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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비뽑기 (욘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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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성도들이 사는 세상은 시시각각 중요한 선택을 해야 되는 결단의 시간들이 필요합니다. 사람을 선택할 때도 그렇고, 어떤 일을 결정할 때도 이것이 최선의 선택인가 하며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 속에 나타난 제비뽑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의도와 뜻이 어떻게 나타나며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수용해야 할 것인가를 본문 요나서 1장 7절을 통해서 깨닫기 원합니다.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이 거친 풍랑으로 인하여 목숨을 걸고 파도와 싸우고 있을 때, 홀로 깊은 잠에 빠져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요나였습니다. 모두가 어려운 고난 속에서 어떻게 하면 이 시련을 극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을 때 그는 깊이 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확신하건데 그의 잠은 평안을 동반한 주님께서 주시는 잠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외형적으로는 깊이 잠 들어 있었지만 진정 그것은 참된 평안의 시간을 아니었을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깊은 잠을 자고 있는 요나를 가리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나는 지금 사망의 잠을 자고 있다..." 놀랍게도 이 죽음의 잠을 자고 있던 요나를 깨운 사람은 다름 아닌 선장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요나가 잠들어 있을 때, 그의 양심이 마비되어 모든 사람들이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 몸부림 치고 있을 때, 혼자 떨어져서 왜곡된 평안을 누리고 있는 요나를 깨우며 각성시킨 사람이 선장이었습니다.

이 선장은 배에 탄 모든 사람을 대표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과학적인 분야에 속한 사람이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상징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요나를 깨운 사람이 바로 그였다는 사실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 의하여 잠들어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깨움을 받은 것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보면 그러한 일 자체도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일이 참으로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으로만 은혜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중보 기도의 시간에도 큰 은혜가 된 줄로 믿습니다. 오늘 낮 2부 예배 기도는 참으로 은혜로웠습니다. 제가 먼저 기도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기도하신 김종현장로님을 제가 안지가 벌서 30 여년이 됩니다만 오늘 기도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정말 준비 많이 하신 것 같아요. 성도들이 기도를 통하여 "오늘 이 기도는 정말 준비가 많이된 기도다" 라고 느겨질 때 감동도 오고 동감도 되는 것이지요.

때론 아이들을 통해서도 깨닫기도 하고, 직장 생활을 통하거나 심지어 자연적인 현상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신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19편 1절을 보면,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느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런 의미에서 보면 선장을 통하여 요나를 깨닫게 하시고 각성시킨다는 것 역시 하나님의 손길로 보아도 무리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주 만물이 하나님의 손길 가운데 있고, 하나님의 섭리가 그 가운데서 역사하신다면, 하나님께서 선장을 통하여 잠자는 요나를 깨워 주신 것도 큰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큰 배였지만 배가 깨어질 만큼 풍랑이 일자 선원들과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먼저 이 재앙이 누구 때문에 임하였는지를 알기 위해 제비를 뽑도록 결정하였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 제비뽑기를 결정한 사람이 요나가 아니라 사람들, 곧 선원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최근에 와서 제비뽑기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속에 화두이기도 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속한 감리교회도 감독회장이나 연회 감독을 뽑는 일에 제비뽑기를 채택하도록 요청하는 단체들이 강력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11월 말에 제주에서 개최된 입법총회에서도 아주 근소한 표차로 부결된바 있을 정도로 제비뽑기는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다른 교단에서는 이미 실시하고 있는 곳도 있어서 머지않아 실현 가능성이 아주 높아 보이는 제도입니다.

제비뽑기에 대한 성경적 기록을 보면 아주 다양한 부분에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민수기 26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정복한 뒤, 12지파에게 땅을 기업으로 분배할 때에 공정성을 기하기 위하여 제비를 뽑았습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북쪽 갈리리 지방은 남쪽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도 오고 갈리리 호수로 인하여 농사나 목축을 하는데 아주 유리합니다. 반면에 남부지역은 광야로서 농사짓기에 적합치 않고 더구나 네게브 사막은 비도 오지 않는 곳이어서 인간이 거주하기에도 힘든 지역입니다.

열두지파에게 축복의 땅 가나안을 공정하게 나누어 줄 방법을 고민하던 여호수아는 결국 지파별로 제비뽑기를 통해 불평 없이 각 지파들에게 땅을 기업으로 얻도록 했습니다. 또한 여호수아 7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첫 번째 성인 여리고를 향해 진격할 때 하나님께서 여리고성을 하루 한 번씩 그리고 마지막 칠일에는 일곱 번 성을 돌고난 뒤 함성을 지르도록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난공불략의 여리고성을 무너뜨릴까에 대한 방법론에 대한 연구보다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역사를 잠잠히 기다리면서 순종할 수 있을까를 더욱 더 중요시 여겼던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이 문제를 놓고 토의를 했다면 수 백만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주일이 아니라 일년이라도 시간이 모자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침묵하게 하시면서 묵묵히 여리고성을 돌도록 하셨습니다. 돌면서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기도하며 사모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일주일이 되는 마지막 날 아침 새벽부터 일곱 바퀴를 돌게 한 뒤에 큰 함성으로 여리고성은 무너진 줄로 믿습니다.

그 당시 여호수아가 가장 강조한 것이 있었습니다. 여리고 이 성은 가나안에서 들어가면서 첫 번째 성이기에 곧 하나님께 바치는 의미에서 사람이든, 물건이든, 동물이든 어떤 것이든지 취해서는 안 된다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나 아간은 시날산의 외투와 은 금 보화를 숨겼습니다. 이 다음에 가나안 정복이 끝나고 나면 다시 돌아와 숨겨둔 금 은 보화를 가져가리라고 계획하였습니다.

문제는 아이성이라는 작은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대패함으로써 여호수아와 백성들은 통곡했습니다.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아이성에게 패배했는지 이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희 안에 도둑질 한 자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 아간을 밝혀내는 일에 여호수아는 제비를 뽑도록 했습니다. 지파별로, 가문별로, 가정별로 제비를 뽑자 장본인 아간이 드러나게 되었고, 그는 심판을 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무엘상에 보면 사무엘이 이스라엘에 초대왕을 뽑을 때 여러 지파중에서 베냐민 지파를 정하고, 베냐민 지파에 각 족장들에게 제비를 뽑아서 어느 자손의 왕을 배출하게 할 것인가를 선택하게 됐을 때 사울왕의 집안이 선택이 되었습니다.

신약으로 넘어오면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열두 제자 중에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고 그는 죽었습니다. 이제 열한 제자들이 모여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열두 제자를 주님께서 뽑으셨기 때문에 한 사람의 부족한 제자를 선택해야 하겠는데, 그들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그들이 기도하면서 의논하고, 그들이 기도한 후에 제비를 뽑아서 맛디아를 열두제자를 포함시켰다고 했습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은 이렇게 하나님의 중요한 사람들을 뽑을 때나 하나님의 중요한 일들을 결정할 때 제비를 뽑아서 하나님의 뜻으로 그들은 수용을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제비뽑기와 비슷한 방법들이 많이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어떤 잘잘못을 구할 때 주머니 안에 검정돌과 흰 돌을 두 개를 놓고서 흰 돌이 나오면 무죄를 검정돌이 나오면 유죄를 선고하는 그런 방법도 있었습니다. 아마 세상사람들이 생각하면 아마 그것은 재수에 달린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할지도 모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아주 근본적인 신앙고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참새 한 마리도 떨어지면 안 된다는 아주 중요한 고백이 있습니다. 잠언 16장 33절에 보면 사람이 제비를 뽑으나 이를 작정하기는 여호와에게 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먼저 고백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저도 그 고백에 동의 합니다. 제비를 뽑는 것은 사람이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 고백이 되어지지 않는 사람들은 이 이야기는 아마 큰 감동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전교인초청운동회를 하고 나면 많은 선물들이 준비되어져 있는데 제가 준비하는 선물부터 장로님, 권사님들이 준비하는 귀중한 선물들이 준비될 때마다 자전거나 세탁기나 전자렌지나 그런 좋은 선물들이 준비될 때 저는 기도합니다.

하나님, 오늘 운동회에서 이 추첨을 할 때 우리가 저나 여러 사람들이 제비를 뽑지만 바라기는 이 선물이 꼭 필요한 성도에게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혹 교회 생활 하면서 여러 가지로 상처를 받은 성도가 있거나, 혹 교회생활 하면서 위로가 필요한 성도가 있거나, 삶에 고단하거나 이러한 것이 꼭 필요한 성도가 있다면 그들에게 이 선물들이 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운동회가 있으면 저는 꼭 이런 기도를 합니다. 제비를 쭉 뽑아갑니다만, 많은 제비 중에 그 중요한 선물들이 뽑혀가는 것을 보면서 저는 너무 감사할 때가 많아요. 너무나도 그 선물이 필요한 성도들에게 필요한 가정들에게 전달되어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 하나님은 너무나 정확한 분이라는 사실에 제 스스로 놀라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비가 요나에게 뽑혔습니다. 오늘 7절 마지막에 보면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당한지라 그랬습니다. 요나에게 당한지라라는 말은 새로운 번역으로 보면 제비가 요나에게 떨어졌다. 그렇게 번역되고 있습니다. 제비가 요나에게 떨어졌습니다.

1등에 당첨해서 세탁기가 떨어졌다면 저에게 좋은 일일텐데, 지금 이 장면은 누구 때문에 이 풍랑이, 누구 때문에 이 사망의 고통에 알아보자고 하는 그리고 책임을 묻겠다고 하는
그러한 제비기 때문에 이 제비는 뽑혀서는 안 된다고 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요나에게 그 제비가 떨어졌습니다. 큰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감당해야 하는 결과를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압니다. 제비가 그에게 떨어졌을 때 그에게 닥칠 수 있는 그가 감당해야 할 책임은 사망의 음침한 고통을 겪는 경험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감당해야 할 수 없는 고통을 그는 겪어야 하는 그런 일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요나에게 제비가 떨어졌다고 하는 의미는 저는 참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손길이라고 하는 사실을 몇 가지로 여러분에게 드리기를 원합니다. 제비가 요나에게 떨어졌다고 하는 의미는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다시 요나에게 임했다고 하는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피해서 멀리 가려고 자신이 온갖 지혜와 방법을 동원했지만, 요나에게 제비가 떨어졌다고 하는 것은 다시금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에 요나가 붙잡혔다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떠나지 않으셨다고 하는 가장 구체적인 증거라고 하는 것이지요. 때때로 우리는 우리의 사명의 자리를, 우리를 사랑하심에도 불구하고 그 사명의 자리를 떠나려고 하는 인간적인 방법을 가질 수 있을 때 그럴 때 요나에게 제비가 떨어짐으로써 이제는 요나는 파멸입니다. 이제는 바다에 던져서 죽어야 하는 선택입니다.

그거까지 보면 제비에 선택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요나에게 제비를 뽑게 했다고 하는 것은 요나에게는 죽음이요, 멸망이요, 파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걸음 더 선택해 보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에 요나가 다시 붙잡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요나가 제비를 뽑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요나를 구원하시겠다고 하는 의미인 줄 믿습니다. 외형적으로는 선원이 제비뽑기를 해서 뽑힌 사람은 바다에 던져서 죽여버리자라고 결정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요나가 제비를 뽑혀서 그가 바다에 던지워 죽는 것이 아니라 그가 그 고통의 과정을 통해서 요나를 다시금 구원하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담겨져 있는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요나가 제비가 뽑혔다고 하는 의미를 생각할 때에 그것은 하나님께서 요나를 통해서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뜻인 줄로 믿습니다. 네가 니느웨로 가서 수많은 백성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증거함으로,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을 선포함으로 회개시켜서 그들도 살고, 너도 살고 모두가 살 수 있는 윈윈전략을 하나님은 가지고 계셨어요.

하나님은 요나를 통해서 혼자 자신의 평안함을 위해서 다시스로 가는 길을 하나님 앞에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수고스럽지만 땀 흘려야 하는 것이지만 니느웨로 가는 것이 많은 두려움이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결국은 니느웨도 살고, 요나 자신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으로 약속하신 축복의 근원이 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제비뽑기가 요나처럼 되어졌다고, 우리가 스스로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마세요. 그러나 그 제비뽑기 속에 담겨진 주님의 깊은 뜻을 우리가 헤아릴 수 있다고 하는 그것은 곧 은혜요, 사랑이요, 하나님의 섭리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요나를 갱신시키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요나를 거듭나게 하기를 원했습니다. 이전의 요나가 아닌 새로워진 요나로 주님은 바꾸기를 원했습니다. 감동적인 글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솔개 이야기입니다. 솔개는 조류 중에서 가장 장수하는 조류로 알려져 있습니다. 보통 70년 정도를 산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70년 산다고 하는 것은 모든 솔개가 그렇게 산다는 것이 아니라 70년의 장수를 하려면 약 40년 정도 되었을 때 매우 고통스러운 결단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솔개가 약 40세 정도가 되면 발톱이 노화되어서 사냥감을 쥐어 잡는데 효과적으로 못하다고 합니다. 부리도 너무나 길게 자라고 구부러져서 가슴에 닿을 정도가 되어서 부리도 제 구실을 할 수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깃털도 너무 길고 무거워서 잘 날 수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솔개가 자유롭게 높이 날아 오를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 솔개에게 있어서 40년 정도가 되면 부리나 혹은 발톱이나 혹은 날개나 솔개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 때 솔개는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대로 큰 부리, 무거운 날개, 무뎌진 자기의 발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가 40세 전후에 죽을 것인지, 약 6개월에 걸친 갱신의 과정을 거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합니다.

갱신의 길을 선택한 솔개는 먼저 산 정상 부분으로 날아 올라가서 거기에 자기의 집을 트고, 그리고나서 이제 고통스러운 과정을 시작합니다. 제일 먼저 부리로 바위를 쪼아서 부리가 깨지게 만든다는 것이지요. 부리가 다 깨지고 나면 남은 부리 뿌리가 떨어진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얼마 후면 새로운 부리가 자라기 시작합니다. 부리가 새로 자라고 나면 그러면 남은 부리 가지고 발톱을 쪼아서 발톱을 다 뽑아낸다고 하는 것이지요. 뽑아낸 발톱들에게서 새로운 발톱이 돋아나면 그 다음에는 자기의 무거운 날개의 깃털을 뽑아낸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새 깃털이 돋아나는데, 이 과정이 약 6개월 정도 걸린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부리를 깨뜨려서 새로 나게 하고, 자기의 발톱을 다 뽑아서 새 발톱이 나게 하고, 자기의 깃털을 뽑아서 새로운 깃털이 나고 나면 그러면 이 솔개는 솔개다운 매서움과 높이 날 수 있는 힘을 가지고서 30년 정도의 수명을 더 연장시킨다고 하는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재탄생의 과정을 생략하고, 그냥 40년의 생명을 마칠 것인지, 고통스러운 갱신의 과정을 거쳐서 30년의 삶을 더 영위할 것인지는 스스로 선택에 달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 평안의 공동체도 새해에는 새롭게 출발하자고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리고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하던 것 그대로 하는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고통스러운 갱신의 솔개와 같은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지난 22년도 하나님의 은혜로 감당할 수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새로운 출발에 결단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도태 할지, 아니면 비상하는 그런 새로운 날개를 가져야 할 지는 이제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선택을 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우리로 하여 새롭게 하옵소서. 저는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표어로 ‘새 포도주는 새 부대’라는 표어로 정했습니다. 그것은 지난 저의 기도하면서 주님께서 저에게 주신 특별한 말씀의 내용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대도 터지고, 포도주도 버리게 된다는 주님의 교훈을 22년이 된 시점에 저에게 주신 것은 매우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통해서 제비가 뽑혀지고, 그를 통해서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하는 고통을 당하게 하고, 사망의 음침한 어려움을 겪게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요나를 통해서 새롭게 하시는, 거듭나게 하시는 그리고 그를 통해 구원하시고, 구원 받은 요나를 통하여 축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 모든 자연의 현상은 심은 대로 거둔다고 합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고 하는 이 자연현상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칙입니다. 주님, 우리가 주님 앞에서 이 하나님의 오묘하심,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우리가 기억하게 하시고 이제 우리의 새로운 변화, 이제 새로운 삶의 변화를 위하여 결단할 수 있는 용기와 믿음도 주시옵소서.
요나를 사랑하시기에 요나의 새로운 시련을 주셨고, 요나에게 많은 고통을 주셨으나 결국 그를 통하여 복의 통로로 삼으심을 믿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의 주인공이 되게 시고, 우리로 하여금 복의 통로가 되게 하신 놀라운 역사를 체험케 하심을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황요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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