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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 (롬 12: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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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이봉 목사
 
□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체 말라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로마서 12장 10절-17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전 미국의 대통령 <지미 카터>이 대통령에서 물러난 후 작은 책 하나를 썼는데, 책 이름은‘나이 들면서의 미덕’영어로는‘The Virtures of Aging’입니다.
내용은 자신이 대통령에서 물러난 후 자신의 생의 지혜에 대하여 자신의 경험담을 적어놓은 책입니다.
80년대에 선거에서 패배한 후 실업자 신세가 되어서 고향 <조오지아 프래인스> 땅콩 농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선거에서 패배하고 돌아와 보니, 그에게는 반갑지 않은 두 가지 큰 사건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100만 불이 넘는 빚이었습니다. (약10억원)
150년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으며 대대로 가꾸어온 농장을 다 팔고, 집을 다 팔아도 모자랄 만큼 많은 빚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 즉 나이가 많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미 늙어 버렸다는 말입니다.
다시 농장을 일으키기에는 너무나 나이가 많았다는 현실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문제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친구 세 사람과 같이 식당에서 조반 식사를 했는데, 우리가 아는 대로 미국 사람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때는 돈을 제각기 내는데, 계산서를 보니 생각보다 돈이 적게 보여서 종업원을 불러서 계산이 잘못된 것이 아니냐? 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 있던 나이 많은 농부 한 사람이 빙그레 웃으면서 하는 말이“대통령 양반, 계산서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이 집은 오전 8시 전에 오는 노인들에게는 커피를 공짜로 준답니다”하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 하는지를 깨달은 카터 대통령은 빙그레 웃으며 감사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 후 그는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다 잃어버린 것 같았는데 동네 사람들이 나를 존경해 주고, 친구들이 나를 존경해 주고, 온 세계가 나를 존경해 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누구보다도 행복한 나날을 보내면서 노인에게 주어지는 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여기서 깨달아야 할 교훈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다 잃은 것 같았는데....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바로 그러한 인격, 그런 사람이 바로 성공한 사람이란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돈을 잃었다면 한 부분을 잃은 것입니다.
건강을 잃었다면 현재를 잃은 것입니다.
존경을 잃었다면 미래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잘 살아보자고 노래를 부르면서 어지간히 달려왔습니다.
몸부림칠 정도로 잘살아 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배우기도 했고, 훈련도 했고, 싸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어차피 인생은 결국 다 내 놓아야 합니다.
다 물려주어야 합니다.
결국 떠나야 할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잃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남들로부터의 존경심입니다.
존경을 잃고 좋은 집에 살면 무엇 합니까?
존경을 잃고 대통령을 했으면 무엇 합니까?
그래서들 그 자리를 물러난 후에 그렇게 경비를 세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존경을 잃고 이 세상을 살자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존경을 잃은 아버지, 어머니, 남편, 아내라면, 얼마나 괴로운 일입니까?

중국 사람이 쓴 <제왕 학>이라는 책에서 보면,
지도자 가운데는 몇 가지 유형의 지도자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 형편없는 지도자, 지도자 같지 않는 지도자입니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경멸을 받는 지도자입니다.  두고두고 경멸을 받는 지도자입니다.
<둘째>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지도자, 지금도 생각하면 몸서리쳐지는 무서운 지도자, 역사에서 없어야 할 지도자입니다.
<셋째> 존경받는 지도자입니다.
언제나 그를 생각할 때 가슴이 훈훈해 오는 그런 사람, 그런 지도자란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존경이란 문제 앞에 내 자신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존경이란 그 사람의 질적 무게를 말합니다.
그의 <재물>, <지식>, <명예>, <권력>이 양적이라 한다면, 존경은 그의 질적 평가 기준입니다.
즉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란 말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태어날 때 양적으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모두 질적으로 벌거숭이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태어난 인간은 마땅히 존경을 받고,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함이 마땅한 일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언제나 쫓기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항상 두려워하면서 삽니다.
무엇인가 무서워합니다.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렵습니다.
전화벨만 울려도 가슴이 덜컹거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피해망상에 살고, 우울증에 살고, 고독에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사람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인격적으로 벌써 죽은 삶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물어 보면, 세상은 존경할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문제는 어디에 있습니까?
자신에게 있습니다.
자기가 남에게 존경의 대상이 되지 못하기에, 남들도 다 존경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원숭이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원숭이들이 좋아하는 바나나를 주어 보시기 바랍니다.
좋은 마음으로 주려고 해도, 원숭이는 고맙게 받아먹지를 않습니다.
사람의 손에서 낚아채 먹습니다.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면 존경의 대상이 없이 모든 사람들을 대합니다.
저 사람도 나를 해칠 사람이겠지....
저 목사도 별수 없는 사람이겠지....
고마운 마음, 감사한 마음이 자기에게 없다보니 누구에게 감사할 것도 없고, 누구를 존경할 마음도 없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바로 이렇게 되었다고 봅니다.
요즘 친절을 베풀려 해도 친절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도리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기 좋습니다.
언제나 사람을 보상적 관계에서만 대하려고 합니다.
내게 오는 손익 계산으로 대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악수를 해도, 이 사람과 악수를 해서 내게 무슨 이득이 돌아 올 것인가? 계산하고 악수를 합니다.
겉으로는 웃음으로 반가운 척 하지만, 그것은 상술에 지나지 않습니다.

심지어 교회도 이 교회에 나가서 내게 유익이 무엇일까? 를 먼저 생각합니다.
이렇게 살면 피곤한 것뿐입니다.
그러나, 남을 존경하면서 사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존경스럽습니다.
내가 남을 존경할 때 내가 또 존경을 받게 됩니다.
내가 남을 존경할 때 내 마음이 평안해 집니다.  신뢰가 쌓입니다.

1.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성품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의 성품은 두말할 것 없이 <온유>와 <겸손>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자신이‘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바로 배운 사람은 그 얼굴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드러납니다.
만일 믿는 사람들의 얼굴이 표독스럽거나 인정사정없는 냉정한 얼굴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그것을 바꾸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사람의 얼굴에서 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속이 편하지 않은 사람은 벌써 얼굴에서 나타납니다.
속이 삭막해진 사람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얼굴에서부터 구별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성형수술의 제일가는 나라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성형수술을 통하여 자기의 얼굴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외모의 성형보다는 자신의 내면의 마음의 성품을 바꾸는 일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2. 어떻게 서로 존경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내 자신의 의지(意志)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자신의 의지와 성령의 역사(役事)가 함께 해야 가능합니다.
순간순간 위로부터의 오는 능력으로 자신의 의지를 복종시키면 가능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매우 깊이 유념해야 할 말씀입니다.
먼저 성도들 간에 존경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먼저 존경하는 노력들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노라면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내 마음이 차츰 채워지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내 마음이 이끌어지기 시작하면, 남을 존경하게 되고 그 존경은 결국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서로 존경할 대상이 없다고만 합니다.
즉 존경할만한 사람이 없다고만 합니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내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을만한 사람이 못 받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3. 그리스도 안에서 존경하라고 하였습니다.
존경의 범위를 주 안에서 먼저 하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베푼 그 사랑 안에서라면,
누구인들 존경 못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고 하였습니다.

효자가 효자를 낳는다는 말처럼, 
내가 효도하지 않았는데 자식이 내게 효도 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내가 존경하지 않았는데 내가 어떻게 존경을 받겠습니까?
평소에 남을 존경했으면 자기도 존경을 받게 됩니다.
내 마음속에 존경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은 큰 행복입니다.
존경하는 마음이 없이 산다는 것은 자신에게 큰 불행입니다.
‘내 주위에 존경할 어른이 없다’는 것은 나는 불행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드러내는 말입니다.

남을 먼저 존경하면 자신의 마음이 편해집니다.
마음이 편해지니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게 됩니다.
그러나 존경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모두가 부정적으로 보입니다.
‘저 사람도 결국 별수 없는 사람이겠지’라고 대합니다.
그것은 곧 자신이 별 수 없는 사람임을 고백하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 먼저 존경하면서 사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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