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새로 선출된 제자 맛디아 (행 1:21-26)

  • 잡초 잡초
  • 1737
  • 0

첨부 1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자들이 만나지 못했다면, 이들은 사명을 감당하다가, 순교자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제자들의 삶이 극적으로 변화됨을 통해, 예수님께서 분명히 부활하셨음을 알 수 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되면,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새 인생을 살겠다고, 한 장소에 모였다. 그 명단이 13절에 나와 있다. 예수님의 형제들은 주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요7:3-5), 예수님을 미쳤다고 하면서 붙잡으려고 하였다(막3:21).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주님의 동생들도 함께 기도에 전혀 힘썼다(행1:14). 여인들도 모였는데, 모인 무리가 모두 120명쯤 되었는데, 이곳에 꼭 있어야 할 사람 중에, 특별히 두 자리가 눈에 띄게 비어 있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의 자리가 비어있었다.

  또한 예수님을 배반하여 팔아넘기고 자살한, 가룟 유다의 자리가 비어있었다. 그래서 사도행전의 역사는, 이 비어 있는 두 자리를 채우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가룟 유다의 빈자리는 맛디아에 의해 채워지고, 예수님의 빈자리는 성령님께서 채우셨다.

  제자들은 이러한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모두 한 곳에 모였고, 먼저 마음이 하나가 되었다. 같은 예수님의 이름아래, 같은 장소에서, 같은 마음으로, 같은 소원을 두고, 같이 기도에 전혀 힘쓸 때에, 하나님께서는 부흥의 역사를 일으키셨다.

  이전에는 뿔뿔이 흩어지거나, 같이 있어도, 마음은 다른 곳에 있었고, 각기 소원도 달랐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의 몸과 마음과 심령이, 하나 되었다. 같이 기도에 힘쓰게 되었다. 의논할 일, 실천해야 할 일도 많았지만, 자신의 계획이나 생각을 말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뜻과 약속하신 성령님의 역사를 기다리며,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였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오순절까지, 10일 동안 이들은 오직 기도하면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렸다.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다가 베드로는, 그들에게 아직 무엇인가 부족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성령님이 강림하시기 전에, 실족하여 자살한 가룟유다의 자리가 눈에 띄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나를 좇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마19:28)고 하심이 생각났다. 그런데 지금 가룟유다의 자리가 빠져 있기다.

  그래서 베드로는 시109:8의 말씀을 인용하여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라고 하며, 보선하게 된다. 원래 사도는 주님께서 직접 뽑은 사람이지만, 이번에는 제자들이 기도하며, 예수님이라면 누구를 뽑으셨을까 생각하면서 보선하였다. 어떤 사람이 새 일꾼이 되어야 할까요?

1. 새 일꾼의 자격

(1) 초창기 사역부터, 항상 주님과 함께 다니던 사람(21-22)

이들은 12제자는 아니지만, 70인의 제자가운데는 들었던 사람이다.

  예수님에 대해, 간접적으로 듣고 아는 사람이 아니라, 직접 보고 체험하고 경험한 자였다. 주님의 직접 증인으로서, 주님과 교제를 항상 나눈 사람이다. 신앙성장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신앙체험은 소중하지만, 성장은 날마다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항상 주님과 함께 하는 성도가 되자.

(2)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본 사람 중에서 선출해야 한다(22).

예수님의 부활은 제자들과, 5백여 명의 목격자가 있었다고(고전15:5-6)하였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참 제자가 되게 만든 중요한 사건이므로, 부활의 체험이 없는 사람은 불가능하다.

  증인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자라야 될 수 있다.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고, 거짓으로 증거 하면, 벌을 받아야만 한다. 예수님께서 부활한 사건을 경험하면,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된다. 부활의 주님을 본 사람은 말하지 않을 수 없고,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제자들은 모두 도망가고, 계집 종 앞에서도 벌벌 떨던 제자들이, 담대하게 증거 하다가 순교하였다.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죽음 앞에서는 절망하게 된다. 그런데 죽음이 끝이 아닌 인생이 있다. 부활의 생명이다.

  따라서 불교, 유교, 힌두교, 이슬람교, 이 세상의 어떤 종교보다, 기독교가 더 뛰어남은, 주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부활의 소망을 가진 인생은, 그 어떤 어려움에서도 승리의 개선가를 부를 수 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15:55).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다. 우리가 전 할 메시지는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이다. 한 영혼을 그리스도께 인도한다는 말은, 예수교의 문화를 전파함이 아니다. 예수님의 멋진 교훈을 전함도 아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구세주와 주님 되심을 전하는 일이다.

(3) 다른 사도들이 추천한 사람(23)

한 사도를 보충하는데 있어, 다른 사도들의 추천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먼저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사도들이 볼 때에, 훌륭한 일꾼이요, 신실하고 충성스러운 사람이라고 인정받는 사람이어야 했다.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기 위해서는, 동료 사역자들이 볼 때에도, 칭찬할 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좋은 소문”이 난 사람이 바람직하다. 불신자나 또는 다른 성도들에게 나쁜 인상을 주고, 좋지 않은 소문이 많이 난 사람은, 결코 훌륭한 사역을 하기가 어렵다.

  사도들을 보충하고자 할 때, 열 한 명의 사도들은 심사숙고하고 진지하게 기도한 후에, 두 명의 후보자를 내세웠다. 이처럼 믿음의 선배와 다른 사역자들에게 인정받는 일을 결코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해서 후보를 두 명으로 좁혀 놓았다.

  한 사람은 유스도(의로운 자)라 불리며, 바사바(잡는 자의 아들)라는 별명의 요셉이요, 또 하나는 맛디아(여호와의 선물)였다. 사람들의 관점에는, 요셉이 더 적합했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요셉의 이름이 먼저 나오고, 그 이름도 세 개씩이나 기록되었다.

  이 두 사람은 누가 뽑혀도, 다 주님의 일을 감당할 사람이었다. 이렇게 복수로 추천해 놓은 다음, 최종적으로 하나님께서 뽑아 주시기를 원했다. 여기까지 제자들은 준비해 놓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24-25) “…누가 주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 보이시옵소서”

  그리고 제비를 뽑아서, 맛디아가 새롭게 선출되었다. 12명의 사도가 되었다.

2. 새 일꾼은 사명을 붙들어야, 빛나는 인생이 된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그 사명을 빼앗길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하나님께서 유다가 제 길로 가자, 그를 대신해서 새로운 사람을 세우고, 그 일을 감당케 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께 받은 사명이 무엇이며, 지금 그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주신 직분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 목사는 목사대로, 안수집사는 안수집사대로, 집사는 집사대로, 교사대로, 성가대원대로,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가장 불행한 사람은, 주일날만 교회 왔다 가는 사람, 사명 없이 다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사명선언서를 만들자.

  왜냐면 사명이 인생을 빛나게 하기 때문이다. 사명은 아름답고, 보람된 인생으로 살게 한다. 사명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지난 타임지에, 금세기에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 100명을 선정하여 발표했다. 그 중에 한 명이 미국에서, 토크쇼를 진행하는 여자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다.

  그는 지금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매일 그의 프로를 보는 사람는 1,400만 명이나 된다. 132개국에 위성으로 중계되는데, 그가 한번 책을 추천하기만 하면, 일약 베스트셀러가 된다. 한 번은 장애인들을 대학 보내기 캠페인을 벌렸는데, 순식간에 100만 불의 성금이 모금되었다.

  지난번 광우병이 돌자 TV에서 “이제는 햄버거를 먹지 말아야겠다”고 한 마디 했는데, 미국 전역 햄버거 매출에 엄청난 타격을 주어, 축산업이 도산할 지경이 되었다. 이렇게 영향을 미치는, 오프라 윈프리는 아픔이 많은 여자다.

  그녀는 1954년 미혼모에게 태어나, 외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손을 전전하며 상처투성이로 자랐다. 그러나 그는 눈물 속에서도, 매일 성경을 읽고, 암송하며, 위로 받으며 자랐다. 열심히 책을 읽었다. 아픔과 슬픔과 비애를 독서로 달랬다. 심지어 밥을 먹으면서도 책을 읽었다.

  이렇게 열심히 책 읽는 모습을 선생님께서 보시고, 장학금을 추천해 주었고, 좋은 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노력하여, 훌륭한 100명중에 한 명의 인물이 되었다. 그녀는 “이것이 사명이다”라고 쓴 자전적인 글에서, 4가지 인생철학을 전하고 있다.

(1) 남보다 더 가졌음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

오프라 윈프리는 강간당해 태어난, 혼혈아로 자랐다. 멤피스 어느 조그만 교회로 피신하여, 목사님 차고에서 살던 때가 있었다. 할 일 없으니까 기도만 하고, 할 일 없으니까 책만 읽을 때가 있었다.

  그때 교인들이 밥 사먹으라고 10불을 주고, 책 사보라고 50불도 주고, 옷 사서 입으라고, 100불도 줄 때, 너무나 그 돈이 귀했다. 그때 “남보다 더 많이 가졌음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도 축복이 사명임을 깨달아야 한다.

  남보다 지혜가 많으면, 그 지혜로 하나님의 일을 하고, 남을 도와주라는 명령이다. 남보다 물질을 많이 받았다면,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하라고 주신 사명이다. 남보다 더 건강하면, 남을 위해 건강을 사용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2) 남보다 아픔이 있다면, 이는 고통이 아니라 사명이다.

그 아픔을 통하여,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을 위로하고 사랑하라는 명령이다. 윈프리는 너무나 많은 아픔을 지니고 있는 여자다.

  가난의 아픔, 집이 없는 아픔, 배고픈 아픔,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아픔, 혼혈의 아픔,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을 가지고 있는 여자였다. 그래서 그는 자기처럼 아픔을 가진 사람을 보면, 그 아픔을 너무나 잘 알기에, 아픔을 나눔으로 한 마음이 되어 위로를 한다.

  한 여인은 남자들에게 윤간 당하고, 마약을 한다고 할 때 그는 “나도 사생아로 태어나 어렸을 때 강간을 당한 적이 있어요”라고, 1,400만 명이 보는 앞에서, 솔직히 이야기함으로 동감을 가지게 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었다.

(3) 남보다 설레면, 이는 망상이 아니라 사명이다.

오프라 윈츠리는 자신이 그렇게 불행하게 살아 왔기에, 자기처럼 불행한 아이들을 위하여 살고 싶어 가슴이 설레게 된다고 한다. 이처럼 남들은 무심한데, 유독 자기만 설레면 하나님의 사명이다.

(4) 남보다 부담되면, 이는 강요가 아니라 사명이다.

오프라 윈프리는 길을 가다가, 고아들이나 사생아나 혼혈아가 눈에 띄면, 부담감을 느꼈다. 그래서 그들을 양육원에 데려다가 기르고 있다. 자기가 부담을 느끼는 일을, 사람들은 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부담감이 사명이다. 교회를 볼 때, 빈자리가 있어 가슴이 아프면, 그건 그 사람이 하라는 하나님의 사명이다. 그녀는 이런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일하였고, 미국 내에서도 개인소득 선두를 달릴 정도로, 많은 돈을 벌고 있다. 사명에 따라 봉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남겨두시고, 직분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라고 사명을 주셨다. 그러나 마귀는 사명감이 없는 삶을 살도록 만들어서, 허송세월을 보내도록 만든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내 사명이 무엇인지 주님께 물어보시고 순종하시기 바란다.

3. 드러나지 않은 숨은 일꾼 맛디아

맛디아는 제자의 자질이 풍부한 인물이다. 그는 침례 요한의 때부터,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시는 날까지 줄곧 주님을 따랐고, 지위와 신분이 없어도 위축됨이 없이 자신의 일을 잘 했다.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에도, 제자들과 함께 하며, 단체를 이탈하지 않았다. 여기서 맛디아의 겸손과 순종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맛디아가 사도의 대열에 동참하자, 즉시 한마음 한 뜻으로 일할 수 있었다. 이는 평소에 묵묵히 제자의 길을 닦았기 때문이다. 

  사도의 대열에 가담한 후에도, 다른 사도들과 더불어, 사도의 업무를 감당할 수 있었다. 그가 만일 오랫동안 이름 없던 때를 견디지 못해, 원망하거나 불평했다면 보선을 할 때, 여러 사도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었다.

  요셉과 맛디아는 같이 뽑혔지만, 한 사람은 하나님께 사도로 선택받고, 한 사람은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어떤 갈등도 발견되지 않는다. 사도가 되었든지, 되지 않았든지 간에,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만을 원했다.

  행1장에 맛디아란 이름이 기재되었지만, 그의 이름은 사도들 가운데 묻혀버렸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 강림 때, (2:14)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말했다”. 이를 보면 그는 이미 모든 사도와 함께 열심히 일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사도로 보선 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성령님께서 온 교회에 충만히 임하셨다. 이를 보면 그가 다른 사람과 한 마음이 되어 열심히 일을 했었고,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음을 알 수 있다. 그의 보선이 사도들간의 혼란을 유발시켰다면, 과연 성령님께서 충만히 임하셨을까?

  사도들은 성도들에게 존경받았지만, 그 당시 환경에서는 핍박의 주요 대상이었고, 군중들로부터 배척 당하기도 했다. 따라서 사도의 직분은,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열정과, 핍박과 생명의 위험을 당해도, 감당할 각오가 없으면 안 된다.

  제자들이 핍박 때문에 사방으로 흩어졌을 때에도, 사도들은 예루살렘을 사수했다. 주님의 군사는 세상의 험난한 파도를 헤쳐 나가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의무이다. 우리는 명예와 함께, 멍에를 질 각오를 해야 한다. 그래서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았다.

  맛디아의 행적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그는 12사도 중의 한 사람으로, 사명을 감당했다. 그리고 에티오피아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고 목매달려 순교했다. 그래서 맛디아는 제자 중에서, 마지막으로 새 예루살렘 성의 반석에, 이름을 새기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우리도 맛디아처럼 제자의 반열에 들어가자. 물론 첫 사도는 직접 예수님께서 부르시었지만, 그 후에 가입된 제자로는 바울, 실라, 디모데, 마가 등으로 구별한다. 그래서 바울 자신도 주님께 부름 받은 제자로 늘 여기며 살았다. 우리도 이 제자들처럼, 제자처럼 살자.

  주님의 제자들은 한결같이 충성을 다 바쳤다. 이들은 복음을 위하여 위대하게 살았고, 장렬하게 순교했다.

  결론이다.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모셨다면, 항상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자.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지켜 행하자. 우리가 이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에베소 교회처럼 촛대를 옮기실 수도 있다. 뒤에서 일하더라도 불평하지 말고, 숨어서 일하다보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다.
(이건기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