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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물 파는 사람-일곱 우물의 축복 (창 26: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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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대한 巨富 이삭 이야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요셉은 다 믿음의 조상들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물론이고 온 세상에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조상들이지요.
그런데 네 사람들 중에 상대적으로 이삭이 조금 가볍게 취급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창세기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이 주인공으로 나타나는 이야기는 무려 14장이나 됩니다.
야곱과 요셉이 주역으로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각각 12장입니다.
이에 비해서 이삭이 주인공으로 부각된 이야기는 겨우 한 장, 창 26장 말씀이 전부입니다.

이것은 이삭이 아브라함이나 야곱이나 요셉보다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격적인 면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넉넉하고 관대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12-14절 말씀을 보면 이삭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거부가 된 사람입니다.
농사를 지었는데 100배의 수확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양 떼와 소 떼, 종들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이 거느렸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삭 역시 아브라함이나 야곱이나 요셉 못지 않은 큰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일곱 우물의 사람 이삭>
그런데요, 오늘 말씀을 자세히 읽어보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삭이 유난히 우물을 많이 팠다고 되어있습니다.
제가 조사를 해보니까 창 26장에 이삭과 관계된 우물은 모두 7개나 됩니다. 
아마 창세기 전체를 놓고 볼 때 이렇게 많은 우물과
관련된 사람은 오직 이삭 한 사람 뿐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하면 대뜸 '우물 파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부터 먼저 떠오릅니다.
우물을 팠다, 그것도 옮겨가는 곳마다 우물을 팠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던져주는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먼저 '우물'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중동 지방은 사막 지대이기 때문에 '물'이 생명처럼 귀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최고로 축복받은 상태의 이미지는 시 1편에 나오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같은 상태입니다.
항상 먼지 날리는 사막 지대에서 사는 사람들이 물을 축복의 근원으로 여긴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물' 역시 생존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온 식구들이 마실 물 뿐 아니라 가축들이 마실 물 역시 우물에서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삭은 생존을 위해서 가는 곳마다 우물을 팠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이삭이 왜 우물을 파게 되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창 26: 1을 보면 이삭은 고향 땅에 흉년이 들자 그랄의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갔습니다.
흉년하면 물이 부족한 것 아닙니까?
그러니 이삭과 온 식구들이 마실 물을 확보하기 위하여 그랄 땅으로 갔던 것이지요.
물을 찾아 그랄 땅에 갔는데 거기에서 이삭은 엄청난 축복을 받습니다.

본문 12-14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여기 보세요.
이삭이 그랄 땅에 가서 농사를 지었는데 그 해에만 백 배의 소출을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고향 땅이 흉년이 들어서 잠시 이주해 온 그랄 땅에서 백 배의 추수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거부가 되어서 양과 소, 남종과 여종을 수없이 많이 거느리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삭이 성경에 나오는 3대 거부 중에 하나라고도 합니다.

① 첫 번째 우물을 흙으로 메우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발생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하는 것입니다.
자기네 땅으로 이주해 들어온 타관 사람이 자기들보다 더 잘 살게 되니까 시기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말에도 '텃세'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본래부터 터 잡아 살던 사람들이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을 은근히 경계한다는 말이지요.
그러기 때문에 그랄 사람들이 거부가 된 이삭 일가를 시기했다는 말은 이해가 갑니다.
이 때문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의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워버렸습니다.
이삭의 식구들과 가축들이 마실 물을 끊겠다는 생각이지요.

중요한 것은 이 첫 번째 우물은 이삭이 직접 판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판 우물이었습니다.
거부가 된 이삭은 그 옛날 아버지가 파놓은 우물 덕분에 처음에는 물 걱정을 안 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이 그 우물을 흙으로 메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삭의 우물파기가 시작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시기를 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나갈 때 특히 시기가 심합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듯이 사람들은 남이 잘되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특히 친구가 자기보다 더 행복한 것에 대해서 참지 못합니다.

블레셋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타관객지 사람이 자기 동네에 흘러 들어와 자기들보다 더 큰 부자가 되었으니 좋아하겠습니까?
그래서 이삭에게 골탕을 먹이려고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우물을 메워버렸던 것입니다.

우물만 막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노골적으로 이삭에게 다른 곳으로 떠나라고 요구까지 했습니다.
본문 16절에 보면,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 즉 우리를 떠나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물을 막았다는 것은 이미 선전포고를 한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사람이나 육축이나 물은 생존권과 직결되어 있는데,
그 물을 끊었다는 것은 이미 선전포고요, 추방명령인 것입니다!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은 아예 추방명령까지 함께 내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당했을 때 이삭이 보여준 태도가 중요합니다.
화를 낸다든지, 복수를 하려고 한다든지, 사람을 찾아가서 따진다든지,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묵묵히 그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서 제일 먼저 우물부터 다시 팠습니다.
대항하거나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서 우물부터 파기 시작했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 이삭 스스로의 여섯 차례에 걸친 우물파기가 시작된 것입니다.
정확하게 일곱 개의 우물이 나오지만 첫 번째 우물은 이삭이 판 우물이 아니라
아버지 아브라함이 파놓은 우물을 이삭 일가가 덕을 보았던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때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시기를 받고 모함을 받고 상처를 받고 넘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똑같은 방법으로 대항해서는 이길 수 없습니다.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수단을 써서는 이길 수 없습니다.
그저 묵묵히 물러서고 양보하고 지는 것처럼 보일 때 오히려 이길 수 있습니다.

② 두 번째 우물을 파다
이삭을 보세요!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해서 우물을 메우고 다른 곳으로
떠나라고 퇴거(退去) 명령을 내렸을 때, 인간적인 방법으로 대항하지 않았습니다.
소리 없이 그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서 거기에서 또 우물을 팠습니다.
우물을 팠다는 말은 묵묵히 자기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을 했다는 말씀이지요.

더욱이 자기가 수고해서 판 우물이 아니라
아버지 아브라함이 파놓은 우물 덕을 보다가 자수성가(自手成家)의 길을 나섰다는 것입니다!
이삭은 개척정신을 가지고 스스로 우물 파는 작업에 뛰어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창 26장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삭의 우물파기의 내력이 좀 특별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삭이 직접 판 우물은 모두 6개인데 그 파게 된 동기가 각각 다릅니다.
첫 번째 우물은 그랄 평원으로 옮겨가서 파게 되었는데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을 다시 팠습니다.
이 우물은 아브라함이 죽었을 때 블레셋 사람들이 메웠던 우물입니다.
옛날 있던 우물을 막아놓은 것을 다시 파니 훨씬 수월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 옛날 아버지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을 다시 파는 이삭의 감회는 남달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름도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 그대로 불렀습니다.

여러분, 사막 지대에서 우물을 판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물줄기, 즉 샘의 근원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미 아버지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의 흔적이 있으니 쉽게 팔 수 있었습니다.

창 26장에 등장하는 총 7개의 우물 가운데 처음 두 개의 우물은
조상인 아브라함 덕을 톡톡히 본 우물이었습니다.
첫 번째 우물은 이삭이 아무 수고도 하지 않고 아버지가 이미 파놓은 우물이었습니다.
두 번째 우물도 이미 흙으로 메워놓은 우물이기는 하지만
다시 파기만 하면 되는 손쉬운 작업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처음 두 번은 조상 덕에 의지했는데 세 번째부터는 완전히
개척정신을 가지고 이삭이 직접 판 우물들이라는 사실에서 중요합니다. 

③ 개척정신으로 세 번째 '에섹' 우물을 파다
이삭이 직접 판 두 번째 우물은 그 종들이 그랄 평원에서 새로 개척해서 판 우물이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막 지대에서 물줄기를 찾는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요즈음도 수맥(水脈)을 찾는 사람들이 있지만 샘물줄기를 찾는다는 것은 퍽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이삭의 종들이 물이 펑펑 솟아나는 샘줄기를 찾았는데
그랄 지방 목자들이 자기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수맥을 찾기는 이삭의 종들이 찾았는데 그랄 지방 사람들이
텃세를 부리면서 자기네 것이라고 우겼다는 것이지요!
이번에는 이삭의 종들도 참을 수가 없어서 그랄 사람들과 다투었습니다.
처음 두 우물은 아브라함이 수고해서 판 우물들이었기에
양보할 수 있었지만 세 번째 우물은 달랐습니다.
자기들이 피땀 흘려 직접 얻은 우물이었기 때문에 애착심이 남달랐던 것이지요!
이와 같이 세 번째 우물은 다투었다고 해서 '에섹,' 즉 '다툼의 우물'이라고 불렀습니다.

④ 네 번째 우물, 싯나 우물을 파다
자, 그런데 이번에도 이삭의 모습은 참 의연합니다.
그 다툼의 우물, 에섹을 그랄 사람들에게 줘버리고 다른 우물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이 네 번째 우물에 대해서도 그랄 지방 목자들이 시비를 걸었습니다.
텃세를 부리며 자기네 것이라고 우겨대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우물 이름도 '싯나,' 즉 '반대의 우물'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랄 사람들이 그 우물에 대해서 반대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던 것이지요.

여러분, 이삭이 우물을 빼앗긴 것이 벌써 네 번째 일입니다.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화가 머리끝까지 났을 것입니다.
더욱이 자기들이 직접 피땀 흘려서 개척한 우물들이었기에 종들이 다투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또 참습니다.

⑤ 다섯 번째 우물, 르호봇 우물을 파다
22절을 보세요.
이삭이 거기에서 옮겨 또 다른 우물을 팠는데, 재미있는 것은
그 때부터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재미있는 말씀입니까?
네 번씩이나 억울한 일을 당해서 자기가 고생고생해서 판 우물까지 빼앗겼음에도
참고 양보했더니, 이제 다섯 번째 우물부터는 시비를 거는 사람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이삭이 잘되는 꼴을 보지 못해 "너 죽고 나 죽자!" 하면서
우물을 메우고 빼앗았던 사람들이 마침내 무릎을 꿇었다는 말씀이 아닙니까?
이삭이 승리한 것입니다.
잘 참고 너그럽게 양보했더니 원수까지도 더 이상 시비를 걸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22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가로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참 놀라운 말씀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서 네 번씩이나 잘 참고 묵묵히 자기 할 일을 다했더니
이삭이 승리하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텃세를 부리던 그랄 사람들이 더 이상 생떼를 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다섯 번째로 판 우물을 이삭은 '르호봇,' 즉 '넓은 우물'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우물 있는 곳에서 주님께서 이삭 일가의 지경을 넓혀주셨고
또 번성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감사해서 '르호봇'이라고 불렀던 것이지요!

여러분, 억울한 일을 당해도 잘 참고 이겨내면 하나님께서 르호봇의 축복을 주십니다.
우리를 훼방하고 괴롭히던 사람들이 패배를 당하고 우리가 승리하게 됩니다!
우리의 지경이 더 넓어지고 더 좋은 축복의 우물을 얻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잘 참고 이겨내며 양보하는 너그러운 사람들이 결국 르호봇의 축복을 얻게 됩니다!
져주고 양보하고 참는 사람이 최후 승리자가 됩니다!

⑥ 브엘세바에서 제단을 쌓은 뒤 여섯 번째 우물을 파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23-25절에 보면 이삭이 브엘세바로 올라가서 제단을 쌓고 주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네 번째 우물을 파기까지는 마음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억울한 일도 당했습니다.
그러나 져주고 양보했더니 다섯 번째 우물부터는
다툼이 사라지고 축복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감사해서 브엘세바로 갔는데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 날 밤 이삭은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자기와도 함께 계셔
복을 주시어 그 자손을 번성케 해주시겠다는 약속을 듣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제 여기에서 여섯 번째 우물을 팠습니다.
그러므로 여섯 번째 우물은 예배 중심적인 삶을 사는 가운데 판 축복의 우물이었습니다!

⑦ 최후 승리의 우물, 제 7우물, 세바의 우물을 파다
자,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창 26: 26-33에는 더욱 놀라운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삭이 판 다섯 번째 우물부터는 더 이상 시비를 걸지 않게 된 블레셋 왕과
높은 사람들이 이삭을 찾아와 평화조약을 맺자고 간청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 27-29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로 너희를 떠나가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며
너로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이게 무슨 말입니까?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높은 신하들을 데리고 이삭을 찾아왔을 때 이삭은 어리둥절했습니다.
"아니, 제가 판 우물을 빼앗고 저를 내치실 때는 언제고 지금 어떻게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블레셋 왕의 대답이 놀랍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삭과 함께 하심을 똑똑히 보았기에
이제 이삭과 평화조약을 맺어서 후환을 막아야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라와 나라 사이에 누가 먼저 평화조약을 맺자고 청원합니까?
힘이 약한 쪽이 아닙니까?
한 때 이삭이 판 우물을 빼앗던 블레셋 사람들이
이제 이삭을 두려워해서 평화조약을 맺자고 나섰다는 것은
블레셋이 이삭에게 무릎을 꿇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만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이삭이 강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지요!
이방 사람 블레셋 왕이 보기에도 이삭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한 때 타관 객지 사람이라고 텃세를 부리며 우물을 빼앗고 다른 땅으로
이삭 일행을 내쫓던 사람들이 마침내 이삭 앞에 굴복했습니다!
이삭이 블레셋 사람들을 이겼던 것입니다!

어떻게요?
똑같은 방법으로요?
그렇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내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운다고 해서 나 역시 똑같은 방법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나를 억울하게 손해 주고 내친다고 해서 동일한 방법으로 상대방에게 해코지하지 않았습니다!
정반대로 져주었습니다.
양보했습니다.
한 우물을 막으면 다른 곳으로 가서 또 다른 우물을 팠습니다.
져주고 양보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은 채 묵묵히 내할 도리를 다했던 것이지요!
그랬더니 이삭이 최후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삭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기에 우리가 도저히 이길 수 없다!"

이렇게 해서 이삭이 최후 승리자가 되었는데 본문 말씀의 결론이 아주 중요합니다.
32-33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 날에 이삭의 종들이 자기들의 판 우물에 대하여 이삭에게 와서
고하여 가로되 우리가 물을 얻었나이다 하매 그가 그 이름을 세바라 한지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에게 무릎을 꿇은 날, 마지막 일곱 번째 우물을 파게 되었는데
그 이름을 '세바,' 즉 '맹세의 우물'이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는 이삭에게 해를 끼치지 않겠다고 맹세한 날을 기념하는 우물이지요!

그런데 이 '세바'라는 이름은 '일곱'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직접 파놓아서 조상 덕으로 마실 수 있었던 첫 번째 우물로부터 시작해서
아브라함이 파놓은 우물을 막아놓은 것을 다시 팠던 두 번째 우물,
세 번째 에섹의 우물, 네 번째 싯나의 우물, 다섯 번째 르호봇의 우물,
그리고 브엘세바에서 주님 앞에 제단을 쌓고 판 여섯 번째 우물,
그리고 마침내 최후 승리를 거둔 다음에 일곱 번째 우물(七井), '세바'가 생겨난 것입니다! 

<양보하고 개척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삭의 일곱 우물이 가르쳐주는 영적 교훈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 억울한 일을 당해도 묵묵히 참고 너그럽게 양보하면
하나님께서 이전보다 더욱 큰 축복을 주십니다.
오늘 이삭에게 관대하고 인내하는 마음을 배우십시오!
한 우물을 막으면 다른 우물을 파십시오!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한 최후 승자는 여러분이 될 것입니다!

둘째로, 개척정신을 가지십시오.
이삭은 거부가 된 다음에 그저 아버지 아브라함이 파놓은 우물 신세만 지고 있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 우물을 막자 두 번째 판 우물도
이미 아브라함이 파놓았던 자리를 발견하고 쉽게 다시 팔 수 있었습니다.
물줄기를 다시 찾는 수고를 하지 않고서도 쉽게 팔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하여 쉽게 찾은 처음 두 개의 우물은 새 이름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부르던 이름 그대로 불렀던 것입니다!

그러나 세 번째 우물부터는 달랐습니다.
자기 힘으로 고생하면서 자기 노력으로 팠습니다.
개척 정신을 가지고 물줄기를 찾았고, 땀흘려 땅을 파서 우물을 만들었던 것이지요!
놀라운 것은 이렇게 직접 수고해서 우물을 판 다음부터는 블레렛 사람들과
두 차례 정도 더 시비가 있었지만 축복의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개척정신을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돕습니다!
남에게 의존하려고 하지 마시고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십시오!
그리하면 이삭의 일곱 우물의 축복이 오늘 여러분의 축복이 될 것입니다. 아멘. 
(김 흥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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