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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적 전투의 삼각편대 (출 17: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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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흥규 목사

<영적 전투의 途上에서>
어떤 시골에서 올라온 총각 한 사람이 난생 처음 서울역에 내렸습니다. 역사(驛舍)를 빠져나오자마자 어마어마한 고층 빌딩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진 시골 총각은 층수를 세기 시작했습니다. 소리내어서 맨 꼭대기까지 다 헤아려보았더니 삼십 층이 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다시 한번 확인하는 의미로 이번에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거꾸로 하나 둘 세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층수를 세는데 갑자기 서울 사람 하나가 시골 총각 앞을 막아서며 눈을 부라렸습니다. "이 촌놈아, 이렇게 높은 빌딩을 공짜로 보려고 해!" "아아, 아니, 안 봤어요. 안 봤단 말이에요." "거짓말하지마! 이 시골뜨기야. 내가 다 봤단 말이야. 네 놈이 꼭대기까지 다 본 것을 내가 모를 줄 알아! 한 층 보는데 천 원이니까, 당장 삼만 원 내 놓으란 말이야!"

시골 총각이 기가 팍 죽었습니다. "아닙니다. 나 오층 밖에 안 봤단 말이에요. 오천 원만 드릴게요." 겁이 난 총각은 부랴부랴 오천 원만 달랑 서울 사람에게 내주고는 그 길로 시골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고향에 돌아간 시골 총각의 기세가 여간 대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친구들이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아니, 서울 가서 무슨 좋은 일이 있었기에 그렇게 으쓱거리는 거야?" 이 때 시골 총각이 아주 자랑스럽게 대꾸했습니다. "이래봬도 말이야, 내가 서울 놈을 속여먹었단 말이야! 야! 그 서울치들 잘난 체 해도 아주 순 숙맥이더라니까!"

웃으라고 만든 유머이지만 세상 풍조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유머임에 틀림없습니다. "눈뜨고 코 베 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한 발자국만 밖으로 나가도 세상은 온갖 거짓과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죄악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세상 한 가운데에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분명 영적 전투의 도상에 서 있습니다. 세상 속에 득실거리는 온갖 우상잡신들과 영적 싸움을 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 정사(政事)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적 전투'라는 사실입니다(엡 6: 12 참조). 공중 권세를 잡은 악한 영들을 상대하는 영적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벧전 5: 8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이스라엘 對 아말렉 間의 전투 經路>
악한 마귀와 영적 혈전을 벌이는 우리는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사탄 마귀에게 패배하지 않고 승리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 말씀이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승리의 비결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본문은 출(出)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최초로 직면한 전쟁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르비딤이라는 광야에 당도했을 때 갑자기 아말렉 군대의 공격을 받은 것입니다. 신 25: 17-18 말씀을 보면 아말렉 족속은 아주 야비한 방법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공격했습니다. 광야 행군으로 인해 피곤하고 지쳐 있었을 때 뒤에 처진 약한 사람들을 모조리 쳐죽이는 전법을 썼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아말렉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창 36: 12을 보면 '아말렉'은 에서의 손자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야곱의 후손이니 아말렉과 이스라엘의 싸움은 에서의 후손과 야곱의 후손 사이의 싸움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멀리 소급해 올라갈 경우 에서와 야곱의 싸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에서는 야곱의 형으로서 야곱에게 장자권(長子權)을 빼앗긴 사람입니다. 믿음이 없어서 장자권을 귀하게 여기지 못한 사람이 에서였으며, 그 후손들 역시 불신앙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신 25: 18은 아말렉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고 단정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스라엘과 아말렉의 싸움을 단순히 부족간의 싸움으로 봐서는 신앙생활에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영과 육의 싸움, 신앙과 불신앙의 싸움,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와의 싸움으로 해석해야 옳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아말렉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의 약점을 노려서 그 약한 데를 비집고 들어와 공격하는 사탄의 세력입니다! 공중 권세를 잡은 아주 못된 영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무너뜨리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불신앙의 세력인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스라엘과 아말렉의 싸움은 어떻게 진행되었습니까? 아말렉 사람들이 행군으로 지쳐 낙오된 백성들의 후미진 곳을 공격했습니다. 선제 공격을 했던 것이지요. 이 때 모세가 장차 후계자가 될 여호수아에게 명령했습니다.

9절을 보세요. 표준 새번역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장정들을 뽑아서 아말렉과 싸우러 나가시오.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들고, 산꼭대기에 서 있겠오." 전투가 벌어져 자기 동족들이 죽어 넘어지는 한 가운데 모세는 상식 밖의 제안을 했습니다. 자신이 총사령관이 되어서 직접 전투에 뛰어들어 진두지휘를 해도 모자랄 판인데 자기는 산꼭대기에 올라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튿날 모세의 제안대로 역할분담이 이루어졌습니다. 산밑, 최전방에는 여호수아를 필두로 해서 이스라엘 장정들이 아말렉과의 전투에 투입되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아론과 훌과 더불어 산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아론'은 모세의 친형으로서 말주변이 없는 모세의 대변자 노릇을 했습니다(출 7: 1). '훌'이라는 이름은 출 24: 14에 또 한 차례 등장하는데, 전승에 의하면 모세의 누나 미리암의 남편이었다고 합니다. 모세의 매형이 되는 셈이지요.

어쨌든지 간에 산꼭대기로 올라간 모세가 지팡이를 손에 잡은 채 팔을 높이 들면 이스라엘이 이겼고, 힘이 빠져 팔이 내려올 때에는 이스라엘이 졌습니다. 여기서 '지팡이'는 하나님의 권능을 상징합니다. 홍해를 갈라 바다가 육지처럼 갈라졌을 때 이 지팡이를 사용했습니다(출 14: 16). 반석을 쳐서 물이 터져 나오게 한 지팡이 역시 이 지팡이였습니다(출 17: 5-6).

아론과 훌이 이 신기한 광경을 목도(目睹)했습니다. 지팡이를 든 모세의 팔이 높이 올라갈 때에는 이스라엘이 이기는데, 피곤해서 내려올 때에는 영락없이 지는 것이었습니다. 80 노인이었던 모세는 힘에 부쳤을 것입니다. 아론과 훌은 모세의 팔이 높이 들려있을 때 전쟁에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즉각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돌을 가져와서 모세를 앉게 하고 양쪽에서 팔을 붙들어 올려 내려오지 않게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모세의 팔이 해가 질 때까지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틀림없이 이 신비한 광경을 쳐다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아론과 훌의 도움을 받아 자팡이를 든 모세의 팔이 오랫동안 높이 들려 있었을 때 최전방에 서 있던 여호수아가 아말렉과 그 백성들을 칼로 무찔렀습니다. 이스라엘이 승리했던 것이지요!

<영적 전투의 삼각관계성>
여러분, 이 놀라운 이야기가 성경에 왜 기록되었을까요? 본문 14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고 까지 했습니다. 이 사건이 얼마나 중요했기에 책에 기록하여 사람들이 이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잊지 않도록 하라고 분부했을까요?

도대체 이 말씀이 주는 영적인 교훈은 무엇일까요? 무엇이 그토록 중요했기에 책에 기록하여 오랫동안 기념하라고까지 당부했을까요? 저는 이 전투기(戰鬪記)가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처한 영적 전투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이스라엘이 기적적인 방법으로 아말렉을 이겼다는 역사적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말씀 깊숙이 영적 전투의 원리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지요.

저는 앞에서 아말렉이 사탄의 세력이요, 불신앙의 세력이요, 공중에 권세 잡은 악한 영들의 세력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아말렉과의 싸움은 묘하게도 「하나님」과 「모세」(아론과 훌), 「여호수아」(이스라엘 백성)의 삼각 구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I. 산밑에서 여호수아가 백성들과 더불어 아말렉과 싸웠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말렉의 전투에서 꼭 유념해야 할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이 전쟁은 집단적인 전쟁이라는 사실입니다. 모세나 여호수아, 아론과 훌, 등의 지도자들이 등장하지만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훈련시키려는 목적으로 치러진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야전 사령관으로서 산밑 최전방에서 장정들에게 직접 전투를 독려하고 있었습니다. 산꼭대기에서는 모세가 지팡이를 쥐고 팔을 높이 들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지팡이는 하나님의 권능을 상징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서 간절히 기도했을 때 이스라엘이 이겼습니다.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싸우는 여호수아와 기도하는 모세의 모습을 동시에 지켜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빠져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곳 저곳을 방황하고 있었기에 몹시 지쳐 있었으며 변변한 무기도 갖추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팔을 높이 들고 있기만 하면 무조건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팔에 힘이 빠져 기도할 수 없을 때에는 졌습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것을 지켜봤습니다! 하나님은 전쟁의 승패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가르치려고 했던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권능을 의지해서 기도할 때에만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교훈을 주시려고 했던 것이지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산밑, 즉 세상에서 그 옛날 아말렉보다 훨씬 더 무서운 세력과 영적 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온갖 잡다한 우상들과 물신주의(物神主義), 세속주의, 음란문화 등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이 영적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고 타협합니다. 적당히 양다리를 걸친 채 하나님도 위하고 사탄 마귀도 위하는 형국으로 살아갑니다. 그리하여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기 보다 패배하며 살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여러분,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산꼭대기에서 기도하는 사람들, 즉 모세나 아론과 훌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배후에서 기도해준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마다 어김없이 이겼습니다!

오늘 우리도 누군가 나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힘을 낼 때 아무리 무서운 원수마귀라고 할지라도 능히 대적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아말렉 군대를 물리칠 수 있었던 비결은 배후에서 기도하는 사람들과 영적으로 밀착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라디오나 TV가 전원에 접속되어 있을 때에만 작동하듯이 배후에서 중보기도하는 이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본문 13절 말씀을 보면 여호수아는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들을 파(破)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악한 마귀와의 영적 싸움에서 이기려면 '말씀의 칼'을 붙잡아야 합니다. 엡 6장에 나오는 전신갑주(全身甲胄)의 여러 무기들 가운데 다른 무기들은 모두 방어용 무기인데 반하여 오직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 만이 공격용 무기로 나옵니다(엡 6: 17). 사탄의 세력이 아무리 준동해도 배후에서 중보기도하는 이들이 있음을 믿고 말씀의 칼을 휘두를 때 우리는 영적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II. 산위에서는 모세와 아론과 훌이 손을 높이 들고 합심해서 기도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아말렉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결정적 원인은 모세의 기도에 있었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무조건 이겼습니다. 그러다가 힘이 빠져 손이 슬며시 내려오면 이스라엘도 졌습니다. 아론과 훌이 이 모양을 지켜보고 있다가 도와주었습니다. 돌을 가져와 모세가 그 위에 앉도록 배려한 다음에 양손을 지탱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모세의 팔이 해가 질 때까지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세 사람이 마음을 합해서 서로 도우며 기도했더니 산밑에서 싸우던 여호수아가 승리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현대판 아말렉과 전투를 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최고의 교양과 최고의 지식, 최고의 윤리 도덕으로 무장해도 아말렉이라는 사탄의 세력을 꺾을 수 없습니다. 누군가 배후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어야만 합니다!

흔히 '산꼭대기'를 '성전'으로, '모세'를 '주의 종,' 즉 '목회자'로, '아론과 훌'을 '목사를 돕는 중직들'로 해석합니다. 목사님도 인간이기 때문에 피곤에 지쳐 팔이 내려올 수 있으니 교회 중직들이 옆에서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좋은 해석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뒤 우리 모두는 '왕같은 제사장들'(벧전 2: 9)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만인제사장직'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리 모두가 모세요, 아론이요, 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중에 누군가 기도하다가 지치고 낙심될 때 옆에 있는 우리 모두가 함께 힘을 합해야 합니다. 서로를 위해서 중보기도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연합된 중보기도의 사역이 있을 때에만 세상에 나가 악한 영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우리 형제 자매들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옳습니다. 우리 형제 자매들이 언제 넘어졌습니까? 언제 죄의 유혹에 굴복해서 쓰러졌습니까? 우리가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고 영적인 수면 상태에 빠져 있었을 때가 아닙니까? 모세가 들었던 지팡이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을 의지해서 손 높이 들고 기도하지 못했을 때 세상 한 가운데 마귀와의 영적 접전의 최전방에 서 있는 우리 형제 자매들은 속수무책으로 넘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미국에서 아주 존경받던 큰 교회의 목사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탁월한 설교자요, 뛰어난 행정가로서 한 때 큰 신학대학의 총장 물망에까지 올랐던 분이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훌륭한 목사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세 명의 여자 교인들과 간음을 한 것이 드러나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누구도 이 사실을 믿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 목사님과 절친한 친구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자네 같은 사람이 어찌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그 때 그 목사님은 후회가 가득한 눈빛으로 힘없이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했을 때 나는 지옥의 가장자리를 헤매고 다녔다네."   

  그렇습니다. 아무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넘어질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연합해서 드리는 중보기도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죄악이 가득한 세상 한가운데에서 힘겨운 영적 싸움을 벌이는 형제 자매들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중보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비로소 영적 전투의 승리를 장담할 수 있습니다!

III.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대신 싸워주십니다.
이스라엘과 아말렉의 싸움은 하나님과 사탄의 세력이 벌이는 싸움이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15-1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가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모세는 이 전쟁이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이긴 전쟁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감사의 제단을 쌓았으며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 즉 '여호와(주님)는 나의 깃발'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 야전 사령관 송덕비(頌德碑)'나 '영적 지도자 모세를 위한 기념비,' 혹은 '위대한 참모 아론과 훌 기념비'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깃발이 되어 주셔서 승리하도록 이끄셨다고 확신했기에 '여호와 닛시'라고 이름했던 것입니다!

전쟁을 치를 때에나 운동 경기를 할 때 깃발은 그 공동체의 분신(分身)과도 같습니다. 모든 다양한 사람들이 그 깃발 아래 하나로 뭉치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말렉과의 전쟁을 치를 때 하나님의 깃발 아래 모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승리했다고 믿었던 것이지요!

하나님은 본문 14절에서 아말렉을 도말(塗抹), 즉 완전히 없애서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도록 만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말렉은 실제로 사울 시대(삼상 15: 1-19), 다윗 시대(삼상 30: 1-20)를 거쳐, 히스기야 왕 때 완전히 섬멸되었습니다(대상 4: 43).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 속에서 그대로 실현되었던 것이지요.

<영적 삼각편대를 지어서>
이제 결론을 맺겠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말렉의 전쟁 기록을 수천 년 전에 일어난 부족간의 전쟁 이야기로 이해해서는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 전쟁기사에서 오늘도 계속되는 영적 전투의 판도를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현대판 아말렉은 훨씬 더 무서운 기세로 우리의 약점을 파고듭니다. 우리의 허약한 부분을 아무 예고 없이 무자비하게 공격해옵니다. 우리는 이 영적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반드시 이겨야만 합니다. 어떻게요? 삼각편대를 형성해야만 합니다.

제일 먼저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여호와 닛시'의 깃발 아래 온 성도가 집결해야만 합니다. 그런 다음 산밑, 즉 가지가지의 악한 영들이 믿는 자들을 삼키려고 하는 삶의 현장 한 가운데, 최전방에서 여호수아와 같이 사탄의 세력들과 직접 맞붙어 싸워야만 합니다. 그런 다음 산꼭대기, 즉 성전 후방에서는 모세나 아론, 훌과 같은 중보기도 팀이 십자가의 능력을 의지해서 중단하지 않고 기도해야만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여호수아,' 즉 '우리 자신'과 '모세와 아론과 훌' 같은 '중보기도 팀'이 삼위일체로 묶여질 때 우리는 현대판 아말렉을 이길 수 있습니다! 승리의 개가를 부를 수 있습니다!

오늘도 아말렉과 영적 싸움을 벌이는 여러분들은 본문 16절의 말씀을 특히 잊지 마십시오. 우리 다같이 이 말씀을 함께 읽음으로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가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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