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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 2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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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광일 목사 (벧엘감리교회)

1942년 11월8일 미국 역사상 최대의 화재가 보스턴 나이트클럽에서 발생하여 무려 493명이 타죽고 200여명이 불 속에서 구출되었습니다. 당시 병원에서 근무하였던 린드만 박사는 정신건강 연구소에서 불 속에서 구출된 100명을 면담하여 조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죽을 뻔한 위기에서 살아난 이들의 85%가 오히려 그것이 건설적인 체험이 되어 새 출발을 하거나 신앙으로 돌아오거나 부부관계가 좋아지거나 나쁜 습관을 고치는 등 좋은 열매를 거두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린드만 박사의 연구논문에서 ‘위기 개입’ 이란 말이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위기는 발전을 위한 절호의 기회이므로 바로 이때 누군가가 개입해주면 큰 긍정적 성과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이 학설이 나온 후 ‘생명의 전화’ 등 위기 구조활동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 세상 누구를 보아도 욥과 같은 고통을 당한 사람은 없습니다. 악인이 형벌을 받으며 죄인이 고난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욥은 의인으로서 고난을 당한 것입니다. 본래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고 자녀들이 혹시나 하나님께 범죄치 않았나 하여 자녀의 수대로 번제를 드릴만큼 악에서 떠나려고 애썼던 사람입니다. 이러한 욥이 엄청난 고통과 시련을 당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욥은 이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오히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라고 찬송하였습니다. 계속해서 욥은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고 본문 10절에 고백하였습니다. 여기서 ‘정금’ 이라는 말의 뜻은 ‘의롭다, 하나님 앞에 영화롭다’ 라는 의미입니다. 즉 욥은 하나님의 시련이 끝날 때에 용광로에서 연단 받은 금처럼 자신은 깨끗하고 순결하게 될 것이며, 나아가 심판대에서 의로운 자로 인정받을 것임을 확신하는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욥은 지금 당하고 있는 위기와 고통은 자기를 영화롭게 만드는 것이요, 자기를 복되게 하는 것이요, 영적 생명을 더욱 풍성하게 누리게 하는 과정이라고 분명히 믿었습니다. 혹 여러분들 가운데도 고통 당하는 이들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그 고통을 통해 하나님께서 심령을 깨끗게 하시고 인격을 성숙시켜 정금같이 세워 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위기 가운데 하나님이 개입하여 주심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욥처럼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는 고백을 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의 “정금같이 나오리라”는 말씀의 뜻은,

첫째, 나의 가는 길을 아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한 아이가 장작을 패고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다 팬 장작을 한데 쌓아놓더니 아들에게 말합니다. “얘야, 이 장작을 부엌으로 날라야겠는데 좀 도와주지 않겠니?” “예, 그러지요.” 아이는 두 팔을 벌리고 아버지가 놓아주는 장작을 받았습니다. 수북히 올려놓은 장작을 들고 부엌으로 가는 아이를 본 동네 어른이 묻습니다. “조그만 체구에 너무 많이 들고 가는구나. 무겁지 않니?” 그러자 아이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아니요. 내가 얼마나 들 수 있는지 아버지는 나를 잘 아시거든요.” 본문 10절에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고 하였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의 뜻은 “나는 나의 길을 한치도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 나는 나의 미래를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나의 미래도 다 알고 계신다” 는 의미입니다. 그러기에 욥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바로 알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욥의 가까운 친구들은 그가 위선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욥의 아내는 자기 남편이 저주받은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욥이 큰 죄를 지어서 하나님께 벌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나에게 왜 이런 고통이 찾아왔을까? 나는 지금 모르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아신다. 나에게 왜 이런 엄청난 비극이 찾아왔을까? 나는 지금 모르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아신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아신다. 하나님은 반드시 나의 길을 열어주시고, 나를 정상으로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나의 길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나를 이 엄청난 고통과 환난에서 건져 주실 것이다” 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를 단련한 후에 반드시 나를 정금같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정금같이 된다는 말은 금이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생활이 정금같이 되고, 우리의 사업이 정금같이 되고, 우리의 가정이 정금같이 되고, 우리의 자녀들이 정금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장차 귀한 사람이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도 내일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우리의 길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하나님은 내 인생의 계획을 알고 계십니다. 나를 알고 계시는 그분에게 인생을 맡기시기 바랍니다. 내게 고난이 벅찬 것 같아도 하나님은 내가 견딜 수 있음을 잘 알고 계시기에 일을 진행하시는 하나님께 아멘 해야 합니다. 혹시 사람들이 내 형편을 몰라준다고 할지라도 낙심치 말고 나의 쓰라린 마음과 답답한 심정을 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믿음의 길을 계속 걸어가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욥처럼 고난 뒤에 정금같이 귀한 존재로 만들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의 해결책을 사람에게서 찾으려고 하지만 욥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욥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나의 가는 길을 오직 주께서 아시니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고 담대히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뜻이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대천덕신부로 불리우는 아쳐 토레이 박사는 중국 선교사로 일할 때 자동차 사고로 그만 팔을 하나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불행한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6.25전쟁으로 팔다리를 잃은 많은 한국 청년들을 향해 예수님의 심장을 품고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1951년부터 그들을 위해 의수족 사업을 하고 전도 사업을 하면서 한국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사명을 알고 1965년 강원도 태백에 예수원을 설립하여 한국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토레이박사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변치 않음을 믿고 사명을 감당한 것입니다.

사람마다 누구든지 나름대로 뜻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 뜻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일생동안 세상을 살면서 내 뜻대로 이루어진 것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내 뜻대로 되어지는 것 보다 내 뜻대로 되어지지 않는 일이 더 많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원망하고 불평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원망하고 불평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도는 내 뜻대로 이루어진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내 뜻을 이루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더 귀하게 보배롭게 여기는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본문 13절에 보면 욥은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소원했습니다.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킬까? 그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이 행하시고자 하는 일을 아무도 거역할 수 없습니다. 거역하면 거역할수록 우리의 생은 비참해 집니다. 더 큰 고통이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그러므로 오직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나를 향한 변함없는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붙들어 매고 하나님의 뜻 위에서 묵묵히 행할 때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욥은 스바 사람을 원망치도 않았고 갈대아 사람을 원망치도 않았으며 충성스럽게 양떼를 지키지 못한 종들을 원망치도 않았고 자기를 저주하고 도망간 아내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삶 속에 온갖 고통의 소용돌이가 있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 가심을 믿기에 오로지 하나님께 영광 돌릴 뿐이었습니다. 문제의 해답은 하나님의 뜻에 달려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작정하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천로역정은 존 번연이 감옥에서 쓴 소설입니다. 원래 청교도였던 존번연은 복음전도자로서 소명을 받고 열심히 사역하던 능력 있는 목사였습니다. 그러나 복음전도의 사역을 포기하라는 핍박자들의 요구를 거절한 이유로 투옥되어 12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왜 오랜 세월동안 감옥에 있어야 하는지 이유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존 번연을 향한 계획을 가지셨습니다. 그는 이 기간에 ‘천로역정’ 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쓸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에게 이런 시간이 없었다면 천로역정을 쓰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같은 죄인 살리신’ 의 가사를 지은 존 뉴톤 목사는 존번연의 생애를 생각하며 “주께서 유능한 설교자의 입을 다물게 하시면서 넓은 문을 여시는 데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이유들이 있습니다. 만약 존 번연이 감옥에 갇혀 있지 않고 설교를 계속했다면 자신의 했던 일의 절반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가 쓴 천로역정은 수세기 동안 순례자의 길을 걸어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후에야 존 번연도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로 하여금 더 크게 쓰시려고 감옥의 고통을 주셨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은 작정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노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욥은 19장 26절에 “나의 가죽이 썩은 후에 육체 밖에서 주를 보리라” 고 했습니다. 상처가 나서 썩어 문드러지는 고통과 아픔을 겪으면서도 자신을 향해 하나님의 하시는 역사를 보게 된 것입니다. 욥은 이해하기 어려운 시련과 고난도 의미를 알고 보니 하나님의 작정하신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오히려 더 성숙한 믿음으로 승화되어졌습니다. 그리하여 42장 5절에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라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고난을 당하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역사가 추상적이며 관념적이었지만 고통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작정하신 것이 있는데 그것을 이루시기 위해 고난을 주었다고 깨달은 것입니다. 옳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작정과 계획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꼭 이루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작정에는 후회함이 없으며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의 고통 속에 있는 하나님의 작정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의 희망의 시작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캄캄한 밤중에 환한 아침을 준비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역경 가운데 있을 지라도 보이지 않게 일하시며 도우시는 하나님,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 나를 더욱 성결케 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단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 뵈옵기 바랍니다. 부디 여러분들도 삶의 고통 속에서 욥과 같은 신앙고백을 하심으로 정금같이 변화된 모습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삶의 위기 가운데 개입하셔서 새로운 모습으로 나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얻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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