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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죄는 생각도 하지 말라 (신 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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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문제다

지난 연말부터 우리 온 국민은 황우석 박사 사건으로 인해 큰 충격에 빠져 지금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정확한 결론은 나지 않았기 때문에 섣불리 다 사기극이다 거짓말이다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 분의 말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말인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난 까닭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욕심’입니다. 너무 빨리, 그리고 너무 쉽게 돈과 명예를 거머쥐려는 탐심을 가졌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것입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힘들더라도 천천히 정도(正道)를 걷고 정직하게 연구했다면 정말 좋은 결과가 나왔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과정도 다 무시하고 적당히 속여서라도 어떻게든지 결과만 얻으려는 욕심을 갖다보니 이런 불행한 일이 생긴 것입니다.

오늘 십계명의 열 번째 마지막 계명도 바로 이 ‘탐심’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십계명은 구약에 나온 모든 율법조항을 딱 열 개로 뽑은 엑기스와 같은데 하필 이 귀하고도 귀한 십계명 중에서 왜 맨 마지막 열 번째 계명이 탐심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인간의 모든 죄는 바로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살펴본 십계명을 되돌아보면 우상숭배를 금지하고 하나님의 거룩성과 안식일을 잘 지키며, 인간 사이에서는 부모공경을 잘 하고, 살인 간음 도적질 거짓말 등의 죄를 짓지 말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금지하고 있는 우상숭배나 살인 간음 도적질 거짓말 등이 사실은 모두가 마음에서부터 나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모든 일만 악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은 인간의 마음에 들어있는 그 욕심, 그 탐심과 나쁜 생각이 제일 큰 문제입니다. 잠 4:23에서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말씀한 것이 바로 이런 까닭입니다. 마음만 바르게 먹으면, 마음만 잘 지킬 수 있다면 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그러므로 우리 생명까지 지켜주기에 그만큼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죄의 두 가지 종류

죄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행동으로 옮긴 죄이고 또 하나는 마음속으로 생각만 한 죄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행동으로 옮긴 죄, 실제로 저지른 죄는 분명히 죄인데 마음속으로만 생각한 죄는 과연 죄가 성립될 수 있을까요? 물론 세상에서는 분명 죄가 아닙니다. 아무리 마음속에 죄를 지을 생각을 많이 하더라도 그 생각을 직접 실천으로 옮기지 않으면 죄가 성립이 안 됩니다. 심지어 세상에서는 죄를 짓더라도 들키지만 않으면, 또 증거만 나오지 않으면 죄가 안 됩니다. 경찰이 범인을 잡아 놓고 분명 이 사람이 범인이 틀림없다, 누가 봐도 범임이라고 해도 증거가 없으면 풀어줘야 합니다.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으면 죄인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분명 죄를 저지른 범인인데도 증거가 안 나와서 풀려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죄 개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시는 죄 개념은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생각만으로도 죄가 됩니다. 우리 마음속에 죄된 생각만 품어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실제 저지른 죄와 똑같다는 뜻입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마음속의 죄가 무서운가?

첫째, 하나님은 아시기 때문입니다. 대상 28:9에 보면 다윗 왕이 아들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주면서 부탁하는 말이 나옵니다.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뭇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사상을 아시나니 네가 저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버리면 저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우리의 마음속 생각을 훤히 들여다보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지금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솔직히 두렵지 않습니까? 저는 두렵습니다. 제가 지금 목사라고 여러분 앞에 멀쩡하게 서서 설교를 하지만 솔직히 제 마음속에 어떤 더러운 생각이 있는지 아무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래서 안심할 수 있을까요? 아니라는 말입니다. 누가 아신다고요? 하나님은 아신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속속들이 너무도 훤하게 아신다는 것입니다.  제 마음이 얼마나 더러운지 하나님이 속속들이 다 아신다니 얼마나 두렵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림의 자세를 가지고 마음으로도 죄를 지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으로도 죄를 지으면 안 되는 둘째 이유는 행위보다 오히려 생각이 더 무섭기 때문입니다.

교회사에 보면 자신의 정욕을 억제하기 위해 산상수훈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한 사람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 5:29~30에서 예수님이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초대교회의 유명한 교부인 오리겐(주후 184-254년)이라는 사람이 여자들 앞에서 가르칠 때 정욕이 생겨서는 안 된다며 스스로 거세를 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어리석은 사람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죄를 끊는다고 그렇게까지 하니 참 대단한 사람 같기도 합니다만 정작 문제는 “그런데도 생각은 계속 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거세를 한다고 정욕이나 음탕한 생각이 우리 마음속에서 사라질 수 있을까요? 손을 자른다고 해서 발을 자른다고 해서 정말 손과 발로 죄 지으려는 마음이 우리 안에서 사라질까요? 아니더라는 말입니다.

책에서 이런 내용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어떤 노인이 나이가 들어 성 기능이 상실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노인이 성 상담을 받으러 온 것입니다. 상담하는 의사는 이 할아버지가 아마 성기능 때문에 상담을 하러 왔나보다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고 성기능이 완전히 사라졌는데 왜 자기 마음속에 자꾸 예쁜 여자만 보면 욕정이 불타듯 생기냐는 이유였던 것입니다. 육신이 안 따라준다고 해서 마음속의 욕심까지 사라지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아무리 마음속의 죄를 끊으려 해도 아무리 죄를 안 지으려고 애를 써도, 그래서 심지어 육신의 모든 기능을 다 끊어버린다고 해도 마음속의 생각만은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육체보다 더 무서운 것이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다리가 없어도 나쁜 곳에 가고 싶고, 손이 없어져도 마음속에 도박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여전합니다. 폐암 말기 환자인데도 담배를 끊지 못하는 환자도 보았습니다. 담배 피면 금방 죽는다는데도 그 마음도 하나 억제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육체보다 더 무서운 것이 마음이요 생각입니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

이제 오늘 본문인 신명기 5:21을 보십시오.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도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이나 그의 밭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열 번째 계명이 다루고자 하는 바는 바로 ‘탐심’입니다. 이 내용은 제8계명의 ‘도적질 하지 말라’와 비슷해 보이지만 8계명은 앞서 말한 대로 그 욕심과 탐심을 실제 행동으로 옮긴 죄이고 제10계명은 이와 달리 마음속에 탐내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제10계명은 이런 마음을 갖는 것 자체도 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탐심을 가져서는 안 되는 대상들이 쭉 나열되어 나옵니다. 먼저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미 제7계명에서도 다룬 바 있습니다만 누구에게나 배우자는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가정이 가장 소중하고 아내와 남편이 가장 소중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소중한 내 아내 내 남편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남의 소중한 아내를 탐내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탐내는 마음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면 그것은 7계명이 다루는 간음입니다. 그런데 10계명에 이르러서는 직접 행동으로 하는 간음이 아니라 해도 내 마음속에 그런 생각만 해도 그것이 간음죄가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이웃의 아내를 ‘탐낸다’는 말은 히브리말로 ‘하마드’인데 이는 ‘몹시 바라다, 탐내다, 기뻐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남의 아내를 소유하고자 몹시 바란다는 뜻이므로 이웃이 아내에 대하여 아주 큰(‘몹시’) 욕정에 사로잡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것은 마음으로만 짓는 죄가 아니라 얼마든지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죄, 즉 간음죄와 동일시될 수 있습니다.

다윗이 부하의 아내인 밧세바가 목욕하는 것을 보고 심히 아름다워 보였다고 했는데(삼하 11:2) 바로 그 눈으로 보는 순간에 그 여인이 아름다워 보였고 즉시 간음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 마음이 행동으로 옮겨져 실제로 그 여인을 궁으로 불러 간음을 실행한 것이지요. 여기에 단계가 있습니다. 눈으로 보고 ➛ 마음으로 (욕정을) 느끼고 ➛ 몸으로 실천하는 3단계인데 이러한 3단계는 우리가 죄를 짓는 데 가장 흔하게 일어나는 단계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무엇을 보느냐도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보는 것으로 인해 죄 짓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5:28에서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다”라고까지 강조하신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 말씀에도 역시 여자를 보고 ➛ 음욕, 즉 음탕한 마음을 품는 두 가지 단계가 나오는데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실제로 간음을 하지 않더라도 주님은 이미 마음으로 간음한 상태기 때문에 간음죄가 되며, 또 이런 2단계의 상태까지 이르면 대부분 3단계까지 갈 확률이 너무도 높기 때문에 이미 간음죄를 저지른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 자신과 특히 자녀들은 보는 데 많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거리를 다니면서, 혹은 TV나 영화를 보면서, 잡지를 보면서, 특히 인터넷을 켜면 우리는 보는 것으로 인해 얼마나 마음속으로 죄를 많이 지으며 그 가운데는 더 나아가 실제로 죄를 짓게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앞서 말한 마 5:28에서 음욕만 품어도 간음죄라고 말씀한 다음에 곧바로 29절에서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눈으로 죄 지어서 마음까지 죄를 짓고 실천까지 하게 되면 지옥불에 떨어지니까 차라리 눈을 빼버리고 지옥에 안 들어가는 것이 더 낫다는 뜻이지요. 이 말씀은 정말 눈을 빼버리라는 뜻이 아니라 정말 눈을 빼버릴 정도의 단호한 결심으로 죄를 멀리 하라는 뜻이며 또한 그만큼 눈으로 짓는 죄가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신앙인들은 눈을 잘 관리하고 보는 것도 조심해서 가려가며 보아야 하고 생각도 가려가면서 해야 합니다. 한번 따라하십시오. “자나 깨나 눈 조심! 볼 것 안 볼 것을 구분하자!”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이웃의 아내 다음으로 네 이웃의 집이나 밭, 남종이나 여종, 소와 나귀 등 모든 소유를 탐내지 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서 ‘탐낸다’는 말과 이웃의 아내를 ‘탐낸다’는 말은 우리말로는 똑같지만 히브리말로는 다릅니다. 이웃의 소유를 탐낸다는 것은 히브리말로 ‘아와’를 쓰고 있는데 이는 ‘사모하다, 소원하다, 바라다, 열망하다(desire) 즉 열렬하게 바란다’는 뜻입니다. 얼핏 보면 이웃의 아내를 탐낸다고 할 때 쓴 ‘하마드’와 비슷하지만 이 ‘아와’는 ‘하마드’보다 더 열렬하게 바란다는 뜻이 강조되는 낱말입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소유와 재산에 대해 미련을 못 버리고 아주 열렬하게 욕심을 품는 상태를 가리키는데, 결국 이러한 열망 또한 언젠가 그 열망의 대상을 소유하기 위해 실제로 죄를 짓게 마련입니다. 그 죄가 바로 8계명에서 말한 ‘도적질’입니다. 야고보서 1:15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 말은 욕심이 임신을 하면 죄라는 자식을 낳게 되고, 그 죄가 자라게 되면 결국 사망을 낳는다는 뜻으로 결국 죄악된 마음이 우리로 하여금 실제 죄를 범하게 해서 결과적으로는 그 죄 때문에 우리의 영이 죽고 생명이 죽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나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소서

지금까지 탐심이나 죄악된 생각의 특징을 살펴보았습니다. 탐심이나 죄악된 생각은 단순히 생각으로만 그치지 않고 실천으로 갈 가능성 높기에 위험합니다. 혹 지금 당장 죄를 실천하지 않더라도 그 생각은 계속 남아있기 때문에 나중에 얼마든지 죄를 지을 수 있게 됩니다. 내 마음속에 하나님 말고 다른 존재를 더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가지면 십계명의 1,2계명인 우상숭배의 죄를 짓게 되고, 내 마음속에 이웃에 대해 미움을 가지게 되면 제6계명인 살인죄를 짓게 되고, 내 마음속에 음란한 생각을 가지게 되면 제7계명인 간음죄를 저지르게 되고, 내 마음속에 욕심을 가지게 되면 제8계명인 도적질의 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이 죄를 짓게 하는 가장 큰 원인임을 아셨기에 십계명을 주실 때 제일 마지막에 이 탐심에 대한 계명을 집어넣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근본적으로는 우리의 행동과 말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뿐 아니라 우리의 보이지 않는 마음과 생각조차 깨끗해야 합니다. 그래야 참 그리스도인이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요즈음 수요일예배 때 성령론을 다루고 있습니다만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 받는 순간 우리 안에는 성령님이 들어와 내주(內住)하시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 됩니다(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전 3:16).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신다면, 그래서 우리 몸이 거룩한 성전이 된다면 행동과 말뿐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생각과 마음까지도 거룩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님이 그 성결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통해 우리를 다스리시게 됩니다.

이제 2006년에 시작되었습니다. 이 새롭게 시작된 한해 우리의 몸과 마음이 모두 깨끗하여 하나님께 쓰임 받는 깨끗한 그릇이 되도록 기도하기 바랍니다. “주여 오늘 나의 마음과 생각까지도 정결하게 지켜주소서” 이 기도가 바로 우리의 기도가 되기 바랍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아멘. (이하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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