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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증인이 되리라!" (행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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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강석공 목사  I  2005년4월10일 설교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 삶의 목적 네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 첫 번째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좀 더 잘 알고 더 많이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을 성경은 바르게 예배하는 삶이라고 합니다. 그 두 번째 목적은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되어 참 사랑을 배우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세 번째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네 번째 목적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각종 은사를 사용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잘 섬겨야 합니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우리 삶의 다섯 번째 목적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 다섯 번째 목적은 이 땅에서만 할 수 있다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전도입니다. 우리는 전도를 위한 존재라는 말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요 17:18) 이미 우리는 교회가 요구하는 섬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교회 밖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해서도 살펴보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교인들을 섬길 뿐 아니라 세상으로 나아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전도해야 합니다.

  일찍이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주님이 무엇 때문에 제자들을 보내셨습니까? 제자들의 사명이 무엇이었습니까? 사도 바울이 아주 분명히 밝힌 바 있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행 20:24) 그렇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을 보내신 목적과 우리 삶의 다섯 번째 목적은 바로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그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까?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주님은 가정과 직장, 그리고 지역 사회에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먼저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유대와 사마리아까지 가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유대가 이웃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사마리아는 문화가 좀 다른 그런 지역의 사람들일 것입니다. 아마도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네가 땅 끝까지 가면 좋겠구나. 모든 사람들에게 네가 복음을 전해 주면 참 좋겠구나.”

  주님은 우리에게 최고 경영자가 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또 우리에게 유능한 세일즈 맨이 되라고 하신 것도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가 다만 증인의 역할을 감당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증인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증인은 사건을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사람입니다. 특히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우리 자신보다 더 나은 증인은 없습니다. 우리 삶을 통해서 주님이 행하신 일에 대해서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은 우리가 경험한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기를 원하십니다. 아주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리고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 마침내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가 전하기를 원하신다는 말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천사 사이의 대화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계획은 땅에 있는 내 자녀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그들이 또 그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게 하는 것이란다.” 그러자 천사가 물었습니다. “만약 저 사람들이 하나님의 부탁을 안 들으면 어떻게 하죠? 다른 계획은 뭐죠?”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다른 계획 같은 건 없어!” 우리가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위대한 특권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역사를 만들 수 있을까요? 먼저,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복음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시작입니다. 주님이 귀신 들린 사람을 고쳐 주신 적이 있습니다. 고침을 받은 사람은 주님과 함께 다니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말하라.” 그 사람은 가서 주님이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 온 성내에 전파했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바로 집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가족과 친지, 이웃 사람들, 그리고 학교나 일터에서 늘 만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왜 우리가 믿는 바로 그 순간에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시지 않을까요? 천국에서 할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 말입니다. 만일 누군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주지 않았을 것 같으면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주님은 우리가 그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복을 받기 원하면 주님이 소중히 여기시는 것을 우리도 소중하게 여겨야 마땅합니다. 주님이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시는 것이 바로 사람입니다. 아직도 주님을 모르고 있는 우리의 친구들, 직장 동료들, 사랑하는 가족들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소식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나눠야 합니다. 우리는 단 한 사람에게라도 더 가야 합니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전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주위 사람들을 아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을 넘어서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일찍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고전 9:22하반절) 다시 말해서 그는 가까운 사람하고 어울리는 것에 만족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다리를 만드는 사람이지 벽을 만드는 사람이 아닙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우리가 복음을 들고 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 나가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가장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사실 주님은 계속해서 한 마디 말로 우리를 독촉하고 계십니다. “가라!”

  주님은 항상 실패한 사람들, 힘 없는 사람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옥에 갇힌 사람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 그리고 귀신 들린 사람들에게 다가가셨습니다. 장차 우리도 주님 보좌 앞에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참 사랑을 실천했는지, 아니면 입으로만 사랑을 떠들었는지 심판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사람들을 두 무리로 나누실 것이고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 25:35~36) 그 때 의인들이 반문할 것입니다.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를 위해서 그런 일을 했습니까?”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

  그리고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주님이 목사들에게만 말씀하셨습니까? 선교사들만 모아놓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아닙니다! 평범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 주님이 바로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 하면 모든 사람들이 주님의 복음을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과거에는 그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그 말씀을 하셨을 때에는... 그러나 오늘 우리는 배, 비행기, 기차, 오토바이, 버스 등 다양한 교통 수단이 있습니다. 또한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세계가 점점 좁아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집에 앉아서 세계 어디에 있는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훨씬 쉬워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때문에 천국에 가게 될 사람이 있습니까? 장차 천국에 가면 우리에게 다가와서 복음을 전해 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할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가 나중에 죽어서 묻힌 무덤 묘비에 이렇게 쓸 수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는 자신이 살던 시간 동안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섬기다 갔다.” 또는 “그녀는 자신의 세대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섬기다 갔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 보내신 그 목적대로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제가 이 세상을 떠난 다음 사람들이 저를 두고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살다가 간 목사라고 말해 주는 것이 제게는 가장 큰 영광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맡은 바 전도의 사명은 생명을 살리는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주님의 부활의 증인으로 이 생명의 복음을 널리 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예루살렘은 어디이며 또 누구입니까? 우리가 가야할 온 유대와 사마리아는 어디이며 또 누구입니까? 그리고 우리가 목숨을 걸고 나아가야할 땅 끝은 과연 어디이며 또한 누구입니까? 주님이 친히 약속하신 성령의 충만한 능력을 가지고 온 천하 만민에게 복음을 전함으로써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참으로 충성스러운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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