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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석] 초막절과 추석 (레 23:3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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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 한국 민족의 고유 명절인 추석입니다. 우리가 비록 미국 땅에 살지만 추석에 대한 추억 뿐 아니라, 우리 삶속에 깊이 드리워져 있는 명절에 대한 감회가 섞여 있기 때문에 추석에 대해 한번쯤은 회상하게 됩니다. 그러나 비록 추석이 우리 한국인의 명절이기 때문에 이 날을 맞이하고 생각해 보는 일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크리스천으로서 이 추석에 대해서 남다른 이해와 자세를 갖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추석을 지키라고 우리에게 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추석을 지키지 않는 민족은 화가 있을 것이라고 지금부터 약 2500년 전에 활동하던 스가랴라는 선지자는 경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대대로 세 가지 절기를 지켜오고 있습니다.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 이 세 절기를 이스라엘은 그들의 명절로 지켜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절기는 모두 그들이 믿던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결부되고 오히려 하나님의 명령과 지시에 따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지시를 그들의 삶속에서 명절로 지킨다는 것은 신앙을 생활화한 모습이며, 이러한 생활 속에서 하나님께 대한 자세를 새롭게 하고, 명절로서 그들 사이의 친교와 유대 관계를 돈독히 한다는데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해 보면서 먼저 이러한 이스라엘의 세 가지 절기를 오늘 우리 크리스천의 배경을 가지고 간단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다가 모세의 인도로 해방되어 나온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 교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죽음을 극복하는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으로 그 성격이 연결되고 있습니다.

오순절은 유월절부터 50일 후에 있는 날로,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심으로 떠돌이 히브리 민족이 하나님의 법을 중심으로 새로운 공동체로서 도약하는 의미를 담은 절기입니다. 이 오순절 역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 약 50일 후에 하나님께서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열심히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며 기도하던 주님의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교회가 탄생하게 되는 역사를 베풀어주신 성령강림절로 우리 크리스천에게 의미가 있는 날입니다.

초막절은 가을 추수 후에 갖는 절기로서,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랑생활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언약을 다시 새롭게 하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이 명절의 이름을 왜 초막절이라고 했는가 하면, 이 절기를 지키는 동안, (주로 7~8일을 지키는데) 이들은 광야 40년을 생각하면서, 이리저리 옮겨 다녀야 했기 때문에 집짓고 살지 못하고 텐트(tent. 초막)에 거주한 것을 기념하여, 이 절기를 지키는 동안은 초막을 짓고 거기서 생활한데서 초막절이라고 불리어지게 된 것입니다. 특히 이 초막절은 한 해의 농사를 다 추수한 다음 드리는 절기로서 시기적으로 보면, 한 해를 마감하는 인상을 주는 절기로서 그리고 새로운 한 해를 염두에 둔다는 점에서 미래에 대한 절기이기도 합니다.

유월절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오순절이 성령의 강림과 교회 탄생에 연결시킬 수 있다면 이 초막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비교될 수 있는 절기인 것입니다. 하지만 좀 아쉬운 것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성령의 강림은 강조하고 지키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이에 따른 심판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특별히 절기로 지키는 모습은 특별히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 역사에는 역사의 추수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의식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테러(terror)나 이라크 전쟁과 같은 일들, 그리고 작년의 쓰나미(Tsunami) 지진이나 이번 카트리나(Katrina) 태풍 같은 천재지변의 일들을 보고 일종의 섣부른 예언자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종말이 가까웠다고 하면서 관심을 고조시킵니다만, 우리는 이럴 때일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대하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평화를 염원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재림을 상징하는 초막절의 의미를 되새겨 보아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종말에 대해 예언한 스가랴 선지자는 슥 14장에서 초막절에 대해 언급하면서 초막절을 지키지 않는 모든 나라는 무서운 재난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며 예언하고 있습니다. 슥 14:18에서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열국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애굽 사람이나 열국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의 받을 벌이 이러하니라”고 하면서 끔찍한 재앙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언자의 말씀을 우리가 심각하게 받는다고 한다면 이 초막절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귀중한 일인지를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민족이 한 가지 하나님께 감사드릴 놀라운 사실은 이 초막절을 우리 한국 민족은 알게 모르게 지금까지 지켜왔다는 것입니다. 즉, 이 초막절을 우리 한국 민족은 추석이라는 이름으로 지켜왔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39절에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칠월 십오일부터 칠일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라고 7월 15일부터 초막절을 지키라 하였습니다. 유대인들 역시 우리 조상들처럼 음력을 사용했는데, 여기서 7월은 우리의 음력 8월에 해당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까지 추석을 쇠면서 이렇게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하신 초막절을 우리도 알게 모르게 지켜 온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유감스러운 것은 우리는 이 추석을 온 가족이 모여 추수한 곡식으로 음식을 즐기며 조상을 성묘하는 것으로만 쇤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초막절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면서 이 추석을 보내야 할 줄 압니다. 그래야 우리는 진정 초막절로서의 추석을 보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초막절에 대해서 성경의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있는데, 대략 7가지로 압축하여 이 초막절에 담긴 의미를 생각해 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초막절의 첫 번째 의미는 추수감사입니다.

오늘 본문 레 23:39에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칠월 15일부터 7일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라”고 추수감사의 의미가 이 초막절에 깃들여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업과 생업을 보장해 주시고, 열매 맺게 해 주심에 대한 감사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들의 땀 흘린 노력에 대한 하나님의 보장과 결실의 기쁨을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로 화답하는 아름다운 마음가짐을 초막절인 추석을 통해 맞이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추수를 우리는 영적인 문제와도 관련시킬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현실적인 추수만이 아니라, 영적인 추수를 생각해볼 때 우리들의 현실속의 어려움이나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가 생겨집니다. 예수님께서도 마지막 때에 있을 인간 역사의 심판을 추수로 비유하셨습니다. 알곡과 쭉정이, 양과 염소의 비유로 우리 인생의 끝날 추수에 대해 가르쳐 주신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곡으로서 또 양처럼 하나님의 창고에 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자리에 들어가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역시 한 해의 추수를 경험하면서 우리 인생과 이 시대의 추수를 예견해 보면서 우리의 단 한번 밖에 없는 이 지상에서의 삶을 보람되게 이끌어야 할 것입니다.

2. 초막절의 의미는 우리 인생은 이러한 초막에 거하는 삶이라는 것을 깨우쳐 줍니다.

42절, “너희는 7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찌니.” 이스라엘 민족은 실제로 초막에 거하면서 텐트(tent) 생활을 통해서 옛날 조상의 광야 생활을 경험해 보고 오늘의 현실 삶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긴장이 있고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늘 교제하는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나그네 같은 모습을 포기할 때 우리는 타락하기 쉬운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됐다”고 할 때 교만해지기 쉽고, 타락하기 쉬운 우리 인간의 연약성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됐다”라는 결론은 우리가 해야 할 말이 아닌 하나님께서 하실 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우리 크리스천을 “Being으로서의 존재” 즉,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Becoming으로서의 존재” 즉, 되어가는 존재라고 표현한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보다 나은 자녀로서의 모습을 계속 지니고자 하는 모습을 이번 추석을 통해 마련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3. 초막절의 세 번째 의미는 교육적 사명이 있습니다.

신 31:10-13에 보면, 이 초막절에는 하나님의 율법을 읽고 이 말씀을 지키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자녀들에게 이 말씀을 가르치라고 이르고 있습니다. 이 자녀들에게 가르치라고 하는 것은 전달하는 책임을 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 세대를 다음 세대로 온전하게 이어가게 하는 책임성이 이 모습 가운데 있습니다. 특히 이민 1세에 해당되는 우리에게는 우리의 후세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전달해야 하는 책임이 더 큰 줄 압니다.

4. 초막절의 네 번째 의미는 자유인으로서의 책임의 의미가 있습니다.

초막절은 오순절에 받은 율법을 실행하는 시기입니다. 이는 사회적인 불의와 부정을 경고하고 바로 잡는 시기이며, 가난한 자와 억눌린 자들에 대해 하나님의 의를 실천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 생활 즉 초막에 거하면서 약속의 땅으로 가게 된 것은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왔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로 용서해 준 것은 하나님의 의의 병기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일하며 수고하도록 하는 하나님의 평화에 대한 사명을 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의 불의와 부정과 하나님 보시기에 잘못된 것들이 고쳐지도록 우리의 기도제목을 나를 위한 것뿐 아니라, 이 세상을 위한 기도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조상성묘라는 조상숭배로서의 추석의 범주를 벗어날 수 있는 우리의 신앙의식의 전환이 될 것입니다.

5. 초막절의 다섯 번째 의미는 희년과 관련됩니다.

이 희년이란 것은 이스라엘에서는 “7년 x 7년”이 지난 바로 다음 해를 말합니다. 즉 7년의 안식년이 7번 되는 해의 바로 다음 해로, 햇수로 치면 50년마다 돌아오는 해를 말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렇게 50년마다 토지 개혁을 하게 됩니다. 이 50년째 되는 즉 희년이 되는 해 초막절 닷새 전에 희년 나팔을 불면 모든 사람들이 자기 고향으로 가서 닷새 동안 추석을 보내게 되어 있습니다(레 25:8 이하). 이 희년 되는 해에 부는 나팔을 “속죄의 나팔”(The Trumpet of Atonement)이라 하여 자유를 선포하는 귀중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초막절을 나팔절(The Festival of Trumpet)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희년이 되면 “모든 토지는 여호와의 것”이라 하여 모든 땅과 토지를 하나님께 반납하고 자기가 부리던 종들도 그들이 원하면 자유를 주어 가고 싶은 대로 가게 합니다. 이런 점에서 초막절에는 “자유가 선포되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께서 이 세상에 나와 일을 시작하신 그 때를 이 희년으로 삼았습니다. 눅 4:17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는 처음 기간에 나사렛 회당에 들어가셔서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가지고 설교하십시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곧 희년)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읽으시고 난 다음, “이 말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다”고 선포하시면서, 우리 인류를 향하신 하나님의 희년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이 추석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슨 일을 하게 하기 위해 나에게 달란트, 은사 곧 영적 토지를 주셨는가를 생각하며 받은바 은사와 사명을 새롭게 해야 할 줄 압니다.

6. 예수님께서 초막절을 지키시면서 하신 말씀 속에서 초막절의 여섯 번째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 7:37~39에 보면 “명절(초막절)이 끝나는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하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초막절에 제사장들이 실로암 못에서 물을 길어다가 엄숙하게 성전으로 지고 가서 매일 아침마다 번제를 드릴 때 격식에 따라 번제단에 바쳤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요한복음의 저자는 해석해 주는 말씀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추석을 통해서 우리 믿는 자에게 아낌없이 주시는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추석 때에 소화제가 제일 많이 팔린다고 합니다. 우리는 많이 먹어 소화제를 찾는 것보다 성령 충만함으로 우리의 믿음의 분량을 채워 하나님의 자녀와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요,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앞서 나가는 자세를 지녀야 할 것입니다.

7. 마지막으로 초막절의 의미는 메시아의 강림과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면서 추석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슥 14장은 메시아의 강림을 예언한 말씀으로 초막절에 대해 언급하면서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는 여호와의 날이 임하는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심판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생각하면서 또 우리 주님이 주인이 되셔서 우리도 왕 노릇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대하면서 좀 더 새롭고 힘 있는 삶을 지닐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초막절과 추석을 연관 지어보면서 우리는 마지막 날에 대한 우리의 자세가 종합적인 신앙의 모습임을 생각해 봅니다. 전쟁의 위기가 있다고 해서 마지막 때라고 무책임하게 외치는 시대주의자의 말에 무조건 따라가지 말고, 초막절을 추석으로 지킬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의 배려에 감사하면서, 우리의 하나님을 그리고 이 세상을 향한 우리의 자세를 새로운 안목으로 간직하는 계기를 이번 추석을 통해서 간직하게 되었으면 하고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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