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요 3:1-17)

  • 잡초 잡초
  • 1317
  • 0

첨부 1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소망, 뜨거운 열망이 있다면 변화되고 싶은 것입니다.  오늘보다는 더 나은 삶을 원합니다.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합니다.  새로운 미래를 향하여 나가려면 과거와의 단절을 이루어야 합니다.  과거로부터의 해방이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구원이란 지금 이대로의 모습을 가지고 조금 개선하거나, 개혁하자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요, 이전 것을 지내보내고 새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이 나의 인생의 새로운 기원을 쓰면서 예수님 만나기 이전과 만난 이후가 반드시 달라져야 합니다.  이 세상의 역사를 기술할 때에 예수님이 오신 것을 기준하여 B.C,와 A.D.를 사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도베드로가 그런 말씀을 합니다.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벧전4:3)  여기서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라고 하셨는데, 이 말은  "지나간 때로 충분합니다."라는 말입니다.

  오늘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거듭난다는 말이 너무나 보편적으로 자연스럽게 사용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정치가 거듭나고 역사가 거듭나고, 교회가 거듭나고, 교육계가 거듭나야 한다는 말을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거듭난다"는 말은 뜯어고치고, 개혁하고 개선하고 새로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거듭난다는 말은 개혁하고, 개선하고, 새로워지는 정도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본질적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거듭난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 교우들은 이 거듭나야 한다는 말을 이상히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 7절에서도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영어 성경에 따르면 7절 마지막입니다. "you must be born again" "너는 거듭나야 한다.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말은 "너는 반드시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must be"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6절 말씀에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겨우 육적인 세계만 알고, 육적인 것을 뛰어넘어 영적인 것을 말하면 미개하고, 비합리적이요, 비과학적이요, 감상적인 사람으로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면 거듭난 사람과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으로만 구별하지 그 외에는 보시지 않습니다. 

  니고데모라는 사람은 바리새인었고, 유대인의 지도자였습니다.  지도자라는 말은 산헤드린 의회의 의원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는 부자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을 때에 아리마대 요셉은 무덤을 제공하였지만, 니고데모는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100 근쯤 가져왔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후의 니고데모는 구도자의 과정을 거치면서 제자가 되었지만, 숨은 제자였습니다. 

  이런 존경받고, 높은 지위에 있는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대낮에 찾아온 것이 아니라, 밤에 찾아왔습니다. 산헤드린의 의원이 대낮에 찾아오다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화젯거리가 될 것이요, 자기만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게 돌아올 비난을 염려하여 밤에 찾아왔다고 할 것입니다.  바쁜 한낮이 아니라, 좀 한가한 저녁을 선택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먼저 찾아온 질문자가 문제를 제기하는 법입니다.  그러면 그 질문에 대답하고, 다시 오해한 부분이 있으면 재질문하고, 다시 답하는 것으로 토론이 진행되는 것입니다.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그동안 예수님이 공식적으로 활동하시면서 많은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는데, 이것은 당신이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증거요, 혹시 하나님으로부터 오시는 그 선지자가 아닙니까?  나아가 이 땅을 구원하실 메시아는 아닙니까? 하는 질문입니다.  니고데모는 당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정치적이고 경제 회복을 이룩하는 메시아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 곧 하나님의 나라의 임함에 대한 고차원적인 접근이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동문서답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지금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와 질문하려는 요지는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 하나님 나라의 임하심, 이스라엘의 회복,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라고 하는 그런 큰 주제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지금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해결사인 그런 메시아가 아니라, 사람의 영혼을 살리려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마지막 십자가에 죽으실 구원의 주라고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동문서답하시는 말씀에 "사람이 늙었는데 그가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  이 때에 주님은 결정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거듭나는 방법과 그 결과에 대하여 한 마디로 요약하셨습니다.  5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거듭난다는 말과 물과 성령이란 무엇을 말하는지,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인지 기독교의 중요한 주제들을 다 가지고 있는 본문입니다. 

  거듭남이라는 다른 말로 하면 '중생'이란 말인데, 디도서3:5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3:5)고 하셨습니다.  중생이란 명사인데, 서술형으로는 거듭난다는 말로 쓰고 있습니다.  벧전1:3에 보면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소망이 있게 하시고"라고 하셨고, 벧전1:23에 보면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거듭'이란 "아노덴"이란 말은 '처음부터', '완전하게', '근본적으로'라는 말이요, '다시', '두 번째로', '위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태어나는 것처럼 다시 태어나는 것이요, 장소적으로는 위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남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남으로 한 인격체로 살아가는 것처럼 그의 영혼이 다시 태어나고, 위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을 거듭남이라고 한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나야 한다는 말씀을 잘 이해하여야 합니다.  물은 살아있는 생명체의 생명을 살리는 물질입니다.  우리 사람이 아무리 좋은 음식을 준비하여도 물을 마시지 아니하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은 더러운 것을 씻을 수 있습니다.  죄의 씻음, 당시에 세례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이것은 회개를 위한 세례였습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를 씻어야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죄를 회개하고 성령을 받고, 성령의 역사로 예수님을 믿어 주님으로 영접하는 모든 과정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기독교 세례를 중요시 여겨야 합니다.  세례는 구원받은 인침의 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는 사람들이 받는 것이 세례입니다.  이것은 롬6:3절의 말씀처럼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하시면서 "그리스도와의 연합"를 강조하여 죽음과 그의 살아나심에 연합하는 것을 세례라고 하셨습니다.  시51:2에서 다윗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물이란 죄의 씻음을 말하여, 우리 주님의 피로 죄를 깨끗이 씻는 것을 말합니다.

  물이란 문자 그대로 물로 볼 수 없고, 상징적인 말씀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직접적으로는 세례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지만, 말씀을 들어 믿음이 생기고, 주님 앞에 회개하고 주님의 보혈로 죄를 씻어 용서받는 것입니다.  엡5:26에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라고 했으며, 벧전1:23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로 구원하시는 말씀을 깨닫게 되고, 죄를 아파하면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는 그 과정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거듭남을 보면 이것은 육신적인 것으로 설명할 수 없고 영적인 일이요, 영적인 진리를 설명하는 것이므로 성령의 감동이 아니면 설명할 수도 없고,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의 역사입니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영의 역사를 영적으로 이해합니다.  이 구원의 진리는 땅의 일이 아닙니다.  하늘의 일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니고데모에게 바람의 역사를 가지고 설명하고 땅과 하늘의 다른 것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람은 불고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는 듣지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다 이와 같다."(8)고 하셨으며,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12)고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영적인 문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고전12:3에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어떤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구원의 주님으로 영접한 성도는 모두 다 성령받은 사람이요,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위에 살아가는 동안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특권을 가지고 소망 중에 살아가고, 죽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간단히 설명합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인자 외에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인자, 하늘에서 내려온 예수님만이 구원을 위하여 들려진다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옛날 모세 시대에 불뱀에 물린 사람들은 모세가 높이 달아놓은 구리뱀을 쳐다보기만 하여도 구원받았습니다.  쳐다보는 것은 믿음을 예표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죄를 대속하고 구원하기 위하여 인자이신 주님이 십자가에 높이 달리셔야 했습니다. 옛날 모세의 구리뱀을 쳐다보기만 하여도 살 수 있었던 것처럼 이제는 예수를 믿는 사람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15절입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이렇게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는 것은 바로 하늘로서 내려오신 이, 구원의 표적이 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높이 달리시는 이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16절 말씀은 성경의 요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17절입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약속의 종교입니다.  "구리뱀을 보면 살리라"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이요, 그 약속에 대한 보장이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도 하나님의 약속이요, 그 약속에 대한 보장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하시는 것이요, 하나님은 식언하지 않습니다.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을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5)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이러한 방법으로 구원하신다고 하면 바로 그렇게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5:13)라고 하셨습니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5:11-12)고 하셨습니다. 

  구원은 행위에 의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할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하였더니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2-43)고 하셨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므로 구원받았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본래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생명을 아들에게 주셨습니다.  그 아들 예수님이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대속의 피를 흘려주셨으니 우리는 그 피를 힘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자동적이고 기계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비인격적인 수단을 동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원하고 사모하는 사람에게만 주시지, 원치 않고, 소망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억지로 구원받도록 강요하시지 않습니다.  여기서 잘 알아야 합니다.  구원이란 우리의 수고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믿음의 손을 내어 밀라고 하셨습니다.  다 이루시고, 주어지도록 된 구원이지만 구원을 내 것으로 삼기 원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합니다. 

  세 가지를 권면하고 마치려고 합니다.  1) 나는 하나님 보시기에 무력한 죄인임을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와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은 것은 바로 나의 죄악이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나의 구세주가 되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죄인이 되셨고, 내가 받아야 하는 형벌을 몸소 받아주셨습니다.  나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3) 이제 주님 앞에 나아가고 주님 앞에 고백하고 주님을 영접하여야 합니다.  주님이 이루신 십자가의 죽으심을 나의 죽음으로 고백하면서 구주로 영접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계3:20에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가까이 찾아오시기는 하지만 억지로 문을 열지는 않습니다.  문을 열고 주님을 영접하고 감사하면서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니 주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이미 나를 선택하셨고, 성령을 보내어주셨고, 나로 사랑을 고백하게 하신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회개하면서 주님을 영접하였다고 하면 주님에게 주인의 자리를 양도하면서, 자신이 주인이기를 포기하여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기를 원하시지 아직도 여전히 문 밖에 서서 두드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과 의논하고, 주님을 따르고,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헌신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숨은 제자는 없습니다.  구원받은 자녀로서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가는데, 사람 앞에서 주님을 시인하면 우리 주님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시인하실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거듭나야만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으며,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하나님의 나라를 보고 계십니까?  그분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지금 주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나라를 그려보고 사모하는 사람은 주님을 영접한 사람이요, 장차 우리 주님께서 예비해놓으신 그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지금 우리 안에는 주님이 계시고, 주님을 모시고 심령 천국, 가정 천국을 이루고,  교회 천국을 이루고 살다가 자연스럽게 주님과 함께 주님이 예비하신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어느 날부터인지 그 분이 믿어집니다.  주님이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어느 날부터 주님을 닮아가고 싶고, 주님을 생각하면 고마운 마음이 들고, 주님을 위한 일이라고 하면 나도 하고 싶어졌습니다.  우리에게 자녀된 확신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갑부였던 이병철이란 분에게 아들 이건희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이재용이라는 아들이 있습니다.  변칙 상속이라고 하여 야단하지만 모두 자식에게 물려주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우리 주님을 모시면서 하나님의 아들의 하나가 된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있다가 아버지 앞에 가서 보면 엄청난 은총이 주어질 것입니다.  이 땅에서 아버지로부터 별로 물려받은 것은 없어도, 그리고 자시들에게 물려줄 것도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에게 갔을 때에는 우리보다 더 축복 받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하늘나라는 거듭나야만 들어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모두다 주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 되시는 특권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