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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사 3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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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익로 목사

서양 속담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귀가 쓰던 도구를 다 경매 처분하는데“이것은 팔지 않음”이라고 붙인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낙심”이라는 도구였다고 합니다. 사탄은 언제나 실패하도록 미혹하는데, 낙심케 하므로 포기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낙심하여 포기하므로 실패하게 되는 근본 원인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참지 못하는 조급함입니다. 서양 격언에“참는 것은 아픈 곳에 바르는 고약이다.” 라고 했습니다. 상처에 바른 고약이 그 상처를 치료하듯, 인내는 우리들의 소망을 이루는 양약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생활환경은 마음을 조급하게 하는 것들로 가득 한 것 같습니다. 문명의 발달이라는 것이 대게는 사람의 마음을 조급하게 하는 것들인 것 같습니다.

옛날에 가장 빨리 만들 수 있는 음식은 국수를 삶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국수를 삶아 먹는 불편을 덜어 주는 대용식으로 단 십분만 끓이면 먹을 수 있는 라면이 등장하여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10분을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단 1분이면 먹을 수 있는 컵라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인스턴트 식품 용기의 뚜껑은 거의가 깡통 따개로 한참을 따야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뚜껑에 붙어있는 고리를 손가락으로 당기기만 하면 되는 원터치 캔으로 되어 있습니다.

옛날에는 소식을 주고받으려면 편지로 3-4일이 걸려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전화가 있어서 어디서나 연락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전화도 사람이 집에 있어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그 불편함을 덜어주는 이동통신 핸드폰이 나왔습니다. 어디에서나 언제나 통화가 가능합니다. 편지도 이메일로 즉시 보내고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 역시 본인이 컴퓨터를 켜고 메일을 열어봐야만 전달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은 이메일 대신 핸드폰 문자로 더 많이 이용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먼 곳을 왕래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에는 경상도나 전라도에서 한양까지 가려면 두세 달이 결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고속열차를 타고가면 두 시간 반이면 됩니다. 이처럼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기다리는 여유가 없어졌습니다. 문명의 이기(利器)가 사람들에게 편리함을 주는 좋은 면이 있지만 반면 사람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드는 부작용도 낳고 있습니다. 조급한 마음은 기다리지를 못하고, 어려움이 있을 때 인내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본문에 말씀하시기를“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이사야 30:18)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야고보서 5:11의 말씀에는“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하셨습니다.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기다리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복을 받아 누릴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서양 격언에“하늘은 기다릴 수 있는 자에게 모든 것을 준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시편37:7에“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참고 기다리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어떠한 때에 참고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1. 고난의 시험이 있을 때 기다려야 합니다.

야고보서 1:12의 말씀에“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하셨습니다. 시험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살아가는 과정은 시험의 연속입니다. 시험을 잘 치루는 사람에게는 기쁨과 영광이 있습니다. 반면 시험을 잘 치루지 못한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에도 시험은 다 있습니다. 누구도 이 시험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반드시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난의 시험, 어떤 사람은 억울함의 시험, 어떤 사람은 질병의 시험, 어떤 사람은 가족이 마음을 상하게 하는 시험, 등등 여러 가지 시험이 있습니다. 이러한 시험은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시험을 이기는 방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참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유 없는 고난과 억울함의 시험을 당했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며 낙심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흔들리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시험당하는 사람에게 권면하시기를“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야고보서 5:10-11)하셨습니다. 구약성경 욥기에 나오는 욥이라는 사람은 죄가 있어 큰 고난의 시험을 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욥의 생활에 대하여 성경에 기록하시기를“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그 소생은 남자가 일곱이요 여자가 셋이며 그 소유물은 양이 칠천이요 약대가 삼천이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욥기 1:1-3)하셨습니다. 욥은“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습니다. 이러한 욥에게 엄청난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열 남매의 자녀 모두가 참변으로 한시에 죽었습니다. 만 천 마리에 달하는 각종 짐승들과 재산을 약탈당했습니다. 그뿐만 아니었습니다. 욥의 몸은 악창으로 가려움을 견디지 못해 재에 앉아 기와 조각으로 몸을 긁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아내마저도 욥을 저주했습니다. 이때에 욥이 무슨 말을 했을까요?“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기 1:21-22)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욥기 13:15의 주에는“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의뢰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영어성경에는“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극한 환란의 시험을 대하는 욥의 자세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욥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때가 되매 모든 것들에 갑절의 복을 더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후세 사람들에게 욥의 인내를 본받도록 권면시기를“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야고보서 5:10-11)하셨습니다. 고난의 시험이 있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욥을 거울삼아 인내하시며 하나님이 주시는 때를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좋은 날이 오기 때문입니다.

2. 기도하되 응답을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믿고 구하는 기도는 반드시 응답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의 응답에 대해 말씀하시기를“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마가복음 11:24)하셨습니다. 그러나 기도응답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첫째는, 즉시 응답해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둘째는, 응답 없는 응답이 있습니다. 예로, 바울사도가 자신의 건강을 위해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린도후서 12:8-9)하셨습니다. 이 응답 없는 것에 대해 바울은 깨닫기를“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하려 하심이니라...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고린도도후서 12:7,10)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도 응답 없는 응답이었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을 면케 하시기를 기도하셨으나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응답이 되어 인류를 구원하게 되었습니다. 셋째, 구하는 것 대신 다른 것으로 주실 때가 있습니다. 넷째, 때를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이 기다림이 때로는 기도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지치게 하고, 낙심하게도 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게도 합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말고 기다리며 계속하여 기도하면 감격스러운 응답의 날이 반드시 옵니다. 시편 40:1-3에“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되 낙심하지 말고 인내하며 기도하기를 권면하신 말씀이 누가복음 18:1-9에 기록되어 있습니다.“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라고 하시면서, 재판관을 찾아가 자기의 억울한 원한을 풀어주기를 계속하는 한 과부의 이야기를 말씀하셨습니다. 처음 이 불의한 재판관은 과부의 사정에 대하여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과부는 낙심하지 않고 들어줄 때까지 계속 참고 애원했습니다. 끈질기게 매어달리는 이 과부에 대해 재판관은“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하면서 마침내 그 재판관이 원한을 풀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말씀하시기를“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하시고“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하셨습니다. 세상 끝 날에 이처럼 인내하면서 낙심하지 않고 끈기 있게 매어달려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사람이 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세상 종말기가 되면 삶의 환경이 사람의 마음을 조급하게 하는 것들로 가득할 것이며, 이 환경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인내심이 약하게 될 것을 미리 내다 보셨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응답됩니다. 반드시 응답됩니다. 응답이 늦은 것일 뿐 거절하는 것이 아닙니다.

3.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성경 말씀은 모두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 약속은 틀림없이 성취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의 신실하심에 대해 기록하시기를“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태복음 5:18)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낙심하여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더디 이루어지는 때도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75세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은 25년이 지난 후에 응답이 되었습니다. 그 자식이 이삭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한 나머지 눈먼 아버지와 어리석은 형 에서를 속이다가 형의 눈을 피해 멀리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혼자서 낯선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자 야곱은 벧엘 들판에서 돌을 베고 잠을 잤습니다. 그날 밤 하나님은 꿈속에 나타나셔서 곱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세기 28:13-15)하셨습니다. 이 약속이 이루진 것은 25년 뒤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되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주일을 성수하거나 십일조를 드리시되 그 약속들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스의 철학자인 에픽테투스(Epiktetus)는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포도 한 송이가 만들어지는 데도 과정이 있고 세월이 걸린다. 우선 꽃을 피게 하고 그 다음엔 열매를 맺게 하고, 또 그 다음에는 여물게 한다.” 이 말은 무슨 일에나 차근차근 단계를 충실히 거치면서 인내로써 성과를 거두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너무 조급해서도 안 되고 너무 결과에만 집착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농사를 짓는 농부나, 예술품을 창작한 예술가나, 기계를 발명하는 과학자가 이룩한 모든 인류의 재산은 곧 인내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4. 영혼 구원도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향하여 가장 원하시는 것,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널리 전파하므로 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 구원받는 것입니다. 이 한 가지를 위해 하나님은 외아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 가셨습니까? 이유는 단 한 가지뿐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죄를 범하다가 지옥의 불구덩이로 달려가는 불신 영혼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나라로 올라 가셨습니다. 그 후 성 삼위 하나님의 한 분이신 성령님이 오셔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 이유도 단 한 가지 영혼 구원입니다. 복음을 전하므로 한 사람 한 사람씩 주께로 인도하는 것은 교회 존재의 유일한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교회의 지체인 성도님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로 올라가시면서 마지막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19-20)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은사가 아니라 사명입니다. 누구나 다 전해야만 합니다.

올 가을에도 대각성 전도 집회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잉태되면 열 달 후에 태어나는 것 같이 태신자를 정하여 기도하며, 친절과 사랑을 베풀며 그들로 하여금 교회로 인도하려는 전략입니다. 오늘은 그 태신자를 작정하여 작정서를 제출하는 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이일은 하기 싫어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소원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들이 하나님의 이 애절한 소원에 무관심 한다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들의 소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사에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데에도 끈기가 필요합니다.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진도개 전도 왕으로 널리 알려진 전남 순천의 박병선 집사님이 계십니다. 이 집사님은 예수 믿기로 결심하고 교회에 출석한지 일년 만에 750여명을 전도하여 전국 교회에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진도개 전도란, 진도개처럼 한번 물면 놓지 않고 끝까지 전도하여 교회로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몇 번 전도하다가 되지 않는다하여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나올 때까지 인내하며 전도한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한 사람이 회개하여 주님께로 돌아오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명한 선교사 윌리암 케리는 인도에서 힌두교인 한 명을 전도해서 세례를 주는데 7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서 아프리카에서는 한 명을 전도하는데 14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뉴질랜드에서는 한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데 9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또한 인도에 Ongole 선교회라는 기관이 있었는데 15년 동안 10명밖에 구원을 시키지 못해 문을 닫으려고 하다가 좀더 기다린 결과 30년 후에는 15,000명을 전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전도에도 인내가 필요합니다.

영국의 고아의 아버지로 불리는 죠지 뮬러 목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한 기도 제목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어렸을 때부터 같이 삶을 나누었던 다섯 명의 친구들의 구원 문제를 위해서 기도한 것이었습니다. 죠지 뮬러는 다섯 명의 친구를 위해서 계속 기도했습니다. 한 사람, 두 사람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믿지 않는 친구가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죠지 뮬러는 이 두 친구를 위해서 무려 52년 간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습니다. 죠지 뮬러는 이제 노년이 되어서 병석에 눕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인생의 마지막이 가까워 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죠지 물러는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을 했습니다.“오늘은 내가 사랑하는 교회에서 말씀을 전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십시오.”하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간절하게 최후의 설교를 했습니다. 마지막 설교를 하던 그 날 그의 한 친구가 거기에 참석했다가 뮬러 목사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죠지 뮬러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까지 믿지 않았던 한 친구가 뮬러의 죽음의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죠지 물러가 자기를 위해서 52년간이나 기도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죠지 뮬러가 죽은 그 해 이 친구는 결국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믿은 후 그는 전 영국을 순회하면서 간증하기를“죠지 뮬러 목사의 기도는 다 응답되었습니다. 저는 그 기도의 최후 응답입니다. 당신의 모든 기도도 다 응답됩니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삶의 아름다움과 보람은 기다리는 데에 있습니다. 낙심하여 포기하지 않는 투지에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에 의해 인류의 역사는 발전해 왔습니다. 고난의 시험이 와도 인내하시며 하나님을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때가 되면 합혁하여 선한 것으로 바뀌게 될 날이 있습니다. 기도하시되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인내의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입니다. 말씀을 순종하시되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약속대로 이루어집니다. 전도하시되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그 영혼이 주께로 돌아옵니다.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야고보서 5:7-8)하셨습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낙심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포기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이 주시는 성취의 때를 기다리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이 복 받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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