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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숙해져가는 성도 (엡 1: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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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영준 목사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의 작가 [레오 버드카빌리아]는 어렸을 때부터 지녀온 한 가지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잠자리에서 ‘오늘 뭘 배웠지?’ 라고 스스로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이런 특이하고 유용한 습관은 그의 아버지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전형적인 이태리인으로 초등학교 5학년에 학교를 그만두었지만 ‘세상이 곧 학교’라는 것과 ‘아침에 일어나 아무 것도 배우지 않고 잠드는 건 죄악’이라고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모두가 한 자리에 모이는 저녁 식탁에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오늘 네가 배운 건 뭐지?”
그러면 아이들은 한 가지씩 꼭 대답해야 했습니다.
만약 배운 것이 없다고 말할 때에는 빨리 한 가지를 알아오기 전에는 식사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버스카글리아]를 비롯한 그의 형제들, 심지어는 어머니까지 그날 배운 것을 말해야 했습니다.
거기에는 학문적이 지식뿐만 아니라 그날 하루 겪었던 갖가지 경험들도 포함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경험들에 대해 칭찬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꾸짖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꾸짖을 때 무서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들의 마음속엔 조금씩 올바른 가치관의 싹이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또, 그의 아버지는 아이들이 말하는 것에 대해 하찮게 여기거나 소홀히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가령 어느 나라 인구가 얼마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얘기하면 아버지는 그 사실을 귀담아 들을 것을 온 가족에게 말하곤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녁식사 끝날 즈음이면 [버스카글리아] 가족들은 각자가 한 가지씩 말한 지식들이 모여 보통 5-6개의 새로운 사실과 경험들을 배우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레오 버스카글리아]는 아버지가 늘 들려주었던 말을 잊지 못한다고 합니다.
“인간의 수명에는 한계가 있지만, 배움에는 끝이 없단다. 인간은 무엇을 배우느냐에 따라 달라진단다.”

인간이 무엇을 알아간다는 것은 끝이 없습니다.
우리는 곧 일어버리기 때문에 계속해서 배워나가야 합니다.
어제 배웠지만 오늘 잊어버립니다.
오늘 배우지만 내일 잊어버립니다.
다 기억할 수 없습니다.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안다는 것은 부분적입니다.
또한 새로운 것들이 속속 들어나고 자고 일어나면 또 새로운 사실들이 있습니다.
알고 나면 또 다른 비밀이 발견되고 알아갈 수록 더 새롭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배우고 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알아 가면 갈수록 여유가 있습니다.
풍요로울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힘이 됩니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했습니다.
지혜가 되고 힘이 되기에 알아가야 합니다.

또한 알아갈 수록 삶 달라집니다.
우리의 인격에 여유로움이 생깁니다.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항상 겸손해 지고 배려할 줄 알고 이해하려고 애씁니다.
때문에 알아가려고 힘써야 하고 이것은 끝이 없습니다.

우리가 정말 알아가야 할 것은 ‘하나님에 대하여’입니다.

자! 그런데, 우리가 배우고 알아가야 하는 것 가운데 정말 놓치지 않고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정말 끝없이 알아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알아 가면 갈수록 새롭고 놀라우며, 또한 풍성하고 복된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하나님은 부분적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 알수록 새롭고 놀랍습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갈 때 우리는 더 깊은 영적인 삶을 살게 되고, 은혜와 평강이 넘치게 됩니다.
그리고 강하고 담대한 삶을 살게 되고 더욱 여유 있고 강한 믿음의 삶을 살게 됩니다.
때문에 이것은 신앙이 어린 사람, 그래서 아직까지 하나님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든,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을 통해서 배워 잘 알고 또 경험하고 체험했다 할지라도 누구나 할 것 없이 계속 되어야 하고 계속해서 알아가야 하는 영역입니다.

특히 오늘 기도는 에베소 교회를 향하는 바울의 기도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이 약 3년여라는 시간을 통해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우고 가르치고 훈련시킨 교회입니다.
바울이 세운 어느 교회보다도 많은 시간을 머물면서 훈련시키고 성장시킨 교회가 에베소 교회입니다.
그래서인지 에베소 교회는 다른 어떤 교회보다도 문제가 별로 없는 교회였습니다.
조용하고 성숙된 교회였습니다.
그러면서 믿음과 사랑이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바울의 감사가 나옵니다.
/////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엡1:15,16)
이렇게 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가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 가운데 오늘 기도의 핵심은 바로 17절입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엡1:17)

저들로 더욱 하나님을 알아가게 되기를 소원한다고 합니다.
믿음과 사랑으로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는 비교적 성숙한 교회를 향하여 간구하는 것입니다.
또 이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를 향하여 간구하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을 향한 간절한 기도이기도 합니다.
바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이성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의 이성으로 부분적으로 알 수 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자기를 들어내시는 방법, 곧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자연계시와 특별계시라고 합니다.
자연계시란 하나님의 피조물인 자연을 통하여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롬1:19-20)
곧 인간의 이성으로 어느 정도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 계시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이성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을 열어놓으셨기에 인간의 이성을 통하여 자연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스스로 우리가 알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자연계시가 계시로서 성립하고 의의를 가지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의 빛에 비춰야 합니다.
자연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완성되고 의미가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 지혜와 계시의 영, ‘정신’이란 ‘영’을 의미합니다.
바로 성령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실 때 비로소 이 자연세계를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고 알 수 있으며,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고 영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성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다면 왜 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못합니까?
왜 이 세상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고 우상을 섬기고 그 우상 앞에 절하고 있느냐 말입니다.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은 하나님께서 계시의 영을 주셔야 가능한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실 때 마음의 눈이 열리게 됩니다.

  곧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눈으로 보게 됩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예수님과 함께 그 길을 걸어갔습니다.
근심하며 걱정하며 걸어가는 그들을 주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저들에게 다가오신 분이 주님이신 줄 몰랐습니다.
저들의 마음의 근심과 그리고 육체적인 일로 인하여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들은 육신의 눈으로만 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성령으로 그 마음을 밝히실 때 저들의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지금까지 함께 한 사람이 주님이신 줄 알았습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실 때 바로 그 때 보게 된 것입니다.

*****미국의 우주비행사 [에드윈 올드린] 대령이 헝가리의 한 대학을 방문하여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달나라에 첫 발을 디뎠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할렐루야!’를 외쳤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가까이 느껴지더라고 했습니다.
강연을 듣고 있던 어느 학생이 그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소련의 ‘가가린'은 우주에 가서도 하나님을 못 보았다고 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하나님을 보았다고 합니까?”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영의 시각으로 보면 하나님이 보입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볼 때 하나님의 세계를 보게 되고 하나님의 일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2. 지혜와 계시의 영을 통해서 눈이 열릴 때 말씀을,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보혜사, 진리의 성령, 말씀을 알게 하시는 성령, 이 성령의 역사가 있을 때 비로소 알게 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잘 이해하지 못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예고 하셨을 때 제자들 가운데 그 의미를 깨닫고 주님을 도운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허무시고 사흘 만에 세우겠다는 말씀과 이제 곧 성령을 통하여 새로운 일이 일어나리라는 말씀, 여러 많은 이적들, 이 의미들을 저들은 몰랐습니다.
단지 눈에 보이는 것만 생각했고 그것으로 흥분하고 그것으로 좋아했습니다.

[키에르케고르]는, “헤겔적인 개념적 철학은 생활철학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나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자기가 살지 않는 누각을 짓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철학자는 자기의 집을 짓고 자기는 그 속에서 살지 않는다. ”고 하면서 풍자적인 비유를 들었습니다.
[니그렌]이라는 철학자는, [에로스와 아가페]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전폭적이고도 완전하며 성경적인 동시에 일반적인 개념까지 포괄하여 쓴 체계적인 책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더 이상 빼놓은 것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책입니다.
그래서 목사님들은 그 책을 사서 교인들에게 가르치고 설교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이 책을 보고도 모르는 사람은 바보라고 그들은 말했습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이 사실을 풍자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비유를 했습니다.

어느 유명한 목사님에게 젊은 지성인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중대한 회의가 생겨서 찾아왔다고 하였습니다.
목사가 그것이 무어냐고 묻자, 그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회의가 생겼으니 그에게 가르쳐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 목사님은 “사랑에 대해서는 걱정할 것이 없소. [니그렌]이 쓴 책을 사보면, 어떤 멍텅구리라도 다 알 수 있소. 그러니 내 설명을 들을 필요 없이 서점에 가서 그 책을 사서 보시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지성인은 “목사님, 죄송합니다. 제가 바로 그 책의 저자입니다.”라고 대답했다는 풍자를 하였습니다.

목사님들이 사랑의 설교를 백날을 하여도 지적인 인식이나 개념만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없습니다.
나의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고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실 때 산 인식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집니다.

단지 눈에 보이는 것으로 하나님을 알려고 하던 자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때 비로소 진리의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들이 깨달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저들은 그 진리를 증거 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었는가요?
성령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똑똑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읽을 때 그들은 깨닫지 못합니다.
구약을 보면 성경을 이스라엘 역사라고 말하고, 문학이니, 잠언집이니, 윤리 책이라고 합니다.
왜요?
이성으로 읽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진리의 성령께서 하심으로 이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보고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게 됩니다.

3.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실 때에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엡1:18)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 된 성도들에게 천국의 기업을 허락하셨으며 그 기업의 영광을 깨닫기 원하십니다.
이 땅에서의 기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참되고 풍성한 천국의 기업을 말입니다.
세상에서의 기업은 겉으로 보기에는 풍부하고 부족함이 없는 것 같으나 실상은 완전하지 못하고 영원함이 없는 빈궁한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장 눈에 보이는 현세의 것을 추구하고 그것에서 쾌락과 만족을 느끼기보다는 장래 우리에게 안겨질 하나님 나라의 영원하고도 완전한 영광을 차지학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귀중히 여기시는 이 땅의 것들을 과감히 끊고 그 하늘의 기업의 영광만을 사모하며 그를 위해 자신과 삶 전체를 헌신하는 올바른 성도의 자세와 자녀 된 도리를 지켜 나가는 것이 지혜 있는 신앙생활입니다.
그러할 때 우리들은 하나님 나라의 기업의 영광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혜의 영을 주실 때, 하나님께서 왜 나를 부르셨고 왜 나와 같은 죄인을 살리시고, 왜 나 같은 죄인을 부르시는지, 나를 어떻게 사용하기를 원하시는지를 알게 됩니다.
곧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지시고 계시는 소원, 곧 비전을 발견하게 됩니다.

4. 그리고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실 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기업의 풍성함을 알게 됩니다.

계시의 성령을 통해서만이 세상에서의 기업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누릴 축복된 삶을 보게 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늘나라를 부인합니다.
‘죽으면 끝이지....’
이것이 이성을 가진 인간의 시각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아가는 사람, 곧 그 마음의 눈을 연 사람은 하늘나라를 보게 됩니다.
장래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신 자녀로서의 유업과 상금이 얼마나 풍성한 것인지 알게 되고 믿게 될 것입니다.

5.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실 때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이 어떠한지를 알게 됩니다.

///// “그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1:19)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을 보고 광대한 세계를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크심과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능력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시고 광대하신 분이십니까?
시 145: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광대하심을 측량하지 못 하리로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그 크시고 위대하심, 우리가 측량할 수 없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그 크심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표현한 사람입니다.
그는 이사야서 40:15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니”
하나님 안에서 이 세상의 나라들은 물통에 담겨있는 작은 물방울 같고 저울 위에 앉은 보이지 않는 먼지 같다고 하고 있습니다.
실제 그렇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순간순간 느낍니다.
우리는 우리가 큰 줄 알고 대단한 줄 알고 있지만, 사실은 우주 속의 작은 먼지 하나와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얼마 전에 미국에서 우주를 관측하기 위하여 최첨단 과학을 통해 허불 망원경을 새로 제작했다고 합니다.
이만원경으로 볼 수 있는 거리는 약 빛이 달려가는 속도로 150억년 거리라고 합니다.
여러분, 빛이 1초의 달려가는 속도가 얼마인지 아시죠?
빛이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돌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속도로 150년 가는 거리까지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우주가 도대체 얼마나 큰 것입니까?
그런데 우주는 그것이 끝이 아니래요.
그 이상을 측정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한계예요. 
그 이상 더 큰 우주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인데 그 시작이 어디이고 그 끝이 어디인줄을 알 수 가 없어요.
거기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면 하나님께로부터 입니다.
하나님을 알 때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그 우주보다 더 위대하시고 광대하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는 더 이상 의문점이 없어요.
단지 우리가 더 찾아보고 싶은 욕심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믿음의 눈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우주만 볼 뿐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들은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 겸손해 집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특별하신 능력을 알게 됩니다.
곧 십자가의 능력을 우리는 깨닫게 될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 십자가는 미련한 것이요 어리석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러나 믿는 우리는 영의 눈을 가진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임을 알게 됩니다.
그 십자가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의와 사랑,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를 발견하게 되고, 그 앞에 무릎 꿇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온전한 자녀로서 아버지를 알고 그분 안에서 얻는 삶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항상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함께 해 주셔서 마음의 눈을 열어 주시고 그 눈으로 진리를 온전히 깨닫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소망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기업의 풍성함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크심을 깨달아 알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 안에서 감사와 소망의 삶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릴 수 있는 축복된 삶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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