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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홍해 앞에서 (출 14: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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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서해원 목사

  연말연시의 분주한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성탄의 계절을 보내면서 한해를 마무리하고, 또 소망의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기 위해 우리가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지난 12월 26일 서남아시아에는 강력한 지진과 해일이 발생했습니다. 이번 해일은 40년만에 있었던 일이고, 피해규모로만 보면 현대역사에 기록으로 남을 일입니다. 지금까지 죽은 사람만 공식적으로 약 15만 명, 통계와 보고가 취약한 그 지역의 상황을 고려하면 실제 사망자가 수십만 명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이번 피해지역은 서남아시아의 주요 관광도시여서 각국에서 크리스마스 휴가를 즐기려 온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한국 사람도 적잖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진이 지나간 자리에 참혹한 현장을 뉴스를 통해 보았습니다만 사람들은 전염병과 기근과 후유증으로 더욱 피해가 클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나라들이기에 복구의 기간이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번 사건으로 세계는 다시 한번 침통한 분위기에 빠졌습니다. 911 사건이후, 그 동안 테러와 전쟁의 위협으로 불안했던 세계가 이제는 자연 재해로 그야말로 엎친 데 겹친 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닙니다.

  이번 피해를 보면서 많은 것이 생각나고 또 여러 교훈을 받고 있습니다만 가장 큰 교훈은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여 지진을 연구하고, 해일을 측정하고, 조심해도, 인간에게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넘지 못하고, 도무지 해결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에게 분명 있습니다. 그것을 여실히 보여 준 사건입니다. 그렇게 지진과 해일에 많은 투자를 하며 연구하는 일본도 흔들리면 속수무책이라는 것입니다. 어디로 피할 곳이 없습니다.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대국이고, 첨단의 시설을 갖추고 있어도 자연재해 앞에서는 꼼짝 못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 사실을 고백하고 증거 하는 좋은 글을 남겼습니다. “지구상의 또 하나의 재해가 닥쳤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일이다. TV를 봤다. 해일이 닥치니.. 사람들은 죽어라 뛰어가지만.. 자연 앞에서 인간은 개미와도 다를 바 없는 초라한 존재였다. 돈 많은 이들도, 돈 없는 이들도.. 자연은 돈으로 가리지 않는다. 예쁜 사람도, 못생긴 사람도.. 자연은 외모로 가리지 않았다. 동양인이건, 서양인이건.. 자연은 인종도 가리지 않았다. 졸지에 사랑하는 이를 잃고 넋 놓고 시신 옆에서 눈물과 절규로 힘들어하고 있다. 야속하지만 뭐라 할말이 없다. 그래서 정말 슬픈 일이다. 왜 이런 일이... 이것이 한계다. 이것이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이다....”

  본문은 지진과 해일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사람들처럼,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난관 앞에 서 있는 이스라엘의 상황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극적으로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이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으로 향해 가고 있는데 홍해를 만난 것입니다. 앞으로 가야 하는 이들에게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뒤에서는 바로 왕이 온 군대를 거느리고 뒤따라옵니다. 앞으로 갈 수 없고, 뒤로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도저히 어찌할 수 없습니다. 이런 때 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본문의 주요내용입니다. 이런 난관 앞에 나타난 다양한 모습이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우선, 두려움의 모습입니다. 10절에 그들이 ‘두려워했다’라고 말하고, 13절에서도 모세가 백성들을 안심시키면서 건넨 말이 바로 두려워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두려운 정도가 아니고 ‘심히’ 두려워했다고 강조합니다. 이것이 홍해 앞에서 이들이 보여주었던 첫 번째 반응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근본적으로 인간은 두려워하는 존재입니다. 아무리 강하다해도, 아무리 이를 깨물고 흔들리지 않겠다고 다짐해도, 결정적인 순간에 인간은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몇 년 전 아주 인기가 있었던 드라마가운데 ‘모래시계’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드라마를 미국에서 보았습니다. 이 드라마는 한국 역사에서 가장 암울했던 과도기를 시대의 아픔과 함께 보여주었던 내용이었기에 모두가 더 공감하면서 텔레비전 앞에 사람을 모으게 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의 마지막에 이제 주인공이 사형을 언도 받고 죽게 되는데, 사형장에서 친구 검사에게 한 말이 있었습니다. ‘나 지금 떨고 있니?’ 드라마의 성공과 함께 이 말도 유행했던 것을 봅니다. 당시 주인공은 강한 카리스마가 있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산전수전을 겪으며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는 전혀 무서울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에게는 두려움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 주인공이 마지막에 이렇게 말하고 간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부인할 수 없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아무리 강해 보여도 결정적인 순간에 두려워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그렇습니다.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아닙니다. 인간이 갖는 두려움은 죄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아담이 범죄 한 뒤 두려워했다고 말합니다. 신앙은 두려움을 물리치는 힘이 있습니다. 신앙은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을 깨닫게 합니다. 이 세상에 오직 우리가 두려워 할 대상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외에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웨슬리는 그런 말을 했습니다. “죄만 부끄러워하고 십자가를 자랑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100명만 있으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

  둘째는 원망의 모습입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들의 입에서는 원망과 불평이 터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홍해 앞에서 보여주었던 백성들의 두 번째 모습입니다. 그들이 무엇이라고 원망하는가를 보십시오. 11절과 12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의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이들은 우선, 지도자인 모세, 그러니까 사람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모세와 함께 했던 좋은 것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잘못된 것만 보니까 이들은 남을 탓하는 특유의 본성을 보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어떻게 애굽을 탈출했습니까? 그들이 모세를 통해 받았던 힘이 얼마나 컸습니까? 모세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가나안으로 갈 수 있습니까? 그것을 잘 아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원망합니다. 아주 비열하고, 수준이 낮은 모습입니다.
또한, 그들은 환경도 탓하고 있습니다. 그저 편하게 지내고 싶은데 왜 여기까지 끌고 와서 고생시키는가 하는 것입니다. 환경이 좋을 때는 감사하지 않는 자가 환경이 어려우면 반드시 원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늘 감사가 필요하고,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현실을 수용하고 받아드리는 것이 신앙의 중심에 서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믿음의 힘으로만 가능합니다. 믿음은 내 삶의 어떤 형편에 처하더라도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현재를 원망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꿈과 소망의 미래가 있었습니다. 지금 가나안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미래는 보지 못하고 자꾸 과거로만 돌아가려고 합니다. 애굽에 있을 때가 좋았다는 것입니다. 종살이하던 때가 차라리 낫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들은 현재와 미래를 희망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늘 과거에 매여 거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이것이 40년 동안 이들의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노만 라이트’라는 크리스천 심리학자는 인간이 과거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자기발전이나 성장을 결코 이룰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좋은 과거이든, 좋지 않던 추억이든 이것을 버리고 나와야 인간이 참된 삶을 살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과거에 매이는 사람들은 현재를 살면서도 사람이 계속해서 과거와 전쟁을 치르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또 과거를 용서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을 지적합니다. 이것 해결하지 않으면 변화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당신의 과거와 화해하라”

  ‘헨리 나우엔’이란 신학자도 우리가 과거에서 치유 받아야 할 것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후회는 쓰라린 추억이며, 죄책감은 절망적인 추억이고, 감사는 즐거움으로 가득 찬 추억이다. 과거의 경험을 어떻게 삶에 융화시키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감정은 깊은 영향을 받는다.” 과거에서 현재로, 미래로 인간은 나아가야 하며 이 길을 막는 모든 기억으로부터 치유되어야 온전한 삶을 산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너무도 중요한 교훈입니다.

  셋째는 믿음의 모습입니다. 지금 백성들은 홍해 앞에서 두려움에 떨었고, 이곳저곳에서는 원망과 불평의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에 비해 모세의 모습은 대조를 이룹니다. 홍해 앞에서 모세는 어떠했을까요? 모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사람을 또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이것이 홍해 앞에서의 모세의 모습입니다. 믿음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믿음의 자세입니다. 두려워말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런 믿음이 있었습니다. 모세가 이 말을 할 때는 아주 홍해가 갈라지기 전의 일입니다. 지금 앞에는 홍해가 가로 막혔고, 뒤에는 애굽의 군대가 뒤따라오지만 이런 때에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뭔가 하실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의 확신을 가질 때, 결국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환경이나 어려움을 보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니까, 하나님이 개입하셨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능력으로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는 것을 봅니다. 그야말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최대의 문제가 해결되었고, 난관이 극복되었습니다. 이것이 홍해를 만난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였습니다. 오늘 이것을 우리가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홍해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도저히 우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고, 도저히 헤쳐 나갈 수 없는 문제 앞에 봉착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이 그런 때라고 생각합니다. 시대적으로 그렇고, 국가적으로도 그렇고, 개인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어쩌면 이미 많은 사람들이 홍해와 같은 난관 앞에 서 있는 분도 계십니다. 우리 인생의 홍해 앞에서 나는 모습을 갖고 있습니까? 두려움에 떨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사람을 원망하고, 환경을 탓하고, 과거에 매여 있지 않습니까? 그런 모습으로는 앞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세처럼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내 삶의 결정적인 것은 다 하나님이 하실 것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가만히 서서 하나님이 하실 일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능력과 권세로 홍해를 가르시고, 그의 주권과 섭리로 개인과 역사를 이끄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앞으로만 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뒤로 갈 수 없고, 옆으로도 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에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하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이고,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이 믿음을 가질 때 결국 기적은 일어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원망과 불평일랑 아예 입밖에도 꺼내지 마십시오. 믿음의 사람들인데 마치 믿음 없는 사람처럼 살지 마십시오.

  2005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한해동안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은 오직 앞으로만 가는 길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앞에 무슨 일을 만날지 모릅니다. 때론 애굽을 탈출하는 영광과 기쁨의 순간도 있겠지만, 때로는 홍해와 같은 난관을 만날지도 모릅니다. 아니 지금도 우리는 인생의 홍해 앞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도 원망과 불평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이제 가만히 서서 하나님이 하실 놀라운 역사와 기적을 바라보십시오. 이런 믿음을 갖고 2005년 한해 성령과 함께 힘있게 출발해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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