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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큰 잔치의 비유 (눅 14: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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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한방송사에서 우리나라의 국민가수로 알려진 가수의 공연실황을 공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그 가수의 노래를 좋아합니다. 제일 좋아하는 노래가 “친구여”입니다. 감미로운 목소리에 감정을 이입하여 부르는 그 가수의 노래는 깊은 마음의 감동을 주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 공연날 비가 왔습니다. 실외무대인데 비가 오니 공연이 자칫 실패할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비가오는데도 불구하고 그 넓은 장소를 빼곡히 사람들이 채웠습니다. 우비를 입고 우산을 쓰고 오히려 흥에 겨워 노래를 따라부르면서 긴 시간 공연장을 가득채웠다는 소식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그 가수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기쁘고 좋겠습니까?

가끔 기독교텔레비젼으로 서울의 대형교회 예배드리는 모습을 시청하게 됩니다.
동시에 만여명정도 들어가는 그 넓은 공간을 가득채우고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면 정말 대단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부목사때 사역하던 교회의 담임목사님께서 미국에 가셔서 한번 대예배 설교를 한적이 있었습니다. 예배당 1,2층을 가득메운 2천여명의 성도들 앞에서 설교를 하니까 너무 감동스러웠습니다. 여러분 그 분위기가 분명히 다른 것을 제가 느꼈습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고 예배드리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예배하면 얼마나 기쁘고 좋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여러분 반대로 한번 우리가 생각하여 보십시오.
만일 무대가 넓게 준비되었는데 그 공연장에 관객이 없이 썰렁하다고 생각하여 보십시오. 교회당은 충분히 준비되어 있는데 거기에 성도들이 모이지 않고 텅텅 빈다고 가정하여 보십시오. 얼마나 보기도 안좋고 그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예수님께서 한 유대인 바리새인의 잔치 집에 초청을 받아 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오늘 말씀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보통 잔치를 벌일 때 주인은 풍성한 음식을 준비하고 사람을 초청합니다. 결혼식이나, 회갑연이나, 돌잔치나, 승진이나, 또는 집들이 같은 큰 기념될 일이 있으면 우리는 음식을 풍성하게 준비하여서 손님을 초대하는 것입니다. 잔치집에 가면 기분이 좋고 좋은 음식을 풍성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잔치집은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어서 먹고 마시면서 교제할 때 잔치집을 축하하여 주는 것입니다.

잔치를 벌이게 되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을 초청합니까?
대개 우리는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초청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이것이 세상 나라의 잔치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잔치에 초대받아 가셔서 세상 나라의 잔치의 이러한 모습을 보시고 자기를 청한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12절“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이웃을 청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도로 청하여 갚음이 될까하노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13절 “잔치를 배설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고 합니다.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길이 없는 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이 받겠음이니라”고 합니다.
그러자 이 말을 듣던 한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사람은 복되도다”라고 합니다. 아마 이 사람은 예수님의 12절 이하의 이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잔치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는 마치 잔치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이땅에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물론 이 잔치는 궁국적으로는 천국의 혼인잔치를 말합니다.천국의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잔치는 세상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러한 잔치가 아닙니다.
우리의 육신을 즐겁게하는 푸짐한 음식과 노래와 춤이 나오는 그러한 잔치가 아닙니다. 이 잔치는 바로 신령한 잔치인 것입니다. 이 잔치는 염려와 근심과 걱정속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늘의 기쁨과 평강과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맛보며 소망가운데 살아라고 우리하나님께서 베푸신 위로의 잔치인 것입니다.
( 롬 14:17)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 잔치는 먹고 마시는 잔치라기 보다는 성령안에서 구속의 은총을 누리는 진정한 축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주일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통하여 이 잔치,축제를 벌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는 사실 잔치입니다.그래서 우리의 예배는 잔치와 같고 축제와 같은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예배를 통하여 구속의 기쁨을 몸소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구속 받은 백성들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영광과 찬양을 드리는 기쁨의 에배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천국의 기쁨을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예배에 참여하고 돌아가는 성도들의 얼굴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환한 모습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교회는 날마다 축제의 장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비유의 말씀에서 주인은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청하는 것을 봅니다.
이제 모든 것을 준비하고 주인은 종들에게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라고 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초청합니다.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세 종류의 사람들의 반응을 볼 수 있습니다.

1. 먼저 잔치에 청함을 받은자들의 반응을 볼 수 있습니다(18-20)

잔치에 초청받은 사람들이 자기들이 잔치에 초대받은 것을 별로 달갑지 않게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주인이 잔치를 벌이고 초청하지만 이들은 초청받은 잔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초청에 응하지 않습니다. 거부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일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초청한 사람의 성의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첫번째 사람은 자기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보아야겠다고 초청을 사양했습니다.
이 사람은 새로 구입한 땅을 보러가는 것이 더 흥미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농부에게 있어서 밭은 대단히 소중합니다. 그는 밭을 삼으로 해서 그 마음이 뿌듯하였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신령한 기쁨에 대해서는 아랑곳 없는 사람입니다.그냥 물질적인 기쁨만 추구합니다. 세상이나 사업에 더 관심있어 합니다. 돈 버는 것에 더 관심있어 합니다.
그는영적인 가치보다 물질적인 것에 더 관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말하자면 사업에 미친사람입니다. 돈 독이 많이 든 사람입니다. 물론 인생에서 돈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까짓 돈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돈이란 인생의 목적이 아니고 인생의 목적을 이루는 수단일뿐입니다. 그러므로 돈때문 에 잔치에 참여하는 것을 거절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목적과 수단을 구분 못하는 잘못인 것입니다.
오늘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지 않고 무시하는 이유 중의 첫째는 돈을 벌어야 하겠기에 올 수 없다고 합니다.

두번째, 핑계는 나는 소 다섯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같으면 새 자동차를 사서 시운전 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날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 사람의 경우는 우선 무슨 일이 중요한가를 착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인생의 우선순위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우선순위를 자기에게 맞추면서 살아갑니다. 많은 세상 사람들이 일에 포로가 되어서 일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문제는 내면 속에 삶 속에 기쁨이 없다는 것입니다. 전혀 누림이 없는 곤고한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잔치에 못오는 이유 일에 우선순위에 문제가 있습니다.
오른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오지 못하는 이유 바로 많은 일을 먼저 해야 하기 땜누에 올 수 없다고 합니다.

세번째 핑계는 나는 장가들었으니 가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이것은 세상적인 쾌락 때문에 잔치에 불참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물론 결혼이란 하나님이 무미 건조한 광야 세상에서 합법적인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잔치에 참여못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결국 개인적인 욕망 때문에 천국 잔치를 거절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큰불행입니다.
오늘 세상 사람들은 나름대로 쾌락을 즐기고 육신대로 삶을 살려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합니다.

여기 청함을 받을때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들의 옛모습이요 지금 세상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직면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가 전도하다보면 이런 이유와 핑계들이 다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우리 주님도 아십니다. 전부 세상 사람들은 자기에 빠져 있고 자기 일에 바쁘고 자기를 위한 분주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가 전도할 때 순수하게 전도에 응하고 예배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전도할 때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전도할 때 이렇게 저렇게 했던 약속도 어기고 안나오는 사람들 때문에 상처받았습니까?
많이 기도도 했습니다.많은 돈도 투자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빼고 저렇게 빼는 그 사람 때문에 전도의 의욕이 떨어지십니까?
제가 여기 교회에 와서 5년동안 많은 분들이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하여 함께 교제하고 기쁨을 나누지만 또 어떤 분들은 참여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런 분들에게 전화를 해보거나 가끔 찾아가면 그분들 대로 이유가 있고 분명한 핑계가 다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고 당연한 것임을 우리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사실 성경속에 이유보다 더 많은 이유가 세상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을 다 알아야 믿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다 알아야 믿을수 있다면 평생에 하나님을 믿고 믿음 생활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다 알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차를 몰고 있지만 차를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차를 다 알지 못하여도 차를 운전하는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여러분 교회당에 켜져 있는 전기불이 어떻게 켜지는지 다 아십니까? 저는 단지 스위치를 누르면 전기가 들어오는 것을 압니다. 그것만 알아도 이 전기불이 이곳을 밝히는 데 크게 지장이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얻는다는 그 한가지 진리를 아는 것만으로도 믿음 생활할 수 있습니다. 이 한가지만 제대로 알고 가도 사실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어떤 분은 교회가 너무 사랑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믿음 생활을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사랑이 없다면 내가 먼저 사랑하는 주체가 되어 사랑하는 교회를 만들어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교인 중에 너무 가짜가 많아서 교회가 싫다고 합니다. 여러분 교회에 가짜가 많은 것은 진짜가 매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진짜의 매력이 있을수록 가짜가 더 많습니다. 다이아몬드의 매력이 크기 때문에 위조 다이아몬드가 많은 것과 같습니다. 진짜이신 예수님의 매력이 워낙 크니까 가짜사람들도 많을수 잇습니다. 교회 속에서 가짜들 가짱 종말론 가짜 교회론 가짜구원론을 외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가짜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타당한 이유가 되지 못합니.

혹시 아직도 몸은 이곳에 있어도 마음으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지 못하는 분들이 우리 중에 있지 않습니까? 나는 죄가 너무 많아서 하나님 앞으로 그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겟다고 하시는 분은 없습니까?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어떤 분은 나는 돈이 없어서 하나님 교회에 나가지 못하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말슴하십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오라 돈없는 자도 오라고 하십니다.
어떤 분들은 너무 바쁘다고 하십니다. 너무 바빠서 도무지 교회에 못나가겟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아무리 바빠도 우리가 밥먹습니다. 잠잡니다. 생존에 필요한 시간은 우리가 투자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의 영혼을 위해서 우리의 생명을 위해서 시간을 만들지 못합니까?
오늘 우리에게는 어떤 핑계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의 신앙의 삶에 풍성한 삶이 되기를 소원하십니다. 풍성한 믿음의 삶은 주님과 만나 풍성한 교제 풍성한 나눔이 있을때 가능합니다. 주님을 만나 그 안에서 믿음생활이 풍성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주인의 반응을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빈 자리에 대하여 화를 냅니다.
21절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라고 합니다.
주인은 빈자리가 생긴 사건을 몹시 화를 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빈자리가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가장 높은 분의 가장 귀한 잔치를 벌이는데 사람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입니까? 저는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이 그 수를 민감하게 여기시는 분이심을 봅니다. 물론 한명두명이 모여도 거기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빈자리보다 그 자리에 사람이 채워지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풍성하게 채워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나라가 풍성하게 채워지기를 기대하십니다.
그리고 나서 주인은 어떻게 합니까?
( 눅 14:23)"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고 하십니다. 잔치집에 빈자리가 있을때 잔치집의 주인은 화가 나서 집을 채우라고 합니다.

여러분 개인적으로 결혼잔치와 같은 잔치를 해보신 분들은 잘 알 것입니다. 잔치를 연 입장에서 가장 큰 축하가 무엇입니까? 함께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주는 것입니다. 만일 잔치를 벌렸는데 거기에 축하객이 없다고 가정하여 보십시오. 그래서 결혼식을 하든지 잔치집을 가장 축하하여 주는 것은 함게 참여하여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나라에 하나님잔치를 열어놓으셧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그 잔치들이 벌어지는 중심입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주일마다 모든 교회당이 차고 넘치면서 예배드릴때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매일 매일의 삶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는 곳마다 차고 넘치는 모습을 볼때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그러나 이땅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아직도 빈자리가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얼마전에 우리나라 종교인구에 대한 통계청의 통계를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불교 기독교 카톨릭의 인구가 많은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감사한 것은 전에 보다도 기독교인구가 좀 더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은 서울,경기,전라도입니다. 전라도의 경우 무려 기독교가 타종교에 비해 55%나 높은 복음화율을 차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기독교가 타종교에 비해서 소망이 있엇던 것은 나이가 적을 수록 학력이 높을 수록 기독교인구가 불교와 카톨릭에 비해 높았습니다. 가장 기독교인구가 낮은 곳이 경상도와 강원도였습니다. 이 쪽은 상대적으로 불교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았습니다. 지금 강릉의 경우 복음화율을 6%로 잡고 있습니다. 23만명을 기준으로 할때 약 1만3천명 내외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어떤 사역보다도 우리 지역에서 우리가 함께 집중해야 할 사역은 바로 바로 전도입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기독교인구가 적다보니까 전도가 하기도 제일 힘든 사역이 되었습니다. 특히 이쪽 강릉의 심각한 문제점은 교회학교와 청소년들의 교회 출석이 상대적으로 더 열악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함께 주님의 심정을 갖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경우도 전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교회가 가장 부족한 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지난번 서울의 국제제자 훈련원에 의탁하여 우리 교회의 건강을 설문조사했습니다. 어제께 그 결과 프포파일이 도착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설문에 답한 것으로 우리 교회를 진단하여주었습니다. 감사한 것은 전체적으로는 우리 교회가 건강한 교회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9개 분야에 걸친 점수가 소개되었는데 소그룹 84점,사역 86점,훈련 90점,양육 86점,정착 87점,예배 83점,전도 78점,시스템 84점,목회자 88점으로 나왔습니다. 물론 이 점수가 전부가 아니지만 객관적으로 이렇게 조사된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점수가 다 80점을 넘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한분야의 점수가 80점을 넘지 못했습니다. 바로 전도였습니다. 78점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맞다도 봅니다. 아직도 우리 교회는 전도가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 각자의 신앙이 새로워지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으로 긴급한 마음을 갖고 다시 도전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갖는 마음은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마음은 100마리의 양이 있지만 길을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는 목자의 마음입니다. 99마리를 두고 그 한 마리를 찾을때까지 산과 개울가로 다니면서 절박한 심정으로 헤매는 그 목자의 마음이 바로 우리 하나님의 마음이십니다. 우리 모두가 그 마음으로 전도에 집중 하시기를 바랍니다.

3. 종의 반응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가장 주목하고 보아야 할 것은 종들입니다. 여러분 여기 종들은 누구입니까? 오늘 주인이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성도입니다. 이제 이 종들은 하나님의 잔치집을 위해서 주인으로부터 귀한 명령을 부여받았습니다.여기 주인은 종들에게 하나님의 집을 채우는 세가지 전략을 종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기 종들은 그 주인에게 순종하는 것이 역할입니다. 무엇을 순종해야 합니까?

첫째, 길과 산울가로 나가는 순종을 해야 합니다.
다시말해 좁은 구석만 바라보지 말고 넓게 사통 팔방으로 틔인 곳으로 나가서 이 사람 저사람, 이 친구 저 친구들을 만나야 합니다.
먼저 우리는 종으로서 “나가라”는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행1:8“사마리아와 땅끝까지 ”가라“고 합니다. 저는 신앙 생활의 3단계가 있다고 봅니다.
우선은 앉은 단계입니다. 신앙 생활은 잘 앉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엄청나게 해놓은 것들을 앉아서 들어야 하고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새로워져야 합니다.
다음은 행하는 단계입니다. 받은 것을 개인적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내 삶 속에서 적용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그래서 주님같이 거룩한 지경에 도달하는 성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가는 단계입니다. 불신자들과 이웃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복음을 주고 사랑을 주는 것입니다. 가는 단계가 될 때 사실 여기에서 우리의 신앙의 성숙함들이 완성될 수 잇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주의 복음을 위하여 나가는 사명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둘째,사람을 강권하는 것에 순종해야 합니다.
다시말해 강한 의지와 설득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변호자가 아니라, 증인입니다. 그가 믿든지 안 믿든지 우리가 알 일이 아니고 무조건 내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언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강권하는 것입니다.
여기 강권이란 말은 강제로 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이것은 정성을 다하여 상대방의 인격에 호소하여 데려오라는 것입니다.이것은 결국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정한 자리가 있기 때문입니다.벧후 3:9 절에 보면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 하기에 이르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 5:14)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아프리카의 선교사였던 리빙스톤의 구호이기도 합니다.
그냥 한번 두 번 건성으로 그냥 오세요 해서는 안됩니다.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그 사람을 인도하는 강한 모습을 갖으라고 합니다. 이것은 적극적인 자세를 갖으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신앙 생활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원리들을 보십시오.기도도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강청하여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전도는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강권하여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인되신 주님의 종으로서 여기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기까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 없습니다. 길과 산울가로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초청하여야 합니다.

셋째, 데려다가 집을 채우는 것에 순종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과정이 나옵니다 그것은 “데려 오는 것”입니다.
"예수 믿읍시다"로 끝나지 않고 예배당까지 인도하고 주님께로 데리고 나와야 합니다.
물론 여러분 여기 강권하여 데려오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우리의 많은 정성이 필요하고 물질의 투자도 있어야 합니다.저절로 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현대인들의 가장 무서운 죄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무관심의 죄입니다. 교회는 출석하는데 아직도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여기는 분들이 있다면 그것은 엄청난 죄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뜻이요 주님의 명령인 천국잔치에 많은 사람들을 부르고 초청하여 자리를 채우시는 일에 다함께 순종하심으로 하늘의 기쁨을 경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박 춘 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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