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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십계명강해(7)] : 이웃의 가정은 소중한 것이다 (신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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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숙한 혼인서약

목사가 되고 보니 저는 나이에 비해 일찌감치 결혼주례를 서게 되었습니다. 생애 첫 번째 주례는 부목사였던 서른세 살 때 섰는데 결혼 전에 인사를 하러 온 신랑이 왠지 나이가 좀 들어 보여 나이를 물어보니 저보다 한 살이 많았습니다. 첫 주례를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놓고 했으니 이런 경험을 한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결혼주례를 설 때 가장 중요한 순서 중 하나가 바로 혼인서약입니다. 주례를 설 때 전에는 제가 서약 내용을 읽으면 신랑과 신부가 큰소리로 ‘예’라고 했지만, 얼마 전부터는 신랑신부가 직접 자기 입으로 따라하도록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혼인서약 시간에 신랑은 자기 입으로 이렇게 서약합니다. “하나님과 이 모든 증인 앞에서 나 ◯◯◯은 신부 ◯◯◯를 아내로 맞아 평생토록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병들 때나 부유할 때나 가난할 때나 항상 아내를 사랑하고 성실한 남편이 될 것을 지금 서약합니다.” 마찬가지로 신부도 자기 입으로 서약합니다. “하나님과 이 모든 증인 앞에서 나 ◯◯◯는 신랑 ◯◯◯을 남편으로 맞아 평생토록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병들 때나 부유할 때나 가난할 때나 항상 남편을 사랑하고 성실한 아내가 될 것을 지금 서약합니다.”

이렇게 혼인서약은 결혼의 신성함과 소중함, 그리고 배우자에 대한 신뢰와 정절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제가 혼인서약을 직접 자기 입으로 말하도록 한 것은 이 서약에 더욱 책임감을 가지라는 의미입니다. 바로 본인의 입으로 결혼 생활 중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아무리 상황이 바뀌어도 아내와 남편에 대한 이 신뢰를 저버리지 않으리라는 신성한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숭고한 결혼서약의 목적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썩 다릅니다. 한국은 급격한 이혼율 증가로 인해 1990년대 말 이미 아시아 최고 이혼국이 되었습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한국과 주변 아시아국가 28개국의 이혼율을 비교한 결과에 따르면 1991년 이혼율 1.06%에 불과했던 한국은 1998년부터 아시아 최고 이혼율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이혼율만 가지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1999년 한국의 이혼율이 2.19%라고 한다면 나머지 98% 정도의 가정은 안전하냐? 그것이 아니니까 더 큰 문제라는 말입니다. 겉으로 볼 때는 비록 이혼도 별거도 안 하고 건강해 보이는 가정인데 속으로 들여다보면 곪을 대로 곪아 있는 병든 가정이 너무도 많다는 것입니다. 바로 간음과 외도, 그밖에 이유로 인해 부부간의 신뢰가 깨어질 대로 깨어진 가정들입니다.

미국 등 다른 나라에는 간통죄라는 법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한국에는 아직도 엄연히 간통죄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또 혼인빙자 간음죄라는 죄도 다른 나라에는 없는 경우가 많지만 아직도 한국에서는 존재합니다. 몇 차례 이런 법을 없애자는 여론도 있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거절되었는데 그 내면적인 이유를 들여다보면 아직도 한국에는 유교적인 전통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부부간의 예와 정절을 소중히 여기는 유교적 전통 말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법이 가정의 정절을 지켜주는 것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비록 정확한 통계는 나올 수 없지만 한국은 미국이나 다른 어떤 나라에 비해 절대 간음이나 간통이 적지 않은 나라입니다. 그 까닭을 무엇인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나라는 뿌리 깊은 유교적 전통 때문에 정절을 중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러니하게도 남자의 외도가 어느 정도 인정되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가 엄연히 살아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남자가 첩을 거느리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고 첩에 대해 투기하는 아내를 칠거지악으로 몰아붙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잘못된 전통은 오늘날까지 살아있어서 남자가 외도하다 들키면 남자가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하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런데 요즈음 들어 뒤바뀐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여성들 남편에게 당하고만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외도하면 아내도 이에 맞서 “여자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 있느냐”며 똑같이 행동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심지어 요즈음 젊은 부인들 사이에 “애인 하나 없으면 바보”라는 말까지 떠돈다고 하니 도대체 이 세대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음풍(음란한 풍속)이 전국에 퍼져 죄악이 가득할까 하노라”(레 19:29)는 말씀처럼 우리나라 우리 사회가 점점 더 성적으로 타락해가고 그래서 소중한 가정이 깨어지고 파괴되며 부부가 결혼할 때 했던 그 엄숙한 혼인서약은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경우가 너무도 많습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오늘 설교를 들으면서 “너무 적나라한 것 아니냐? 왜 엄숙한 설교 시간에 저런 이야기를 거침없이 하는가?”라고 반문할 분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이야기는 반드시 설교 시간에 해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가정을 소중하고 거룩하게 창조하셨기 때문에 부부간의 신뢰가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사회가 하나님의 뜻과 분명 다른 길로 가고 있으며 성경의 진리를 깨뜨리고 있는데 교회가 침묵하고 설교가 침묵하면 안 됩니다. 더욱 중요한 이유는 이 문제가 더 이상 이 사회나 교회 밖만의 문제가 아니며 교회를 다니는 성도들조차 이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성도들 가운데 많은 가정이 이미 부부간의 외도로 파괴되고 간신히 가정의 모습은 유지할 지라도 부부 간에 무서운 불신과 의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더욱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간음

오늘 본문을 보면 십계명의 제7계명인 “간음하지 말라”는 명령이 나옵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를 규정한 여섯 개의 계명 중 첫째가 ‘약속 있는 첫 계명’ “부모를 공경하라”였고 두 번째가 “살인하지 말라”였는데 인간 사이의 계명 중 세 번째가 바로 “간음하지 말라”입니다. 인간 사이에 중요한 일들이 수없이 많을 터인데 그 가운데 간음 문제를 세 번째로 비교적 중요하게 다룬 것은 그만큼 가정이 소중하며 부부간의 신뢰감이 소중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에도 이 간음 문제가 심각하지만 그 옛날, 십계명이 나오던 시대에도 심각한 사회문제였다는 말인데 도대체 어쩌다 그렇게 된 것일까요? 물론 당시에도 일반적인 의미의 외도나 간음이 많았겠습니다만 이렇게까지 십계명이 간음을 큰 죄악으로 규정하는 데에는 특별한 배경이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은 다신교를 믿었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만 그 수많은 신들 중에 가장 중요하고도 인기 좋은 신이 바로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신들이었습니다. 당시는 주로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비가 제 때 제 때 때맞춰 내려줘야 하고, 가뭄이나 홍수가 들지 않고 풍요로운 수확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은 다산을 상징하는 신이 있다고 믿고 그 신에게 날마다 제사 지내며 풍년을 간구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신이 바로 가나안의 바알과 아낫 신입니다. 바알(Baal)이라는 남성 신은 풍요와, 비를 가져다주는 폭풍우의 신이고 아낫(혹은 아세라)은 그의 부인인데 가나안 사람들은 이 두 신의 성 관계(sexual intercourse)를 통해 농산물이 자라고 풍요가 온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알 신전에 이른바 신전 창기(temple prostitute)를 두고서 그들과 성 관계를 맺음으로써 바알과 아낫의 성 관계를 재현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알 숭배는 필연적으로 성적 타락과 연결되어 있고 성경은 이것을 더욱 큰 죄악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간음이 여러 가지 의미에서 큰 죄라고 말씀합니다. 무엇보다 간음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죄가 됩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창조하시고 신성한 창조질서로 일부일처제의 법을 세우셨습니다(창 2:21~25). 따라서 간음이란 단순히 성적인 범죄이기 이전에 이러한 하나님의 법과 질서를 깨뜨리는 행위인 동시에 그 법을 세우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큰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누구든지 간음하는 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며(신명기 22장 등) 신약시대에 예수님은 한발 더 나아가 마음에 품는 음욕조차도 간음이라고 해석하신 것입니다(마 5:28).




간음의 결과와 그 해결방법

어떤 시사프로그램에서 ‘어른아이’라는 문제를 다룬 것을 보았습니다. ‘어른아이’란 심리학적 용어인데 쉽게 말하면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 때 겪은 경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거나 폭력에 시달린 아이들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그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 자신을 학대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부모를 증오하며 “나는 나중에 절대 저런 부모가 안 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건만 불행하게도 이런 아이들 중에 나중에 똑같이 자기 자녀를 학대하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부모가 나올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입니다. 성적인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외도를 해서 날마다 집안이 편안할 날이 없었던 아이들은 분명히 그런 아버지를 미워하면서 “나는 절대 저런 남편이 안 된다,” “나는 절대 저런 남자에게 시집 안 간다”고 굳게 다짐하건만 나중에 어른이 되어 그런 남편이 되거나 그런 남편에게 시집갈 확률이 너무 높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현상을 “가문에 음란한 피가 흐른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피의 문제가 아니라 가정환경과 아동기의 경험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아동기의 경험을 극복하고 부모 대(代)에는 비록 성적 타락으로 가정이 피폐되었다 하더라도 내 대(代)에는 가정의 화평을 되찾고 부부관계의 소중함을 지키는 방법이 무엇이냐? 물론 인간적인 노력으로도 어느 정도 가능하겠지만 저는 신앙적인 힘이 아니면 어렵다고 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식욕, 수면욕, 물질욕, 명예욕 등과 더불어 성욕을 내 안에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욕구들이 건전한 방향으로 잘 해소가 되면 그 사람을 건강한 삶으로 인도해 주지만 자칫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면 결국 한 인간을 파괴시키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성욕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성(性)이란 성경에 의하면 분명 하나님의 축복인데 잘못된 성욕으로 인해 죄악 속에 빠져들게 되면 한 인간이 파괴될 뿐 아니라 소중한 가정이 파괴되고 가족이 파괴되고 심지어 그들의 영혼조차 파괴되는 무서운 결과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간음이 무서운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조차 이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때가 많은데 심지어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조차도 그랬던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다윗 왕이 저지른 밧세바와의 간음사건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다윗 왕은 순간적인 욕정을 참지 못해 부하의 아내과 간음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자신에게 그토록 충성하던 부하 장수 우리아를 전쟁터로 내몰아 죽이는 살인죄를 저지르고 맙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됩니까? 사무엘하 12장에서 나단 선지자가 다윗을 찾아가 가난한 자의 양을 빼앗아 손님을 대접한 부자의 이야기를 통해 다윗의 죄를 지적합니다. 다윗이 그 부자 이야기를 듣고 크게 화를 내며 “그런 놈은 마땅히 죽어야 한다”고 말하자 나단이 다윗에게 “당신이 그 사람이라”고 무섭게 지적합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다윗이 계속 회개하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나단을 잡아 죽이거나 감옥에 가두고 자신의 범죄를 은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역시 달랐습니다. 그는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삼하 12:13)며 회개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다윗을 용서하십니다. 아무리 큰 죄라도 진정으로 회개하면 하나님은 용서하십니다.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무자비하게 심판하시지만 아무리 큰 죄라도 분명히 회개하면 용서하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간음이나 성적 범죄의 해결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진심으로 회개하고 그 모든 결과를 단호하게 끊고 모든 잘못된 관계를 단절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잔인해 보이더라도 모질게 끊어야지 그렇지 않고 뒤끝이 남으면 하나님은 결코 그 회개를 참된 것으로 인정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죄를 용서하기는 하시되 그냥 넘어가지는 않았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그 죄악의 씨인 갓난아이의 생명을 거두어 가신 것입니다. 다윗이 금식하며 땅에 엎드려 필사적으로 아이의 생명을 구해달라고 간구하지만 결국 하나님은 그 생명을 거두어 가십니다. 그뿐 아니라 나중에 다윗의 장자 암논은 이복누이 다말에게 음욕을 품고 겁탈했다가 압살롬에게 살해당합니다. 음란의 씨는 이렇게 무섭습니다. 그 죄는 비록 회개하면 용서를 받게 되지만 그 영향력은 계속 남아 가문을 더럽히고 자녀에게 무서운 영향을 끼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잔인하게도 다윗의 죄악의 씨를 제해 버리신 것입니다. 그만큼 성적인 범죄는 무섭습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은 우리가 육체적 간음을 저질러서도 안 되지만 영적인 간음은 더더욱 무서운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 영적인 간음은 바로 제1계명과 제2계명에서 다룬 우상숭배입니다. 우상숭배란 우리가 신랑 되신 하나님을 배신하는 치명적 행위이기 때문에 더더욱 무서운 것입니다.




새 사람이 되어야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하고 성결해야 합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고전 6:19)는 말씀처럼 우리는 우리의 육신과 삶을, 내 가정을 거룩하고 성결하게 지켜야 합니다.

이 사실을 가장 잘 알았던 사람이 바로 요셉입니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가 보디발 집의 종이 되었다가 하나님 은혜로 그 집의 가정총무가 됩니다. 이제는 좀 살만 하다 싶었는데 바로 그 때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합니다. 어쩌다 한 번 유혹한 것이 아니라 ‘날마다’ 유혹했다고 나옵니다(창 39:10). 안 그래도 한창 혈기왕성한 나이의 요셉이 자신의 생명까지도 쥐고 있는 주인집 아내의 유혹을 뿌리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요셉은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창세기 39:8부터 보면 거절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자신을 믿고 그 자리에 세워준 주인 보디발을 배신할 수 없기 때문이요, 둘째는 더 중요한 이유로서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라는 요셉의 말 속에 나타난 것처럼 남의 배우자를 탐하는 일은 그 사람의 가정을 파괴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더 큰 죄가 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 을 배신하는 행위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선물 중에 가장 귀한 것이 바로 내 남편이요 내 아내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집에 가서 내 아내, 내 남편에게 한번 고백해 보십시오. ‘바로 당신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이라고 말입니다. 쑥스러우시다구요? 아닙니다. 늘 내 곁에 있어 그 소중함을 잘 모를 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 어떤 정욕과 쾌락이 나를 유혹해도 그것을 부부간의 신뢰와 소중한 가정과 맞바꾸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안 됩니다. 사람은 머리로, 이성으로는 알아도 순간적인 쾌락과 유혹 앞에서는 정말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만나 내 가치관이 변화되고 내 삶의 목적이 바뀌어야만 가능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육신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살고 순간적인 쾌락을 위해 살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내가 바뀌었습니다.

어거스틴(아우구스티누스)이라는 초대교회의 위대한 교부가 있습니다. 그는 어찌나 방탕한지 16세에 사생아를 낳을 정도였는데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로 회심하여 초대교회의 위대한 지도자가 된 일화로 유명합니다. 이 어거스틴이 예수 믿고 회심한 후 거리에 복음을 전하러 나갔는데 저 앞에서 전에 방탕한 삶을 살 때 사귀던 여자가 걸어옵니다. 어떻게든 피하고 싶어 모른 척 하고 지나가는데 그 여자는 어거스틴을 알아보고 계속 따라오며 아는 척을 합니다. “어거스틴! 나예요, 나 모르겠어요?” 이 때 어거스틴은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당신은 당신이지만 나는 내가 아니요.” 당신은 옛날과 똑같은 사람이지만 지금의 나는 옛날 그 사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야말로 새사람입니다. 가치관이 바뀌고 인생의 목적이 바뀐 새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만나서 그 분만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만이 우리를 이 험하고 유혹 많은 세상에서 구해주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깨끗한 그릇으로 살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하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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