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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잃어버린 한마리의 양을 찾아서 (눅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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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자녀를 잠사 동안 잃어버린 경험이 있습니까?
아마 자녀를 키워보신 분들이라면 자녀를 잠시 동안 잃어버린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저희도 광주에 살 때 진성이를 잠시 동안 잃어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랑 놀다가 산 쪽으로 올라갔다고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는 것입니다. 갈만한 곳은 다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전화도 다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없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식구들이 안절부절 못하면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찾아 다녔습니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이집 저집 헤매면서 다녔습니다. 날은 점점 저 가는데…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좀 어둑어둑 해질 때 산꼭대기 유치원친구네 집에서 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은 잃어버렸다가 찾은 기쁨에 대해서 3가지의 비유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잃어 버렸던 한 마리의 양을 찾은 기쁨, 또 열 드라크마 중 한 드라크마를 찾았을 때의 기쁨, 그리고 잃어버렸던 탕자가 돌아왔을 때의 기쁨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비유에는 여러 가지 공통적인 점이 있습니다. 그 한가지가 바로  “하나”라는 것입니다. 많은 것을 찾았기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 한 것이 아닙니다.
100마리의 양 중 한 마리의 양입니다.
10개의 드라크마 중 한개 드라크마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배반하고 떠나간 못쓸 자식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잘것없이 보이는 하나를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잔치를 열었습니다.

요새 초등학교나 중학교 사무실에는 학생들의 잃어버린 물건이 많이 쌓여 있다고 합니다.
잃어버린 물건을 안 찾아갑니다. 필기도구나 시계, 참고서 할 것 없이 소중한 물건들을 내버리고 그냥 집에 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집에 가서 잃어버렸다고 징징대면 '걱정하지 마라, 사주마!' 그리고는 당장 사줍니다. “찾아보자, 어디서 잃어 버렸는지 가서 찾아보자, 어디엔가 있을 것이다.” 이런 마음이 없습니다.

교회에서 중고등부 수련회를 가면 마지막 날 정리정돈을 하면 방마다 아이들이 두고 간 물건들이 마구마구 나옵니다. 그래서 광고 시간에 찾아가도록 광고합니다. 그런데 찾아가지를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여러분 가치를 모르면 절대 찾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양들이 많은데 그까지 것 한 마리쯤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그만’이라는 생각을 갖는다면 결코 찾으러 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마리의 양의 가치를 알면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어려워도 일어나 찾으러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목자는 우리 안에 있는 아흔 아홉 마리의 양보다 잃어버린 한 마리에게 모든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한 마리의 양의 가치가 무엇입니까?  생명입니다.
이 땅에서 가장 소중하고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너나 할 것 없이 다 생명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세상에는 돈, 명예, 부귀, 인기 등의 소중한 것이 많이 있지만 생명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것으로는 생명을 얻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가복음 8장 36절과 3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막 8:36-37)
그렇습니다. 생명은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마리의 양의 가치는 천하보다 귀합니다. 한 사람의 영혼을 찾는다는 것은 천하를 얻는 것입니다.

특별히 개척교회에는 한 영혼이 얼마나 소중한 줄 모릅니다.
물론 큰 교회들도 한 영혼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피부적으로 느끼는 한 영혼에 대한 소중함은 개척교회가 훨씬 더 민감하고 또 간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분도 빠지지 않고 예배에 나오면 분위기가 아주 활기차고 좋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고 한분이라도 빠지면 조금은 실망스럽고 맥이 빠진 모습들을 봅니다.
그런데 새로운 사람이 나왔다. 그러면 전부 흥분되고 긴장이 됩니다. 활력을 얻습니다. 힘이 됩니다. 생기가 생깁니다.
몇 번에 걸쳐서 뜻하지 않는 분들이 우리 교회에 오신 적이 있습니다. 기타를 칠 줄 아는 분, 그리고 심야기도회에 약주를 드시고 오셨던 분 우리가 얼마나 기대를 많이 했습니까?
몇 주 전부터 신원호 성도님의 인도로 정대선 형제님이 나오기 시작하셨습니다. 얼마나 큰 힘이 됩니까? 참으로 한 분이 교회에 이렇게 새롭게 나오는 것이 힘이 됩니다. 

그러므로 먼저 우리 교회가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승준 형제, 황혜숙자매, 김창권자매-애기엄마, 박선희자매, 정재윤집사님 가정, 김승국집사님 가정, 이명우자매님 가정, 정주영학생, 그리고 종환형제, 종민형제”가 돌아오기를 위해서,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고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책임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 주위에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에게 관심을 가지고 구원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와 교인은 어떤 교회이고 어떤 교인입니까? 잃은 양을 찾아다니는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영혼구원을 위해서 애쓰는 교회입니다. 한 사람의 영혼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힘쓰는 교인입니다. 한 영혼 한 영혼이 주님께로 왔을 때에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잔치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입니다.

우리가 한 영혼을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늘의 본문의 목자도 잃어버린 양을 찾고 찾아서 다니었습니다.
여러분 찾고 찾았다는 것은 열심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였다는 말입니다.
찾고 찾았다는 것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목자는 저녁도 먹지 않고 지팡이를 들고 양을 찾아 나서는데 낮에 다녔던 길로 달려갑니다. 양이 혹시라도 길을 잃은 것은 아닌가? 가시덤불에 걸려서 꼼짝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리나 다른 짐승의 먹이가 되지는 않았는가? 목자의 마음은 온통 잃어버린 양에게 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개울가에 가서 샅샅이 찾아보기도 하고 계곡으로도 가서 뒤져보기고 하고 혹시 웅덩이에 빠지지 않았나? 주의 깊게 살펴보았습니다. 목자는 한 마리의 양을 위하여 여러 위험을 무릎 쓰고 나아가서 이곳저곳을 헤매었습니다.
물을 건너서, 바다를 건너서, 길을 건너서 양을 찾았습니다. 때로는 찾다, 찾다 못 찾을 것 같은 마음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을 전도하기 쉽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값이 따릅니다. 투자가 필요합니다. 희생이 필요합니다. 한번 전도했는데 그 분이 나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경우들이 많지 않습니다. 한번 찾아가고 또 찾아가고, 한번 투자하고 또 한번 투자하고, 거절하면 또 다른 방법을 사용해서 또 찔러 보고 포기하지 말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 왕으로 간증하는 분들을 보면 그분들은 포기를 모릅니다. 한번 전도하기로 마음먹었으면 계속해서계속해서 찾아갑니다. 그리고 이 방법 저 방법을 동원하여 전도합니다. 그러면 문이 열리고 결국은 잃어버린 양을 찾는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목자는 다른 사람에게 미루지 않았습니다. 다른 목동들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직접 나갔습니다. 또한 모든 잘못을 양에게 떠넘기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내가 할일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하늘의 천사들을 내버려 두시고 사망과 죽임이 기다리고 있는 죽음의 골짜기 같은 척박하고 잔인한 이 땅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마음을 찾도록 찾아 다니셨습니다. 거라사인의 광인을 찾기 위해 바다를 건너 파도를 뚫고 피곤을 극복하고 찾아가셨습니다. 그 사람마저 저주하고 싫어하는데도 찾아가셔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죄악에 찌들린 참혹한 십자가 골고다의 언덕까지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으로서 지옥까지 찾도록 찾아오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은 내가 할일이 아니다’고 마루지 마십시오. 잃은 양의 실수와 나쁜 습관과 잘못으로 돌리지 마십시오. 결코 예수님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책임을 다 떠 맡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다른 사람이 할일이 아니라 내가 할일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찾았던 목자는 결국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았습니다. 그때에 목자는 어깨에 멨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자기의 찾도록 수고한 그 모든 피곤을 잊어버리고, 조금이라도 어린양이 힘들까봐 어깨에 메고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우리 같으면 말썽꾸러기 찾았다고 목에 끈을 매고 질질 끌고 왔을 것인데, 이 목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깨에 메고 즐거운 마음에 피곤도 잊어버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벗과 이웃을 초청하고 잔치를 열었습니다.
그러면 말합니다.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저는 가만히 본문을 보면서 양을 찾은 것보다 잔치를 한 비용이 훨씬 많이 들었을 것 같다. 그렇다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일 아닙니까? 그러나 목자의 기쁨은 이러한 것에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또 본문을 보면서 이 잔치에 어떤 양을 잡기는 잡았을 텐데 어떤 양을 잡았을까?  혹시 다시 찾았던 양을 잡지는 않았을까? 우스운 생각이 되었습니다.

어째든 목자는 양을 찾은 기쁨으로 잔치를 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잃어버린 영혼이 주님께 돌아올 때 천국 잔치가 열리는 것입니다.

제 아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목사님이 예배를 인도하는데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얼굴이 환해지면서 시선이 온통 그 사람에게 빼앗겨서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아! 반가운 사람이 들어오는구나! 알 수 있다고” 말을 해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또 반가운 여러분이 들어오면 마음이 그곳으로 갑니다. 저도 모르게 시선이 빼앗깁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쁘니까, 너무 너무 반가우니까 그렇습니다. 저만 그렇습니까? 아마 여러분도 저와 동일한 마음일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고,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만 기쁜 것이 아닙니다.
한 영혼이 주님께 돌아올 때 예수님은 춤을 추십니다. 예수님은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십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파티가 열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덩실 덩실 춤추시며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주님의 춤추시며 기뻐하시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멋집니까?
저는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이 춤추시도록 만들어드리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천국잔치가 열릴 수 있도록 만들어 드리기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잃어버렸던 양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 오셔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천국에서 잔치를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내 집을 채우라.”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합니다. 그러므로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한 것을 분명히 깨닫고 보물을 찾기 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원합니다. 보물을 찾는 일이기에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우리가 찾고 찾는다면 결국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는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쁨이 이 아름다운 교회에 힘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잃어버린 양을 찾을 때 예수님은 기뻐 춤을 추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뻐 노래하실 것입니다.
한사람씩 전도하십시다. 잃어버린 양을 위해서 기도하십시다. (이덕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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