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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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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낚시꾼이 낚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낚시꾼은 오른손에 낚싯대를 들고 왼손에는 25센티미터짜리 자를 들고 있었습니다. 낚시꾼은 고기를 잡을 때마다 왼손에 들고 있던 자로 물고기 길이를 재보았습니다.
고기가 자의 길이보다 크면 버리고 작으면 그릇에 담았습니다.
곁에서 이를 지켜보던 사람이 이상하게 여겨 왜 그러느냐고 묻자
낚시꾼은 "우리집 프라이팬은 지름이 25센티미터입니다. 프라이팬보다 더 큰 것은 볶아먹을 수 없어서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제한된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지를 깨닫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마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
이 말씀의 배경은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죄 값을 치루기 위한 십자가를 지시게 됨을 제자들에게 알려 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잔혹한 형벌입니다. 십자가형은 십자가 위에서 양손 양발에 못이 박히고 머리에는 가시로 만든 것이 씌워지고 의식을 잃었다가 또 의식을 찾았다가 하는 엄청난 고통 중에 죽어가는 형벌입니다.

제자 베드로는 그렇게 하시지 말라고 간청을 합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스승이 그 같은 고통을 당한다고 할 때 그렇게 하지 말라고 간청하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엄히 책망을 하시되 "사단아 !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먼저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한다면 그는 틀림없이 좋은 제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일 즉 자기유익을 먼저 생각한다면 그는 제자의 길을 온전히 걷지 못할 것입니다.

김석년의《지혜자의 노래》중에 이런 글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생각이라고 해서 다 같은 생각이 아닙니다.
많이 생각하는 것과 깊이 생각하는 것은 다릅니다.
생각이 많으면 번민하기 쉽습니다.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성찰을 의미합니다.
삶과 사건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비로소 자족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thank"(감사)의 어원이 "think"(생각)이라고 합니다.
일리 있는 말입니다. 깊이 생각할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깨달음이 깊을수록 감사도 깊어지는 것입니다.
말도,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이라 해서 다 같은 말이 아니고, 글이라 해서 다 같은 글이 아닙니다.
깊이 생각한 말, 깊이 생각한 글은 다릅니다. 그 맛이 다르고, 그 뜻과 힘이 달라집니다.

저는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삶이라고 해서 다 같은 삶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온전한 내재하심 가운데 깊이 생각하며 사는 삶은 그 맛이 다르고 권세와 능력과 감동이 달라집니다.
삶에서 주님의 심오한 거룩을 느끼고, 삶에서 주님의 전적인 인도를 느끼고, 삶에서 주님의 따뜻한 온기를 감지합니다.
삶에서 주님의 영원한 사랑을 느끼며 삶에서 주님이 주신 생명의 소중한 가치를 느낍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본문에서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히12:2절에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예수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까?
왜 우리가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까?

1. 우리는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이기 때문입니다.
벧전2:9-10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너희가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긍휼을 얻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악의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주님의 기이한 생명의 빛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된 우리들은 예수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2. 예수그리스도는 우리를 믿음으로 이끄시는 분이시며 모든 죄를 대속하신 구세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8:12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예수는 우리 삶의 모든 어두움을 밝히시는 참 빛이십니다.
요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참 진리이십니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죽음에서 생명을 얻게 되었고 파멸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믿음으로 이끄시며 구세주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3.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온전케 된다는 것은 완전한 구원을 말씀하는 것인데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는 일시적인 구원은 가능하지만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 받는 완전한 구원은 불가능합니다.
완전한 구원을 이루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완전한 구원을 위해 자기를 낮추시고 육신의 몸을 입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사람을 살리시기 위해 흠 없는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는 속죄의 제물로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십자가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며 오직 우리들의 구원을 먼저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으신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부활의 소망과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히12:2절은 말씀하기를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믿음의 도리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여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대상이 사람이라면 사람을 바라볼 것입니다.
우리를 온전케 하는 것이 돈이라면 돈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믿음의 대상이 돈이면 돈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의지하는 것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를 바라보아야 하는 중대한 이유는 그분이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깊이 생각하라’는 말씀은 헬라어로 ‘카타노에사테’인데 그 뜻은 ‘어떤 일에 몰두하다’ ‘마음을 고정시킨다’는 의미로 쓰여진 것입니다.
그런데 히브리 기자는 이 단어를 명령형으로 사용하여 성도들이 반드시 해야 할 것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한다는 것, 예수를 바라본다는 것은 생각과 시선을 예수에게로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영적 삶의 성공비결입니다. 이것이 성도들이 이 땅에서 승리하며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히스기야가 죽음을 선고받은 후 벽을 향하여 얼굴을 대고 기도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기도한 것은 다른 것들에 시선을 빼앗기거나 다른 생각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집중했던 그의 기도는 응답되었고 하나님은 구하지 않은 복도 주셨습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말씀에 담긴 의미가 무엇일까요? 저는 세 가지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첫째,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것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통해 발견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독생자 아들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셨고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를 십자가의 대속의 제물이 되어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면 나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오직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 직원 큐티 시간에 요21장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님이 베드로에게 묻으셨던 물음이 제 마음에 들려졌습니다. 요한의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춘화 장로의 아들 광호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리고 주님의 음성이 다시 들렸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
예수를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목회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양을 돌보고 먹이라는 주님의 음성으로 깨달았습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고
너도 사랑하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하며 삽시다. 내가 먼저 사랑하고 이해하고 용서합시다.
그것이 마땅한 성도의 길이요 축복의 비결입니다.

둘째,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것은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2절에 “저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하시기를...”
6절에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예수를 깊이 생각하면 나오는 것이 충성입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순종하며 맡긴 사명을 끝까지 완수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육신을 입으신 것은 사명 때문입니다.
그 분이 골고다 언덕에 올라 십자가의 형벌을 받아 죽으신 것도 사명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보내신 뜻을 온전히 이루시기 위해 예수님은 목숨까지 드려 충성하셨던 것입니다.

십자가는 무서운 형벌입니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는 갯세마네에서 땀이 피가 되도록 진액을 쏟으시며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길을 결단하셨습니다.
이유는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며 사명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며 우리들도 사명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보내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나를 통해서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목적하심을 따라 충성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셋째,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것은 희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함으로 환난과 역경을 이길 수 있다. 어떤 절망스러운 상황에도 낙심하지 않을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혼의 구원자만이 아니라 우리 모든 삶에 문제를 고쳐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의 친구가 되어 주셨고 고통 받는 자들과 함께하셨습니다.
예수는 눈먼자의 눈을 뜨게 하셨고 문둥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세상이 치료할 수 없었던 혈루증도 고침 받았고 38년된 병자고 나음을 얻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며 절망하는 자에게 희망이 되어주셨습니다.

예수를 통해 치유와 회복이 일어납니다. 예수는 모든 눈에 흐르는 눈물을 씻어 주십니다.
참된 위로와 평안이 예수께 있습니다. 묶인 자를 풀어 참 자유와 해방을 얻게 하십니다.
절망으로 가득한 세상에 희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것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그 희망을 말하라는 것입니다.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를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편하게 생각하려고 합니다. 가볍게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많은 생각은 있지만 깊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생각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오늘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왜 예수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까?
1. 우리는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이기 때문입니다.
2. 예수그리스도는 우리를 믿음으로 이끄시는 분이시며 모든 죄를 대속하신 구세주이시기 때문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희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도리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처럼 사랑하고 예수님처럼 충성하고 예수그리스도가 희망임을 선포하며 사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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