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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마 6: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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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이나 타임머신 등으로 유명한 영국 소설가 웰스의 “대주교의 죽음”이라는 단편이 있습니다. 어느 성당에 존경받는 대주교가 있었습니다.  날마다 교회에 나가서 습관적으로 기도를 합니다.  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그렇게 습관적으로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역시 성전에 들어가서 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그렇게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오냐? 무슨 일이냐?’ 하고 응답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대주교가 깜짝 놀라 가지고 심장마비로 죽었답니다.
하나님이 응답하리라고 기대하지 않고 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하고 습관적으로 부르다가 하나님이 정작 응답을 하니까 깜짝 놀란 겁니다. 오늘도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응답할 것이라는 기대 없이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그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고 그저 부를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주기도문은 예배의 시작이나 끝날 때 하나의 의식으로 외워 버릴 수가 있습니다. 어떤 뜻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그저 외워버립니다. 그래서 루터는 주기도문은 최고의 순교자라고 표현했습니다.  이제 주기도문을 순교시키지 말고 살려내야 겠습니다.  주기도문의 바른 뜻을 알고 기도하여서 응답받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기도문의 첫째 내용은 기도의 대상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인데 대화를 하려면 대화하는 상대의 이름을 부르고 난 다음에 대화가 시작되는 것 아닙니까? 아버지! 하든지 선생님하든지, 아무개야 하든지, 상대방의 이름을 불러놓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을 먼저 불러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먼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고 이름을 먼저 부르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기도할 때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불러놓고 아버지께서 오냐하는 소리를 듣고 기도한번 해 보세요. 우리의 기도가 달라지게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하고 아버지가 듣던 안듣던 상관하지 아니하고 내가 할 이야기만 다다다다하고 나면 듣는 아버지 입자에서는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고 기다렸다가 내 마음에 하나님께서 그래 내가 듣고 있다하는 이런 응답, 음성이 들려지고 난 다음에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기도만 바로 할 수 있다고 하면 기도의 방향이 달라지고 기도의 태도가 달라지고 인생이 다 달라지게 될 줄 믿습니다.  현대인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열등감, 죄책감, 불안감, 공포감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는 기도만 바로하면 모든 열등감에서 다 벗어날 수 있고, 모든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부를 수 있는 사람보다 더 복 받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보다 더 존귀하고 더 뼈대 있는 집안이 없습니다. 가문이 좋다 뼈대가 있다라는 말을 하는데 하나님의 자녀되는 것만큼 뼈대 있는 집안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제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이기도 따라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는 이 기도부터 바로 기도하여서 기도하는 것 마다 응답받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하늘에 계신 하나님

먼저 기도의 대상은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라는 말은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 크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어디든지 계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나와 상관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 첫마디 속에 초월해계시는 크신 하나님과 그러면서 동시에 나와 가장 친밀한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 이 두가지 개념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는 이 가운데 다 포함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라고 할 때 하늘이 어떤 곳입니까?  높은 곳입니다. 그래서 권력에 있어서 높은 권력이 무엇입니까?  지금은 대통령이고 옛날에는 임금님 아닙니까?  높다라는 이 말은 다스린다는 말 입니다.  그러니까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 이 말은 다스리시는 하나님 온 우주만물과 인간의 생사화복을 홀로 주장하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또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은 하늘은 땅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하늘과 땅은 완전히 다릅니다.  땅에는 냄새나고 땅에는 눈물과 한숨이 있고 땅에는 온갖 지저분한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올라가보세요. 하늘에 한 1Km 만 올라가면 거기에는 구름도 없습니다. 거기에는 바람도 없습니다.  전혀 다릅니다.  이와 같이 하늘에 계신다는 말은 하나님은 땅과 구별되어진 거룩한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또 하늘이라는 뜻은 넓고 크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이 우주가 얼마나 광활합니까? 이 우주를 지구라고 하면 지구는 야구공보다 더 작습니다.  지금도 발견되어지는 별들이 있는데 몇 십 억년 거리에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환산이 되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빛의 속도로 거리를 재는데 빛의 속도 재각하는 순간 지구를 7바퀴 반을 도는 이런 속도로 1년만 간다고 할지라도 그 거리를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10억년을 가야 그 별을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인데 그러면 그것이 상상이 되어집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하늘 어디든지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하나님이 크신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은 조그만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에 가득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 믿으면 우리의 간이 커집니다.  배짱이 커집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모든 생각하는 것이나 삶이 크도록 되어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크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래서 윌리엄 케리라는 구두수선공은 그 가슴속에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오게되었을 때 영국에서 저 인도까지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로 갑니다.  가서 인도말로 사전을 만들고, 인도말로 성경을 번역합니다.  그리고 나서 말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서 큰 것을 시도하라. 하나님에게 큰 것을 기대하라고 말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계신 다는 말 안에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이 큰 우주만물을 다 창조하신 분이니까 얼마나 전능하신 분입니까 그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니까 아래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다 아신다는 말입니다.  전지(全知)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어디든지 어느 하늘이든지 다 계십니다.  본래 하늘이라는 말은 하늘들이라는 말입니다.  모든 하늘에 다 계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 하나님은 편재해 계신 어디든지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불변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하늘은 변하지 않습니다.  땅은 변합니다. 그러나 하늘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라는 이 말은 영원하시다는 말입니다.  하늘의 끝이 보입니까?  끝이 없을 만큼 영원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영원하신분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정의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온 우주에 가득한 하나님을 인간의 좁은 두뇌를 가지고 하나님은 이런 분이다 저런 분이다 어떻게 우리가 정의하며 다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조금 전에 말씀드린 이것만 정리해 본다 할지라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 이 말뜻 안에는 높은 곳에서 인류를 다스리시는 하나님 그리고 우리와 다른 구별되어진 거룩하신 하나님 그리고 그 하나님은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 얼마나 크고 위대하시냐?  전능하신 하나님 그리고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전지하신 하나님 그리고 편재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불변하시는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 이런 하나님 개념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는 말에 포함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리므로 우리가 주기도문으로 기도할 때에 하늘에 계신 이렇게 기도하게 될 때에 이 안에 있는 개념 우리를 다스리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크고 위대하시고 전능하시고 전지하시고 편재하시고 불변하시고, 영원하신 이런 하나님에 대한 개념과 믿음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런 하나님이니까 우리가 기도할 수 있지 하나님이 전능하지도 않고 하나님이 하늘에도 안계시고 하나님이 능력도 없으시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기도하겠습니까?  이렇게 다스리시고, 전능하시고 전지하시고 편재하시고 불변하신 이런 크고 거룩한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런 하나님 앞에 마음 놓고 기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하면 이런 의식을 가지고 언제나 기도하여서 그 기도만 해도 가슴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넓어지고 우리에게 큰 문제가 있다고 하여도 그보다 큰 하나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안되어져서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릴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우리 아버지

그런데 그렇게 크고 위대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와 상관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세계 최고의 재벌이 빌 게이츠인데 그 빌 게이츠와 나와 상관이 없으면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재물은 나에게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위대하고 크셔도 나와 상관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누구라고 했습니까? 우리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나를 제일로 사랑하시는 분이 아버지입니다.  물론 동양에서는 아버지가 너무 엄격하십니다. 아버지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요즘은 아버지가 애들하고 친구처럼 놉니다. 오히려 잔소리하고 공부하라하고 또 고함치는 것은 어머니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보다도 아버지를 좋아하는 자녀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버지들의 아버지들 좀 나이드신 분들의 아버지들을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아버지들이 엄격했습니까?

오히려 어머니의 사랑이 마음에 와 닿지 아버지의 사랑은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촌감삼같은 사람은 말하기를 동양에 이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사람들이 아버지의 사랑과 아버지하면 그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면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고 하나님 어머니라고해도 좋다 그렇게 말한적 있습니다.  하여튼 아버지라고 하는 말은 사랑하는 분의 대명사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종교도 성경이 말하는 이런 아버지의 개념으로 그들의 신을 부른 적이 없습니다.  구약 성경에도 아버지라는 표현이 나오기는 합니다. 이사야서 63장16절상반절에 보면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64장16절하반절에서도 우리를 지었기 때문에 아버지 개념으로 불러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을 우리가 가리는 아버지의 개념으로 그 아버지를 부르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두렵고 가까이가지 못할 분이고 가까이가면 죽을 수밖에 없는 심판하시는 무서운 하나님으로 생각되어졌지 친근한 아버지로 느끼지 않았다고요 그래서 여호와라는 이름을 얼마나 두렵게 생각했던지 여호와라는 이름을 잃어 버렸어요.  그래가지고 여호와인지 야훼인지 몰라가지고 지금도 순복음 교단에서는 여호와라는 말 대신 야훼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까?  그렇게 아버지의 이름을 부를 수 없을 만큼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고요.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복음서에만도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표현한 곳이170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12살되던 때에 예수님의 부모들과 더불어 예루살렘에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갔습니다.  유월절을 다지키고 내려오는데 예수님의 부모들을 당연히 예수님께서 따라 올 줄 알았는데 하룻길을 가다가 예수를 찾으니까 없습니다.  그래서 찾고,  찾고 찾아가지고 3일 만에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니까 율법학자들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찌해서 너를 찾도록 했느냐?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애기 했습니까?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내 아버지 집에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3년 동안에 성전을 청결케 한 일이 2번 있었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할 때 있었고, 맞칠 때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서 돈 바꾸는 사람의 상을 엎어버리고 비둘기를 막 날려버리고 그러면서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과 강도의 소굴로 만들지 말라 그렇게 질타하지 않습니까! 이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이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실 수 없습니까?  그렇게 애원합니다.  십자가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에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합니다.  그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은 일생동안 내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꼭 한번 인류의 모든 죄를 걸머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그때만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그렇게 절규했습니다.  그것도 보통아버지라고 부른 것도 아니고 때로는 아바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이 아바라는 말은 아람 말인데, 우리가 말하는 아빠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친근하게 부르시고 그리고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기독교외에는 다른 종교에서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기도의 대상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이 옆집 아저씨가 아닙니다. 우리 아버지고 나의 아버지십니다.  어떤 사람이 아들의 전도를 받고 교회를 처음 나가보았습니다.  그런데 다들 기도하는데 자기아들이 기도하는데 무엇이라고 하냐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고 기도합니다.  자기 아들이 하나님 보고 아버지라고 하니까 그러면 하나님하고 나하고 촌수는 어떻게 될까? 따져보니까 자기는 형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 형님이라고 기도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형님이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리 나이를 많이 먹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아버지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이를 따지면 갓 태어난 애만도 못합니다.  이렇게 크고 위대한 분이 내 아버지시다.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얼마나 복 받은 사람이겠습니까?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다 부르지 않습니까? 그럼으로 나는 정말 이 땅에서 최고로 복 받은 사람이라고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미국의 신학자 부시넬이라고 하는 학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사역과 그 놀라운 교훈들이 일체 없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가르쳐주신 그것만 가지고도 그는 분명히 일류 최대의 스승이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는 이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 축복이고, 얼마나 놀라운 소식입니까?  여러분들 이것 하나만 바로 알면 다른 문제들은 이 안에서 다 해결되어집니다.  이것을 안믿기 때문에 염려하고 이것을 안믿기 때문에 걱정하고 이것을 안믿기 때문에 절망하지 하나님이 내 아버지시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내 아버지시다 이것만 믿으면 세상 살기 참 편합니다.  걱정 없습니다.  복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아버지라 부르면 대답하십니다.
로마서 8장 15절에 보면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아빠! 아빠! 그렇게 부르짖는다  말입니다.  천진난만한 아이가 아버지를 부를 때에 아빠 그렇게 부르지 않습니까? 나이가 50쯤된 중늙은이가 아버지를 바라보고 아빠 그렇게 부르면 징그럽지 않습니까? 유치원 다니는 어린애가 초등학교 다니는 어린애가 아빠를 만났을 때 아빠하고 달려가는 그 모습 얼마나 아름다습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러보세요 그것도 하나님 아빠하고 불러보세요 조용할 때 혼자서 하나님 아빠 하고 불러보세요. 집에 가서 불러보라면 안불러 보니까 지금 한번 불러봅시다. 하나님 아빠하고 불러 봅시다.  “하나님 아빠” 좀 가슴이 뜨거워집니까? 정말 내가 하나님이 여기 계신다고 생각하고 혹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 아빠하고 불러보면 우리의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핑 돌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를 지으신 주님”이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2절에 보면 주는 내 아버지 난 주의 소유 내가 어디를 가든지 날 떠나지 않네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아빠라 부를 때 주가 들으시죠. 아빠라 부르면 어떻다구요? 아빠가 들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 아빠라 부르면 하나님은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귀를 지은 내가 어떻게 너희 소리를 안듣겠느냐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아빠라고 아버지라고 부를 때 내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인 줄 믿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 아버지는 바쁘면 대답안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아빠라고 부를 때 마다 언제나 들으시는 하나님임을 믿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 하는 음성을 듣고 기도하여 응답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아버지는 책임지십니다.

아버지는 자녀에 대해서 모든 것을 책임지십니다.  아버지는 자녀를 먹여살리는 양육의 책임을 집니다. 교육의 책임을 집니다.  보호의 책임을 집니다. 기러기 아빠가 되기도 하면서 자녀를 공부를 시키기도 합니다. 몇일 전에 신문에 보니까 남자가 얼마나 연약한지 남자가 혼자서 한달만 살면 무너진다는 겁니다.  남자의 삶이 무너진다는 겁니다.  그런데 자기가 망가지고 무너지는 한이 있더라도 자식이 잘되기 위해서 기러기아빠가 되지 않습니까? 직장에서 온갖 수모를 다 당해도 처자식 먹여 살리기 위해서 그 수모를 다 참습니다.  세상에 부모는 자식이 성인 될 때 까지 늘 책임을 집니다.  이 세상의 부모는 자식을 책임지지 않는 부모가 혹시 있다고 할지라도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책임져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런 것은 이방인 아버지 없는 고아들이 하는 걱정이야 너희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니 그런 것 걱정하지 말고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말씀대로 살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주마고 약속하셨습니다. 빌립보서 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을 책임져 주시고 채워주신다는 이 사실을 확실히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아버지는 보호하십니다.

또 부모는 자녀를 보호하십니다.  부모는 자녀의 생활을 위험에서보호하고 질병에서 보호하고 사고에서 보호해 주십니다.  이 세상의 부모는 능력의 한계가 있어서 지키다가 지키다가 보호할 수 없을 때가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아버지는 우리를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고 낮의 해와 밤의 달이 상치 않도록 우편에서 그늘되어 주시고 모든 환란을 막아주시고 우리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켜주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1967년 6일 전쟁 때 이스라엘 군인 20명이 이집트 군대 3개 사단을 물리친 적이 있습니다.  이집트군이 손을 들고 항복하고 나왔습니다.  왜 그런가 알아보니 이집트 군대가 이스라엘군과 싸우는데 엄청난 군대가 이스라엘 군대와 같이 싸우고 덤벼드는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도저히 안된다고 생각해서 손을 들고 항복하고나왔습니다.  나와서 보니까 이스라엘 병사가 20명밖에 없어요.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 하나님의 군대을 보여주어서 그래서 안되겠다. 생각하고 손들고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지킬 때 이와 같은 방법으로 지킬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 23장 10절에는 “너희 중 한 사람이 천명을 쫓으리니” 했는데 그렇게 지켜 주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를 이렇게 지켜주실 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복 받은 사람인줄 모릅니다.  이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불러 보라고 해보세요? 그들은 하지 못합니다.  왜냐면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아버지를 부르는데 편안합니까? 아버지 부르면 얼마나 힘이 솟습니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하셨으나 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마치 목수가 의자를 만들어도 그 의자를 내 자식이라고 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혈통을 따라서 난 자식이라야만 자식이라고 하는 것처럼 이 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다 창조하셨지만 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르지 아니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산, 피로써 씻은 사람만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시는데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와 축복과 이런 호칭과 명칭을 주었으니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

이렇게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이 내 아버지니까 이런 복이 어디 있습니까? 이런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 하고 대화하고, 아빠하면서 대화하고 필요한 것 구해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빌게이츠의 아들이 돈이 필요한데 아버지에게 달라고 하지 않아서 거지꼴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바보입니까?  빌게이츠와 비교 안되는 하나님, 통치자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전지하신 하나님, 편재하신 하나님, 불변하신하나님, 영원하신 창조주하나님이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인데 구하여서 얻지 못하고 살아간다고 하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이제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하고 기도해서 응답받고 살아갈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미국의 어느 직장에서 한 직원이 출근해 보니까 자기 책상위에 아무 이유도 없이 통보도 없이 해고 통지서가 책상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는 분노했습니다. ‘이놈들을 죽여야지’하는 마음을 가지고 뛰쳐나왔습니다. 얼마쯤 있다가 그는 다시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는 아내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나가서 이것저것 다 해보니까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는데 나는 이제 죽는 길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내가 원수를 갚고 죽겠다고 그러니까 아내가 남편에게 이야기 합니다. ‘당신은 모든 일을 다 해보았다고 하지만 내가볼 때 당신이 하지 않은 것 꼭 한 가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당신의 문제를 진지하게 하나님 앞에 내어 놓고 기도하는 것을 하지 않은 것같다’고 이 말에 그 남편은 충격을 받습니다.  그러면기도해보아야 겠다고 아내와 더불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과거에 미워했던 마음 상사들 죽이고 싶던 마음이용서하는 마음으로 바꼈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셨습니다.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집을 담보로 돈을 내어서 조그만 건축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여행을 하다보니까 값비싼 호텔들은 좋기는 한데 너무 값이 비싸고 좀 돈이 적은 호텔에 들어가면 너무나 지저분해서 돈도 저렴하고 깨끗한 호텔을 지을 수 없을까. 그래서 그런 호텔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이분이 바로 세계적인 호텔 홀리데이 인 이라고 하는 호텔의 창업자 케몬스 윌슨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십니다.  이렇게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고 있으니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입니까?  땅에 아버지가 없어서 고독하신 분 있습니까? 하늘에 아버지가 있음을 믿고 기뻐하기를 바랍니다.  땅의 아버지가 못마땅하고 변변치 못해서 불평하는 분이 있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가 내 아버지임을 믿고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땅의 아버지가 아무리 좋아도 해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 아버지는 영원토록 나와함께 동행하십니다.  땅의 아버지는 때로 불안전하여서 나를 잘못인도하고 잘못 충고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 아버지는 전지하셔서 나를 바르게 인도하실 수가 있습니다.  땅의 아버지는 나에게 때로 인내하지 못해서 화를 내실 때도 있지만 하늘 아버지는 끝까지 인내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땅의 아버지도 참 좋지만은 하늘 아버지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이 놀라운 아버지를 내 아버지로 모셨으니까 이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모셨으니까 이제 찬양하고 감사하고 기도하여 복되게 살아가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기도할 때 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면은 그저 하늘에 계신하면 하나님의 위대하심, 하나님의 크심이 믿어지고, 기억나고, 아버지하면 그 아버지의 사랑하심 아버지의 친밀하심이 하나님의 자상하심이 가슴속에 물밀듯이 내 마음속에 밀려와서 기도할 때마다 힘이 솟아나고 믿을 가지고 기도하여 응답받고 살아 갈 수 있는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윤성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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