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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오미 인생 (룻 1: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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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손상률 목사
- 본문 : 룻기 1:19~22

19. 이에 그 두 사람이 행하여 베들레헴까지 이르니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을 인하여 떠들며 이르기를 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21.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 하니라
22.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 자부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성군 다윗은 우리의 일생이 주님의 손안에 있다고 고백하였습니다(시 31:15). 지혜자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에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병행하게 하였다고 말했습니다(전 7:14).
사도 바울의 경우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하였습니다(빌 4:12).
은혜 받은 성도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여러 가지 경우를 만나더라도 결국은 그리스도 안에서 최선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섭리하십니다.
룻기 성경의 기자는 엘리멜렉의 가정, 그 중에도 나오미의 인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들의 특징적인 삶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Ⅰ. 본래의 나오미

나오미는 은혜 받은 성도의 표본입니다. 성도는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녀로 구별된 사람이며,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은혜를 받는 자들입니다. 에베소서 2:8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1) 신앙인의 가정

룻기 1:2에 보면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엘리멜렉과 그 아내 나오미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행복한 가정의 표본입니다. 엘리멜렉은 그 이름이 ‘하나님은 나의 왕’이라는 뜻이며 나오미는 ‘희락’ 곧 ‘즐거움’이라는 뜻입니다.
곧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사람이 하나님의 가호와 사랑을 받으며 항상 희락의 삶을 산다는 의미입니다. 이들 부부는 두 아들과 함께 축복의 땅 베들레헴에서 살았습니다. 나오미가 모압에서 돌아 왔을 때 베들레헴 성읍이 떠들썩할 정도로 그곳 사람들이 환영한 것으로 보아(룻 1:19), 그들은 평소 이웃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2) 하나님의 기대가 있는 가정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는 사람들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기대를 가지고 거기에 부응해야 되는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자손 이스라엘을 천하만민 가운데서 구별하여 자기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에게 특별한 애정과 기적적인 은총을 베풀어주고 그들에게 하나님을 찬송하며 영광 돌리는 삶을 살도록 당부하였습니다(사43:1-7).
여기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섬긴다는 엘리멜렉 가정에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희락의 복을 주신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목적에 기여하여야 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2절에 그들은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이라고 밝혔습니다. 유다는 이스라엘 열 두 지파 가운데 열왕의 뿌리가 되는 지파입니다(창 49:10). 베들레헴 에브라다는 다윗의 고향인 동시에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지입니다.
이것은 오래 전 선민의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하나님께서 그들과 맺은 축복의 언약입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계시의 말씀에 따라 경건하게 사는 성도에게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기대를 가지고 도와 주신다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3) 인간의 불완전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나오미이지만 그들에게 언제나 기쁨과 평화가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가장 단란하고 행복해 보이던 그 가정에 엄청난  풍파가 몰아쳤습니다. 2절 말씀에 “그들이 모압 지방으로 가서 유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나오미의 가정이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이사간 것은 그 지방에 흉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1절).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희락의 생활을 하던 것은 베들레헴에 있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모압으로 이사간 후로부터 그 모든 복은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은혜 받은 성도의 복된 생활은 언제까지나 그대로 지속될 수 없는 불완전한 요소룰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흉년이라고 하는 외적 환경과 이사를 가도록 충동하는 내적 욕구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은 세상의 불완전성과 성도가 지니는 한계를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Ⅱ. 마라가 된 나오미

모압으로 이사 갔던 나오미가 십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본문 말씀 19절에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을 인하여 떠들며 이르기를 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고 하였습니다. 베들레헴의 인심은 십 년 전이나 다름없이 그를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고 하였습니다. 「마라」라는 말은 쓰디쓴 고통을 뜻합니다.

(1) 마라의 실상

모압 생활 십 년 동안 나오미의 가정은 완전히 몰락하였고 「즐거움」의 소유자였던 나오미 자신은 쓰디쓴 괴로움으로 황폐되었습니다. 모압에 이사간 후 얼마 못되어 남편 되는 엘리멜렉이 죽었습니다(1:3). 이어서 두 아들이 그곳 여인들에게 장가를 갔으나 그들도 모두 죽었습니다(1:5).
결국 나오미와 젊은 두 자부만이 남아서 처량한 모습으로 신세한탄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나오미는 두 자부에게 각각 친정으로 돌아가 새로운 출발을 하도록 권면하였습니다(1:8-14). 이때 나오미는 자기의 문제보다 젊은 두 자부의 처지를 생각하며 더욱 마음이 아파 울부짖었습니다. 의인 욥의 가정에도 한순간 환난의 바람이 휩쓸고 가며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욥 1:13-22). 이처럼 성도가 세상을 사는 동안에는 언제 불어닥칠지 모르는 마라의 바람에 시달리곤 하는 것입니다.

(2) 마라의 원인

성도가 시련을 당하거나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 가장 먼저 생각할 것은 하나님 앞에서 그 원인을 규명하는 일입니다. 계시록 2:5에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나오미는 마라의 고통을 겪으면서 저희 가정에 밀어닥친 불행의 원인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룻기 1:13에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라고 하였습니다. 20절에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21절에는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은혜 받은 성도가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곁길로 가게 되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징벌을 내리십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하나님으로부터 약속 받은 축복의 땅 베들레헴을 떠나 우상의 도시인 모압으로 이사간 것이 잘못입니다.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고 모압에는 양식이 있어서 물질생활에 여유가 있는 곳으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고난 때문에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리거나 교회를 멀리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물질 때문에 신앙을 포기한다면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고 만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Ⅲ. 회복된 나오미

그리스도인에게는 어떤 경우에도 절망이 없습니다. 회복하는 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눅 19:10). 본문 말씀 22절에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 자부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라의 쓴 고통을 통과하는 나오미에게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될 수 있게 배려해 주셨습니다.

(1) 자기의 과오를 뉘우쳤습니다.

나오미는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도 하나님께 원망을 하거나 남을 탓하면서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본래는 풍족하게 떠났으나 지금은 빈손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 자기의 과오라는 것을 인정하였습니다. 자부들을 불러 놓고 친정으로 돌아가서 좋은 길을 선택하도록 자유를 선언하였습니다. 그는 늦게나마 환난의 원인을 바로 알았고 그 모든 것이 자기의 잘못인줄 시인하며 회개하는 태도를 취하였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을 수 있는 비결이 이런 것입니다. 그동안 값비싼 댓가를 치르기는 했지만 이제라도 바른길을 접어든 것이 은혜입니다.

(2) 본래의 위치로 돌아왔습니다.

아비 집을 떠나 먼 나라로 갔던 탕자가 그곳에서 엄청난 고난을 체험하고 난 후에야 아비 집이 좋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드디어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로 가리라”하고 결단을 내렸습니다(눅 15:17-29).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곁길로 달아나게 되면 돌아올 때까지 징벌을 하십니다(사 1:5-6, 욘 1:11-16). 그렇지만 이와 같은 하나님의 징벌은 성도가 자기의 과오를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사람의 표현이기도 합니다(사 1:18). 그러나 언제든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옛날 같은 은혜와 축복으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나오미도 비록 많은 것을 잃었지만 베들레헴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이것은 모압에서 유대로 되돌아온 공간적인 이동보다도 더 큰 영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낭패와 실망 당한 뒤에 주께로 돌아오는 그리스도인의 방향전환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의 긍휼을 입었습니다.

본래 나오미의 이름인 ‘희락’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축복입니다. 그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마라의 지경까지 이르렀으나 그가 하나님의 긍휼을 입고 본래의 나오미로 회복되는 길을 들어서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2절에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 자부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고 하였습니다.
모압 지방에서 베들레헴으로 돌아와서 정착하게 된 것이 은혜입니다. 이방인의 땅이요 우상의 도시인 모압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가 있고 축복의 상징인 베들레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남편과 두 아들을 잃었지만 지금 그에게는 룻이라는 자부가 있었습니다.
훗날 베들레헴 여인들은 이 룻을 가리켜 “일곱 아들 보다 귀한 자부”라고 하였습니다(4:15). 그 뿐 아닙니다. 풍족하게 나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오는 나오미에게 “보리 추수 시작할 때”라는 적절한 시기를 맞추어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추수할 때는 밭에 있는 곡식을 다 거두지 않고 나그네와 가난한 자를 위하여 남겨둡니다(신 24:19). 또 추수기간동안 어느 밭에서든지 이삭을 주워올 수 있습니다(레 19:9). 그리고 추수하고 타작하는 그 밭에서 하나님의 예비하신 인생의 회복을 기대하게 하였습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오한 섭리와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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