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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평강의 하나님 (롬 15:3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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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이 들어 있는 로마서는 여러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 성경입니다.
무엇보다도 이신득의(以信得義)-,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분량이 많다는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두 열여섯 장으로 되어 있는데 바울 서신 열 세권 가운데에서 양이 제일 많습니다.
고린도전서도 열여섯 장인데 실제적인 분량은 로마서가 조금 많습니다.

자기가 세우지 않은 교회에 보내는 편지라는 점도 특징 가운데 하나라입니다.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모두 바울 사도 가 직접, 또는 간접으로 세운 교회들에 보낸 편지들입니다.
로마교회는 바울이 세우지 않았습니다.
로마교회는 누가 세웠는지 모릅니다.
로마의 유대인들 가운데 오순절 때 예루살렘에 왔다가 성령 받은 사도들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있는데(행2: 10) 그 사람들이 로마에 돌아가서 세운 것 같습니다.

그런데 30절을 보세요, 바울은 ‘로마 교회 교인들이어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오.’ 이렇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1절에서 구체적인 기도 제목을 주고 있습니다.
로마 교회가 바울이 직접 세운 교회가 아닌데 편지도 보내고 이렇게 기도를 부탁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초대 교회는 설립자가 누구인지를 따지지 않고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성도라는 이름 하나로 하나가 되어 서로 교제하고,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는 교회였습니다.

송영이 많다는 것도 로마서의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송영(誦詠)의 원래의 뜻은 ‘시가를 외며 읊조린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하나님께 대한 찬양을 표현하는 노래나 문구를 송영이라고 부릅니다.

로마서 9장 5절 후반부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시니라 아멘

송영입니다.
11장 33절에서 36절까지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송영입니다.

로마서의 끝인 16장 25절에서 27절까지는 송영 가운데 가장 웅대한 송영이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나타나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을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 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로마서에는 왜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송영이 많을까요?
구원 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어 구원을 베풀어 주신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송영이 많은 것입니다. 송영이 많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이 뜨겁고 강한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에게만 해당되는 일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도 송영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나를 구원해 주신, 의롭다고 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뜨겁게 찬양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로마서의 또 하나의 특징은 축복의 기도가 여러 번 나온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7절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이것은 안부이면서 동시에 축복의 기도입니다.
여기에서 시작해서 축복의 기도가 여러 번 나옵니다.

로마서에는 왜 이렇게 축복의 기도가 많이 나오는 것일까요?
우선 축복하고 싶은 마음이 많으니까 축복의 기도를 많이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남을 축복하는 마음을 가지세요. 그리고 그 축복을 표현하세요.
핸드폰을 걸면 벨 소리 대신에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 노래가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 노래의 제목은  축복송입니다.
남을 축복하기 좋아하는 성품을 가진 분들이 이것을 벨소리 대신에 택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듣고 있으면 상대방이 전화 좀 늦게 받아도 짜증이 별로 나지 않더군요.

부메랑이라는 놀이가 있습니다. 원래는 경제 용어인데 이제는 놀이의 이름도 되었습니다.
둥근 원판인데 던지면 날아갔다가 자기에게 돌아옵니다.
축복은 부메랑과 같습니다.
축복의 말을 하면 남에게도 축복이 되지만 그 축복이 자기에게 돌아옵니다.

로마서에 축복의 기도가 많은 이유가 또 하나 있습니다.
축복의 기도는 대개 편지 끝에 나옵니다.
그런데 로마서는 중간에 ‘여기서  끝냅니다.’ 하고서 새로 시작한 부분들, ‘중간 끝’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여러 번 있습니다.

11장에서 이론, 교리 부분은 끝이 났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11장을 끝내면서 아까 말씀드린 송영을 드리고 있습니다.
예배 끝날 때 1장이나 3장으로 송영을 부르고 축도하는 교회들이 많지요.

로마서 15장 12절에서 로마서는 실질적으로는 끝이 납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15장 13절에서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아름다운 축복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편지를 끝냈는데 하고 싶은 말을 빠뜨린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합니까? 
‘추신(追伸),’ 영어로는 P. S. 이렇게 하고 빠뜨린 이야기, 정말 들어가야 할 말을 씁니다.
예전에 핸드폰을 통한 문자 메시지도 없고, 이메일도 없을 때, 전화도 많이 없을 때 사랑하는 남녀끼리 연애편지를 많이 주고받았습니다.
그 때 편지에 여러 가지 적고,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 강한 사랑의 고백은 ‘추신’하고서 거기에 쓰는 일이 많았습니다.
지금 웃으시는 분들, 고개 끄덕이는 성도들, 경험 있는 분들입니다.
로마서 15장 14절부터는 추신입니다.
15장 32절로 추신도 끝났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시 한 번 15장 33절에서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축복의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6장은 로마서의 부록입니다. 부록인 로마서 16장에서도 바울은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20절)

축복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먼저 지금까지 소개해 드린 바울의 축복의 기도에 나타난 은혜, 평강, 기쁨, 소망, 이와 같은 것들이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한 성도 여러분에게 풍성하게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별히 평강의 복이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로마서에 기록된 바울의 축복 기도들 가운데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말이 “평강”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평강의 복을 받을 수 있을까요?

첫째, 하나님은 평강의 하나님인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 사람의 이름이나 이름에 붙어 있는 말들은 그 사람의 성격, 특징, 이와 같은 것들을 잘 나타냅니다.
KBS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 시간마다 콜사인을 말할 때  ‘24시간 뉴스 채널 KBS‘ 이렇게 합니다. 그것을 들으면 ’아, 이 방송은 늘 시사보도를 하는 방송이로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극동방송을 들으면 ‘믿음의 소리 극동방송’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을 들으면 이 방송이 선교방송이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하시는 일이 많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위로의 하나님, 여호와 이레 - 준비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닛시 - 여호와는 나의 깃발, 인도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라파 - 치료하시는 하나님, 그밖에도 많습니다.
평강의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들 가운데 중요한 이름입니다.

하나님을 평강의 하나님이라고 처음 부른 사람은 아마도 사사 기드온일 것입니다.
평강의 하나님을 히브리말로는 “여호와 살롬”이라고 하는데 사사기 6장 24절을 보면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바울은 평강의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즐겨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선 오늘 본문의 33절,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빌립보서 4장 9절,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고린도후서 13장 11절,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여 위로를 받으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데살로니가 5장 23절에서도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을 “평강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누가 기록했는지 모르는데 히브리서 기자도 히브리서 13장 20절과 21절에서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하게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이와 같이 하나님을 평강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평강의 하나님이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그 평강을 우리에게 주기 원하시며 또 주는 분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사랑을 가지고 있기만 하고 그 사랑을 나누어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사랑을 아낌없이 나누어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할 능력을 가지고 있기만 하고 그 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천지만물을 지으셨기 때문에, 뿐만 아니라 지금도 천지만물을 책임지고 관리해 나가고 있기 때문에 현재적 창조를 계속해 나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27절에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너희에게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평강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며 또 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이름이 평강의 하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평강의 하나님임을 믿습니다. 그 평강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기를 기뻐하는 분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나는 평강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자주 고백해서 평강을 복을 풍성하게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평강을 받기에 합당한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피를 수혈할 때 혈액형이 맞아야합니다.
장기를 이식할 때도 서로 맞아야합니다. 거부반응이 없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이 평강을 받기에 합당한 상태가 되어야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받을 수 있습니다.

평강을 받기에 합당한 상태는 어떤 것입니까?
마음에 불안이 없어야합니다.
그리고 평강을 힘써 구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서 4장 6절과 7절에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시편 42편 5절은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네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불안을 버릴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불안이 있을 때 믿음이 부족한 사람들, 수련이 부족한 사람들,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그 불안을 자꾸 키웁니다. 확대재생산합니다.
어디 아프면 ‘이거 암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나도 그렇게 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지 마세요.

저는 제주도 애월이라는 곳에 있는 선교방송에서 현지 책임자로 몇 해 일한 일이 있습니다. 중국, 러시아, 일본, 북한 등에 전파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는 방송국이었습니다.
얼마 전에 새로 등록한 성도 집에 심방을 갔는데 그 분 고향이 바로 그곳입니다.
그래서 그곳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거기에서 제주 시내나 서쪽의 모슬포 같은 곳으로 빨리 가려면 항몽유적지라는 곳을 지나 중산간도로를 타야합니다.
항몽유적지라는 곳은 고려 때 삼별초라는 군대가 그곳을 본거지로 해서 마지막까지 몽골에 저항하던 곳입니다.
나중에는 몽골 군대에게 다 토벌되어서 수없이 많은 고려 군인들이 거기에서 죽었습니다.
밤에, 더구나 바람이 몹시 부는 깜깜한 밤에 거기 지나려면 겁이 납니다.
더구나 제주도는 무덤을 길옆에 쓰는 일이 많아서 더 그랬습니다.
그 이야기를 했더니 같이 심방 간 속회 인도자 권사님이 ‘목사님 뭐 고려 때 죽은 사람들까지 생각하면서 겁을 내셨어요?’ 하더군요.
뭐라고 변명을 하기는 했습니다만 조금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에 불안이 있습니까?
바울 사도의 권면과 같이 염려를 누르고 감사한 마음으로, 주님을 믿는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7절의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 말씀은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찬송가 470장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내 영혼 평안해”가 반복되는 이 찬송의 작사 배경을 잘 압니다.

132년 전인 1873년에 미국 시카고에 대화재가 일어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집과 재산을 잃었는데 시카고 의과대학 법의학 교수인 스팻훠드(Horatio Gates Spafford 1828~1888) 집사도 이 때 많은 재산손해를 보았습니다.
이 분은 교회봉사를 많이 하는 분이었습니다. 시카고 무디 장로교회의 회계집사였고 교회학교 교사였고 YMCA에서 활동했고 노스웨스트 신학대학의 이사였습니다.
이 화재로 인한 손실 때문에 부인이 병이 났는데 의사는 전지요양을 하라고 권했습니다.
스팻훠드 교수는 부인을 불란서로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도 같이 가고 싶었으나 화재 뒷정리를 해야 하고 자기가 출석하는 무디교회도 불타 버렸기 때문에 그 뒷수습 때문에 나중에 만나기로 하고 먼저 부인과 네 딸을 보냈습니다.
이 네 딸의 이름은 매기, 타니타, 애니, 베시였습니다.
이들이 탄 불란서 여객선 비르 두 하베르 호가 영국 배 록키안 호와 충돌해서 226명이 죽었습니다. 1873년 11월 22일 새벽 두 시에 일어난 사고인데 규모가 큰 해난사고로 지금도 가끔 이야기됩니다. 스팻훠드 교수의 네 딸도 그 226명 가운데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부인만 간신히 구조를 받아 영국 웨일즈의 카디프에 도착하였습니다.
부인은 남편에게 혼자 구조 받았다는 전보를 보냈습니다(Saved Alone).
스팻훠드교수는 이 전보를 받고 가장 빠른 배편으로 영국으로 갑니다. 슬픔 가운데 항해를 하고 있는데 어느 날  선장이 스팻훠드 교수를 선장실로 초대했습니다. 선장은 정중한 어조로 “교수님, 지금 이 배는 당신의 네 딸이 빠져죽은 바로 그 지점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스팻훠드 교수는 조용히 자기의 선실로 돌아왔습니다.
견딜 수 없는 슬픔과 의문이 그를 휩쌌습니다.
‘하나님, 어찌하여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내가 하나님을 믿고 그렇게 충성스럽게 교회를 섬기는데 재산 손실에 이어 사랑하는 네 딸의 몰살이라는 끔찍한 일을 겪게 하십니까?‘
울부짖었습니다. 자정이 넘도록 울부짖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토록 걷잡을 수 없었던 마음의 폭풍이 가라앉고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평화가 깃들기 시작했습니다.
스팻훠드 교수는 메모지를 꺼내 이 때의 마음을 시로 썼습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저 공중에 구름이 일어나며 큰 나팔이 울려날 때
  주 오셔서 세상을 심판해도 나의 영혼을 겁 없겠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재산을 다 잃고, 네 딸을 잃고, 그런 스팻훠드 집사의 마음 속에 어떻게 평안이 찾아올 수 있습니까?
그것이 바로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화입니다.
여러분, 견딜 수 없는 슬픔과 불안 가운데 있습니까?
평강의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화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불안을 누르고 평강을 구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을 체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 예배 참석과 성경 읽기에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예배에 참석해서 바울의 축복 기도를 함께 살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평강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들었습니다.
예배에 참석해서 이와 같은 축복의 기도를 살피고, 듣는 것, 중요합니다.
그 복이 여러분 가운데 이루저집니다.

지난 주일에 예배 참석을 강조하는 말씀을 드렸는데 예배에 참석하면 복을 받습니다.
지난 주일에 예배 참석을 강조하는 가운데 새벽기도회에 참석해야 한다고, 올해는 새벽기도 운동 100년이 되는 해라고 열심히 말했습니다.
그 다음날, 월요일 새벽기도회 인도하러 나가면서 솔직히 말하면 좀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별로’ 이더군요. 그래서 제가 월요일 새벽기도회에서 한 말씀 드렸지요.
‘설교 한 번 했다고 해서 척척 이뤄지면 세상에 목회보다 쉬운 일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하세요.

예배 참석은 목회자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면 열심히 참석할수록 복을 많이 받습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으면 또한 복을 받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축복의 기도들, 축복의 말씀들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33절,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하는 말씀에서 “너희 모든 사람”은 로마교회 교인들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 말씀을 읽고 듣는 모든 사람들, 바로 여러분과 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고 성경 열심히 읽으시기 바랍니다.
복을 많이 받을 줄로 믿습니다.
특별히 평강의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평강은 히브리말 살롬, 헬라말 에이레네를 번역한 것인데 평안, 평온. 평화 이렇게 여러 가지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총체적 안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강은 여러 가지 좋은 것들이 모두 함께 하는 것을 말합니다.
레위기 26장 6절과 7절을 보면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누울 때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사나운 짐승을 그 땅에서 제할 것이요 칼이 너희의 땅에 두루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 너희의 원수를 쫓으리니 그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려질 것이라(레26: 6~7)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 이것이 평강입니다.

하나님이 평강의 하나님이라는 것은 하나님은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로마서에 기록되어 있는 은혜, 평강, 기쁨, 소망, 이와 같은 것들이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한 성도 여러분에게 풍성하게 넘치기를 다시 한 번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평강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가운데, 내 마음이 평강의 복을 받기에 합당한 상태가 되어 평강의 복을 풍성하게 받으시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평강을 주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 관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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