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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 (행 13: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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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대 뉴욕 주지사이자 최초의 흑인 뉴욕주지사가 된
<로저 롤스>에게 취임식 날 300여명의 기자들이 앞 다투어 질문했습니다.
[ 당신을 주지사까지 오르게 한 힘이 무엇입니까? ]
그도 그럴 것이 로저 롤스가 태어난 뉴욕 흑인 빈민가는
폭력, 마약, 알콜중독, 밀입국 등으로 무법지대였습니다.
대다수의 흑인 자녀들은 어른이 된 후에도 부모들의 삶을 그대로 본받아
사회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자란 <로저 롤스>가 뉴욕 주지사가 되었으니
이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기자들의 질문에 <로저 롤스> 주지사는
[ 피어 폴 덕분에 ] 라고 짧게 대답했습니다.
<피오 폴>은 로저 롤스가 다녔던 노비타 초등학교 교장이었습니다.
<피어 폴>이 로비타 초등학교에 교장으로 부임했을 때
그 학교는 수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난장판이었습니다.
<피어 폴>이 아무리 손을 써 보아도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래서 방법을 달리하여 흑인 아이들이 미신적인 것을 좋아하는 것을 보고
손금을 봐 주며 아이들을 칭찬하고 격려해 주기로 했습니다.
어느 날 창문을 타 넘고 들어와
두 팔을 벌리고 교실을 빙빙 돌고 있는 로저 롤스를 보고
[ 애, 너의 가느다랗고 긴 엄지손가락을 보니
넌 장차 뉴욕 주지사가 되겠구나 ] 라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로저 롤스>는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지금까지 꾸지람만 들었지 칭찬 한 번 들어보지 못하고 자란 로저 롤스에겐
가슴이 찡하면서 그 말이 마음 속 깊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날 이후 더 이상 할렘가의 쓰레기 더미 속에서 딩굴지 아니하고
걸을 때도 당당하게 걸으며 40년 동안 뉴욕 주지사가 되기 위해
신분에 걸맞은 행동을 하려고 무척 노력했습니다.
드디어 51세가 되던 해 그는 정말 뉴욕 주지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로저 롤스>는 주지사 취임 연설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 비전을 갖는 데는 값이 그리 많이 나가지 않습니다.
선의의 거짓말에 대한 비전일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 이 말은 피어 폴의 칭찬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일단 비전을 소유하고 계속 간직하고 있으면
그 값어치는 급속히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
어릴 때 피어 폴 교장이 손금을 볼 줄 알아서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흑인 어린이들에게 비전을 심어 주기 위하여 칭찬 한 마디 한 것이
어린 로저 롤스에게는 꿈이 되고 돈보다 더 귀한 자산이 되었던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들어 보세요. <2>
[ 비전을 갖는 데는 그리 값이 많이 나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단 비전을 소유하고 계속 간직하고 있으면
그 값은 급속히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
저는 우리 내일교회 성도들 가운데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여행을 통해
전도와 선교에 대한 비전을 품으시기를 바랍니다.
전도와 선교의 비전을 품고 계속 간직하고 있으면
그 값은 급속히 올라갈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바울과 바나바의 1차 두 번째 전도여행은
선교에 대한 비전을 가진 바울에게 있어서는
세계로 향하여 나아가는 계단인 것을 말해 줍니다.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구브로 전도여행에 이어서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를 통해 나타난 성령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전도 및 선교적 신앙의 교훈이 무엇인지 깨닫는
귀한 말씀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두 번째로 전도여행이 어떻게 시작됩니까?
13-14절에 바울과 일행이 구브로 섬 항구 바보에서 배를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를 거쳐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회당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사도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게 된 이유로는 ?
터어키 비시디아 안디옥 박물관 관장을 지낸
타슬러알란 박사(Dr. MEHMET TASHLIALAN )의 연구에 의하면
비시디아 안디옥 출신으로 구브로섬의 지방총독으로 있으면서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을 영접한 서기오 바울의 영향 때문이라는 견해입니다. 바울이 바나바와 더불어 제1차 전도여행을 시작했을 때,
제일 먼저 닿은 곳이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섬입니다.
이곳에서 지방총독인 서기오 바울(Sergius Paullus)이 복음을 영접하게 되는데, 바울은 서기오 바울의 요청에 의해
그의 고향인 비시디아 안디옥을 방문하게 되고
또 서기오 바울의 영향으로 인해 안디옥에서의 복음전파가
훨씬 용이해 졌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의 선교전략을 살펴보면
특별히 자신과 같은 민족인 유대인들이 대거 거주하여 회당이 있고
상업이 발달하고 각국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를 선호하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지방이 비시디아지방의 수도인 안디옥입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은 사도바울 당시 비시디아 지방의 수도로서 <3>
그곳에는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헬라인, 이방인들도 대거 거주하는 대도시였습니다. 따라서 바울이 주로 전도여행을 했던 소아시아 지역을 아나톨리아 라고 하는데 사도 바울은 아나톨리아 지역의 선교센터로
비시디아 안디옥의 중요성을 인식하였고,
이곳에서 이방인들을 향한 선교의 문을 열게 되고 또 열정을 바치게 됩니다.
이곳을 통하여 바울은 갈라디아 및 밤빌리아 지방으로의
전도여행의 거점을 삼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안디옥에 이르러 회당에 들어갔다는 것은
아무래도 동족에게 접근하는 것이 낯선 이방인에게 보다 용이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서기오 바울의 고향인 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회당에 먼저 들어갔다는 것은
전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즉 관계전도가 우선인 것을 말해 줍니다.
아는 사람부터, 관계가 있는 사람부터, 호의적인 사람부터
먼저 기도하고 찾아가 복음을 전하는 것이
바로 근간에 강조하는 오이코스 전도법인 것입니다.

그리고 버시디아 안디옥으로 가는 길에
한 가지 돌발적인 일이 일어납니다.
13절에 보니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서
바나바의 생질 요한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린 사건입니다.
이 요한은 마가 요한입니다.
바로 오순절 마가 다락방의 주인입니다.
그는 바나바와 바울을 좇아 수종자로서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가는 길목, 버가에거 어떤 연유인지 모르지만
시험이 들어 도중하차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교회 안에도 가만히 보면 마가와 같은 교인들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열심히 합니다.
그러나 무슨 일을 하든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시험이 있습니다. 열 받을 일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만둬 버립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선교라는 것은 돈이나 방법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준비되지 아니한 사람이 감정적으로 일하다 보면 꼭 중도에 포기해 버립니다.
마가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항상 교회는 사람이 문제이지 조직이나 제도가 문제가 아닙니다.
이제 바울과 바나바는 버가를 지나 안디옥에 도달합니다. <4>
안식일 날 회당에 들어가서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고
거기서 기회가 주어지자 설교를 하게 됩니다.
이 설교는 바울의 첫 번째 설교입니다.
바울의 첫 번째 설교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바울의 첫 번째 설교는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17-22절 보면 구약 말씀을 인용하여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큰 권능으로 출애굽한 사건과
광야에서 40년 동안 불신앙으로 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참으시고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시고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
그 후 약 450년 동안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신 후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기스의 아들 사울을 왕으로 세웠지만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는 22절에
[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합니다.
그러니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 사건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바울이 구약 성경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짧은 시간 안에 유대인들이 믿고 있는 구약을 들어
즉 저들의 관심을 다윗에게 쏟게 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한 마디로 [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 ] 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 -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
바로 믿음과 순종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지금 다윗 이야기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유대인들의 관심을 다윗으로 모아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따로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냐?
2) 23-25절까지 보면
23절 [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
바울이 관심은 구약이 아닙니다.
구약이 말씀하고 있는 다윗의 씨에서 나신 분
예수님에 관해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말하고 싶은 것은 예수님을 소개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하고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 중심에는 그 결론에서 예수님인 것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삶이되시기 바랍니다.
이 예수에 관해서는 먼저 세례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면서 <5>
[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 풀기도 감당치 못하리라 ]
예수님은 바로 세례 요한이 가리켰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이제 바울을 예수님을 증거 하면서
구약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다윗의 씨로 오신 예수
바로 세례 요한이 증거하신 그리스도가 되신 예수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냐 하는 것이
3) 26-39절까지의 세 번째 설교의 요점입니다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를 너희들이 알지 못하여
빌라도에게 맡겨 십자가에 못 밖아 죽였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살리시어 부활 승천하게 하셨는데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다.
다윗은 죽어서 썩었지만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시어
우리의 구주가 되셨는데
이 사람을 힘입어 죄사함을 너희에게 전하고 있다.
모세의 율법으로도 너희가 의롭다 함을 얻지 못했는데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린다면
예수를 믿어라 예수님은 죽은 분이 아니라
살아계신 분으로 구약에 약속하신 메시야다
이 분을 믿으면 죄사람 받고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바울은 이렇게 설교를 마치고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 경고의 메시지로 마칩니다.
그 경고의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40-41절에 보면 하바국 선지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고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이를찌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
이 말씀은 유대인들이 배타적인 우월감에 빠져 있을 때
갈대아인의 침범으로 낭패를 당할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바울의 경고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멸시하다고 놀라고 망할까 조심하라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내일의 하나님 가족 여러분 !
하나님의 경고를 마음에 세기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의 설교를 들은 회당안의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6>
42-43절에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고 부탁하면서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좇으니
바울과 바나바가 [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 고 권면합니다.

사실 바울의 이 설교 유대인들이 모르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나 알아도 율법적으로만 알아서
의식적 형식적으로 지켜왔기 때문에 그 속에 생명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전하는 말씀은 율법적인 말씀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그 분이 우리에게 죄사람과 새생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진정한 복음이란 우리가 들으면 살아나는 느낌이 납니다.
감격이 있습니다. 변화의 삶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듣고 싶습니다. 자꾸 듣고 싶습니다.
불러도 또 부르고 싶습니다.
그래서 새벽마다 모이고 수요일 마다 모이고 금요일 마다 모이는 것입니다.

바울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입으로, 입으로 소문을 내니
44절에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성이 거의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였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설교를 하는 중에 무슨 기적이 나타난 것도 아닌데
성 안에 사람들이 거의 다 회당으로 모였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진정한 부흥입니다.
무슨 기적이 나타나고, 무슨 은사를 받았다 해서 모인 것이 아니라
그것도 바울의 첫 설교 얼마나 잘 했겠습니까만
그러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니
그 속에 생명이 있으니 사람들이 모여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면
언제나 마귀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45절에 [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하거늘 ] 합니다.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한편에서는 예수 믿고 내가 새사람 되었다는 간증이 계속해 하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빈정되며
나아가 시기하고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시기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을 것입니다. <7>1) 사람들이 회당을 찾아온 목적이 유대교로 개종하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바울의 설교를 듣기 위해서였기 때문입니다.2) 유대인들인 자신들의 성스러운 회당이
반 율법적인 교훈의 장소로 제공된 일에 대해 마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3) 율법을 가르치는 회당에서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하고
예수의 이름을 힙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설교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보다도 유대인들이 시기하고 변박하고 비방하는 것은
45절에 [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 시기하고 비방하는 것입니다.
무리를 보고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헤아려 본 것이 아닙니다.
선민의식, 특권의식으로 인해 우쭐해 있던 그들로부터
군중들이 떠나간다는 그 한 가지 사실이
시기를 불러 일으켰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시기와 비방은 새로이 형성되는 기독교 공동체가
자기 공동체를 위협하고 있다는 위기감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바울과 유대인들 간의 갑론을박으로
이제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 안은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더 이상 그들과의 변론이 무익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시기하며 빈정되는 유대인들을 향해
46절에 담대히 외칩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
여기서 바울은 복음이 유대인들에게 먼저 가야 하는데
왜? 이방인들에게 돌아갔는지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분명히 복음이 유대인들에게 먼저 들어갔지만 너희들이 복음을 거부하고 배척했기 때문에
우리가 이방인에게 복음을 들고 가는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아주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복음이 주어 졌지만 복음을 거부하거나 무관심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는 복음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축복을 거절하면 그 축복이 다른 데로 가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소망교회 곽선희 목사님 설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8>
설교를 들으면서 돌을 골라내는 사람이 있고 금을 골라내는 사람이 있다.
설교자를 통해 주시는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이것이 설교를 들으면서 금을 골라내는 것입니다. 지금도 말씀을 들으면서 두 사도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실 수 있는 분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다는 아닙니다. 금을 골라냈으면,
그 금으로 삶을 윤택하게 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절하니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로 하여금 47절에 이사야의 말을 인용하여
이방의 빛으로 삼아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고 합니다.
이것이 오늘 한국교회의 기쁨이요 우리의 찬송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 대한민국이
세계속에 대한민국이 될 수 있습니까?
정말 중국에 삼키든지 소련에 합병되던지 미국에 식민지가 될 수 밖에 없는
약소국이 아닙니까?
그러나 유대인이 거부한 복음, 유럽교회가 무관심해진 복음이
미국 교회를 통해 이 땅에 들어와 100년 만에
놀라운 역사와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가 어떻게 가능해질 수 있습니까?
바로 49절에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
기쁨과 찬송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이 두루 전파되어지니 한 편에서는 기쁨과 찬송이 충만하지만
한 편에서는 핍박과 배척운동이 일어납니다.

50절 말씀을 보니
[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케 하여 그 지경에서 쫓아내니 ] 라고 합니다. 그래서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은
1) 사탄이 복음을 전하는 일을 방해하기 위해서입니다.
복음은 사탄의 권세인 사망 권세를 내쫓는 일을 하기 때문에
사탄은 복음에 호의적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을 추방하기 위해 <9>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영향력있는 인물들을 이용했습니다.
여기서 언급된 귀부인들은 유대교로 개종하지는 않았으나
회당 예배에 참석하는 이방 여인들로서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지난 안식일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소식을 듣고 나서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으라!'는 음성을 깊이 들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의 마음에는 시기와 비방의 악한 열매가 맺히자
그들까지 선동하여 악한 영향력 속에 몰아넣고 있는 것입니다.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한 것입니다.
2) 복음을 전하는 일에 핍박과 고난이 따르는 일은
하나님의 편에서 볼 때 복음을 전하는 일에 반드시 있어야 할 일입니다. 교회에 핍박이 내려야 바른 신앙이 되고
뜨거운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의 시선을 끄는 말씀이 있습니다.
52절에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고 합니다.
전도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기쁨을 주십니다.
그리고 전도하는 자에게는 성령충만을 주십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이 두가지 축복이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김 성 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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