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야곱과 약속하신 하나님 (창 30:25-36)

  • 잡초 잡초
  • 487
  • 0

첨부 1


야곱의 첫째 부인 레아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더 사랑하는 라헬은 아들을 낳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도했습니다. 마침내 임신을 했습니다. 그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부끄러움을 씻어 주셨다.”는 뜻으로 아기 이름을 “요셉”이라고 지었습니다. 라헬이 요셉을 낳은 후였습니다. 야곱이 외삼촌을 찾아 갔습니다. 그는 이런 부탁을 했습니다. “저를 제 고향, 제 땅으로 보내주십시오. 제가 장인어른을 도와 드린 값으로 얻은 두 아내와 자식들을 내어주어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제가 장인을 어떻게 섬겼는지 장인이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나 라반은 “내 생각도 좀 해 다오. 내가 점을 쳐 보니 내가 받은 이 복은 하나님께서 너를 보고 주신 복이더구나.” 그는 말을 이어갑니다. “품삯은 네가 말하는 대로 줄 터이니 말 해 보아라.” 야곱은 “제가 장인을 어떻게 섬겼는지 장인은 아십니다. 제가 돌보는 동안에 장인의 가축이 얼마나 불었는지 아실 것입니다. 제가 여기 왔을 때만해도 장인의 재산은 보잘 것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얼마나 불었습니까? 제 손이 가는 일 하나하나가 모두 장인께 내리는 하나님의 복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언제쯤이나 제 일이라고 해 보겠습니까?” 라반이 물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 주랴?” 야곱이 대답했습니다. “아무것도 안 주셔도 됩니다. 다만 이렇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저도 이전처럼 장인의 양떼를 돌보겠습니다. 양 가운데 검은 양 새끼와 얼룩지고 점이 있는 염소를 골라내겠습니다. 그런 것을 제게 주십시오. 그것을 제 품삯으로 주십시오. 훗날 제가 삯으로 받은 양떼를 와 보시면 제가 얼마나 정직한가를 아시게 될 것입니다. 만일 제가 차지한 몫 가운데 얼룩지지도 않고 검지도 않은 양이나 염소가 있으면 제가 훔친 것이라 하셔도 제가 아무 말을 않겠습니다.” 라반이 들어보니 그럴 듯 했습니다. “그게 좋겠다. 네 말대로 해라.” 쾌히 승낙했습니다. 그 날로부터 얼룩진 양과 검은 염소를 모두 골라냈습니다. 그러나 그 숫자는 얼마 안 되었습니다. 라반은 거기서 사흘 길 쯤 떨어진 곳으로 자기 양을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흰 양은 모두 장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얼마 후 야곱은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재산도 많고 부리는 노예도 많았습니다. 야곱은 간사한 사람입니다. 축복의 사기꾼이었습니다. 그래도 벧엘 들판에서 야곱을 만나신 것입니다. 야곱에게 거부가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또 건강한 몸으로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야곱은 약점이 많은 사람입니다. 어느 모로 보나 벌 받을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야곱과의 약속을 지키신 것입니다. 그 아버지 이삭이 축복한 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인간은 다 허물이 많습니다. 누구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누구도 깨끗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를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야곱을 이렇게까지 사랑하십니까? 하나님 왜 이렇게까지 지키십니까?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십니다. 저도 오늘 “야곱과 약속하신 하나님”이란 말씀으로 같이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Ⅰ.우리는 다 실망할 정도의 수준입니다.

야곱은 인격적으로 걱정스러운 수준이었습니다. 야곱은 그래도 장점이 있었습니다. 사람에게 단점을 들추라면 한이 없습니다. 야곱이야말로 문제아였습니다. 하나님께 종아리를 맞아야 합니다. 사람마다 실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1948년 5월 31일 오후 2시에 옛 중앙청 회의실에서 국회의원 198명이 모였습니다. 이승만 박사가 임시의장이었습니다. 그는 “대한민국 독립 민주 국회 제1차 회의를 열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바입니다. 먼저 이윤영씨 나와서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공식회의 순서에는 물론 없습니다. 그는 감리교 출신 목사였습니다. 순간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누구보다 놀란 사람은 이윤영 목사였습니다. 국회의원 중에는 오택관, 이남구, 오석주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국회의원 198명중 기독교인이 50명이었습니다. 국회의원 모두가 다 일어섰습니다. “우지의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 이 민족을 돌아보시고 이 땅에 복을 내리셔서 감사에 넘치는 오늘이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직까지 남북이 둘러 갈린 이 민족의 고통과 수치를 씻어 주시고 우리 민족 우리 동포가 손을 같이 잡고 웃으며 노래 부르는 날이 우리 앞에 속히 오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의 기도는 짧았습니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기도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대단했었습니다.
야곱은 간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했습니다. 축복의 근원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서울 대광고등학교에서의 일입니다. 한 학생이 왜 성경공부를 해야 합니까? 왜 예배에 참석해야 합니까? 하고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 학교는 기독교 학교입니다. 전통 있는 학교입니다. 서울에서 예전엔 5대 사립학교 중 하나였습니다. 학교에서는 1인 시위를 하는 이 학생에게 많이 권면했습니다. 이 학생은 교육부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를 했습니다. 그는 학칙에 의해 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학교 교목이 문제였습니다. 신앙지도를 위해 있는 교목이 학생 편을 든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도 부인했습니다. 또 성경에 나타난 이적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믿지 않았습니다. 기독교 이외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했답니다. 결국 통합 측 노회에서 면직을 했습니다. 지금은 방송에 보니 수염을 기르고 길가에서 노점상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정말 불행한 일입니다. 차라리 목사가 되지나 말 것을 하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세상은 복잡합니다.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비정상입니다. 자살, 이혼 등이 예사입니다. 우울증이라 병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고혈압, 당뇨, 이런 성인병으로 사람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주 5일 근무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이틀 쉬면 모두들 잘 먹고 잘 놀고 행복해 질 것처럼 생각합니다. 이틀은 자유로워서 신난다고 합니다. 일상(日常)에서 벗어나는 해방감을 만끽한다는 것입니다. 자유라고 다 같은 자유가 아닙니다. “~로부터의 자유(free from)”와 “~을 향한 자유(free to)”는 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주어진 자유가 우리에게 억압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바로 그렇습니다. 하나님 떠나면 자유의 단맛을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맘대로 먹자. 맘대로 마시자. 맘대로 즐기자. 여기가 천국이라고 합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완전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 세계가 있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 떠나는 그 순간부터 죄에 포로가 되는 것입니다. 사탄이 그냥 둔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떠나는 것이 인간의 혁명이 아닙니다. 자유의 종이 아닙니다. 그게 죽음의 종소리일 수 있습니다. 그리스어로 여가란 말이 스콜레입니다. 오늘날 여가는 자유로운 여유라고 합니다. 그러나 스콜레의 원뜻은 그것이 아닙니다. 학교, 학자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나온 말들입니다. 원어의 뜻대로 해석합시다. 학교에서 공부하자는 것이 여가입니다. 산업혁명 이후부터 “노동에서 지친 몸을 회복하는 시간”을 여가라 했습니다. 하와는 한가한 시간에 영적 잠이 들었습니다. 사탄이 찾아온 것입니다. 요즈음 DIY(Do it yourself)라는 말은 어린아이들도 압니다. “자기가 필요한 것을 스스로 만든다.”는 뜻이지요. 곧 “네 스스로 하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시간이 많이 남아돕니다. 그 시간을 TV보기, 잠자기, 쇼핑, 여행.... 그러나 돈이 없이 피곤한 아버지, 어머니는 숨이 찹니다. 외국에는 이것 때문에 이혼율이 높아졌답니다. 노동자의 임금을 깎는다는 것입니다. 결혼을 안 하려는 사람이 는답니다. 아기를 덜 낳는다고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 떠나면 불행합니다.

Ⅱ.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

그 사람의 됨됨이는 약속을 지키는 것 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약속의 책입니다. 구약은 인간이 죄를 지었고, 약속대로 인간은 땀을 흘려야 살 수 있다고 합니다. 병과 고통이 왔습니다. 죽음이 온 것입니다. 누구도 거부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셨습니다. “너는 ~게 하라. 그러면 ~게 된다.”는 약속입니다. “너는 ~는 하지 마라. 하면 ~한 벌을 받는다.”는 것이 법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인간은 지키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대단히 중요한 것은 신의입니다. 사람이 사람답다는 것은 신의(信義)인 것입니다. 그래서 삼강오륜에도 붕우유신(朋友有信)이 있습니다. 사람은 맑은 정신으로 약속을 해야 합니다. 문서로 써야 약속이 아닙니다. 도장 찍어야 약속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답다는 것은 믿는 사회인 것입니다. 저는 도장 찍고 하는 것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물론 세상이 시뻘겋게 약속의 도장 찍고도 나 몰라라 하니 안 그럴 수도 없습니다. 부부간에, 부모 자식 간에 무슨 계약문서가 필요합니까? 말이 곧 약속이지요. 하나님이 야곱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을 지키신 것입니다. 빈손으로 외삼촌 집까지 허겁지겁 도망 왔습니다. 마음에 맞는 사람에게 장가들려고 14년 머슴살이 했습니다. 많은 설움을 당했습니다. 장인이자 외삼촌인 라반은 번번이 약속을 어겼습니다. 품삯을 준다 해 놓고 안 줍니다. 준다 해 놓고 깎아버립니다. 이러기를 열 번이 넘었습니다. 이제는 야곱도 처자식이 있는 몸입니다. 할 말은 해야 되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야곱의 재산이 날마다 불어 거부가 되었습니다. 양 새끼가 얼룩무늬였습니다. 이것이 다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억울하고 답답한 일을 당했습니다. 참고 기다렸더니 하나님이 다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정말 멋쟁이십니다. 하나님이 다 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한 약속을 잘 지키셔야 합니다. 하나님도 지키시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약속은 그 분의 인격과 같습니다. 그 인격의 잣대가 약속입니다. 사람은 많은 약속 속에 삽니다. 예배시간도 약속입니다. 약속은 현대인의 재산입니다. 약속은 그 사람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말만 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버림받습니다. 약속은 본인의 상표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책 신구약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구세주를 보내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계명 대로 살면 축복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가는 것도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지키셨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처럼 신실해야 합니다. 야곱과의 약속을 지키신 하나님을 보십시오. 과연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복을 야곱에게 주셨습니다. 야곱은 장인의 일개 머슴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는 일마다 잘 되었습니다. 건강한 양 새끼를 낳았습니다. 탈 없이 잘 자랍니다. 그러니 그는 거부가 되었습니다. 들판이 온통 얼룩 양 천지였습니다. 그 장인이 놀랐습니다. 양을 나눌 때는 몇 마리 되지 않았습니다. 수년 사이에 오히려 야곱의 양과 염소가 더 많았습니다. 다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이런 부자는 하나님이 부자 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부자 되고 싶어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도록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OK 사인이 떨어져야 합니다. 밤 낮 일해도 돈이 안 모이는 사람 많습니다. 될성 싶은데 안 될 때는 한번 쯤 기도 하면서 생각해야 합니다. 혹시 내가 잘 못 산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그래도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면 기다리면 됩니다. 야곱을 축복하신 멋쟁이 우리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맺는 말 :

저는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야곱은 고약한 사람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이 먼저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벧엘 들판에서 나타나셨습니다. 야곱이 말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나는 너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너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너 야곱의 하나님이다. 너 지금 떨고 있지! 걱정 말아라. 내가 너를 무사히 외삼촌 집까지 피난길을 지켜주마. 그리고 너의 부모가 있는 곳까지 돌아오게 해주마. 그리고 너를 축복의 근원이 되게 해 주마. 너의 후손이 어마어마하게 해 주마.”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하나님이 하나하나 지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의 책 성경을 주셨습니다. 성경은 전부 약속입니다. 우리도 그 약속을 지켜 약속된 복을 받는 하나님의 사람이 됩시다. 늘 주안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박충웅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