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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물댄 동산 같은 성도의 복 (사 58: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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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영무 목사

  민속명절 지내고 처음 맞이하는 주일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할까요?

  구약성경에서 가장 풍성한 삶을 살았던 사람을 꼽으라면 우리는 고민할 것 없이 요셉을 꼽곤 합니다. 물론 요셉의 생애에도 고난과 시련이 있었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풍성한 삶과  복된 삶을 살았던 인물 입니다.
  비록 가장 밑바닥인 노예의 삶을 살기도 했지만 그는 그 속에서도 풍성한 복을 누렸던 인물 입니다. 창세기 39장 2절에보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는 애굽에 끌려가서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노예로서 그 집을 섬기는데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고 그가 형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요셉이 하면 잘되고 번영했다는 얘기입니다. 주인이 요셉을 보니 참 성실하고 그가 하니 모든 일이 잘 되는 것입니다. 그로 하여금 가정의 총무로 삼아서 그 집의 모든 재물을 관리하게 다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더 큰 복을 주시는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셨다”는 말씀처럼, 요셉 때문에 그 집에 복을 내리신 것입니다. 그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것에 임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주인 보디발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요셉이었습니다.

  2005년 새해에 여러분의 삶이 요셉처럼 풍성한 복을 받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인생이 되어서 형통한 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이 복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가는 곳 마다 그 곳이 잘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불신자들이 여러분의 가정을 보면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의 가정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셉과 같은 복을 받은 사람 중에는 아브라함이 있습니다. 창세기 21장 22절에 보니 블레셋의 왕인 아비멜렉이 군대장관인 비골이란 사람을 대동하고 아브라함을 찾아 왔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아!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말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내가 눈 여겨 보니 너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해도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셔서 잘되고 번성하는군”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리고는 한 나라의 왕이 아브라함 개인을 찾아와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자고 요청을 합니다.
  그만큼 아브라함은 거기서도 복된 삶, 번영하는 삶을 살고 유력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그의 손이 닿는 것마다 복을 부어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요셉을 떠올리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물댄 동산같이 복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 물댄 동산은 무엇을 말합니까? 풍요로움입니다. 풍성함의 상징입니다.
  야곱은 아들 요셉에게 축복을 빌 때 물댄 동산의 축복을 빕니다. 창세기 49장 22절에 보니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라고 말합니다. 요셉은 샘 곁에 심어진 무성한 나무, 무성한 가지가 되어서 담을 넘는 축복을 입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요셉과 같은, 아브라함과 같은 삶을 살기를 원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이미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고 이미 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복 받기로 준비된 사람, 계획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살다가 틀렸다, 이제 나는 아무것도 안된다라고 하면 안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살다 죽는 거지 모 그렇게 얘기합니다만 그건 아닙니다. 그건 성도의 삶이 아닙니다. 왜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인 아버지가 되시기에 그렇습니다. 부모의 마음은 다 똑같습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다 잘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다 풍성하고 잘되고 번영하기를 바라시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와 저주를 짊어지셨기 때문에 이제 나는 복 받은 사람이다, 내게는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이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우리는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옆에 계신 분께 얘기해 주십시오. “나는 복 받은 사람입니다” “당신도 복 받은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미 복받은 사람이고, 다 잘 되도록 예비된 사람입니다. 이제 우리는 요셉처럼, 아브라함처럼 물댄 동산과 같은 풍성한 삶을 살아야하는데 우리가 이런 풍성한 삶을 살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요?

  첫째! 풍성한 샘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부요함과 부귀함과 권력과 세상 주관자의 역할을 감당하는 분이십니다. 또 하나님은 신령한 복을 부어주시는 분입니다. 또한 우리의 인생을 축복하시는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의 근원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에베소서 1장 3절 이하에 보니까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신령한 복을 부어 주시되 우리의 영혼이 잘되게 하시고 범사가 잘 되게 하시고 강건하기를 원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풍성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보니까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주님이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놀라운 새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고 풍성한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가나 혼인잔치에 예수님이 참여하셨는데 마침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예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심으로 그 잔칫집이 풍성해 질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중풍 병자인데 친구들이 그를 들것에 싣고 예수님을 찾아 왔다고 지붕을 뚫고 그를 내렸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이제 그에게 걸어가라 라고 했을 때 그는 들 것을 메고 걸어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일곱 귀신 때문에 고통당하던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막달라 마리아 였습니다.  예수님이 그 여인을 위해서 귀신을 내 쫓아 주셨을 때 그 여인은 귀하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디든지 주님이 가신 곳에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광야에 모인 오천명의 무리가 굶주림에 허덕일 때 그들이 배불리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넘는 축복을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풍성한 샘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께 우리가 어떻게 뿌리를 내릴수 있을까요?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분께 우리의 인생을 의뢰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7장 7절 이하에 보니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찌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말씀합니다.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습니다. 기근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입니까? 그는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1편에서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사철 푸르르고 그 행사가 다 형통하다고 증언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인생의 뿌리를 내린 사람, 하나님을 의뢰하고 의지하는 사람은 무성한 샘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인생의 뿌리를 두는 사람이요, 물댄 동산과 같은 풍성한 축복을 누리는 사람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풍성한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이사야 58장은 금식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금식을 포함해서 모든 예배자의 합당한 태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금식은 하나의 종교적인 행위요, 예배의 한 형태입니다. 그래서 금식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금식을 하는 것 자체보다 더 귀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금식하는 사람, 바로 그 예배자의 태도가 축복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예배의 승패는 이 한 시간에 있지 않습니다. 이 자리에서 찬송을 얼마나 잘하느냐, 기도를 얼마나 잘하고 헌금을 많이 하느냐가 아닙니다. 내가 예배에 오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가, 또 세상에 나가서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이냐가 예배의 승리와 패배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물댄 동산과 같은 합당한 예배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먼저 형제를 자유케 하는 사람입니다. 6절 함께 읽겠습니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씀합니다. 이 6절 말씀은 종종 오해를 불러 일으킵니다만, 이 본문은 금식의 정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참으로 기뻐하는 금식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흉악한 세력에 의해 결박당한 형제를 풀어주는 것이고, 무거운 멍에를 지고 고통당하는 이웃의 줄을 끌러주는 것입니다. 또한 잘못된 독재정권이나, 조직에 의해서 압제당한 자를 자유케 하는 것이라고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 그들의 삶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돈 있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돈 없는 사람을 억누르고 힘 없는 사람을 착취했습니다. 돈을 꾸어주고는 이자를 받고, 또 원금을 못 내면 데려다가 노예를 삼았습니다. 그렇게 괴롭혔습니다. 오늘 말씀은 내가 그에게 결박을 내었다면 그 멍에의 줄을 끌러주고 고통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예배자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이런 저런 이유로 남을 억압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남에게 짐을 메어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것을 다 풀어주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북한의 동포들을 위해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잘못된 권력에 의해 고통받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4장 18절 이후에 예수님은 자신이 오신 목적을 설명합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라고 말씀합니다.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보게 함을 눌린 자를 자유케하는 것, 이것이 바로 주님의 사명이라면 오늘 우리는 사회 구조악속에서 억눌린 사람들의 삶을 자유케 하는 것이 우리들의 예배자의 태도라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오늘도 마귀에게 짓눌려 노예 되고, 죄와 질고의 무거운 멍에를 메고 허덕이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증거하여 자유케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성도의 사명이자 예배자의 태도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기에 세계 속에서 고통당하는 영혼들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른 예배자의 태도입니다. ‘남이야 죽든 말든 나나 예수 믿고 복 받으면 되지’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자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합당한 예배자의 모습은 형제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7절 말씀에서는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증언합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것, 즉 주린 자에게 먹을 음식을 식물을 나눠 주는 것, 유리하는 걸식하는 빈민이 있으면 내 집에 영접해서 그를 접대하는 것, 벗은 자가 있으면 내 옷을 입히는 것 그리고 골육을 위하여 숨지 않는 것 (골육이라는 것은 내 일가친척입니다)을 말합니다. 부모님이 찾아오시면 ‘없다고 그래라’ 하고 숨어버린다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형제가 어려워서 왔는데 ‘나 없다고 그래라’ 하고 숨는 것, 전화 걸어도 받지 않는다면 안된다는 얘기입니다. 내 골육 친척이 어려움을 당해서 도움을 요청할 때, 그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어제 인터넷 기사에서는 미국에서 차에 타고 가던 부부가 아기를 창문 밖으로 던져버렸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아기는 다행히 죽지 않고 아직 살아있다고 합니다. 많은 의사들이 그 아기를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아무리 화가 나도, 싸움을 했어도 골육 친척을 던져 버리든가 외면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좋은 예배자의 태도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모습 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님은 마지막 심판에 선 사람들을 향해서 양과 염소로 나누며 “참으로 너희들은 복 받을 자들이다”고 말씀합니다. 왜 입니까? 당신이 주릴 때 먹을 것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목마를 때 나를 마시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나그네 되었을 때 너희가 나를 영접하였다는 것이요, 옥에 갇혔을 때 나를 찾아 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합당한 예배자의 모습이요, 선한 사마리아인의 모습입니다. 우리 주님께선 ‘모두 가서 이와 같이 하라’ 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웃에게 선한 자비를 베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웃에게 선한 구제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구제란 무엇입니까?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은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하늘에 상금을 쌓는 것이고, 투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부로 남을 비난하고 욕하다가 예배자의 자리에 앉습니다. 또, 예배가 끝나고 나가기 무섭게 남을 비난할 수 있습니다. 예배시간 동안엔 남을 비난할 수 없으니까 불평을 가득 안고 있다가 끝나자마자 나가서 붙들고 누구를 욕하고 비난하고 저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복 받는 예배자의 태도가 아닙니다.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은혜로운 말을 나눠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에 보니까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더러운 말은 입에도 내지 말라고 말씀 했습니다. 덕을 세우는 말을 하라고 말씀 했습니다. 선한 말을 하고, 격려의 말을 하고,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하라고 했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이 안식일에는 더 말을 조심해야 된다고 말씀합니다. 13절 후반부에 보니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이라고 증언합니다. 이 사사로운 말이 무엇입니까? 의미 없는 말들입니다. 덕이 되지 않는 무책임한 말들, 어두운 말들은 안식일에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잘못된 언어를 통해서 우리가 예배를 통해 받은 복이 다 새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합당한 예배자는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는 사람이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이웃의 고통을 돌아보고, 선한 구제를 통해서 이웃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선한 말로 남을 격려하고, 축복된 말을 나누었을 때, 하나님은 이 같은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8절에서는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질병 때문에 금식하는 분이 있어요. 그러나 그가 이런 합당한 예배자의 자세를 가지고 금식하거나 예배를 드린다면 “네 치료가 급속히 임할 것이다. 빨리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실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너를 호위할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또 9절에 보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라고 말할 것이다“라고 합니다. 11절에서는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고 합니다.
  네가 하나님 앞에 합당한 예배자가 되면, 내가 너를 항상 인도할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마른 곳’은 어디입니까? 수분이 없는 매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풍성하게 할 것이다라는 주님의 약속입니다. ‘네 뼈를 견고케 할 것’이라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건강으로 축복 하신다는 것입니다. 네게 건강을 주고, 너는 물댄 동산 같고,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 같은 복을 누릴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앞에 이런 놀라운 복을 부어 주십니다. 우리 자신의 생애에 받을 복 만이 아니라 영생을 통해서 받을 복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너의 후손도 잘 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12절에 보니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고 했습니다. 네 자녀들이 이 허물어진 역사를 다시 세운다는 것입니다. 또한 놀라운 일을 행하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복을 주셨고, 이런 복 주기를 원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의 삶이 물댄 동산 같은 풍성한 복을 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이 복을 받고 이 복을 잘 유지해 나가야 합니다. 무엇을 해야 합니까? 바로 안식일을 잘 지키라는 명령을 주십니다. 13절, 14절을 보면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은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라는 말씀은 주님의 성전을 떠나서 멀리 가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하게 여기는 것은 다시 말해, 안식일을 존귀히 여기는 것은 곧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라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세상적인 것에서도 존경받는 위치에 올려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야곱에게 약속한 기업과 축복을 네게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복 받은 우리들이요, 놀라운 복을 받을 우리들입니다. 이제 안식일을 꼭 지켜야 합니다. 주일성수는 바로 이 복을 유지하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청년 한명이 취업을 위해서 오랫동안 기도해 왔습니다. 그가 특별히 컴퓨터 그래픽에 재주가 있어서 관련 회사에 응시를 했습니다. 면접을 보는데 면접관이 “우리 회사는 일이 많기 때문에 일요일도 출근할 때도 있고, 출근해야 합니다”라고 했답니다. 이 청년은 “저는 교회에서 교회학교 교사를 하는데, 주일날 출근한다면 이 직장에 올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답니다. 그는 누구나 들어가고 싶은 직장을 거절 했습니다. 참 용기있는 젊은이 입니다. 이후에 그 이야기를 들은 회사의 높은 간부가 다시 전화를 했더랍니다. 그분이 아마 크리스찬이었나 봅니다. “당신이 주일날은 출근 못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주일은 출근하지 않도록 조치할 테니 다시 우리 회사에 나올 수 있겠느냐”고 하더랍니다. 그 청년은 다시 그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습니다! 오늘 성경에서 무엇이라고 증언하십니까? 우리가 함부로 성일을 어지럽혀서는 안 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물질 때문에, 더 좋은 조건 때문에, 이 주일을 우리가 희생해 버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놓쳐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복 받은 사람이요, 복 받을 사람입니다. 이 한해 동안 하나님 앞에 주일성수 함으로써 여러분의 인생이 늘 영적인 즐거움이 넘치고, 하나님이 땅의 높은 곳에 여러분을 올려주시고, 야곱의 축복을 누리는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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