기 신세를 한탄합니다. 그저 비탄의 자리에서 탄식만 해댑니다. 어떤 이는 자기 입으로 자기 인생을 저주하기도 하며, 심지어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인생 막장에서 노래하고 찬양하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까짓 이 정도 어려움쯤이야 나의 노래로 이겨낼 수 있다는 배짱입니다. 이 정도 역경이야 내 부르는 찬양 한 자락이면 얼마든지 물리칠 수 있다는 자신감입니다. 그렇게 다윗은 노래와 찬양으로 위기를 벗어났던 것입니다.

그런데요, 거기 중요한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노래하며, <내 심령으로> 찬양하겠다는 고백입니다. 여러분, 노래는 내가 하는 거요, 찬양은 내 심령으로 하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의 노래로 내가 일어설 수 있는 것 아닙니다. 내 노래로 내가 구원받는 것입니다.

이 때, <노래란, 사상과 감정을 곡조에 실어 표현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슨 뜻입니까? 노래 속엔 일정한 사상과 감정이 들어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노래를 부르느냐 하는 점이 중요합니다. 불순한 사상이 담긴 노래를 부르면 내 삶이 불순해 집니다. 우울한 감정이 담긴 노래를 부르면 내 인생이 우울해 집니다. 불경한 사상과 감정이 담긴 노래만 부르면 내 삶이 불경해 집니다.

그러면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말인가? 1절 말씀에 그 답이 있는데요, 해서 지금 다윗이 내가 노래하되, 내 심령으로 찬양하겠다고 다짐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노래,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부르는 노래,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찬양이어야 합니다. 해서 내가 노래하되 심령으로 찬양하겠다는 말,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기리는 노래만 할 것이며, 하여 오직 하나님을 높여 드리는 삶을 살아가겠다는 다짐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도란 노래하고 찬양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사람 모두가 이젠 끝장이라고 절망 속에 탄식할 때, 우리 성도는 새로운 소망을 노래하는 희망 새가 되어야 합니다. 그럼요, 우린 어떤 상황에서도 노래하고 찬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다시 한번 확실하게 마음을 정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노래하고 찬양하리라! 외로워도 슬퍼도 절대로 울지 않으리라! 오직 나의 심령으로 노래하고 찬양하리라! 그럼요, 울긴 왜 웁니까? 우린 노래하고 찬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비탄을 넘어 찬양으로 나아가는 첫 번째 비결입니다.

<노래하고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2. 다윗은 새벽을 깨우기로 마음을 정하였습니다.

108:2 / (읽기) / 거기 보니 먼저 <비파와 수금>을 의인화하고 있군요. 마치 다윗이 동굴에서 비파와 수금을 끌어안고 함께 잠을 잤던 것 같습니다. 해서 다윗이 노래합니다. 공동번역 성경을 인용하겠는데요, <나의 마음아 눈을 떠라, 비파야 수금아 눈을 떠라, 새벽을 흔들어 깨우리라!> 새벽을 흔들어 깨우자! 참으로 아름답고 감동적인 표현인데요, 그랬습니다. 다윗은 새벽 사나이였습니다. 그는 탄식의 자리, 비탄의 자리, 그 동굴에서, 놀랍게도 새벽을 흔들어 깨우겠노라 마음을 정한 이후, 날마다 새벽을 깨우며 하루하루를 승리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날마다 새벽을 흔들어 깨우는 다윗을 하나님은 무척이나 사랑하셨습니다. <넌 내 마음에 꼭 드는 내 아들이다! 내가 너의 후손들까지 책임질 것이다. 넌 내 아들이다!> 여러분, 내가 마음을 제대로 정하고 나면, 그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통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 중에서도 새벽을 흔들어 깨우겠다고 정한 마음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여러분, 새벽을 흔들어 깨우겠노라 작심하시기 바랍니다. 이 목사 안타깝게 호소합니다. 제발 새벽을 흔들어 깨우시기 바랍니다.

부모님 여러분, 다윗과 같은 자녀가 있는 가정, 가장 행복한 가정, 가장 성공한 가정, 가장 복 받은 가정인줄로 믿습니다. 그런 가정되시기를 원하십니까? 간단합니다. 내일부터 새벽을 흔들어 깨우시면 됩니다. 믿는 부모의 기본입니다. 기본도 하지 않으면서 내 자식이 잘 되기를 바란다면 좀 문제가 있지 않겠습니까?

다윗은 양을 치던 목동이었습니다. 양은 야맹증이 있어 일단 어두워지면 움직이질 못합니다. 그래서 목자는 해가 지기 전 양들을 모아 우리로 인도하여 푹 쉬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이른 새벽 다시 양들을 깨워 데리고 나가, 이슬 맞아 촉촉한 좋은 꼴을 먹여야 합니다. 만약 목동이 게을러 늦잠만 잘 경우, 그 날 양들은 좋은 꼴을 먹지 못합니다. 해서 게으른 목자의 양들은 모두 비실비실 합니다. 새벽에 주시는 좋은 꼴을 먹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목자는 새벽에 부지런히 일어나야 합니다. 양들도 새벽에 부지런히 일어나야 합니다.

감사하게도 다윗은 성실한 목동이었습니다. 그가 일단 노래하고 찬양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나니, 언제 어디서나 찬양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니, 가장 찬양하기 좋은 시간이 바로 새벽이었습니다. 해서 새벽을 흔들어 깨우겠노라 마음을 정하면서, 자기 분신 같은 비파와 수금에게 부탁을 합니다. 우리 함께 눈을 떠서 새벽을 흔들어 깨우자고 말입니다.

그렇게 다윗은 매일 비파와 수금으로 새벽을 흔들어 깨우며, 하나님께 먼저 기도하고 찬양함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의 탁월한 연주 소리는 새벽을 흔들어 깨우며 아름답게 울려 퍼졌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연주를 기뻐 받으셨습니다. 또한 그의 연주는 잠자던 양들을 깨웠습니다. 그렇게 그는 날마다 새벽이슬과 함께 내리는 은혜를 받아먹곤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그는 비탄의 자리를 털고 일어나 전 세계인이 사랑하고 흠모하는 다윗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다시 한번 마음을 굳게 정하시기 바랍니다. 나도 새벽을 흔들어 깨우겠노라 마음을 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꼭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야행성이라 밤을 새우라 하시면 자신 있는데, 새벽엔 좀 약하거든요~!> 이러시는 분들께 제가 비법을 가르쳐 드립니다. 오늘 댁으로 돌아가시는 길에 자명종 시계 좋은 것으로 두 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름을 붙이시되, 하나는 비파라 하고, 다른 하나는 수금이라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비파와 수금에게 부탁하시기 바랍니다. <비파야 수금아, 눈을 떠라, 우리 함께 새벽을 흔들어 깨우자꾸나!> 그리고 일어나 주의 전으로 달려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런데요, 정말 안타까운 일은, 요즘 현대인들 가운데, 새벽을 깨우는 대신 밤을 깨우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건 좋은 현상이 아닙니다. 새벽을 깨우는 사람 보다 밤을 깨우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 우리 사회의 좋은 징조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낮과 밤을 구분해 주시고,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잠을 자며 쉬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창조섭리입니다. 이것이 창조의 질서입니다. 문제는 창조의 섭리와 질서를 거역하는 경우, 무리가 생기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낮과 밤을 바꾸어 사는 분들, 오래 가지 못해 건강이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그럼요, 섭리를 거스르면서 오래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찌 된 일인지, 술과 향락 때문에 밤을 깨우고, 그렇게 온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는 데 있습니다. 이렇게 술로 밤을 깨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 나라, 그 사회는 무너져 내리기 시작합니다. 밤을 지새우며 술 마시고 흥청거린 정권이나 기업치고 망하지 않은 것 하나도 없습니다. 이는 전 세계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밤이 맞도록 술을 마신 사람, 아무리 새벽에 깨워 놓아도,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 오직 신음 소리 아니면, 물 달라는 고함 소리뿐입니다. 속은 쓰리지요, 머리는 아프지요, 입은 모래 씹은 것 같지요, 정신은 몽롱하지요, 그래 가지고는 하루를 노래와 찬양으로 열기 어렵습니다.

아니, 해장국으로 하루를 여는 사람과 기도와 찬양으로 하루를 여는 사람, 어는 쪽이 승리할 것 같습니까? 새벽을 깨워 신선한 공기 마시며 교회로 달려 나와 감사하고 찬송하는 사람과, 새벽이면 오히려 잠자리에 들어 해가 중천에 떠야 겨우 눈비비고 일어나 냉수 찾는 사람 중에 누가 승리할 것 같습니까? 아니 어느 인생이 더 행복한 인생입니까?

제가 지난 3년 동광에서 목회하면서 깨달은 중요한 진리 하나는, 새벽 기도를 안 하면서 신앙생활 잘 한다는 것은 대부분 거짓말인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새벽을 깨우지 않으면서 자녀가 잘 되기를 소망하는 것, 대부분 잘못된 기대라는 점입니다. 여러분, 새벽이야말로 기도하기 가장 좋은 시간이요, 새벽이야말로 은혜받기 가장 좋은 시간이요, 새벽이야말로 응답받기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이는 함께 새벽을 흔들어 깨우는 모든 분들의 공통된 고백입니다.

우리 살날이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혹은 오늘 밤에 내 영혼을 불러 가실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여러분, 새벽을 깨우시기 바랍니다. 다급할수록, 어려울수록, 꿈이 크면 클수록 부디 새벽부터 흔들어 깨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새벽에 역사하십니다. 우리 함께 새벽을 깨워 비탄의 자리 이겨 승리하실 뿐만 아니라, 모두 다윗 같은 위대한 삶이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새벽을 깨워, 꼭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3. 다윗은 주께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겠다고 마음을 정했습니다.

108:3 / (읽기) / 거기 <주께 감사>와 <주께 찬양>이란 대목에 표시하십니다. 그랬습니다. 지금 다윗은 비록 동굴에 숨어있는 신세이긴 하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건져주실 것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여기가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넌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는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해서 그 믿음으로 밝은 내일을 바라보며 지금 동굴 속 비탄의 자리에서 미리 감사하겠노라 마음을 정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지난 주, 새벽 시간에 로마서 강해를 통하여 이런 말씀을 받았습니다. <예정의 역사화!>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예정의 섭리는 반드시 역사가 됩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예정은 반드시 역사가 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성도들의 인생이란 반드시 주 안에서 이기기로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요, 우린 이기기로 예정된 사람들입니다. 승리는 우리의 것입니다. 비록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가 비탄의 자리라 할지라도, 내 인생,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이제 진짜 시작입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좋은 날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 동광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날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서 가장 행복한 날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예정은 반드시 역사가 됩니다. 바로 이 믿음이 있었기에 다윗은 동굴 속에서도 오직 주께 감사하며 내가 주를 찬양하겠노라 마음을 정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감사와 찬양으로 날마다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요, 거기 중요한 표현이 하나 있군요. 주께 감사하되, <내가 만민 중에서>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되 <내가 열방 중에서> 찬양한다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이런 다윗의 고백, 믿음 없는 사람들 눈에는 정신 나간 사람의 넋두리 정도로 들렸을 것입니다. 왜? 지금 다윗의 몰골을 보노라면, 그가 어느 세월에 만민 앞에서 감사하며, 열방 중에서 찬양할 수 있을까, 도저히 기대하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목숨 하나도 지키지 못해, 여기 산속 동굴까지 숨어들어온 처지에, 무슨 만민 중에서 감사하고, 열방 중에서 찬양하겠다는 거야!?> 정말 말이 되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누가 무어라 해도, 이미 그 자리, 그 동굴에서 확실하게 마음을 정했던 것입니다. <내가 반드시 만민 중에서 감사하고, 내가 반드시 열방 중에서 찬양하리라! 내 감사의 기도를 만민이 듣게 될 것이며, 내 찬양 소리를 열방이 듣게 되리라!> 그리고 그가 정한 마음은 그대로 현실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감사와 찬양은 골방에서 하는 것 아닙니다. 감사와 찬양은 남 몰래 하는 것 아닙니다. 만민이 다 알도록 감사해야 합니다. 열방이 다 듣도록 찬양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그렇게 마음을 정하십시다. 나도 이제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할 것이요, 열방 중에서 주를 찬양하겠노라 마음을 확정하십시다. 마음을 정할 뿐만 아니라, 마침내 우리의 감사와 찬양이 최소한 삼천리금수강산 방방곡곡에 울려 퍼지는 그 날까지, 그 마음 변치 말고, 우리의 심령을 다해 노래하고 찬송하십시다. 날마다 새벽을 흔들어 깨우며 감사하고 찬양하십시다. 기필코 그 날을 우리에게 허락하실 줄 믿습니다.

<예정은 역사가 됩니다.>

# 4 - outro
오늘 우리는 동굴 속 비탄의 자리에 숨어있던 다윗을 다시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가 마음을 새롭게 정하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정한 다윗, 마침내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할 수 없는 고백, 믿음이 없이는 바라볼 수 없는 영광, 직접 들어봅니다. / 108:4-5 / (읽기) / 단어 셋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주의 인자하심, 주의 진실, 그리고 주의 영광입니다.

오늘의 다윗을 가능하게 했던 믿음의 핵심, 바로 이 세 가지 고백입니다. 주의 인자하심이 광대하시고, 주의 진실이 궁창에 미치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으시기를, 해서 다윗은 한 마디로 주님의 영광이 되겠다고 다짐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내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지금 내 마음은 무엇을 향하고 있습니까? 내 마음 속에 가득한 것, 그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내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과 통하고 있습니까?

잠시 묵상하며 주신 말씀 마음에 새깁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아멘!> - 시 5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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