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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뜻을 묻는 그대에게 (엡 1:3-6; 엡 5: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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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번에 제자훈련 성장반을 모집했습니다. 한 달 동안 광고를 했지만 지원한 사람이 얼마 되지 않아서 김 목사님께서 일일이 전화를 걸고 개인적으로 권면해서 13명의 한 클래스가 편성되었습니다. 교회마다 좋은 성경 공부, 유익한 강좌를 개설하지만 사람들이 별로 지원을 하지 않아서 어렵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가장 잘 모일 수 있는) 신앙 강좌를 알고 있습니다. 이 강좌를 개설하면 사람들이 벌 떼처럼, 구름떼처럼 모여들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무슨 강좌일까요?

  수강생을 모집하는 광고를 이렇게 만듭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은 분은 오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아는 법을 확실히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밑에는 이렇게 씁니다.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알려드리는 족집게 강사 ○○○” 이렇게 하면 대박입니다. 무슨 미아리 보살 광고 같지만 제가 예상하기로는 아마도 100명이상은 수강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저는 2주 전부터 청년들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아는 법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앞으로 몇 번을 더 할지는 모르지만 저에게도 청년들에게도 유익한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 제가 설교하면 설교의 내용을 메모하는 청년들이 몇 안 되었는데 “하나님의 뜻을 아는 법”에 대해서 설교하자 많은 청년들이 메모지를 꺼내서 한 부분도 놓치지 않으려고 적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는 이것을 통해서 지금 청년들이, 그리고 사람들이 무엇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2번에 걸쳐서 했던 말씀을 다시 한 번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나의 삶과 장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뜻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것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은 우리 생각과는 달리 두 사람은 굉장한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서 가지신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을 믿는 사람은 더 이상 내 욕심만을 채우며 내 뜻대로만 살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의 가치를 하나님께 두고 살아갑니다. 반면에 내 인생을 오직 나의 생각과 나의 뜻으로 가득 채우고 살아가는 사람은 비참합니다. 그 사람은 내가 내 삶과 장래의 주인이기 때문에 피곤하고 여유가 없습니다. 모든 것에 피터지게 싸우려고 합니다. 그래야만 결과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괴롭게 고단합니다. 여러분은 확신합니까? “하나님은 나를 향해 가지신 뜻이 있습니다.”라고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둘째, 하나님의 뜻은 그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그 날을 되는 대로 게으르게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뜻을 행하려고 헌신하는 자들에게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늘 생각하고, 그 뜻을 알기 위해서 사모하고, 기도하고,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고정시키고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향해 헌신을 결단하는 사람에게 보여 주십니다.

셋째,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든, 그 뜻은 선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안 좋아 보이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 나를 위한 하나님의 뜻은 악한 것 같지만 하나님의 뜻은 결코 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선하고, 기뻐할 만한 것이며, 온전한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시간에 나누었던 말씀이었습니다.)

  지난주에는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까?”에 대해서 서로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데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호기심으로 그의 뜻을 알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 일단 제게 알려주시라니깐요. 제가 그 뜻을 행할지 행하지 않을지는 제가 결정하겠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하나님은 그 뜻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행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거대하고, 거룩하고, 충만한 하나님의 뜻을 보인들 이 사람이 그 뜻을 행하려고 하지 않는데, 그렇게 준비되어 있지 않은데 하나님이 어떻게 그 뜻을 보여주겠습니까? 보여 주어도 보여주지 않을 때와 차이가 없는데 왜 그 뜻을 보여 주겠습니까?

둘째,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내 속에서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좋은 뜻을 알고 또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실제로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이 부분이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래, 이 일은 하나님의 뜻인 것 같아. 그런데 나에게 뭐가 있어야지, 돈이 있어야지, 좋은 사람을 만나야지, 여건이 돼야지.....” 이러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경만하고 다시 그 하나님의 뜻 박물관에서 나오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선택하고, 내가 걸어가려고 하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하나님이 분명히 역사하고 계심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은 비록 분명하게 보이지 않지만 이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나의 생각과 무의식을 통해서, 성경을 통해서, 설교말씀을 통해서, 사람들의 충고를 통해서, 환경을 통해서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이시며 그 속에서 역사하실 수 있는 분임을 믿어야 합니다.

셋째,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고, 하나님은 내 삶에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역사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행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제는 그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실행해야 합니다. 밀고 나가야 합니다. 이제는 그 일에 착수해야 합니다.(이것이 지난주까지 나누었던 내용입니다.)

  오늘은 이 모든 말씀과 함께 연속선상에 있는 말씀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법”이라고 하는 주제를 가지고 말씀을 드렸지만 아직까지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고 우리가 먼저 알아야할 가장 기본적인 부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 말씀도 그런 내용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법”에 말한다고 하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을까요?”고 그 방법에 대해서 거품을 물고 달려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족집게처럼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찍어주는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보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제가 질문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는데 어떤 부분에 대해서 그렇게 궁금하고 알고 싶습니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다양하게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는 부분은 거의 비슷합니다.

첫째는, 내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면서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다. 즉 나의 직업에 대한 궁금증입니다. 이것은 젊은 사람들일수록 더 합니다.

이력서를 어디에 내야 하는지, 합격했다고 통지서가 왔는데 어느 회사를 들어가야 하는지... 이 모든 선택과 진로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다 합쳐서 말한다면 어떤 직업에 종사하면서 살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 합니다.

둘째는, 내가 앞으로 어디에서 살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있습니다. 내가 한국에서 살 것인지, 외국에서 살 것인지, 한국에서 산다면 서울에서 살 것인지, 지방에서 살 것인지, 그리고 내가 사는 집은 어떤 곳인지, 아파트인지, 오피스텔인지, 연립주택인지, 내 집을 마련할 것인지, 전세에서 살 것인지... 거주지에 대한 관심이 있습니다.

셋째는, 내가 앞으로 어떤 사람을 만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서 결혼해서 살 것이냐? 이 사람과 얼마만큼의 인생을 함께 살아갈 것이냐? 그리고 나의 인생은 어느 순간에 그 만남을 끝으로 하나님 앞에 갈 것이냐? 하는 궁금증입니다.

  이 밖에도 지금 우리 가정에 이런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는데 언제 이 고통이 사라질 것인가? 하는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모든 것은 다 이 세상의 나의 삶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 하는 부분은 모두 다 이 세상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우리는 어떤 직업에 종사하면서 얼마만큼의 연봉을 받을 것인지, 내가 살아가야할 곳은 어디인지, 어떤 사람들을 만나 결혼하며 살 것인지, 내 가정에 언제 물질적인 복이 부어질 것인지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과연 하나님은 어떤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계실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나는 직업과 거주지와 결혼과 고소득과 연봉과 고통 없는 삶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우리 하나님의 관심은 어디에 두고 오늘도 살아가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 29:10)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이 말씀은 유다가 70년 동안 바벨론 포로생활을 할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70년 동안이나 포로로 비참하게 살아가는데도 하나님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요 장래에 소망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생각에는 재앙이요, 절망인데 하나님의 생각은 평안이요 소망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도 많이 다릅니다.

  여러분!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 부분을 하나님도 가장 관심을 가지고 계실까?’라고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생각은 나의 생각과 많이 다르다고 하는 말씀을 여러분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나는 직업에, 내 집에, 고소득과 연봉에, 고통 없는 편안한 삶에 관심이 있어서 묻고 싶은데 하나님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해 보셨습니까?

  오늘 성경은 하나님께서 가장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을 어디에 있을까요?  오늘 성경은 말씀합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주시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셔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는 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딸 삼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저 주셨던 그 은혜의 영광을 우리가 찬송하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관심과 뜻은 여기에 있습니다. 신령한 복을 주시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고, 그리고 마침내 구원받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거저 받은 구원의 은혜를 찬송하게 하는 것. 이것에 온통 하나님의 관심이 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생각과 비교해 보십시오. 우리가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라고 묻는 것과 견주어 보십시오. 우리는 직업, 거주지, 연봉, 결혼, 고통없고 물질의 복을 누리며 사는 것. 이런 것에, 그리고 이런 것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우리는 묻고 있는데 하나님의 관심은 어디에 있는지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고백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 하나님은 다시 말씀합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다. 그러므로 너희는 어리석은 되지 말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서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지혜롭다고 자신이 말한다고 해도 그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에 불과합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그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순간순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를 원하는 그 구체적인 상황들은 사실은 성경이 구체적으로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내가 어떤 직업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해서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내가 어떤 집에서 살 것인지, 어디에서 살 것인지, 어떤 사람을 만나 결혼할 것인지, 어떻게 하면 우리 가정에 이 고통이 물러가고 참된 평안과 축복이 돌아오는지 성경은 우리가 처한 그 구체적인 현실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이미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은 이런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혀 놓은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를 볼까요? 예를 들면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구원받는 것을 원하고 계실까요? 내가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일까요?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입니다. 내가 구원받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고 계십니다. 

또한 나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을 원하실까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뜻일까요? 이것도 역시 대답은 “물론”입니다. 여러분은 여기에 대해서 예정론을 갖다가 들이대면서 “이 사람이 구원받은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는 잘 모릅니다.”라고 말하면서 전도하는 것에 핑계와 뒤로 한 발자욱을 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예수님은 마 18:14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고 영생을 주시고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 원하신다는 것에 대해서 성경은  끊임없이 말씀합니다. “탕자의 비유, 잃은 양의 비유, 동전의 비유”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어디에 있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9은 어느 누구라고 멸망에 이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꼬집어 말합니다. 요 1:12-13, 딤전 2:3-4에도 우리가 구원받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더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예정론은 사람들의 영혼을 구해야할 막중한 책임이 있는 우리가 책임회피용으로 안주해야할 교리가 아닙니다. 사실 예정론은 하나님은 한 번 구원하기로 마음 먹은 그 사람은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그를 붙들고 구원한다는 은혜로운 교리인데 우리는 이 교리를 이상한 쪽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받기 원하신다는 것을 왜 성경에 기록했을까요? 사실은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성경에 미리 계시하시고 기록하신 모든 것들은 그 무엇보다도 이것이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것을 웅변적으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따르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 이 세상에 물들지 않고 성결한 삶을 사는 것..... 하나님은 이 모든 것들을 이미 성경에 기록하게 함으로써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임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여러분! 이제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시는 영역에 대해서조차 우리가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는데 구체적으로 말씀하시지 않은 영역으로 우리를 인도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채 혹시 구체적으로 말씀하시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너무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너희가 구원받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것이 나의 뜻이다.” 이것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그 가슴 아픈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셨고, 너무나 확실하기에 성경에 기록까지 했는데 우리는 그런 것에 관심은 없는 채 내 앞에 벌어진 문제에 대해서만 하나님의 뜻만을 갈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순서가 잘못되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뜻을 묻는 성도 여러분! 나에게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는 그 뜻을 알기 전에 하나님이 이미 내게 알게 하신 그 하나님의 뜻에 집중해 보십시오. 만약 우리가 이미 우리에게 보이신 그 하나님의 뜻에 성실하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일어나는 일 들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뜻들고 분명히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코엑스에서 신비의 인체전을 관람했습니다. 거기에 있는 인체들은 다 실제라고 합니다. 그 가운데서 임신된 아기의 모습을 시간별로 전시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임신 5주째 되었다고 하는 아이는 알콜병에 담겨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점보다도 작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향해서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너가 구원받기를 원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도 작은 먼지처럼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 하나님은 나를 향해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하자 눈물이 돌았습니다.

  나의 직업과 거주지와 연봉과 결혼과 대학입학과 고통 없는 평탄한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애타게 구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보이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헤아려 보십시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구원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게 서기를 소망하면서 오늘도 모든 사람이 그 은혜를 찬송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나의 뜻이라고 말씀합니다.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분별하는 사람은 진정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 양 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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