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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례의 4가지 의미 (마 28: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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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세례식이 있는 날입니다. 그래서 세례의 의미를 같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세례식이나 성찬식이나 기준이 있습니다. 모두 성경에 있는 것이고 예수님이 명령하신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사람을 위한 것인지 하나님을 위한 것인지를 잘 생각해야 합니다. 세례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만을 섬기는 예식입니다.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닌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이 세례는 네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네 가지 의미를 말씀드리면서 같이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첫째는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입니다.

마태복음28장 19을 같이 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예수님의 명령이 세례를 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순서를 잘 보게 되면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을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세례를 주지 않고 신중하게 결정을 내리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례는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명령하셔야만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이 세상의 모든 족속, 모든 사람이 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중요한 사실입니다. 세례는 사람이 임의대로 주는 예식이 아니라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목사님이 하는 것도 아니고, 장로님이 하는 것도 아니고, 여러분이 받고 싶다고 해서 바로 받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허락을 하셔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은 하나님의 교회의 일원이 되려면 누구나 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세례를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 시작한 사람들을 위해 지시하신 사항은 세례를 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37,38에서 3천명의 회심을 하고 세례를 받기 시작하여 사도행전 8장12절에서는 사마리아의 신자들이 사도행전 8:26-38에서는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내시가 사도행전 9:18:에서는 사울이, 사도행전10:47,48에서는 고넬료와 그 가족이, 사도행전16:14,15에서는 루디아와 그 가족이, 사도행전 16: 30-34에서는 간수와 그 가족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세례를 받는 것은 예수님의 명령을 따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면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을 실 필요가 없으신 분이지만 이 땅에 오셔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세례요한은 말렸지만 "내가 예수님께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그러나 예수님은 기꺼이 요한에게 받으셨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받으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새로운 세상이 시작이 됐다고 회개하라고 외치는 세례요한의 광야의 소리에 동의를 해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입니다. 이 당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사람들도 누구나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여태까지 잘못 살았다! 새롭게 살겠다! 그러므로 회개한다! 그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던 것입니다. 즉, 이전 것을 버리겠다는 의미입니다. 회개를 외치는 세례요한의 가르침에 힘을 실어 주기위해서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죄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주시는 세례는 세례요한의 세례 보다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받는 바로 이 세례는 단순히 죄가 있다고 고백하는 정도의 회개세례가 아니라 구원세례입니다.
예수님은 죄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세례를 명령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구원세례를 받는 여러분에게 복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백성이 되니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습니까! 할렐루야! 할렐루야!

마가복음16:16에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예수를 믿고 구원세례를 받았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놀라와..."
예수님의 명령대로 구원세례 받은 것은 잘 한 일입니다.

두 번째 세례는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의 죄를 깨끗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처음 믿었을 때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삶 가운데 모셨고 그 결과 우리의 죄를 용서를 받았습니다.
성경말씀 중에 요한일서 1장 7절에 “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그의 생명을 드린 것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죄가 있는 죄인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갈 수가 없다는 겁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에도 들어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하심으로 죄인이었던 우리가 죄가 씻겨져 의인이 되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천국에도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귀중한 존재입니다. 예수님의 피값으로 사신 귀중한 존재라는 말입니다.
“나는 귀중한 존재이다.”
“나는 예수님의 핏 값으로 산 귀중한 존재이다. 아멘”

찬송가 210장
“내 죄사함 받고서 예수를 안뒤 나의 모든 것 다 변했네
지금 나의 가는 길 천국길이요 주의 피로 내죄를 씻었네
나의 모든 것 다 변하고 그 피로 구속받았네
하나님의 나의 구원되시오니 내게 정죄함 없겠네“

이제 말씀에 근거해서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까? 우리가 세례를 받았기 때문인가요? 우리가 아무 것도 잘못한 것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의 피가 우리를 죄에서 깨끗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었을 때에 하나님은 아나니아라는 사람을 통해 바울에게 사도행전22:16에서 말씀하시기를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마음의 죄를 깨끗하게 하시는 것인데 세례를 받을 때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물이 효력이 있어서 주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물은 세례식의 상징입니다. 구원의 능력이 아닙니다. 주의 이름이 능력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물로 세례식을 하는데 주의 이름으로 하는 겁니다. 목사님께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하고 세례를 줄때 누구나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는 것입니다. 주님의 권위로 주의 보혈의 능력으로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 예식을 통해서 교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공식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이 세례식을 행함으로 세례를 받는 이 사람이 이제 하나님의 교회의 정식 교인입니다. 예수의 피로 값 주고 산 의인입니다.(-신분이 바뀌고), 천국에 갈 하나님의 백성이다.(-국적이 바뀌고) 공개적으로 교인들 앞에 알리는 의식입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귀한 분이신지 아시겠지요? 예수님을 팔아서 여러분을 샀습니다. 얼마나 귀합니까. 서로를 귀히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얼마나 가치있는 분들인데 말입니다. 목사님도, 장로님도, 집사님도, 성도들도 귀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5:5 말씀처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네가 내안에 내가 저안에 있으면 많은 열매를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주님과 우리는 하나입니다.
물이 우리 몸을 깨끗하게 씻을 수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마음의 죄를 깨끗이 한 것으로 세례는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의 죄를 깨끗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과 우리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세번째 세례는 믿는 자가 받는 것입니다.

세례는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자만이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 사도행전10:43은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고 했습니다. 어느 때에 죄가 깨끗해집니까? 믿을때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교회모임에 참석을 하는 것으로 죄가 깨끗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식을 받았다고 해서 죄가 깨끗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의 어떤 예식이나 노력이 효력을 가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죄가 깨끗해지는 것은 단 하나 예수를 그리스도로, 구세주로 믿는 것입니다. 유일하신 구세주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 한분 이외에는 구원받을 이름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결혼하는 두 남녀에게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의 서로 아내로 남편으로 섬기며 살겠다는 서약이지 결혼식 그 자체가 아닙니다. 결혼식비용이 100만원 짜리하고 1억원 짜리하고 살아가는데 사랑의 효력에 차이가 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결혼식 비용이 사랑하는데 효력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두 사람의 가진 믿음이고 고백입니다. 우리의 죄가 깨끗해지는 것도 예수님을 믿을 때입니다.

우리가 깨끗해지는 것은 세례를 받는 순간이 아닙니다. 세례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 씻음을 받았다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에 불과한 것입니다. 세례자체에 무슨 효력이나 있는 것처럼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 죄로부터 깨끗이 씻음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를 믿고 그 분을 영접하는 순간 우리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선교사가 중국에 있을 때 한 청년 신사가 찾아와 이렇게 질문하였다고 합니다.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으로서 정식 출발을 하려고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을 어느 정도 알아야 하며 신앙 연수가 몇 해가 되어야 합니까?"
그러자 테일러 목사는 이렇게 반문하였습니다.
"촛불은 언제 빛을 내지요?"
청년은 "그야 물론 심지에 불을 붙이는 순간부터 빛을 내지요."하고 대답했습니다. 그 때 테일러 목사는 청년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기독교인이 되는 것도 그와 같습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어느 수준으로까지 오른다든지 몇 해 동안 교회 생활을 했다던가 하는 것은 별 문제가 아닙니다.
심지에 불이 붙는 순간 빛을 발하듯이 연수가 없어도 하나님이 나를 불러 필요한 인간으로 사용하려고 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받아들이게 된다면 그 순간 이미 빛이 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벌써 훌륭한 크리스천이 된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세례를 받은 순간 우리는 새 생명을 얻은 줄 믿습니다. 믿음으로 세례를 받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습니다.
로마서 6장7절을 보게 되면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이를 베드로 사도는 사도행전 2장 38절에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고 합니다.

네번째 세례는 죄 씻음에 대한 눈으로 보는 표적입니다.

하나님은 기적적인 방식이나 자연적인 일들 가운데서 다른 형태로 하나님의 약속들을 제시하시고, 이해하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연기 나는 풀무와 타는 횃불이 고기 사이로 지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하나님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약속을 하셨습니다. (창15:17)
-기드온에게 승리의 약속을 주실 때에는 베 조각에 이슬이 내리는 모습으로 또는 땅에만 이슬이 내리는 모습으로 보여주셔서 승리를 약속하셨습니다.(삿6:37-38).
-히스기야가 눈물로 회개하고 기도하자 병에서 낫고 안전하리라는 보장을 해 주시면서, 해 그림자가 십도를 물러가게 하여 주셨습니다.(왕하 20:9∼11)

이런 일들은 모두 그들의 연약한 믿음을 북돋워 주고, 확증해 주는 일들이었으니, 그것들이 모두 표적입니다. 마찬가지로 세례를 받음으로 연약한 믿음을 북돋아 주고 확증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람의 마음은 하나님 밖에는 볼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드려다 볼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깨끗하게 하시는 표적으로, 증표로 주신 것이 바로 세례입니다. 따라서 세례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셨다는 것을 ‘볼 수 있는 표적’입니다.

20절 말씀을 같이 보게 되면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세상 끝 날까지 내가 너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지난 수요일에 결혼을 앞둔 분들이 찾아 오셨었습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해주었습니다. "결혼은 마지막이아니라 시작이다."라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세례는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오늘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을 제자삼고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세례는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시작으로 여기셔야 합니다.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했습니다.
세례는 신앙생활의 출발입니다. 그리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가르쳐 지키게 한다는 것은 신앙생활의 목표입니다. 신앙생활의 목표는 끊임없이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성도는 날마다 주님을 본받아 가는 일에 승리해야 합니다. 가르쳐 지키게 하는 두가지 부탁입니다.

주님을 본받는 삶을 사는 살기 위하여

첫째, 교회생활을 잘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세우신 기관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총회 헌법에 교회 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 교인의 의무를 세 가지로 정리를 했습니다. 나라에도 국민의 의무가 있듯이 교인의 의무가 있습니다.

1) 공 예배 출석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런데 교회생활을 잘하는 것 가운데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면 우리는 몸의 지체입니다. 예배출석을 잘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몸을 만들어가는 우리들의 첫 번째 의무입니다. 주일 예배 출석은 당연한 것입니다. 주일 예배뿐 아니라 모든 예배 시간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가 주일을 귀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주일에 다른 일들을 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주일을 지키지 않고서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하는 것은 저의 경험으로 봤을 때 거짓말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잘못입니다.

2) 헌금생활
돈은 귀한 것이기 때문에 귀한 것을 귀하게 쓸 줄 아는 사람이 귀한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귀한 것을 쓰지 않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것을 주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부자는 헌금하고, 가난한 사람은 하지 말라는 그런 이야기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하나님과 일대일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과부의 헌금도 귀하게 여기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여호와 이레`의 뜻 속엔 하나님이 준비하신다는 뜻도 있지만,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뜻도 있습니다.

3) 교회 치리에 복종하는 것
교회치리는 다스리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교회치리기관은 총회 노회 당회가 있는데, 우리는 이런 교회 치리기관의 다스림에 복종해야 합니다. 그 교회치리기관에 옳고 그름을 떠나서 순종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치리기관은 권력기관이 아닙니다. 지도를 받지 않는다고 당장에 불이익이 오는 것은 아니지만 거룩하라는 것은 지도를 받는 자리에 섰을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방법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그 것이 다 맞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지도를 받고자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교회는 무엇보다도 당회의 구성원인 목사님과 장로님의 지도를 잘 받아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당회가 하는 일은 교회 정책과 사업을 계획하고 교인들의 신앙을 지도하는 것입니다. 이 분들의 가르침을 잘 받아야 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복을 받은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인정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울 임금이 자기를 죽이려고 했지만, 하나님이 세우신 종을 어찌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다윗의 신앙입니다. 우리도 그런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반면에 사울은 하나님이 세우신 제사장 사무엘의 제사를 대신 드렸습니다. 무시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 버림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대접하는 것이 그 권위의 상급을 내가 받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의인을 대접하면 의인의 상을 받고, 선지자를 대접하면 선지자의 상을 받습니다. 장로님을 대접하면 장로님의 복을 받을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반면에 교회를 다스려야 할 우리 목사와 장로와 당회원들은 누구보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교회정책을 세우고 교인들을 지도하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좋은 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 잘 드리고 헌금에 정직하고 헌신할 줄 알고 그래서 누구보다 권위를 인정하는 겸손의 일군이 되어 권력기관으로서의 당회가 아니라 권위기관으로서의 당회가 돼서 더욱 존경받도록 힘써야 되는 것입니다. 참 힘들고 어려운 일이나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생활 잘하는 것이 주님을 본받는 삶이 첫째입니다.

둘째는 선교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전도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내 몸 자체를 선교의 도구로 쓰시기 바랍니다.
바쁜 일이 있어서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 분께서 "목사님이시죠? 저는 척보면 압니다."
그러시는 거에요.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지.. 그러더니 그 기사분이 바로 이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교회 다니는 분들이, 집사님인지, 권사님인지 택시를 타면 어떤 집사가 이렇다 저렇다, 장로가 이렇다 저렇다, 권사가 이렇다 저렇다 하다가 택시비 가지고도 네가 내라,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무슨 얘기가 그렇게도 많은지.."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얘기를 저한테 하시는지.. 속으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제가 좀 더 주고 택시에서 내렸습니다.

우리가 어딜가나 우리 몸이 전도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이든, 직장이든 어딜 가든지 말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곳에 위치한 이유가, 우리가 기도하기를 영적인 파숫군이 되게 해달라고 하잖아요. 이동네 사람만 이 교회에 책임이 있는 게 아닙니다.
외국에 가서도 선교를 하잖아요. 내 몸이 가서 선교를 하는 거잖아요. 멀리서 이곳에 와서 선교를 하신다고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나는 비록 강남에 살지만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한남제일교회에 와서 선교를 한다고 생각을 하시면 행동이나 모든 것이 조심스럽고 자부심이 생길 겁니다. 그러면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선교사적인 사명을 가지고 늘 사셔야 합니다.

선교사가 외국에 나가서 선교하는 것처럼 그런 자세로 살자는 것입니다. 낯설고 물 설은 곳에 가서 복음 증거하지 않습니까? 내가 이 집에 시집와서 내 식성에도 안 맞고, 성격에도 안 맞을 수 있지만, 선교사의 심정으로 일하시기바랍니다. 그러면 그 가정이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직장에 가서도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선교사의 사명을 가지고 직장에서 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일 잘하면 하나님의 쓰임 받을 줄로 믿습니다. 동네에서도 선교사의 사명으로 삽시다. 말할 것 다하고 싸울 것 다하고 어떻게 선교가 되겠습니까?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세례의 네가지 의미는 첫째는 세례는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둘째는 세례는 예수님이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왜? 하늘나라 보내서 하나님 만나게 하려고 말입니다. 셋째로 세례는 믿는 자가 받는 것입니다. 넷째 세례는 죄 씻음을 눈으로 보는 표적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세례는 시작인데 어떻게 가르쳐 지키게 할 것이냐? 교회생활을 잘하고 선교사적인 삶을 살자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사는 이 삶 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창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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