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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름다운 발 (롬 10: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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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송선옥 목사

나는 그들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며
여러 번 갇혔고 매도 수없이 맞았으며
죽을 고비도 여러 번 겪었습니다.

나는 유대인들에게 39대의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습니다.
또 세 번이나 몽둥이로 맞았고 한번은 돌에 맞았으며,
세 번이나 파선하였고
밤낮 하루를 꼬박 바다에서 헤맨 일도 있었습니다.

나는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들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신자들의 위험을 당했습니다.

또 수고하고 애쓰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적도 여러 번이었고
주리고 목마르며 수없이 굶고
추위에 떨며 헐벗기도 하였습니다.
(고후11:23-27 현대인의 성경)

복음 전도자로 부름받은 사도 바울의 고백이다.
그가 예수를 믿기 전에는 세상적으로 잘 나가던 사람이었다. 종교적 귀족 계층에 속한 바리새파 사람이요, 학문적으로 뛰어난 가말리엘 문하 출신이요, 유대인들 사이에 촉망받는 젊은 관원이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는 악명 높은 박해자였다.

그러던 어느날 다메섹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붙잡기 위해 가던 중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성을 듣는다.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해 그 생애는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던 사람이 복음 전도자가 된 것이다. 서양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동쪽으로 잘 달리는 말은 서쪽으로도 잘 달린다.” 박해하던 열심이 이제는 전도자로서의 열심히 바뀐 것이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새롭게 태어난 사울에게 사도라는 직분이 주어졌다. “내가 너를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노라.”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해 사울은 죽고 사도 바울이 태어난 것이다. 복음 전도자로서의 삶이 얼마나 고달프고 힘든 것인가를 그의 고백 속에서 충분히 느낄 수가 있다.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제자들인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책이다. 그런데 전체 28장 중에서 13장 이후부터는 복음 전도자 바울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는 소아시아로 유럽으로 로마로 여행하면서 끊임없이 계속적인 전도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서두의 인용한 고후11:23-27절의 내용은 그가 전도여행 중에 겪었던 수 많은 어려움을 기록한 것이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왜 이와 같은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복음 전도자로서의 삶을 살았는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 아니하나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1:16).

그의 삶이 180도 변화된 이유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해 영적인 눈이 열렸다. 지금까지 자신이 고집해 왔던 신앙과 사상과 지식, 그리고 자신이 소유했던 모든 것이 무가치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빌3:7-9상,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인생에 있어서 진정한 행복, 가장 의미 있고 보람있는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삶의 중심에 모셔 들이는 것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를 만나게 해주는 것임 깨달은 것이다.

그는 복음 전파를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고 자신이 당하는 고난과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것이다. 복음전파하는 일이 자신의 생명과도 바꿀 만한 가치 있는 일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행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는 전도여행을 위해 두 벌 옷도 필요하지 않았다. 사람이 사는 곳이면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예수를 전파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씀을 듣고 예수를 믿는 역사가 나타났다.
행13: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사도 바울의 전도여행은 고생을 사서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선포되어지는 복음의 말씀을 인해서 구원받는 역사가 나타났고 구원받은 사람들의 삶이 변화되어 새 사람이 되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곳에는 교회가 세워졌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목도할 때 그가 당한 고난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가 전도하다가 여러번 감옥에 갇혔다. 그 때 쓴 서신을 옥중서신이라 한다. 그중에 하나인 빌립보서는 기쁨의 서신이라 부른다. 차고 어둡고 습기찬 감옥에서 뭐가 그리 즐겁다고 기뻐할 수 있는겠는가? 그것은 전도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지난 해 우리 교회에 처음 나온 어느 가정을 심방했다. 그 부부를 인도한 집사부부도 함께 동행했다. 그 자리에서 그 집사님은 내게 이렇게 고백했다. “전도하는 기쁨이 이런 것인 줄 몰랐어요.” 그것은 새생명을 출산한 것과 같은 기쁨이다. 해산의 고통은 크지만 아기를 얻으므로 인해 고통을 잊고 기뻐하는 것이다.

롬10:14-15,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은 그의 경험을 통해 얻은 결론이다. 복음 전도자들의 헌신이 없이는 복음이 전파될 수가 없다. 그들이 가서 복음을 전파하므로 듣게 되었고, 들음으로 인해 믿게 되었고, 믿음으로 인해 예수를 주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이다.

1787년, 영국의 한 젊은이가 복음의 말씀을 듣고 구원을 받았다.
그는 성경이 너무 좋아서 계속 읽다가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강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세계지도를 그려놓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아직 한번도 복음을 듣지 못한 이 지구상의 사람들에게 저를 보내시고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그러나 그는 가난한 구두 수선공에 불과했다.

한 번은 그의 마음이 너무 뜨거워져서 목사님들이 모여 있는 모임에 찾아 가서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제가 성경을 읽어보니까 선교해야 한다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당시의 유명한 신학자인 리랜드박사가 이렇게 말했다.
“젊은이,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구원하기를 원하신다면 자네가 없이도 얼마든지 하실 수 있다네, 그 광신자같은 소리 집어치우게.”
그때 이 젊은이는 이렇게 답변했다.
“박사님 맞습니다. 하나님은 박사님이나 제가 없이도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믿기에 하나님은 박사님이나 저를 통해서 그 일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후에 소수의 몇 사람의 도움을 얻어서 이 젊은이가 인도행 배를 타게 되었다. 당시 교회들은 별로 그를 알아주지 않았으나 복음전파의 뜨거운 사명감을 가진 그 젊은이는 스스로 선교사가 되어 인도땅으로 건너 갔다. 그 젊은이의 이름은 현대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윌리암 케리였다. 한 젊은이의 헌신을 통해 영국교회가 세계선교의 눈이 열리게 되었고 전세계로 복음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복음 전파의 중요성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다.
왜냐하면 들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복음을 듣지 못했는데 어찌 믿을 수 있으며, 믿지 못하는데 어찌 주님을 부를 수 있겠는가?

오늘날 우리가 이 자리에 나와 앉을 수 있는 것도 누군가를 통해 복음을 들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복음을 전할 책임이 있다. 사도 바울처럼, 윌리암 케리처럼 생업을 포기하고 선교사로 나가라는 말이 아니다. 통계적으로 볼 때 전문적인 복음 사역자는 5% 정도로 나와 있다. 나머지 95% 세칭 평신도들이다. 그들은 생업에 종사해야 한다.

그렇다면 5% 정도의 전문 사역자들만 복음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95%의 성도들도 복음 전도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가? 방법은 많이 있다. 그 중에 몇 가지를 소개하겠다.

1)주일학교 교사, 또는 구역 목자로서 복음사역에 헌신할 수 있다.
말씀을 잘 준비해서 어린이들에게, 학생들에게, 구역식구들에게 전달해 주어야 한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교사들과 구역목자들의 전해 주는 말씀이 통로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듣든지 말든지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잘 알아 듣도록 준비해서 전해야 한다. 자신의 믿음이 잘 자랄 수 있는 방법은 부족하지만 말씀을 가르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하워드 헨드릭스교수가 쓴 “교사입니까?”라는 책에 보면 83세된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분은 13명의 학생을 맡은 중등부의 주일학교 교사였다. 그 할머니는 교사강습회에 참석하기 위해 지방에서 시카고에 올라온 것이다. 헨드릭스 교수가 할머니에게 물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나는 보다 나은 교사가 되기위해 무엇인가 배우러 왔습니다.” 그 할머니 밑에서 배운 학생들 중에 85명이 목사가 되었다고 한다.

배우면 늙지 않는다. 가르치면 믿음의 사람들을 키워낼 수 있다. 교사가 되기를 힘쓰라. 그 책의 서문에서 한 가지 이야기를 더 하고 있다.

월트라는 청년이 있었는데 학력이 국졸이다. 교사가 되고 싶어서 부장집사님에 말했더니 거절당했다. 계속 졸라대니까 부장이 이렇게 말했다. “그럼 자네가 나가서 아이들을 모아 한 반을 만들어 보게.” 월트는 길이나 공원에서 노는 아이들 13명을 불러 모았다. 그 중에서 11명이 목사 또는 전문 사역자가 되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달라스신학교의 유명학 교육학 교수인 하워드 헨드릭스이다. 못 배웠다고 핑계할 것도 없다.

2)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선교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이 자리를 떠나서 가정으로 돌아갈 때, 가정으로 파송받은 선교사가 되는 것이다. 직장에 출근했을 때 직장으로 파송받은 선교사가 되는 것이다. 학교에 갔을 때 학교로 파송받은 선교사가 되는 것이다. 동네에서 이웃들과 만날 때 동네 선교사가 되는 것이다.

전도소책자를 나눠줄 수도 있겠고, 여러분의 간증을 이야기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직장의 신우회 활동을 통해서, 여러 가지 봉사활동을 통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다.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 생각이다. 어떤 할머니 권사님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믿음이 좋으신 할머니 권사님이 건강이 나빠져서 병원에 입원했다. 그리고 즉시 아르바이트 대학생을 구했다. 학생이 병실에서 해야 할 일은 하루에 2시간씩 할머니에게 성경을 읽어주는 일이었다. 중요한 구절이 나오면 반복해서 읽도록 부탁했다. 예를 들어서, 롬3:23-24의 말씀이 나오면 반복해서 읽어줄 것을 부탁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성경을 읽어주던 학생이 은혜를 받고 예수를 믿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1년 동안 10명의 대학생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3)복음전파 사역을 위해 기도와 물질로 헌신할 수 있다.
카나다의 토론토의 피플스처치란 교회가 있다. 1930년대에 한 교회에서 800명의 선교사를 보냈던 교회로 유명하다. 어느날 카나다천주교의 선교국장이 오스왈드 스미스목사님을 찾아와서 물었다.
“한 교회의 선교재정이 전카나다 천주교의 선교재정보다 많을 수 있습니까?” 그 때 목사님이 대답했다. “우리교회에서는 원 달러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주일학교 어린이들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나의 헌금이 쓰여지고 있다면 가장 값어치 있게 쓰여지는 것이다. 한달에 어린이는 천원, 청년들은 만원, 어른들은 그 이상 - 찜질방 한 번 가는 값에 불과하다. 기도와 선교헌금으로 동참할 수 있다.

4)마음이 뜨거워서 해외로 나가고 싶은 사람은 단기 선교나 선교사로 헌신할 수 있다.
강원희장로라는 분이 있다. 그는 연대의대를 졸업하고 속초에서 대동외과의원을 개원해서 한창 성공하는 의사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강한 도전을 주셨다. 5년 동안 고민하다가 의료 선교사로 헌신할 것을 결심했다. 주위에서 미친 짓이라고 말리기도 했다. 40세의 나이에 네팔에 의료 선교사로 부부가 함께 나갔다. 1982년부터 시작해서 23년 동안 사역하고 있고 지금은 아프리카 이디오피아에서 의료 선교 사역을 하고 있다. 그분의 나이는 이미 60세가 훨씬 넘었다.

네팔의 산지에서 마을을 찾아 가려면 걸어서 보통 15-20시간을 걸어야만 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 번에 100여명씩 진료를 하면 쓰러질 정도였다고 한다. 어느날은 수술해야할 환자가 생겼는데 피가 없어서 자신의 피를 뽑아서 수술했다고 한다. 그분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전해지고 복음이 전해 졌다. 사람들은 그를 아시아의 슈바이쳐라고 부른다. 복된 소식을 가지고 산을 넘어가는 그의 발걸음이야 말고 아름다운 발걸음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이런 마음을 주셔서 마음이 뜨거워진 사람들은 선교사로 아니면 전문 사역자로 헌신할 수도 있다.

지난 월요일 충남 태안반도의 작은 섬 고대도에서 고대도교회 헌당예배가 드려졌다. 독일선교사 귀출라프가 복음을 들고 조선땅에 들어온 것을 기념하여 지은 기념예배당이다. 우리 총회에서 건축헌금을 모금해서 지었다. 여러분이 드린 헌금을 통해 봉헌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 한국땅 방방곡곡 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도 좋은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걸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가족과 고국과 좋은 환경을 포기하고 이곳에 온 것이다. 우리는 복음에 빚진자이다. 당연히 갚아야 할 책임이 있다. 책임을 떠나서 복음전파는 부름 받고 구원받은 성도와 교회의 마땅한 도리이다.

선교학자 메리스 해리슨 교수는 교회가 선교해야할 4가지 이유에 대해서 말했다.
1)위로부터의 명령이다
막16:15,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2)아래로부터의 부르짖음
눅16:27,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3)밖으로부터의 부름
행16: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4)안으로부터의 채근
고후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오늘날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은, 복음 전하는 자들의 발길이 닿았기 때문이다. 한국땅 방방곡곡에 서툰 한국말로 복음을 전했다. 그때 사람들은 서양 귀신이라고 조롱하고 핍박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전한 복음을 들었고, 들었기에 믿음이 생기게 되었고, 믿음이 생겼기에 주님을 부르게 된 것이다. 이 일은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교회와 성도 개개인이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이다.

우리 교회의 세 번째 비전은 국내외 복음전파이다. 우리교회는 현재 12가정의 선교사들과 함께 복음전파의 사명을 협력하고 있으며, 4개의 미자립교회를 섬기고 있으며, 7개의 선교기관과 복지시설, 4분의 독거노인들을 후원하고 있다. 한 달에 3백만원 정도의 재정이 소요된다. 재정이 여유 있어서가 아니다. 우리 교우들 중에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하는 것은 주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명령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우리 교회는 이 일을 성실하게 수행해 나갈 것이다.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향하여 생명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걸음이 되는 것이다.

어떤 신발을 신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여러분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복된 발걸음이 되기 바란다. 우리 교회가 걸어가는 발걸음이 아름다운 발이 될 것을 믿는다. 주님의 기쁨이 될 것이며 주께서 우리에게 복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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