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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로뎀나무 아래의 탄식(왕상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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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유관지 목사

엊그제 금요심야합심기도회에 참석한 성도들은 아시겠지만 그 날 설교를 담당한 한상균 목사님이 오늘의 본문과 같은 성경 말씀, 열왕기상 19장을 가지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한 목사님은 ‘이 말씀을 본문으로 금요심야합심기도회 설교를 준비했는데 오후에 주보의 원고를 보고서 담임목사님의 주일낮예배 설교가 같은 본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ㅁ우 당황했지만 준비한 설교를 바꿀 수 없어서 그대로 합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설교준비는 주제 또는 본문 선정, 본문 여러 번 읽기, 여러 성경의 본문 대조, 주석과 예화집 참고, 묵상과 기도, 대지 구성, 원고 작성, 여러 단계를 거쳐서 이뤄지기 때문에 금요일 밤에 본문을 바꿀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는 이미 설교를 중심으로 예배순서가 작성되어 주보가 제작에 들어간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대로 합니다. 양해해 주세요.

이런 일이 생각났습니다.
지금 50대, 60대가 된 분들이 입시를 준비할 때 「영어실력기초」라는 참고서를 많이 보았습니다. 안현필(安賢弼)이라는 분이 지었지요.
그 때 종로 뒤에 EMI라는 유명한 입시학원이 있었는데 이 분이 그 학원의 원장이었습니다. 이 분이 그 학원에서 이 책을 가지고 강의를 했는데 많은 학생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 강의 시간 뒤에 다른 선생님 한 분이 같은 책을 가지고 강의를 했습니다.
안현필 선생이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여러분, 제 강의를 듣고  이 다음 시간 강의를 계속해서 들어 보세요. 그 분은 나보다 더 잘 가르치는 분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하면 내가 미처 가르치지 못한 것도 배우게 되고 책의 내용도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한 번 그렇게 해 보았습니다. 효과가 크더군요.
본문이 겹친 이 설교도 은혜와 교훈이 크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왜 두 목사가 비슷한 때 같은 말씀을 본문으로 택하여 말씀을 준비했을까?
이것은 시기적으로 목양교회가 성전입당예배를 드린 직후라는 점과는 관계가 없을까?
성경은 모두 1,189장입니다. 구약 929장, 신약 260장, 합해서 1,189장입니다.
1,189분의 1의 중복이라는 확률, 우연일까?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엘리야의 모습을 우리는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낙심한 엘리야, 실망한 엘리야, 지친 엘리야, 좌절한 엘리야, 비겁해진 엘리야, 사명을 포기한 엘리야, 절망에 빠진 엘리야, 자포자기에 빠진 엘리야, 허탈감에 빠진 엘리야….
이 모든 것을 나타내는 말로 ‘탈진’이 적합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오늘 본문에 나타난 엘리야를 ‘탈진한 엘리야’라고 부르겠습니다.

엘리야는 언제 탈진에 빠졌습니까?

큰 성공을 거둔 다음에 탈진에 빠졌습니다.
사르밧 과부의 집에 식량이 끊어지지 않게 하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그 집 주인의 아들이 숨이 끊어진 것을 살아나게 했습니다.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 우상을 섬기는 선지자 팔백오십 명과 대결을 벌여 이겼습니다. 완승을 거뒀습니다.
삼년 육 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 기도를 해서 큰비가 내리게 했습니다.
그 다음에, 그는 오늘 본문과 같은 탈진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큰 성공 다음에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언제 마귀의 시험을 받았습니까?
사십 일 금식기도를 마친 다음에, 말을 좀 바꾸면 사십 일 금식기도에 성공한 다음에, 영성이 가장 충만할 때 마귀가 찾아왔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큰 성공 다음에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교만해지지 않도록, 실족하지 않도록, 자만하지 않도록, 그리고 탈진하지 않도록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0장 12절에서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가르치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왜 탈진에 빠졌습니까?
억울하게 되어 탈진에 빠졌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선지자들을 무찔렀습니다. 큰 비가 내리게 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고 치하의 말을 들어야 마땅한데  그 반대가 됩니다.
악한 왕후 이세벨의 사신이 와서 이세벨의 말을 전합니다.
이세벨의 말은 간단합니다. ‘내가 너를 죽이겠다. 꼭 죽이겠다!’ 이것입니다.
독기가 잔뜩 서린 말이었습니다.

이세벨, 참 완악한 여인입니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시내가 다 마르고 짐승을 다 잃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18장 2절은 나라에 기근이 심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국난을 만난 것입니다.
엘리야가 기도해서 비가 내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면 왕후로서 엘리야에게 감사해야 할 텐데 엘리야를 죽이려고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들었습니다.

이세벨, 참 어리석은 여인입니다.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수백 명이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를 이기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할 터인데 그 무력한 우상들의 이름을 걸고 엘리야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완악하고 어리석은 이세벨, 나중에 어떻게 되었지요?
열왕기하 9장을 보면 예후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아주 비참하게 살해되었습니다.
창밖으로 던져졌는데 시체가 여러 조각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렇게 된 시체가 거름같이 밭에 있게 되었습니다.(왕하9: 30~37)
세상의 악한 세력들은 다 그렇게 되는 법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심을 가지고 일했습니다.
그리고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대접이나 존경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었습니다. 억울하지요.
이 때문에 엘리야는 그만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이와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교회를 섬기고 이웃을 섬깁니다.
그런데 불신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때로는 성도들조차 오해하거나 비난하는 것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경우에 우리는 하나님을 의심할 정도로 낙심에 빠지기도 합니다.

성공한 다음에 박수만 기대하지 마세요.
성공한 다음에 비난이 찾아오고, 오해가 찾아오고, 어려움이 찾아오면, 이상하게 여기지 마세요.
엘리야처럼 자포자기  하지 마세요.
오히려 ‘올 것이 오는구나!’ 하세요.
그러면 주저앉지 않게 됩니다.
다윗을 보세요. 골리앗 앞에서 모두 꽁무니를 뺍니다. 나라가 위기에 빠졌습니다.
다윗이 혼자 나가 골리앗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의 질투 때문에 도망을 쳐서 유랑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둘람의 동굴에 숨었는데 사울 왕이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포위합니다.
이 때 다윗은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시57: 8) 지금도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유명한 노래를 불렀습니다. 

엘리야는 왜 탈진에 빠졌습니까?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위험한 형편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3절의 시작 부분을 보세요.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이세벨이 엘리야를 협박할 때, 엘리야가 다시 한 번 눈을 들어 갈멜산에서 우상을 섬기는 선지자 850명과 대결할 때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제가 큰 위험에 빠졌습니다. 하나님, 저를 다시 한 번 도와주십시오!’ 했더라면 엘리야는 이런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는  우리의  믿음이 강해집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면 어떻게 됩니까?
본문 앞에 있는 18장 46절을 보세요.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왕은 마차를 타고 달려가고, 엘리야는 그냥 달려갑니다.
왕이 타는 마차를 끄는 말이니까 얼마나 잘 달리겠습니까?
그런데 엘리야가 앞장서서 달려갈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눈앞의 형편만 보지 말고 그 뒤에 계시는 하나님을 보세요.
하나님의 능력이 강하게 여러분에게 임하실 줄로 믿습니다!

엘리야는 왜 탈진에 빠졌습니까?
생명에 대한 애착 때문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3절을 다시 보는데 아까 본 부분의 바로 뒤를 보세요.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엘리야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과 대화를 나눌 때는 생명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오바댜의 만류를 무릅쓰고 아합 왕을 만났습니다.
아합 왕이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 하니까 담대하게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 아버지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리고 당신이 바알들을 따랐음이라(왕상 18: 18)

했습니다.

엘리야가 그 때처럼 육신의 생명에 대해 집착하지 않았더라면 이와 같이 탈진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반대로 의연한 모습을 보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이세벨의 사자에게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당신은 가서 이세벨 왕후에게 이렇게 말하시오. 내 생명은 왕후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께서 뜻대로 할 것이오. 그리고 설사 이세벨 왕후가 나를 죽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내 육신의 생명일 뿐이고,  나의 영원한 생명은 어쩌지 못할 것이요!’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님이 생명에 대한 애착에 매달렸다면 예수님은 십자가를 피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인류의 구세주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목양교회는 지금 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지금 더 하나님의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귀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합니다.
그것들을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탈진한 엘리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광야의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죽기를 원했습니다.
이 로뎀 나무는 욥기 30장 4절에는 대싸리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로뎀 나무는 사막에서 자라는 키가 낮고 가지가 많은 관목의 일종입니다.
이름은 멋있는데 실제는 볼품없는 나무입니다.
잔가지가 많기 때문에 그늘이 무성합니다.
지금도 아라비아 사막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이 나루 그늘 밑에서 햇볕을 피한다고 합니다.
엘리야는 이 나무 아래에 앉아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라고 말합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이 말은 극도의 절망에 빠진 사람, 삶의 의욕을 다 잃은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민수기 11장 15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불평을 너무 심하게 하니까 모세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요나도 하나님께 항의할 때 이와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욘4: 3)

로뎀 나무 밑의 엘리야에게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엘리야는 이 때 심한 탈진상태에 빠져 있으면서도 자기 목숨을 자기가 끊지 않았습니다.
죽기를 원하면서도 자살은 하지 않았습니다.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인 것을 알았기에 자신의 생명을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이 일은 자살풍조가 심한 현대 사회에 많은 교훈을 줍니다.

자,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이렇게 탈진한 엘리야, 로뎀 나무 밑에서 죽기를 구하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지금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엘리야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까요?

하나님은 엘리야를 보호하셨습니다.

2절을 보면 이상하게 여겨지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이세벨은 엘리야를 당장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사자를 보내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너를 죽이겠다.’ 하지 않고 당장 군대를 보내며 ‘너희들, 엘리야를 만나거든 인정사정, 전후좌우 보지 말고 그를 죽여라! 그의 목을 반드시 가져 오너라! 그렇지 못하면 대신 너희들의 목을 치겠다!’ 할 수 있었습니다.
마땅히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의 기간을 두고 사전에 예고했습니다.
이세벨의 불같은 성격에 왜 이렇게 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이세벨의 마음을 그렇게 바꾸어놓았다고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어느 경우에나 알게 모르게 여러분을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탈진한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엘리야는 죽음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요청한 죽음은 오지 않고 대신 천사가 왔습니다.

나중 이야기입니다만 엘리야는 어떻게 세상을 떠났습니까?
찬송가 234장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이 찬송 2절에 그 답이 있지요.
“주의 선지 엘리야 병거타고 하늘에 올라가던 일을 기억합니다‘
불수레와 불말들이 엘리사와 엘리야를 갈라놓는 가운데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왕하 2: 11)
에녹과 더불어 죽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가장 비참하게 죽기를 원했던 엘리야를 하나님은 가장 장엄한 모습으로 데려 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식으로 기도에 응답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베푸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보낸 천사는 엘리야를 어루만졌습니다.
심한 실망에 빠진 분들이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을 어루만지는 하나님이 보낸 천사의 손길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위한 성도들의 기도가 그 손길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기 원하는 이웃의 마음이 그 손길일 수도 있습니다.

그 천사는 엘리야에게 “일어나서 먹으라” 하였습니다.
‘너 왜 이렇게 못난 짓을 하는 것이냐!’ 하지 않았습니다.
‘이 무슨 너답지 않은 꼴이냐!’ 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위로했습니다. 격려했습니다.
심한 실망에 빠진 분들이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을 꾸짖지 않으시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하나님이 보낸 천사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 천사는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 떡과 물은 오늘 우리에게는 말씀을 말합니다.
예배를 말합니다.

엘리야의 탈진이 워낙 심했던 모양입니다.
천사가 준 떡과 물을 마시고 다시 잠들었습니다.
천사는 포기하지 않고 또 다시 왔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은 한 번 임하지 않고 이와 같이 다시 임합니다.

7절을 보시는데 뒷부분을 보세요.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이 말은 “갈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새 번역」)라는 뜻입니다.
‘네가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라는 뜻입니다.
「공동번역」은 이 말을 “갈 길이 고될 터이니 일어나서 먹으라”라고 번역했습니다.
‘할 일이 많다. 힘들더라도 해야 한다. 말씀을 열심히 취해 힘을 얻어라!’ 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개인적으로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 아직 많습니다. 힘을 내세요!
교회적으로는 여러분, 이제, 시작입니다!

탈진한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엘리야를 영적으로 새롭게 각성시켰습니다.

엘리야는 고질병을 하나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 홀로 병’입니다.
엘리야는 자주 이 말을 했습니다.
열왕기상 18장 22절,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

열왕기상 19장 10절, 호렙 산의 굴에 머물러 있을 때 하나님이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하시니 그에 대해 대답하는 말입니다.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열왕기상 19장 14절, 바람과 지진과 불 다음에 하나님이 세미한 음성으로 다시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하시니 그에 대해 같은 대답을 합니다.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정말 큰 고질병이지요. 이런 병을 가지고 있으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때 ‘아니다! 내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기겠다!’ 이 한 방의 말씀으로 엘리야의 이 고질병을 깨끗하게 고쳐 주셨습니다.

탈진한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 주시고 새로운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열왕기상 19장 15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이 나라와 주변 국가를 이렇게 이끌어나갈 것이다, 너는 그 일을 해라, 새로운 역사를 열어라, 그리고 엘리사를 세워 너를 대신해서 선지자가 되게 하라’

성도 여러분, 혹시 엘리야처럼 탈진에 빠져 있습니까?
광야의 로뎀 나무 아래에 주저앉아 있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호하고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어루만지는 천사의 손길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천사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머리맡에, 가까운 곳에 있는 떡과 물,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시기 바랍니다.
영적인 각성이 있기 바랍니다.
새로운 사명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엘리야는 어떻게 합니까?
일어나서 호렙을 향해 갑니다.

호렙이 어떤 곳입니까?
8절 끝은 “하나님의 산”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거룩한 곳입니다.

호렙이 어떤 곳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곳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을 받은 곳입니다.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된 곳입니다.
이스라엘 신앙의 발상지입니다.

광야의 로뎀 나무 아래에서 탄식하며 죽기를 원하던 엘리야가 이제 일어나서 그 호렙을 향해 갑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드린 것과 같이 그곳에서 영적으로 다시 한 번 각성하고 새로운 사명을 받습니다.

목양교회가 혹시 대성전 공사로 지쳐 지금 로뎀 나무를 찾아가 그 아래에 앉으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바로 지금,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드린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어떤 기도를 드렸습니까?
본문 앞의 18장 36절과 37절을 보세요.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얼마나 담대한 기도입니까?
이와 같이 기도할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았습니다.
백성들이 보고 엎드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였습니다.
목양교회 대성전 완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엘리야의 말을 들어 바알의 선지자들을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잡았습니다.
바알의 편에서 하나님 편으로 돌아섰습니다.

목양교회는 이제 일어나서 호렙을 행해 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각성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사명을 받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새롭게 출발하는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저는 ‘로뎀 나무 아래의 탄식’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준비했는데 설교 준비를 끝내고 나니까 제목을 ‘호렙을 향하여’ 또는 ‘호렙을 향해 가는 교회’라고 바꾸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주보 인쇄가 끝나지 않았으면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지금 로뎀 나무 아래 주저앉아 탄식하고 있는 성도가 있으면, 바로 지금 여러분을 보호하시고, 천사를 보내 어루만지시고 위로하시며 격려하시며, 필요한 말씀을 주시며, 영적으로 새로 깨닫게 하시고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대성전 준공의 큰 일을 이룬 목양교회는 지금 더 열심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담대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새로 시작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하면서, 모두 함께 일어나 호렙을 향해 가는 여러분과 저, 그리고 이 교회가 되기를 우리에게 새 사명을 주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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