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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흠없게 보존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살전 5: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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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개월 전에 강원도에서 산불이 나서 귀중한 삼림자원과 낙산사 대부분이 불에 타서 소실이 되었습니다. 동해안 바로 옆에 수려한 자연 환경, 우리나라의 역사를 말해주는 보물로서의 문화재가 한 순간에 화마에 휩쓸려서 잿더미로 변한 현장을 보면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저렇게 변해버렸을까?’ 어느 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수백년간 한 자리를 지켜 온 수많은 나무들이 다 불에 타서 까맣게 그을려 있었습니다. 어떤 나무는 거의 완전히 타버려서 숯처럼 밑에 나무 줄기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참 아름다웠던 원래의 모습을 보존하지 못하고 흉물처럼 변해버린 것을 보면서, 저는 저 자신을 한 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혹히 나도 저렇지 않을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는 본래 참 아름답게 만드셨습니다. 자연만물을 창조하셨을 때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고, 사람을 만드신 다음에는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창1:31).

  복중에서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실 때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지상에서 가장 선한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하는데...... 혹시 그 모습을 원래대로 보존하지 못하고, 반복되는 죄로 인해서 황폐해진 모습이 아닐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지금 나의 모습,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심히 탄식하고 계시지 않을까? ‘어쩌면 그렇게 변해버릴 수가 있는가?’ 놀라시지 않을까?

  하나님께서는 창조 이후로 오늘 지금 이 순간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피조물인 우리에게, 나에게 간절히 소원하시는 바가 한 가지 있는데, 그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대로 그대로 보존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된 그대로 보존되기를 원하십니다. 그 소원에 대해서 바울이 본문에서 이렇게 증거합니다. 23절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존되기를 원하노라”

  “흠 없게 보존되기를 원하노라”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누가 그렇게 되기를 원하시겠습니까? 내가, 우리가......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인간 전체를 세 가지로 구분하면서 영, 혼, 몸인데, 이 세 가지 전부 다 흠 없게 보존되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십니다. 영적으로는 물론이고 양심적으로, 도덕적으로 흠이 없기를 원하십니다. 무흠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무흠기간은 언제까지냐 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날까지, 마지막 순간까지 무흠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과연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소원대로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신 그 모습대로,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은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습니까? 나의 온 영과 혼과 몸이 하나님 앞에서 무흠합니까? 분명히 기억합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대로 선한 모습으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존되기를 원하십니다. 그 모습이 죄로 인해서 훼손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일 때의 모습이 제일 아름다운 것처럼, 우리는 창조하신 그대로일 때의 모습이 제일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그런 모습을 계속 가지고 있을 때, 그 때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로서 복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하신 대로 흠 없게 보존되는 것일까?

  1. 나의 모든 삶의 영역에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관계하심을 항상 인식해야 합니다.
  얼마전 어느 공기관에서 과거 정치, 경제 지도자들의 전화를 불법 도청해서 테이프로 녹음을 해두고 녹취록을 만들어서 공개하는 바람에,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갈수록 무서운 사회가 되어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도 믿기가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내가 전화하는 모든 내용을 누군가 다 듣고 있다고 생각을 해보십시요. 얼마나 기막히고 황당합니까? 남의 이야기를 허락없이 엿듣는 것, 그리고 그것을 어떤 사적인 용도로 이용하는 것은 당연히 잘못된 일이고, 그런 일이 결코 있어서는 안됩니다. 사생활 침해를 넘어서 중대한 범죄요, 도덕적으로도 큰 범죄입니다.

  그런데 불법으로 도청한 사람도 문제이지만, 도청을 당한 사람 역시 스스로를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누구가 도청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통화내용이 누구 앞에서나 숨길 것이 없어야 하고 떳떳해야 합니다. 열 번을 도청하고 백 번을 도청했어도 하등 부끄러울 것이 없어야 합니다. 만 천하에 공개해도 조금도 거짓되거나 부정한 것이 없어야 합니다. 그 누군가 나의 통화내용을 다 녹취해서 공개한다고 하더라도, 조금의 흠이나 결점을 찾아낼 수 없을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적어도 우리 그리스도인만은 그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 수준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그 정도가 될 수 있을까? 나의 모든 삶의 영역에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관여하고 계심을 인식해야 합니다. 도청의 경우와 관련해서 생각해보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저 사람이 듣고 있다고 생각하고 두려워하는 단계를 넘어서, 하나님이 듣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거짓없이 말하고 진실되게 말해야 합니다. ‘이것은 아무도 모를 거야’, ‘이것은 하나님도 모르실 거야’라고 생각하는 그 부분까지도 우리 하나님은 다 아시고, 치밀하게 관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해놓으신 이상, 우리의 영, 혼, 몸과 관계된 모든 것을 아시고 있고, 그 모든 것에 구석구석 관계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감찰하십니다. 시139:3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잠 16: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하는 말, 내가 하는 행동 심지어는 내가 하는 생각조차도 하나님께서 다 보고 계시고 듣고 계시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면, 분명히 나의 삶의 방식이 달라집니다. 옆에 누군가 한 사람 있어도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달라지지 않습니까? 하물며 하나님이 내 옆에 계신다면 어떠하겠습니까?

  나의 모든 삶의 영역에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관여하신다는 사실을 늘 인식하고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를 삼가 조심하게 될 때, 나의 영과 혼과 몸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아서 흠 없이 보존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사도 바울처럼...... 그리스도인은 직장에 있든지, 사람들과 관계하든지, 운전을 하든지, 어떤 일을 하든지 ‘지금, 그 자리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가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고 하나님의 모습을 세상 앞에 서고, 사람들 앞에서 서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이 나로 인해서 ‘거룩의 충격’을 받게 해야 합니다. 부정한 일로 충격을 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도무지 흠을 찾아낼 수 없는, 거룩한 모습으로 대해서 거룩한 충격을 받게 될 때, 사단은 패배하고 이 땅에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2.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세상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하게 창조해놓으시고,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바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해놓으시고,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바가 있습니다. 우리를 무작정 창조해놓으신 것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있는 창조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을 정도로 창조하시고, 그렇게 피조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는데, 그 것은 이 땅의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계명을 두 가지로 정리해주셨는데,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요, 둘째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여금 나 아닌 남을 사랑할 수 있도록, 영, 혼, 몸의 구조를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창조된 대로 살아가기를 요구하시고 있습니다.
 
  미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 아니냐” 오직 공의를 행하는 것, 오직 인자를 사랑하는 것, 오직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 이 것이 본래 하나님의 창조된대로 흠없이 보존된 모습입니다. 특히 인자를 사랑하는 것,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 그 중에서도 약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흠없이 보존된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길입니다.

  흠없이 거룩하게 산다고 해서 나만 거룩한 것은 반쪽 경건입니다. 그것은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도 가질 수 있는 경건입니다. 진정으로 나의 영, 혼, 몸을 흠 없게 보존하려면, 하나님의 창조목적대로 나 아닌 남을 돌아보고 인자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 것이 진정한 거룩이요 참된 경건입니다. 약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란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이것이니라”

  얼마전 경남 마산의 애리원 주경순 원장님이 82세를 일기로 별세하셨습니다. 그 분은 평생 독신으로 지내면서 전쟁 고아, 불우한 아동들을 보살펴 왔습니다. 그 분의 부친은 일제시대 때 신사참배 반대운동하다가 투옥된 주남선 목사님입니다. 나름대로 받은 사명이 있어서 산모를 돕는 조산소를 운영하다가, 광복 직후 불우어린이를 돕는 일에 전적으로 뛰어들어서 사재를 털어서 애리원을 세웠습니다. 이후 오늘날까지 버림받은 어린이들과 일생을 보냈습니다. 그 분의 어린이 사랑은 각별했습니다. 별세하기 얼마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이 다칠까봐 테이프를 들고 다니면서 책상 모서리에 붙이고 다닐 정도로 어린이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습니다. 지금까지 2500여명의 불우아동들을 사회 각 분야로 배출했고, 640명을 부모품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여기에서만 그치지 않고, 주 원장님은 개인과 관련된 모든 것을 법인에 맡기면서 사회에 환원하고, 평소 유언에 따라 시신도 부산 고신의료원에 기증했습니다. 아낌없이 다 주고 빈손으로 하나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바로 이런 주원장님의 삶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것이요, 이렇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우리의 영, 혼, 몸을 흠 없게 보존하는 것입니다.

  종말이 되어갈수록,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워올수록,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기 자신을 흠 없게 보존하려는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께서 찾고 계십니다. 이 땅에서 활개치는 사단의 세력을 무릎 꿇게 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일에 적극 나서는 동역자로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있습니다. 날마다 우리를 부르시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 부르심에 적극 응답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십니다. 24절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저와 여러분은 영광스럽게도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의 ‘거룩한 모델’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거룩한 모델로 흠없이 보존하셔서 그리스도 예수 재림하실 때, 거룩하신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축복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김충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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