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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의 기본 ; 기도 쉬는 죄 (삼상 12: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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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윤성진 목사

미국의 여류작가 펄벅(Buck, Pearl Comfort)은 대지(大地, The Good Earth)라는 장편소설을 1931년에 써서 다음 해 퓰리처 상(Pulitzer賞)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938년에는 노벨(Nobel) 문학상을 받게 됩니다.
이 소설은 중국의 어려웠던 시대를 배경으로 쓰였는데 주인공인 왕룽(王龍)과 그의 아내 아란(阿藍)이 거듭되는 천재(天災)와 폭동, 시련을 견디면서 꿋꿋하게 살아서 대지주(大地主)가 됩니다.

대지주가 되자 방탕한 삶을 살면서 집안이 혼란해지고 그 후유증으로 주인공들은 생을 마감합니다. 고생해서 모은 많은 토지 재산이 관계없는 사람들에게 처분되는 비극적인 내용을 그린 소설입니다. 선교사인 그의 아버지 사이든스트리크(Sydenstricker)를 따라서 중국에 가서 어린시절을 보내면서 겪었던 것이 소설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펄벅은 어린시절을 중국 청강포(淸江浦) 지역에서 보냈는데 오랜 가뭄이 계속되던 어느 날 그의 아버지가 먼 지역으로 선교여행을 떠나고 어머니 캐롤라인은 펄벅 등 세 자녀와 중국인 하녀와 함께 살았습니다. 캐롤라인이 어느 날 창가에 앉아서 바느질을 하고 있는데 귓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와서 귀를 기울였습니다. 
들어보았더니 중국인들이 집 주변에 모여서 “우리 동네에 이토록 심한 가뭄이 계속되는 것은 저 서양여자 때문이다. 그러니까 오늘 밤에 저들을 죽여서 우리 신(神)에게 제물로 바치자. 그래서 신의 노여움을 풀어 드리자.”고 의논하는 소리였습니다. 
이 소리를 같이 듣고 있던 중국인 하녀가 캐롤라인을 붙잡고 소리 내어 울기 시작합니다. “주인님, 오늘 밤에 큰 일이 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좋겠습니까?” 캐롤라인은 그 자리에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저 철없는 아이들의 생명을 주님께서 맡아주시고, 구원하여 주시고, 이 땅에 단비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얼마나 오랫동안 기도했는지 기도하다 보니까 마음속에 어떤 확신이 생깁니다. 눈을 떠 보니까 어느새 밤이 되었습니다.
캐롤라인은 하녀와 함께 다과를 준비했습니다. 자정이 되었습니다. 멀리 밖에서는 쇠뭉치가 부딪치는 소리와 발자국 소리들, 사람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어지럽게 들려오고 그 소리는 점점 집 가까이로 다가왔습니다.
하녀는 부들부들 떨면서 어쩔 줄을 몰라 합니다. 캐롤라인은 어디서 힘이 솟아났는지 대문을 향해 가더니 문을 활짝 열면서 살기(殺氣)와 노기(怒氣)에 가득 찬 그들의 눈빛과 마주쳤지만 차분한 소리로 말했습니다. “여러분! 어서들 오세요. 여러분을 위해서 기쁜 마음으로 차(茶)와 먹을 것을 준비했습니다. 함께 나눕시다.”
장정들이 몰려듭니다. 그때 한 장정이 이야기 했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무섭지도 않습니까?” 그러자 캐롤라인은 “내 이웃에 사는 여러분을 내가 왜 무서워합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중국인들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차를 대접하고 먹을 것을 권했습니다.
그리고 오르간 앞으로 가서 ‘비길 데 없는 존귀한 우리 주여’라는 찬송을 친히 반주를 하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찬송을 끝냈을 때 캐롤라인은 방안이 조용해 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뒤를 돌아보니까 한 사람, 두 사람 자리를 떠난 방에는 하녀와 세 자녀와 자신뿐이었습니다. 
누군가가 강한 손으로 자신을 붙잡아 주시고 있다는 것과 자신이 보호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캐롤라인은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감사기도를 드릴 때에 밖에서는 빗방울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더니 금세 소나기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시간은 벌써 새벽이 되었습니다.
무엇이 캐롤라인을 이렇게 담대하게, 지혜롭게 만들어 주었습니까? 기도였습니다.
무엇이 죽음 앞에 선 가족의 생명을 지켜 주었습니까? 어머니의 기도였습니다.
무엇이 오랜 가뭄 속에 단비를 기다리는 대지(大地)를 적셔 주었습니까? 펄벅의 어머니 캐롤라인의 기도였습니다. 

1. 기도 쉬는 것은 죄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19절부터 시작되는데 18절에 보면 기도함으로 비가 온 사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12장의 이야기는 사무엘의 은퇴연설입니다. 은퇴를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지적합니다. 당시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신정정치(神政政治)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다스리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왕이신데 또 다른 왕을 달라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을 주면 이러이러한 폐단(弊端)이 생기는데 그래도 좋겠느냐고 하니까 그래도 좋다는 것입니다.
왕이 있는데 또 다른 왕을 구하는 이것은 정치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반역(反逆)입니다. 역적(逆賊)입니다. 얼마나 큰 죄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죄를 범했습니다.
사무엘은 ‘너희가 왕을 구한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아느냐, 이 죄가 얼마나 큰가를 내가 보여주마. 만약에 내가 우기(雨期)가 아닌 이 맑은 대명천지(大明天地)에 우레와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했을 때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면 너희가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지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하면서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우레를 내려 주시옵소서. 그리고 비를 내려 주옵소서.” 그러자 벌써 우기(雨期)가 끝난 건조한 시기인데 갑자기 하늘에 뇌성벽력(雷聲霹靂)이 나면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천지가 개벽할 듯한 벼락이 쳤습니다.
백성들은 이러다간 벼락에 맞아 죽겠다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19절에 보면 백성들이 사무엘 선지자에게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기도하여 우리로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죄를 더 하였습니다.’ 하고 회개합니다. 
이 때 사무엘이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께 결단코 범치 아니하리라.” 고 자기 자신에게 약속하고 그 약속을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 말씀했습니다.       

기도하기를 쉬는 것이 뭐라고요? <죄>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죄라고 하면 사람을 죽인다든지, 도둑질을 한다든지, 간음을 한다든지, 자살이나 우상숭배나 불효나 남을 속이는 것을 죄라고 생각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필요에 따라서 하면 좋고, 안 해도 괜찮고, 기도는 하면 좋지마는 안 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기도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 앞에 <죄>라고 했습니다. 기도 안하는 것, 죄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기도 쉬는 것, 죄입니다. 기도에 게으른 것이 죄라고 성경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기도 안 하는 것을 죄라고 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 안하는 것을 죄라고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 기도 안 하는 것이 죄가 됩니까? 기도 안 하는 것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지 않는 행위입니다. 내가 내 힘으로 할 수 있다는 마음 때문에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도 안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교만의 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 특별히 사사기나 열왕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좀 살만 하고 편안해 지면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들의 신앙이 떨어집니다. 타락합니다. 그러다가 다른 나라의 침입을 받습니다. 압제를 당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만 그런 것이 아니고 오늘 우리들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의 기독교 역사를 보면 60년 대, 70년 대 참 어려웠을 그 때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고 철야기도하고 기도원마다 꽉꽉 찼습니다. 통성기도를 하면 대단한 열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좀 살만 해 지면서 철야(徹夜) 기도가 심야(深夜)기도로 바뀌었습니다. 기도원이 비기 시작했습니다. 기도의 소리가 전처럼 뜨겁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자연적으로 신앙이 떨어지고 그래서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나라의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해서 압제를 당하면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기도했습니다. 사사기는 이런 역사의 반복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교만한 사람입니다. 자기 힘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는 죄는 교만과 우상숭배입니다. 당신의 도움 없이도 나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하는 심리가 기도하지 않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앞에 최고의 죄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무엘은 기도 안 하는 것이 이렇게 큰 죄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결단코, 절대로 기도 쉬는 죄를 범치 않겠다고 자기 자신에게 약속하고 백성들에게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어머니 한나의 기도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성전에서 기도하면서 자랐습니다. 성전에서 잘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스라엘 역사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계시해 주실 만큼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상 3장 19절에 보면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더라>고 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계시의 말씀을 전하였을 때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고, 하나님 앞에 하는 기도도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다 응답받았다는 것입니다.
시편 99편 6절에 보면 <제사장 중에 모세와 아론이요 그 이름을 부르는 자 중에는 사무엘이라 저희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응답하셨도다>.
제사장 중에는 최고의 제사장이 모세요, 선지자 중에 최고의 선지자는 바로 사무엘입니다. <저희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응답하셨도다>. 그들의 기도는 다 들어주셨습니다. 예레미야 15장 1절에도 보면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을 내 앞에서 쫓아 내치라>. 그러니까 모세와 사무엘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마다 이루어 졌는데 그러나 ‘이 백성, 이 타락한 백성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하는 이 기도는 응답해 줄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사무엘은 기도의 중요성을 알고 기도하며 살았기에 그의 기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았고 하나님이 가장 기도를 잘 들어주시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2. 우리도 기도 쉬는 죄를 범치 않도록 결심합시다

그런 사무엘이 기도 쉬는 것은 죄이기에 기도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범치 아니하리라고 결심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기도 쉬는 것이 죄라고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쉬는 것을 회개해야 됩니다. 기도 안 하는 것이 죄기 때문에 회개해야 됩니다. 기도를 적게 하는 것도 죄이기 때문에 회개해야 됩니다. 그리고 기도 쉬는 죄를 범치 아니하리라고 결심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도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많은 회개를 했습니다.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생활 속에서 기도하면서 살고 있지만 좀 더 기도하지 못한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더 기도하리라고 다짐하면서 이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저를 위시해서 우리 모두 더 기도하리하고 다짐할 수 있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한 시 동안도 나와 함께 깨어 있을 수 없더냐>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의 ‘한 시 동안’은 ‘한 시간 동안’이란 말도 됩니다. 한 시간 기도가 처음부터 쉽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제안해 봅니다.
교회 나오신지 얼마 안 되는 분들과 기도에 훈련되지 못한 분은 하루에 15분 동안 기도해 보십시다. 15분 기도는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에 좀 훈련이 되신 분들은 30분 기도해 보십시다. 지금 30분 정도 기도하고 있는 분들은 1시간 기도에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역자들은 1시간 이상 기도하도록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15분, 30분, 1시간, 1시간 이상, 네 가지 중에 꼭 하나는 여러분들이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그 네 가지 시간 대 중에서 하나는 붙잡고 기도해 보리라고 다짐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라는 말은 제가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명령, 이것은 어명(御命)입니다.

15분, 30분, 1시간, 1시간 이상 기도하되 내가 지금 기도하는 상태대로 기도하면서 첫째는 안 줄이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양(量)을 줄이지 말라는 말입니다. 오늘 15분 기도했으면 내일은 기도가 안 되어도 앉아서 그냥 주여, 주여만 하더라도 15분은 해야 되지, 기도 안 된다고 벌떡 일어나지 말라는 말입니다.
두 번째로는 안 쉬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1주일 동안 기도하다가 바쁘면 쉬고 그렇게 하지 말고 계속해서 쉬지 말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집중해서 소리를 내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작은 소리라도 소리를 내어서 기도해야 기도가 흩어지지 않고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의 저자 박종훈 집사님은 5분도 기도하지 못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결심을 하고 기도를 시작했는데 1년이 지나니까 1시간 이상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그는 은행 중역이었지만 7시간까지 매일 기도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 7시간의 기도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 분이 우리 교회에 간증하러 왔을 때 강조한 것은 안 줄이고, 안 쉬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기도의 양을 안 줄이고, 매일 늘려서 기도하고, 하루도 쉬지 말고 매일 계속해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기도하라고요? 안 줄이고, 안 쉬고.
안 줄인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기도의 양을 줄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안 쉰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기도의 날짜를 쉬지 말고 계속해서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보다 내일 더 많은 기도를 하고, 며칠 기도하고 난 다음에 쉬지 말고, 안 줄이고 안 쉬고 하는 기도를 계속해 나가면 기도가 발전해 나갑니다.
그런데 오늘 조금 하다가 내일은 짧게 하고, 모레는 좀 많이 하다가 그 다음 날은 짧게 하고, 1주일 기도했다가 하루 쉬고, 이렇게 하면 기도가 발전되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가 결심할 것은 기도의 양을 줄이지 말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쉬지 않고 매일매일 하여서 1시간 이상 기도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신앙뿐만 아니라 생활이 엄청난 축복으로 채워질 줄 믿습니다.

3. 깊고 풍성한 기도를 하려면

기도의 내용이 더 풍성해 지고 더 깊어지고 기도의 양을 늘리는 데는 중보기도(中保祈禱)가 가장 좋습니다. 제자대학에서도 1시간 기도를 훈련시키고 있는데 1시간 기도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1시간 기도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힘든 일이었는데 중보기도를 하다가 보니까 1시간 기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제자대학에서 15명 정도가 모여서 서로 기도의 제목을 나누는데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도제목을 써서 기도하면 10분, 20분 금세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다가 보니까 기도의 줄이 잡히고 1시간이 언제 지나가는지 자기도 모르게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나, 나, 나를 위한 기도를 하면 몇 분 기도하고나면 기도 할 게 없습니다. 그러나 중보의 기도를 하면 기도할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기도를 나에게서 시작하지 말고 멀리서부터 나에게로 기도의 범위를 좁혀와 보세요.

하나님은 나에게 가장 가까이 계시는 분이지만 또 가장 멀리 계시는 분이시기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멀리 계시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고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내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기도를 드리고, 가장 먼 나라, 예를 들어 말하면 전쟁 중에 있는 이라크, 그리고 지진이 난 이란, 해일로 피해를 입은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인도, 또 가까이는 일본의 복음전파를 위해서, 북한을 위해서, 서울로, 충청도로, 호남으로, 영남으로, 그리고 우리 교회로, 우리 교회의 지역들, 중보기도자들, 친척들, 가족, 마지막으로 나에게로 오면 너무도 기도할 것이 많습니다. 1시간 기도해도 서울 쯤 밖에는 못 옵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기도가 더욱 풍성해 집니다.

이제 우리 기도의 약속을 한번 해 보십시다. 나는 매일 어느 정도의 기도를 하면서 살아가리라. 15분, 30분, 1시간, 1시간 이상, 나는 어느 정도로 매일 기도할 것인가 지금 작정하세요. 그리고 그 기도의 양을 안 줄이고 기도하리라 다짐하시기 바랍니다. 그 기도를 매일매일 안 쉬고 기도하리라 다짐하시기 바랍니다. 그 기도를 소리 내어서 기도하리라 다짐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날마다 기도의 양이 늘어나고 깊은 기도를 하여서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아서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반드시 될 줄 믿습니다.         

그리스에 가면 아테네 근방에 메테오라(Meteora)라는 지역이 있습니다. 메테오라는 바위가 기둥같이 100m, 150m 치솟은 바위기둥들이 많습니다. 밑에서 보면 마치 하늘에서 매달아 놓은 것 같다고 해서 메테오라(Meteora)라고 하는데 거기에 수도원이 13세기부터 시작되어서 번창할 때는 수십 개의 수도원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여섯 개의 수도원이 남아있습니다.
그 100m, 150m 치솟은 바위기둥 위에 수도원을 지어 놓았습니다. 어떻게 그 꼭대기에 집을 지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바위 위에다가 줄을 매달고 그 줄에 도르래를 달아서 줄에다가 벽돌을 한 장씩 묶어 올리고 그렇게 해서 지은 것 같은데 바위기둥 꼭대기 한 가운데에 집을 지은 것이 아니고 테두리를 따라서 지었기 때문에 보기에 아주 아슬아슬합니다.
100여 년 전에 다리를 놓은 곳도 있지만 지금도 도르래를 타고 올라가고, 도르래로 음식물을 날라서 먹는 수도원도 있습니다. 거기에는 오직 기도, 오직 성경필사, 오직 성화(聖畵)를 그리는 일들만 합니다. 죽지 않을 만큼만 먹으면서, 빗물을 받아먹으면서 오직 기도하는 목표는 어떻게 하면 내가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갈 것인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영광에 도달할 것인가, 하는 기도를 하는데 그들은 기도하다보면 몸 밖에 있는지, 몸 안에 있는지  자기 자신을 모른다는 겁니다. 
이렇게 믿음을 지켜 온, 이렇게 세계를 위해서 중보기도를 한 이들 때문에 우리까지 복음을 듣고 예수 믿게 된 것 아닙니까? 이제 기도 쉬는 죄를 범하지 마십시다. 쉬지 않고 기도하리라고 다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어떻게 하면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입니까? 
첫째로 기도하는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해야 내가 기도를 쉰다, 안 쉰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루 세 번씩 기도를 했습니다. 오전 9시, 낮 12시, 그리고 오후 3시, 기도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들은 기도시간만 되면 길을 가다가도 서서 하나님 앞에 손들고 기도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집에 있다가 기도하는 시간이 되면 나가서 손들고 기도하는 외식(外飾)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질타했지만 정말 기도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칭찬하셨습니다.
다니엘 6장 10절에 보면 <다니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어놓고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 무릎 꿇고 기도했다>고 했는데 그 세 번의 근거가 바로 유대인들이 세 번 기도하는 기도의 습관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왕의 칙령(勅令)을 따라서 사자 굴에 던져진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한 달 동안에 왕 외에 다른 신(神)에게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 진다는 칙령이 내려졌습니다. 우리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 지금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내가 사자 굴에 들어가서 죽어야 되니까 하나님 한 달만 쉬었다가 기도하겠습니다. 아니면 창문 닫고 보지 않는 데서, 또 아니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기도하겠습니다.’ 했을까요?
그런데 다니엘은 전에 행하던 대로 기도하는데 그는 예루살렘을 향해서 창문을 열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합니다. 기도 쉬면서 펴안하게 사는 것보다 기도하다가 사자의 밥이 되는 것을 선택했고 기도하다가 죽겠다는 자세를 가지고 전에 행하던 대로 기도했습니다.
그런 다니엘을 하나님은 들어서 높이 세워 주시고 애굽 왕 바로 다음의 자리인 총리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나라 총리들을 보면 몇 개월 안 되어서 총리 직에서 물러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왕이 바뀌어도 총리 직이 안 바뀌었습니다.
바벨론에서 페르샤로 바뀌어도, 왕조(王朝)가 바뀌어도 총리 직이 안 바뀝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시는 위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기도는 쉬지 않겠다, 내가 기도쉬면서 사는 것보다 기도하면서 죽겠다는 그의 결심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결심을 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리교 창시자인 요한 웨슬레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2시간 씩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생활이 얼마나 규칙적이었던지 그는 메도디스트(Methodist)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예수님도 습관을 쫓아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침례교회의 유명한 목사인 져드슨(Adoniram Judson)은 ‘다른 것은 다 도둑맞더라도 기도 시간만은 도둑맞지 말라고 했습니다. 다른 것은 도둑맞을 수 있습니다. 뺏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시간은 도둑맞지 말고, 기도시간만은 뺏기지 말고, 기도시간만은 양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시간을 정해서 기도합시다. 그래야 기도를 쉬지 않고 할 수가 있습니다.
기도를 쉬지 않는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기도의 제목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도한다는 말도 됩니다. 성경을 보면 떡 세 덩이를 구하는 친구(눅11:5-8)가 나옵니다. 그에게 친구가 떡을 주면서 너와 내가 벗됨 때문에 주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는 강청(强請)함 때문에 준다고 합니다.
불의한 재판관(눅18:6-7)의 예를 들면서 하나님은 이 여인과 같이 계속해서 하나님의 대문을 두드리면 열어주지 않겠느냐, 쉬지 않고 기도하면 들어주마고 예를 들어가면서 말씀하셨습니다. 5만 번의 기도 응답을 받았다는 뮬러(George Muller)는 1844년부터 다섯 명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97세에 세상을 떠났는데 기도할 때에 100억 달러 이상의 재산상의 축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 수천 명의 고아를 먹여 살리는데 썼는데 그 당시의 100억 달러라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미국이 알래스카를 살 때 72만 달러였습니다. 그러니까 100억 달러의 가치는 얼마나 대단합니까?
다섯 명의 영혼이 어떤 사람은 1년 후에, 어떤 사람은 2년 후에, 어떤 사람은 5년, 6년 후에 구원받았는데 마지막 한 사람은 그가 세상을 떠난 52년 뒤에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의 기도는 결국 다 응답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쉬지 않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들어주마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기도를 쉬지 않다는 것은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생활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기도하기를 ‘주님! 오늘도 저는 주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어제처럼 살지 않고 새롭게 살겠습니다. 오늘은 틀림없이 좋은 날입니다. 오늘 주님과 동행하고 승리하는 날 되게 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하고 기도하십시다.
세수를 할 때에도 ‘내 얼굴만 씻지 않고 주의 보혈로 내 심장을 씻겨주시옵소서.’, 밥을 먹을 때에도 ‘밥만 먹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양식도 채워 주시옵소서.’, 옷을 입을 때도 ‘주여, 내게 육신의 옷 뿐 아니라 흰 세마포 옷, 보혈의 옷을 입혀 주옵소서.’, 길을 갈 때에도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게 해 주옵소서.’하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기도하는 마음으로 생활하는 것이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제 기도 쉬는 죄를 범치 않기 위해서 기도의 시간을 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 쉬는 것이, 기도 안 하는 것이 죄라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가 이루어질 때까지 기도합시다. 생활 자체가 기도가 되게 훈련해 보십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더 풍성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에는 궁전만 있는 것이 아니고 존 낙스(John Knox)의 집도 있습니다. 존 낙스가 살고 있을 때에 메리여왕이 통치했었는데 열심 있는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메리여왕은 스코틀랜드의 모든 개신교(改新敎) 신자들을 다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날 밤에 존 낙스는 자기 서재에 들어갔는데 그 서재는 문만 열면 메리여왕의 왕궁이 보였습니다. 거기서 그는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스코틀랜드를 제게 주시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저를 죽여주시옵소서.”
얼마 후에 메리여왕은 중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메리여왕은 중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사람 존 낙스의 기도가 백만 대군보다 더 무섭다.”는 말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존 낙스 한 사람의 기도가 스코틀랜드의 수많은 개신교 신자들의 목숨을 살렸습니다. 그 뒤에 엘리자베스가 왕위에 오르면서 개신교 나라로 만들지 않았습니까? 기도의 힘은 이렇게 무한합니다.
기도는 하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인생의 마스터키(master key)가 됩니다.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능력이 됩니다. 기도를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기도하면 영혼이 살고, 영혼이 살면 범사가 잘 되고, 우리의 무릎 위에 내 자녀들도 잘 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기도 쉬는 것이 바로 죄라고 했습니다. 기도 쉬면 시험 든다고 했습니다.
기도 쉬는 것은 죄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시간 나면 기도하고, 시간 없으면 기도 안 해도 괜찮다는 의식에서 벗어나서 기도 쉬는 것이 죄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쉬는 죄를 범치 않으리라고 다짐하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나는 하루에 얼마 씩 기도하리라고 작정하시기 바랍니다. 하루 중에 언제 기도할 것인 작정하세요. 어디서 기도할 것인가 작정하세요. 기도의 양을 안 줄이고, 기도를 쉬지 아니하고 소리 내어서 기도의 시간을 도둑맞지 말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신앙을 한 단계 성숙시켜 주실 것이고 우리의 신앙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활도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한 축복을 허락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다시 한번 기도하지 않는 것이 죄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나는 이렇게 기도하리라 다짐하고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이 오늘부터 기도 시작해서 연말에는 온 성도들이 다 1시간 기도를 넉넉하게 함으로 신앙과 영혼이 더욱 더 풍성해 지고 기도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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