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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시 11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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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홍문수 목사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A drowning man will catch at a straw.)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이런 저런 어려움을 만나게 되고, 도움의 손길이이 절실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때 누군가 내 편이 되어 준다면 정말 큰 힘이 될 겁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당연히 내 편이 되어 줄 것으로 기대하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럴 때면 정말 고립무원(孤立無援)이 되어 인생이 힘들고 막막해집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어낸 이야기겠지만 한번 들어보십시오. 어느 부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부인이 남편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했습니다. “여보! 나, 어머니, 그리고 아들 셋이 물에 빠지면 누구부터 건져줄 거예요?” 남편은 한참 난감한 표정으로 고민하다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야 어머니부터 건져 드려야지.” 부인은 불만스러웠지만 반발할 처지가 아니라 다시 물었습니다. “그 다음에는요?” 남편은 한참 또 생각하더니 할 수 없이 대답을 했습니다. “아들을 건져줘야지, 뭐.” 그랬더니 부인이 속이 상해서 자기가 그런 존재밖에 안 되냐고 따졌습니다. 그 후 부인은 스스로 고민에 빠졌고 나중에는 우울증 증세까지 보였습니다. 혼자 괴로워하다가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했습니다. 의사 역시 난감한 표정으로 한참 고민하다가 이렇게 대답을 했답니다. “부인,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면 차라리 수영을 배우시죠.” 누구나 다른 이들이 자기 편이 되어 주기를 바라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환기시켜 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어떤 경우에도 우리에게서 등을 돌리지 않고 항상 내 편이 되어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좋으신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사실을 확실하게 믿을 수만 있다면, 그리고 매일의 삶 가운데 늘 경험하며 살 수 있다면, 우리 인생은 결코 막막하지 않을 겁니다. 분명히 승리하는 인생이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 성경을 보면 그런 인생이 소개됩니다. 본 시편(118편)은 보시는 대로 표제가 없어서 저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많은 신학자들이 다윗의 저작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읽어봐도 그 내용이 다윗의 인생 역정이나 신앙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인생의 많은 역경과 풍파를 겪으면서 분명히 깨달은 바를 고백합니다. 여러분, 그 고백이 무엇입니까? 6절.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이 고백은 다윗의 일생을 승리로 이끈 동인이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신앙고백으로 용기를 얻었고 담대하게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인생에서 꼭 승리하기를 원하십니까? 다윗의 신앙 고백을 ‘나의 것’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풍파 많은 세상이지만 꼭 승리하는 인생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인생의 최고 자산 : 내 편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

다윗은 본래 특별한 소유도 배경도 없는 사람입니다. 소박한 가문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어느 날 사무엘이 와서 기름부음을 받음으로 차기 왕에 예선(豫選)되었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사울 왕의 심한 견제와 핍박을 받게 됩니다. 그 가운데 수백 명의 용사들이 그의 곁에 몰려들어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그 이상으로 짐이 됐습니다. 후일 왕이 된 후에도 고난이 적지 않았고, 그때마다 가족들과 많은 신하들이 도움이 전혀 안 된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가시 같이 괴로움을 준 적이 많았던 게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보죠. 사무엘上 30장을 보면 시글락에서 벌어진 사건이 소개됩니다. 다윗이 블레셋에 망명 중 이스라엘 침략 전쟁 참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되면 나중에 다윗이 왕 되는 데 지장이 됩니다. 다행히 하나님이 극적으로 전쟁에서 빼냅니다. 그런데 전쟁터로 가다 돌아온 그 며칠 사이에 아말렉 족속이 다윗과 그 일행의 거주지였던 시글락을 노략합니다. 방화하고 약탈하고 부녀자들과 아이들을 몽땅 납치해 갔습니다. 잿더미만 남았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짐작이 됩니다. 그런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니까 평소 충성을 맹세했던 부하들이 돌을 들고 다윗을 쳐 죽이려고 합니다. 이게 인간입니다. 그렇게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등을 돌릴 수도 있는 겁니다. 또 사무엘下 15장을 보면 압살롬의 반역 사건이 나옵니다. 그는 다윗의 친 아들입니다. 그런데 원수가 되어 다윗을 왕좌에서 쫓아냅니다. 죽이려고 하니 정말 기가 막힙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이처럼 내 편이 되었다가도 어느 순간 등을 돌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설사 끝까지 내 편이 되어 준다 하더라도 연약한 인간인지라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할 때가 허다합니다. 그래서 본문 8절~9절을 보면, 사람들을 신뢰하고 방백들을 신뢰하는 것은 별게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다윗은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낫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낫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토브’인데, 최선 혹은 최고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창세기 1장에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실 때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이 반복되는데, ‘좋다’는 말이 바로 ‘토브’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모두 최선, 베스트입니다. 사람을 신뢰하는 것은 별게 아니고,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최선이란 뜻입니다.

다윗은 이런 확신이 있었기에 담대히 고백합니다. 6절~7절.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하나님이 ‘내 편’이 되시기에 두려울 게 없다는 겁니다. 천하무적입니다. 이 고백은 시146:3~5 말씀과 비슷합니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러분, 다윗의 최고 자산은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그의 재산도, 왕권도, 주변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이었습니다. 이것은 이론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가 인생 역정 가운데 절실히 체험한 결과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진솔한 고백입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도 다윗처럼 오직 하나님이 내 편이라는 고백을 가지고 담대하게 승리하는 인생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을 내 편으로 삼는 지혜 : 신뢰, 기도, 성결, 최선

다윗은 본문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내 편이라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적극적으로 받으라고 권면합니다. 8절~9절. “여호와께 피함이 ... 여호와께 피함이 ... ” 여기서 하나님께 피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피난처이므로 그분께 적극적으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기본적으로 내 편이 되시지만, 적극적으로 나아갈 때 더욱 풍성한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내 편으로 삼는 신앙 자세가 필요합니다.

① 신뢰 :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분명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 확신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절대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나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설사 부모는 버려도 하나님은 버리지 않습니다. 시27:10 보면 다윗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그리고 사49:15~16도 증거합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 ” 이런 신뢰를 가지고 나아갈 때 하나님을 우리를 더욱 풍성한 은혜로 채워주실 줄로 믿습니다.

② 기도 :

우리가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놀라운 응답이 있습니다. 열왕기上 18장을 보면, 엘리야의 기도가 나옵니다. 당시 아합 왕의 부인 이세벨은 이방 공주 출신인데, 시집 올 때 바알 신과 아세라 신의 우상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우상 신 선지자들을 데려왔습니다. 엘리야는 그들을 향해 분개하며 갈멜산 결투를 신청합니다. 제단을 쌓아놓고 기도할 때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 쪽이 진짜라고 정했습니다. 바알 신 선지자들이 온 종일 춤을 추고 괴성을 지르며 난리를 치지만 응답이 없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제단 위에 짐승을 올려놓고 일부러 물을 흥건하게 부은 후 기도합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마치 핥아버리듯 제물을 태워버립니다.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이 엘리야 편이 되어 주시고, 기적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1944년에 있었던 노르망디 상륙작전 비화입니다. 사상 최대의 상륙작전으로 독일군을 대파함으로 연합군의 승리에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프랑스 북서부의 노르망디 해안은 험한 절벽이었고 상륙작전 전날 밤은 폭우와 안개 등으로 도저히 작전을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 봉착한 연합국의 지도자들은 이 중요한 작전의 성공을 위해 각자 하나님께 기도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루스벨트 대통령, 영국의 처칠 수상, 아이젠하워 사령관 모두가 승리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특히 루스벨트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17시간이나 꼼짝하지 않고 기도를 드렸다고 전해집니다.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그들의 편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기도는 하나님을 내 편 삼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③ 성결 :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이 기본적으로 내 편이 되셨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 주시지 않는 경우가 생깁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죄악된 삶을 살고 있을 때, 악한 습관에 빠져 있을 때는 그런 현상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공의로우신 분인데 아무리 하나님 자녀라고 해도 죄악 가운데 있는 순간에는 도저히 도와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회개와 성결의 회복을 요구하십니다.

사59:1~3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웠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발함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무조건 멀리하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죄가 하나님으로부터 스스로 멀어지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무엘上 7장을 보면 사무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자마자 제일 먼저 무슨 일을 했습니까? 당시 블레셋의 침략 위험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국가 안보가 가장 시급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먼저 백성들을 모아 미스바 성회를 개최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죄악을 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이 선민 이스라엘 편이 되어주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들의 죄악 때문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회 기간 중에 블레셋이 침략했지만 오히려 그 기회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대승을 거두는 쾌거가 있었습니다.

미국의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하루는 북군의 최고 지휘관 링컨의 사무실에 참모들이 모여 전략회의를 했습니다. 당시 전세는 북군에게 불리했습니다. ‘노예해방’이라는 명분은 좋았지만 실제 전투에서는 북군이 남군에게 밀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장시간 참모회의를 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회의를 마치는데, 참모 하나가 링컨에게 다가와 말을 건넵니다. “각하,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자 링컨이 정색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여보게,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세.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편이 될 수 있나 하는 점이야.” 링컨의 말대로 우리가 먼저 하나님 편이 되는 게 중요합니다. 먼저 회개하고, 먼저 성결하고, 먼저 순종할 때 하나님은 기쁜 마음으로 우리를 도와주실 겁니다.

④ 최선 :

우리는 종종 하나님이 내 편이라고 말하면서 막연히 그분의 도우심만 기대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죠?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도리는 하나도 하지 않고 무조건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은 불신앙적입니다. 물론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극한 상황이라면 기도만 해도 하나님이 도와주실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일이 남아 있고, 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안일하게 하나님의 도우심만 기대한다면 큰 잘못이라는 말씀입니다.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두운 것을 아주 무서워하는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어머니가 심부름을 시킵니다. 뒷마당에 가서 빗자루를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아이는 거절합니다. “엄마, 캄캄해서 무서워요.” 그러자 어머니가 잘 달랩니다. “얘야, 엄마가 지금 바빠서 그래. 밖에도 예수님이 계신데 뭐가 무섭냐? 너를 꼭 지켜주실 거야.” 아이가 금세 밝은 목소리로 말합니다. “엄마, 정말 예수님이 밖에 계셔요?” “아무렴. 예수님은 어디든지 계시지.” 아이는 한참 생각에 잠기더니 벌떡 일어나 뒷문으로 다가갑니다. 그러더니 뒷문을 살짝 열고 틈새로 말했습니다. “예수님, 거기 계세요? 그러면 거기 빗자루 좀 갖다 주실래요?”

여러분, 우리가 꼭 이런 식으로 신앙생활을 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할 도리는 하나도 안 하고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만 기대합니다. 그런 식으로 하면 결코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마가복음 2장을 보면 한 중풍병자가 치유 받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중풍병자는 예수님이 그 마을에 오셨다는 소문을 듣고 친구들에게 부탁해서 침상에 누운 채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갑니다. 그런데 막상 그 집에 당도하고 보니까 사람들이 너무 많아 도저히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 정도면 포기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예수님을 만나려고 합니다. 그래서 뒤로 가서 사다리를 놓고 올라갑니다. 침상 채 올라가야 되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리고 지붕을 뜯고 달아 내립니다. 그런 힘든 과정을 거쳐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때 예수님이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기적을 행하십니다. 그들이 보여준 믿음이 무엇입니까? 주님을 향한 믿음이 있기에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바로 그때 주님이 역사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중국 문화대혁명 때의 일입니다. 어느 마을에 존경받는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은밀하게 구제하고 마을 사람들을 섬기는 분입니다. 그래서 별명이 ‘작은 예수’였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 공산당원들이 들이닥쳐 교회 문을 닫고, 성도들을 핍박합니다. 주민들과 성경책 등을 다 모아놓고 한 사람 한 사람 신앙을 부인하도록 강요합니다. 채찍질을 하면서 다그쳐 묻습니다. “당신! 우리 공산당 덕분에 사나? 하나님 덕분에 사나?” 그 강압에 못 이겨 한 명 한 명 신앙을 부인합니다. 드디어 그 장로님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끝까지 굴복하지 않습니다. 채찍에 맞을수록 큰 소리로 외칩니다. “하나님 덕분에 삽니다.” “하나님 덕분에 삽니다.” “하나님 덕분에 삽니다.” 그런데 갑자기 공산당원 책임자의 입에서 믿지 못할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중지! 이제 그만 하고 그 분 책을 돌려주고 보내드려!” 그러더니 이미 신앙을 부인한 사람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야, 이놈들아! 예수 믿으려면 저 분 같이 믿어라!” 그 장로님이 극한 상황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지키며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은 크고 놀라운 일을 일으켜 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풍파 많은 세상입니다. 혼자 살아가기 힘이 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내 편’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우리에게 진정한 ‘내 편’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인맥이 없어도, 빽이 없어도 오직 하나님이 내 편 되어 주시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다윗처럼 “여호와는 내편이시라!”는 신앙 고백을 갖고 삽시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이 내 편이 되실 수 있도록 합당한 신앙과 삶을 갖기 바랍니다. 그래서 항상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해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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