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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십계명 강해설교 1> 다른 신은 존재하는가? (신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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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이란 무엇인가?(십계명 서론)

지난주에 예고된 대로 오늘부터 10주간에 걸쳐 구약성경에 나오는 십계명의 10가지 조항을 하나씩 설교하려고 합니다.

십계명은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 두 군데에 나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신명기 5장인데 이에 비해 출애굽기 20장에 나오는 십계명은 조금 더 단순하면서도 내용 상 그리 큰 차이는 없습니다. 신명기는 십계명의 서론을 5:1~6로 길게 소개하는데 비해 출애굽기는 20:1~2로 더 짧고 단순합니다. 우리가 십계명을 제일 잘 볼 수 있는 곳은 바로 찬송가 맨 뒷면입니다. 한번 펴보시지요. 펴놓은 상태에서 설교를 들으시면 되겠습니다. 참고로 찬송가 뒤에 나온 십계명은 신명기 5장이 아니라 출애굽기 20장을 기록한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십계명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구약성경에 보면 수많은 율법과 계명이 나옵니다. 그 수백 수천 가지의 율법과 계명을 딱 열 가지로 정리해 놓은 것이 바로 십계명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은 모든 율법의 정수이며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십계명이나 율법에 대해 오해를 합니다. 계명이나 율법이 인간을 옥죄고 속박하는 올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마치 십계명 등 수많은 규정과 계명을 만들어 인간을 꼼짝 못하게 만들려고 하시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십계명의 기본정신은 인간을 속박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계명은 근본적으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정신입니다. 우리가 무엇보다도 유일신이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도록 만들려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긴 것입니다. 지난 주 므나 비유에서도 포도원 주인이 진짜 관심을 가진 것은 몇 푼의 소작료가 아니라 소작농민들과 좋은 관계를 갖는 것이었다고 말씀 드렸는데 마찬가지로 십계명도 겉으로 보기에는 딱딱한 법조항 같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의 열 개의 조항을 자세히 살펴보면 첫째로는 우리가 유일신 하나님만 섬기도록 하려는 의도이고, 둘째로는 바른 윤리관을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살펴보면 ‘...하라’는 계명이 2개인데 바로 제4계명인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와 제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이 ‘하라’는 명령이 바로 우리가 바른 윤리관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세 번째로는 십계명은 우리가 죄를 짓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십계명 가운데 8개의 ‘하지 말라’는 명령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죄를 짓지 않도록 규정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십계명을 ‘하라’ 2개, ‘하지 말라’ 8개로 구분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 즉 종적인 관계에 대한 계명 4개(1~4계명)와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계명 6개(5~10계명)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어쨌든 오늘은 이 십계명 가운데 첫 번째 계명인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출애굽기 십계명) 혹은 ‘나 외에는 위하는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스님들과 함께 식사를...

이 십계명의 첫 번째 계명을 설명하기 위해 2005년 8월 28일 국민일보 겨자씨 칼럼에 나온 글을 하나 소개합니다. 글을 쓴 분은 안산제일교회 고훈 목사님이고 글의 제목은 <스님들과 함께 식사를>입니다.

모임에서 스님, 목사님, 동네 어른들과 점심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스님이 불교 대표로 식사기도를 하고 내가 기독교 대표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기도 마지막에 "하나님과 부처님 이름 합쳐서 기도합니다"고 했습니다. 스님이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기도하니 감격할 일이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기도할 차례가 되었는데 미안하지만 "예수님과 부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화답하지 못했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고 했더니 스님들 편인 어른들도 '아멘'했습니다. 예수와 부처 이름 합쳐서 내가 기도했다면 그 날은 내가 죽는 날이요, 우리 교회와 나의 기독교가 죽는 날이었을 것입니다. 불교는 종교 다원주의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섞어도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외에는 천하에 구원을 얻을 만한 이름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행 4:12). 예수 이름을 어느 이름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글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인터넷에 올라온 이 글 밑에 붙은 댓글, 소위 리플이라고 하는 글들입니다. 먼저 ‘뭔 소린지’라는 ID를 가진 사람이 이렇게 댓글을 썼습니다. “뭔소린지 뭔 소린지 도통... 꼭 왜정 말기 신사참배할 때 몸은 신사에 가 있었지만 마음은 아니었다고 하던 신사참배자들의 논리를 왜 여기에서도 발견하게 되는지... 목사님, 궤변이올시다.” 그러자 ‘오직 예수’라는 ID를 가진 분이 또 이렇게 댓글을 달았습니다. “불교는 종교다원주의라서 여러 종교의 융합과 화합을 중요시할 수 있지만, 기독교는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신이며 다른 신은 이방신이라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스님처럼 예수와 부처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한다는 것은 부처를 신으로 인정한다는 것이 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사탄의 오묘한 속임수죠.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외골수’라는 ID를 가진 분이 이런 댓글을 달았습니다. “종교는 자신의 본성을 찾는 방편일 뿐인데, 예수니 석가모니 부처니 하면서 내 것만 고집하는 것은 종교인의 도리가 아닙니다. 내 이웃을 나처럼 사랑하지 못하는 자를 어찌 예수님께서 좋아하시겠습니까?” 이 글에 마지막으로 ‘전도사’라는 ID를 가진 분이 이런 댓글을 달았습니다. “이 칼럼이 이해 안 되는 분들은 구원이 뭔지, 십자가가 뭔지 이해가 안 되실 겁니다. 안타깝네요.” 참 재미나지 않습니까?

종교다원주의는 가능한가?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가 종교 문제에 있어서 많은 논란이 있는 사회라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우리나라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종교가 있지만 그 가운데 기독교, 불교, 유교 등을 대표적인 종교로 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가운데 유교는 종교라고 보기 조금 힘들고 기독교를 개신교와 천주교로 나눌 수 있기 때문에 흔히 개신교, 천주교, 불교의 3대종교로 나누곤 합니다. 문제는 이 세 종교가 각각 서로를 보는 눈이 너무 다르다는 것입니다. 앞서 나온 글의 내용처럼 불교는 상당히 종교다원적인 색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종교다원주의라 함은 쉽게 말하면 모든 종교가 다 가는 길이 다를 뿐이지 목적지는 같다는 것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갈래지만 결국 추구하는 진리는 같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개신교는 개신교대로, 천주교는 천주교대로, 불교는 불교대로 다 진리를 추구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결국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이나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이나 같은 것이라는 말이지요. 그러다보니 모든 것이 부처입니다. 심지어 절에도 성경을 비치해 놓고 예수님을 ‘예수 부처’라고 부르는 경우까지 보았습니다. 참 멋지지 않습니까? 특히 포용이나 개방이라는 의미에서 젊은이들은 이런 종교다원주의를 정말 멋진 말로 이해하고 이런 것을 추구하는 종교를 포용성 있고 개방적인 훌륭한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TV에 나온 어떤 공익광고에 냇물을 사이에 두고 교회와 절이 서로 징검다리 놔주고, 성탄절에 절에서 축하한다고 현수막 붙이니까 이번에는 교회에서 초파일에 축하 현수막 붙이는 이야기를 아름다운 미담이라며 내보내는 것 아닙니까? 만화로 나오던데 여러분도 보셨지요? 이게 멋있는 일이라고, 미담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큰일 날 소리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재미있는 것이 천주교입니다. 천주교 역시 종교다원적인 색체가 강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불교와 연합하여 행사를 하곤 합니다. 저도 전에 보았는데 아마 TV에서 무슨 종교행사를 하면서 한 번은 천주교의 수녀들이 나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다음에는 불교 비구니들이 나와 부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천주교에서는 기독교나 불교나, 예수나 부처나 다 같은 진리라고 보아서 얼마든지 이렇게 불교와 교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개신교입니다. 개신교는 절대 이런 행동을 못합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참 신이며 유일신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적으로는 스님이나 신부와 가깝게 지낼 수 있을지 몰라도 절대 종교 간의 교류나 이런 만남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불교도 천주교도 다 포용적이고 멋진 종교인데 개신교만 유독 앞뒤가 꽉 막힌 독선적인 종교라고 욕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까 소개한 글을 목사님이 쓰니까 독선이다, 위선이다, 시대에 뒤떨어진다 등등 비난하는 댓글이 올라오는 것입니다.

다른 신은 존재하는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이 주실 때도 오늘날과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주변의 나라들은 온통 다신교와 종교다원주의적인 사고들이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살이를 한 애굽에도 온갖 종류의 신들이 있었습니다. 태양신인 ‘라’와 ‘아몬’과 비롯해 나일 강의 신, 땅의 신, 죽음의 신, 심지어는 개구리 여신도 있었습니다. 이 수많은 신들을 섬기며 이렇게 신이 많음을 자랑스럽게 여긴 애굽 사람들 입장에서 여호와만이 유일한 신이라고 주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혀 이해가 안 갔을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려고 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애굽보다 신의 종류가 더 많았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신만 해도 신들의 우두머리인 ‘엘’과 그 아내 ‘아세라,’ 그 아들인 풍요의 신 ‘바알’과 그 아내 ‘아낫’ 등 수많은 신들이 있어서 마치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올림포스 산에 신들의 왕인 제우스가 살고 그 밑에 온 자연만물마다 각각의 신이 있어 신들끼리 서로 질투하고 싸우는 내용과 거의 흡사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전부 이런 다신교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는데 유독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끝까지 여호와만 유일하신 하나님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개신교가 비난을 받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의 유일신 종교도 시대에 뒤떨어지니, 독선적이니, 뭐니 하는 비난을 주변 사람들로부터 받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개신교가 불교나 천주교처럼 개방적이고 포용적이라는 소리 들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우리 개신교도 멋진 종교라는 소리 듣기 위해 “예수님과 부처님의 이름을 합쳐서 기도합니다”도 하고 우리도 종교행사에서 비구니들의 찬불가 합창과 함께 어울려 찬양을 불러야 하겠습니까? 안 되는 소리입니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비난을 받고, 따돌림을 당하고, 심지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왜냐? 당연히 하나님만이 참 신이요 유일한 신이시기 때문입니다. 누가 뭐래도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유일신이신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외에 그 어떤 존재도 신으로 받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오늘부터 살펴볼 십계명에서 제일 중요한 제1계명과 제2계명이 바로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계명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분명히 말씀 드립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점에서 몇 가지 오해의 소지가 발생합니다.

첫째, 오늘 십계명의 제1계명이나 제2계명을 보면 마치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말이 나옵니다. ‘나 이외의 다른 신’이라는 표현이 그것입니다. 구약의 다른 본문에서도 이런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대표적인 본문이 “대저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 위에 크신 왕이시로다”라는 시편 95:3입니다. 이 내용만 보면 마치 세상에 많은 신들이 있는데 하나님이 그 모든 신들보다 더 우월하고 뛰어난 신이라는 말처럼 느껴집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제우스나 가나안 신 중에 ‘엘’, 애굽의 신 중에 ‘아몬’처럼 말입니다. 이것이 만일 사실이라면 오늘날도 얼마든지 부처님도 신이고 알라신도 신이라고 인정하는데 그 중에 하나님이 제일 뛰어난 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만큼 크고 위대한 분이라는 것을 표현한 것뿐이지 결코 다른 신의 존재를 인정한 것은 아닙니다. 그 증거가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라는 고린도전서 8:4 말씀입니다. 이 말씀대로 정말 우상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사람들이 마치 신인 양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라는 신도 없고 알라라는 신도 없습니다. 다른 신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참 신이며 유일한 신이십니다.

둘째, 얼핏 보면 십계명의 제1계명과 제2계명은 똑같은 내용처럼 보입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라”는 말과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말은 모두 우상을 금지하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왜 이 중요한 십계명에서 우상숭배 금지를 두 번씩이나 중복해서 말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오해입니다. 왜냐하면 내용은 비록 비슷해 보이지만 어디까지나 제1계명과 제2계명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다를까요? 제1계명은 ‘경배의 대상’을 말해줍니다. 즉 우리의 경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지 다른 신이 있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에 비해 제2계명은 ‘경배의 방법’을 말해줍니다. 유일신이신 하나님을 올바로 경배하는 방법은 어떤 우상도 만들지 말고 그 우상 앞에 절하거나 섬기지 않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도 존재하는 현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과연 우리에게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있을 수 있는가? 분명히 없다고 했습니다. 부처도 알라도 그 누구도 신이 아닙니다. 실체가 아닌 그저 사람들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합니다. 마치 산에서 잘 생긴 돌 하나를 주워다 집에 갖다 놓고 매일 그 앞에 절하며 신이라고 부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자연을 숭상하거나 섬겼습니다. 하늘을 섬기고, 바다를 섬기고, 돌을 섬기고, 큰 나무를 섬겼습니다. 때로는 호랑이 같은 짐승이나 큰 구렁이를 섬기기도 했습니다. 그 까닭은 그런 자연이 크고 무섭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공포의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분명히 깨닫습니다. 이 모든 자연만물이 단지 하나님의 피조물일뿐 결코 숭배의 대상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사람들은 이 자연만물이나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존재를 신으로 섬기고 살아갑니다. 그것은 바로 돈, 인기, 권력, 외모, 쾌락, 지식이나 학력 같은 것들입니다. 현대에는 이런 것들이 더 큰 우상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옛날에 나무나 돌에다가 절하며 섬기는 것보다 이 현대의 우상들은 훨씬 더 강하고 무섭습니다. 왜? 하나님 안 믿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교회 다니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조차 이러한 우상에 넘어가 이것들을 섬기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닙니다. 사람이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부와 명예와 지위를 위해 힘쓰는 것이 어찌 잘못된 것이며 틀린 일이라 하겠습니까?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것들이 신이 되고 우상이 된다고 하는 것일까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무엇이 우상이냐? 하나님보다 사랑하거나 하나님만큼 사랑하는 것은 다 우상이다.” 이렇게 본다면 위에서 나열한 돈이나  명예, 권력, 외모뿐 아니라 내 가족이나 자녀도 얼마든지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또 목회자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거나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서려 하면 무조건 우상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 돈이니 명예니 외모니 학력이니 하는 것들은 섬김의 대상이 아니라 다스림의 대상입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한 나머지 신이 되고 우상이 되면 우리는 교회를 다니면서도,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우상숭배자가 됩니다마는 이런 것들을 잘 다스리고 이용해서, 이것들을 수단으로 사용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면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들을 사용해서 내 영광을 드러내고 내 출세만 위해서 쓰면 우상이 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면 하나님의 선물이 됩니다. 이것이 참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의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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