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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을 알고 전하는 교회 (왕상 8:4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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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참 어두운 시대다. 절망의 구름이 짙게 깔려 있다. 조금만 눈을 크게 뜨면, 우리를 한숨짓게 하고, 분하게 하는 일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산불처럼 퍼지는 가정의 파괴, 마약의 만연, 도덕적 타락, 각종 사고의 위험, 성폭행, 질병, 경제적 불균형, 전쟁의 가능성…,

  이런 일들은 우리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가? 사람이 하나님과 분리되어, 죄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죄 때문에 가정이 파괴되고, 죄 때문에 마약과 술 중독으로 비틀거리며, 갈등과 전쟁이 계속되고 있으며, 죄 때문에 인생살이는 생지옥이 되고 있다.

  죄가 인간의 모든 문제와 불행의 뿌리가 되기 때문에, 불행의 뿌리가 되는, 죄를 해결하시려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 그래서 (딤전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라고 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죄가 없기에 부활하셨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해결하셨기에, 우리는 소망과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고, (딤전1:1)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소망의 예수님을 알고 전하는, 우리가 되자.

  본문은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후, 성전봉헌식을 거행하며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는 장면이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나올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였다. 다윗도 못한 성전을 건축을, 하나님의 은혜로 건축하였음을 감사한다.

  특별히 본문은 경건한 이방인들을 위한 중보 기도다. 이방인이라도, 이 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하나님께서 이 성전에 계심을 알고서, 경외하게 해달라는 내용이다.

  우리 교회가 둔산동에 세워진 의미를 알고, 누구든지 이 곳에 나와 기도할 때, 하나님을 경험하고, 경험한 하나님을 이웃에 전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따라서 ‘주님을 알고 전하는 교회’가 우리 교회의 표어이기에, ‘주님을 알고 전하는 교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겠다.

1. 주님은 어떤 분이신가? -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다.

따라서 기도할 때, 독백처럼 혼자 중얼거려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기도를 들으시기에, (요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라고 하셨다.

  (마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했다. 솔로몬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심을 믿었기에, ‘이 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알게 해달라고 하였다(42-43).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반드시 들으신다. 들으시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다. 바울 사도는 (롬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냐”고 하였고

  (엡3:20)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능히 하시는 분이다.”라고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눅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늘,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였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기도할 때, 자신의 생각에 가능하다고 여겨지면 기도한다. 자신의 생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겨질 때는, 아예 기도하지 않는다. 이는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능력에는 한계가 없다. 한계가 있다고 믿는 신앙은 불신앙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말고, 전능하심을 믿고 간구하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신다. 내 생각에 옳고, 좋다고 여겨서 기도했는데, 내가 원한대로 응답되지 않았다고, 절대로 원망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요구보다, 더 좋다고 여기셨기 때문에, 다른 응답을 주신다. 잘못된 요구에는 응답하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인내를 가르치기 위해, 응답시기를 늦추시기도 한다. 하나님의 판단이 좋고 옳았음을, 시간이 흐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을 만나보면, 두려움 가운데 떨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청년들은 청년 실업의 문제 앞에 무기력하고, 장년들은 기본적인 부양책임마저 감당해내기 힘들다고 불안해한다. 경제적인 어려움뿐만이 아니다. 영적으로 무력해진 피폐한 모습들이 보인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의 상징인 기쁨이 사라졌다. 이제는 찬송할 힘, 기도할 힘도 없다고, 탄식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소망과 대안을 말하는 사람은 사라지고, 절망과 자학, 방향 모르는 공격성이, 우리 심성을 지배하고 있다. 마귀는 성도의 믿음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염려하도록 만든다.

  마귀가 하는 일은, 우리를 항상 절망케 하고, 번뇌케 만든다. 우리의 부족함을 건드려, 절망하도록 부추긴다. 병으로, 돈으로, 가정 문제로, 심령을 공격하여서 절망하게 만든다. 이 절망은 뱀의 독과 같아서, 물리면 마비된다.

  뱀에게 물려 절망하면 식욕이 없다. 움직일 힘도 없다. 일에 대한 의욕도 없다. 절망의 종착역은 죽음이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믿음을 주장해야 한다. 하나님은 믿음을 통해서 일하신다. 따라서 다 빼앗긴다 할지라도, 믿음만은 빼앗겨서는 안 된다.

  믿음만 있으면 마귀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 다가오는 절망을 날려버릴 수 한다. 어떻게 날려버릴 수 있는가? 기도의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 (엡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또한 예수님은 말씀으로 마귀의 공격을 이기셨다. 따라서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오랫동안 나라를 잃고도, 완전히 절망하지 않은 이유는,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전에서 기도와 말씀을 통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역사가 있기 바란다. 마귀가 주는 시험은 안개와 같다. 이 둔산동 지역을 안개로 다 뒤덮어도, 고작 물 반 컵도 안 된다.

  엄청나게 많이 깔린 문제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물 반 컵에 불과하다. 주님만 바라보라. 주님께서 비추시는 빛이 있으면, 모든 안개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의심의 구름은 사라지고 승리할 수 있다. 기도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란다.

2. 주님을 아시나요?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좋아하시고, 무엇을 싫어하시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기 때문에, 성경공부를 했기 때문에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분은 하나님을, 다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은 다르다. 하나님을 안다는 말은, 지식적으로 안다는 말이 아니라, 영광 중에 임하신 주님을 체험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안다는 말은 히브리어 (ד󰘞󰖷, 야다)인데, (창4:1)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여기서 동침(ד󰘞󰖷)했다는 말이 안다는 말과 같다. 이처럼 주님을 안다는 말은, 그냥 만나서 데이트를 즐긴다는 말이 아니다.

  결혼해서 같이 산다는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단지, 만나서 데이트하며 즐기려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데이트 상대가 아니라 신부를 찾고 계신다. 항상 함께 하며 살며, 사랑의 교제가 있고, 서로를 기쁘게 하는, 아름다운 헌신을 할 수 있는 신부를 찾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와 결혼하고 싶다면, 서약을 하자”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주님과 결혼하면 정결해야 한다. 다른 것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가끔 주님과 동행하며, 가끔 교제도 나누고, 가끔 주님께 헌신하고, 정결함도 잃어버렸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안타까워하신다.

  하나님과 교제하려면, 먼저 우리의 몸과 마음이 깨끗해야 한다. 세상의 즐거움으로 가득 차있다면, 주님과 교제를 나눌 수 없다. 신앙생활은 단지, 예수님의 이름만을 부름이 아니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하나님과 하나 되는 생활이기 때문이다.

  또한 주님과 결혼해 놓고, 주님을 좋아하기보다,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 능력, 축복, 영적 은사에 관심이 많다면, 주님의 마음은 참으로 아프게 된다. 우리는 이런 선물이 아니라, 선물을 주시는 분이 좋아야 한다. 그러나 현대 교회는 ‘하나님의 임재’라는 최고의 우선순위를 상실하고 말았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교회와 예배가 되어 버렸다. 임재가 있을 때, 진정한 부흥이 도래하게 된다. 결혼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기를 원하는, 갈망이 있어야 한다. 아름다운 결혼생활은 상대방을 기쁘게 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하나님의 임재’를, 최우선순위로 두는 교회가 되기 원한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교회에 나와서, 그냥 즐겁게 지내다가 가려고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보다, 주님의 축복에 마음을 빼앗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진정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 자체를 원해야 한다. 주님의 선물보다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교회가 되기 바란다.

3. 주님을 전하자.

무엇인가를 가장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실체와 만나야 한다. 아무리 구구절절 설명을 잘한다고 해도 설명만으로는 절대로 실체와 맞닥뜨릴 수 없다. 그것은 그림자일 뿐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설명하지 말고, 실체를 보여주면 된다. 보지 못한 자들에게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성령님께서 오시면, 예수님께서 누구인지 알아, 바로 보고, 바로 믿어, 예수님께서 얼마나 위대하고 힘있고 좋으신 분인지 알게 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증인의 길이 열리게 된다. 내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자연히 증인이 된다. 하나님을 만나면 누구에게나 열정이 생긴다. 하나님을 만나면 다 뜨거워진다. 그래서 복음서에 나오는 제자들과 사도행전에 나오는 제자들의 모습이 사뭇 다르다.

  그렇게 달라진 이유가 무엇인가? 목숨을 걸고 담대하게 말씀을 증거했던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오순절에 성령 체험을 했기 때문이다. 생명의 실체를 만났기 때문이다(행2:1-4). 그래서 증인의 삶을 살 수 있었다(행1:8). 성령을 받은 후, 사람들은 나가서 증거하기 시작했다. 

  이들을 움직이게 한 동기는,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성령을 만났다. 이런 만남보다 사람들을 더욱 뜨겁고 강력하게 만들 수는 없다. 예수님의 실체를 만나면, 다 변화될 수 있다.

  미국 윌로우크릭 교회의, 빌 하이벨스 목사님이 이런 고백을 했다. 상당히 논리적이고 계획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말이다. 빌 하이벨스 목사님은, 교회성장 5개년 계획을 세우면서, 가장 성경적인 기초 5G를 만들었다.

  Grace-은혜, Growth-성장, Groups-소그룹, Gift-은사, Giving-헌신, 이렇게 5가지 G를 순서대로 정해놓고 연구를 거듭한 끝에 5가지 원리를 만들었다. 잃어버린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 믿음이 생기고, 새 생명을 얻음이 은혜(Grace)다. 예수 믿고 난 다음, 우리의 믿음에는 성장(Growth)이 필요하다.

  또 성장하고 난 다음 소그룹(Groups)으로 교제해야 한다. 우리는 자기 안에 강점이 뭔지 발견하고 사용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Gift)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희생하는 삶이 바로 헌신이다(Giving)이다.

  이렇게 교회성장의 틀을 만든 빌 하이벨스는 5G에 대해서, 각각 20%씩 사역을 배분했다고 한다. 이 5가지를 온전히 이루면, 능력있는 교회가 되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계획대로 1년이 지나가고, 2년이 지났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교회는 약화되었다. 활력이 사라졌다.

  이론상으로는 완벽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빌 하이벨스 목사님은 실패의 원인을 깨달았다. 이 5가지 G는 20%씩 사역을 배분해서, 이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첫 번째 G, 은혜(Grace)를 통해서 성도들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 다음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굳이 배분하여 말하면, 사역 역량의 60%를 하나님께 은혜 받는데 쏟아야 함을 절감했다고 한다. 하나님을 만나는데 60%를 쏟아 부으면, 나머지는 저절로 되더라고 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면 변화된다. 생명의 실체를 만나 은혜를 받았는데, 어떻게 성장하지 않겠는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는 은혜가 임하면, 자기 은사대로 일하게 되고,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면 저절로 헌신하게 된다. 자기 것을 값없이 쏟아 붓기 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없지만 예수님을 만나면 주저하지 않고, 자기 것을 내어놓게 된다.

  삭개오도 예수님을 만났기에,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주겠다고 했다. 구호만 가지고 될 일이 아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주님을 전하게 되어 있다. 예수님이라는 생명의 실체를 만나면, 우리 삶의 문제들이 해결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주님을 만나고 전하는 교회가 되기 바란다.

  결론이다.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좋으신 분이다. 신음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다. 주님을 알자. 주님의 임재가 있는 예배를 통하여, 주님을 만나고, 그 주님을 세상에 자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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