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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사장의 임직식(위임)은 이랬습니다 (출 2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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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 선지자, 왕은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다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남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은 투표해서 세우는 것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그 뜻대로 세우시는 자리입니다. 그 기준도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입니다. 기간도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입니다. 오직 그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대부분 특별한 일만 없으면 죽을 때까지 그 일을 합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이 레위 지파 사람들만 하도록 해놓으셨습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고 잘난 사람이라도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제사장 직무 이외의 일은 절대 하면 안 됩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일만 합니다. 나이가 몇 살이라야 되는지? 그런 것은 잘 모릅니다. 그들은 백성들의 죄를 대신해서 제사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이 일을 하는 사람을 성직자라 했습니다. 그 제사장의 위임식 절차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의 위임하는 절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두 마리를 흠 없는 것으로 구합니다. 또 고운 밀가루로 누룩 안 든 빵을 만듭니다. 누룩 없이 기름으로 반죽하여 과자를 만듭니다. 이것은 누룩 없이 기름만 발라 만든 속 빈 과자를 만듭니다. 이것을 모두 한 바구니에 담습니다. 그리고 수송아지와 숫양 두 마리와 함께 바칩니다. 아론의 아들들을 만남의 장막 문간으로 나오게 합니다. 그리고 목욕을 시킵니다. 그리고 속옷과 에봇에 달린 도포와 에봇과 가슴받이 등 의복들을 가져다가 입혀야 합니다. 아론에게는 입히고 에봇 관대로 묶어야 합니다. 머리에는 사모를 씌웁니다. 사모에는 성직 패를 붙입니다. 걸죽한 기름을 아론의 머리 위에 붓습니다. 그리고 일을 맡기는 것입니다 또 아론의 아들들에게도 속옷을 갈아 입혔습니다. 띠를 띠웁니다. 두건을 씁니다. 그런데 법으로 정해진 제사장직은 영원한 것입니다. 이 제사장직은 오직 아론과 그 아들들만 맡게 된 것입니다. 수송아지도 아무렇게나 끌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끌어다가 제사장이 그 머리에다 안수를 합니다. 만남의 장막 문간 여호와 앞에서 잡습니다. 그 송아지의 피를 손가락에 찍어 제단 뿔에 바릅니다. 나머지 피는 제단 바닥에 붓습니다. 내장과 모든 기름은 꺼냅니다. 제단 위에 불태웁니다. 송아지의 살코기와 가죽과 똥은 성전 밖에 태워 없앱니다. 이것이 속죄의 제사입니다. 그리고 다시 수양 한 마리를 끌고 옵니다.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두 손을 머리에 얹게 합니다. 그 피를 찍어 제사장들의 오른쪽 귓바퀴에 바릅니다.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가락에 바릅니다. 또 제단을 돌아가며 피를 주위에 뿌립니다. 그리고 제복을 입습니다. 그 옷에다 피를 뿌립니다. 양의 기름, 콩팥을 떼냅니다. 오른쪽 넓적다리는 자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빵을 바칩니다. 이런 것들을 다 제단 위에 올려놓고 태웁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제사인 것입니다. 이것이 제사장 위임식의 일부분입니다. 참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Ⅰ. 제사장이 왜 필요합니까?

지금 세계는 걱정이 대단합니다. 어떻게 살아갈까 머리가 아픕니다. 고급 인력의 일자리가 마땅치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그렇습니다. 9급 공무원 시험이 50대1, 어떤 직은 100대1 을 육박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제발 장기 복무하라고 하던 군대도 사정은 달라졌습니다. 부사관, 장교의 장기복무도 까다롭다고 합니다. 사범대학이나 교직과를 졸업한 사람도 교원임용고사를 쳐야 합니다. 이 시험도 고사가 아니라 고시수준이라고 합니다. 작년에 휴가 때 만난 중소기업의 회장님(현재76세)이 멋쟁이셨습니다. 세계를 누비시고 영어도 유창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며칠 전에 이메일이 왔습니다. 자기 회사에 생산직 사람이 모자라 야단이랍니다. 수출은 해야 하는데 힘들다고, 사람이 오지 않아 걱정이랍니다. 정작 이런 곳엔 사람이 없어 걱정이랍니다. 그런데 당시 제사장은 오직 성전에서 제사 드리는 일만 했습니다. 성전은 예루살렘 성전 달랑 하나였습니다. 지금은 사막에 세워진 천막 성전 뿐입니다. 그런데 제사장 숫자는 많았습니다. 어떤 때는 제사장 수가 많아서 1년에 한두 번 정도 제사 드리는 일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웬만하면 사람이 너무 많다, 놀고 먹는 사람 좀 줄이자 할법하지요. 그런데 제사장만 많은 것 아닙니다. 레위 지파 사람들이 다 성전 하나만을 위해서 있는 사람입니다. 한 때는 성전 문을 지키는 문지기만 200명이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은 좀 나은 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백성들은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사실 이 제도는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였기 대문입니다. 불편해도 이러쿵저러쿵 말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사장은 당시로는 일종의 귀족이었습니다. 종교 귀족만 아닙니다. 사회적 귀족이었습니다. 그 때는 신앙이 거의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시는 때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리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천주교회에서는 신부님이라고 부릅니다. 구약의 제사장 같은 그런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다들 하나님께 바쳐 일하는 사람입니다. 어느 시대나 종교는 사회의 양심이었습니다. 종교는 사회의 잣대였습니다. 허파였습니다. 종교가 올곧으면 사회는 행복했습니다. 종교가 타락하면 사회는 무법천지였습니다. 그렇다면 제사장은 오직 말씀과 기도와 가르침과 봉사가 자신들의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독교가 우리나라의 국교이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부패할 우려가 높습니다. 미국이 기독교가 국교가 아닙니다. 그래도 그 나라를 세운 조상들이 믿던 하나님을 믿습니다. 대통령 취임식에도 기도가 있습니다. 예배가 있습니다. 역대 대통령이 케네디 대통령만 천주교인이었습니다. 그 외 전부 개신교 교인이었습니다. 지금도 곳곳에서 반기독교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한 사람의 정직한 신앙 지도자의 영향은 대단합니다. 저는 늘 두려운 마음을 갖습니다. 내가 사회의 등불이어야지요. 세상의 소금이어야지요. 사회의 양심이라야 되지요. 그런데 늘 저는 제 자신에게 많이 꾸짖고 합니다. 정말 하나님과 백성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정말 제사장이 필요 없을 만큼 사회가 맑다면 문제는 다르겠지요. 그런데 구석구석에 자꾸 곰팡이가 돋아납니다. 이 영적인 병을 치료해야지요. 지금 못 살겠다고 아우성입니다. 얼마 전(2006.3.23 조선일보) 프랑스는 무질서랍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대학이 소르본입니다. 소르본의 봄은 찬바람이 분다는 것입니다. 전국 대학이 3주 넘게 문을 닫았습니다. 경찰이 겹겹이 지키고 있습니다. 근로자, 대학생, 고등학생까지 수십만 명이 시위를 합니다. 이를 두고 신문은 “소르본의 봄”이라 한답니다. 프랑스는 만 26세 미만의 젊은이를 채용하고 2년 이내에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한 법이 문제입니다. 이것을 철회하라고 야단입니다. 우리나라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거 안 됩니다. 똑같이 일하는데 임금은 정규직에 비하면 너무 적다는 것입니다. 또 언제 목이 잘릴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 말이 틀리지 않습니다. 방에 가면 시어머니 말이 맞고 부엌에 가면 며느리 말이 맞다는 말이 있습니다. 경영자나 노동자는 그 말이 다 일리가 있습니다. 노동자는 사용자가 횡포한다고 합니다. 사용자는 노동조합 때문에 회사 문을 닫을 지경이라고 합니다. 다들 귀담아 들어 보면 그럴듯합니다. 그만큼 살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들 주변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Ⅱ. 제사장은 무엇 하는 사람이길래.

이름 그대로 제사 드리는 사람입니다. 인간 편에서 하나님께 죄 용서를 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인간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입니다. 인간이 어떤 자리에 있다는 것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그래서 성직자라 부릅니다. 더 쉽게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위임식 절차가 굉장히 복잡합니다. 까다롭습니다. 또 엄숙합니다. 소나 양을 잡아야 합니다. 제사장도 사람입니다. 사람이기에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도 짐승을 잡아 하나님께 제사 드렸습니다. 성경 어느 곳에도 제사장은 죄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 제사장은 완전해야 한다는 말이 없습니다. 우리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구김살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제사장은 일단 신체적인 불구자는 안 됩니다. 이렇듯 제사장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이 사람을 통해 백성을 만나십니다. 이 사람을 통해 백성의 소리를 듣습니다.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평범합니다. 그렇지만 그 생활은 성결해야 합니다. 그만큼 그 자리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 지구촌은 죽음과의 전쟁입니다. 동아프리카인 소말리아, 케냐, 에티오피아 등은 45년 만에 최악의 가뭄이랍니다. 40도가 넘는 사막의 나라입니다. 몇 달째 물 1컵으로 한 가족이 하루를 견디어야 한답니다. 다음달까지 비가 오지 않으면 1,400만 명이 죽게 됩니다. 그런데 기상대에서는 비 올 확률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잔인할 정도로 잠잠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인구의 1/4이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남의 나라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걱정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엘리야는 어디 있습니까? 이 시대의 선지자는 없습니까? 이 시대의 제사장들은 잠들었나요? 걱정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제사장을 통해서 백성에게 살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사람은 지금도 태어납니다. 병으로 앓고 있습니다. 늙고 또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이를 고통의 바다(苦海)라고 합니다. 또는 불이 붙은 집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불난 집에서 아무리 버둥거려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쟁, 배고픔, 전염병으로 심판 하셨습니다. 지금 세상은 이 셋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누구도 이 세상이 영원하다고 믿는 사람이 없습니다. 낙원이 아닙니다. 유토피아가 아닙니다. 실낙원(失樂園)입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절망일 때 기대는 벽이 있었습니다. 제사장이었습니다. 누구나 가슴앓이가 있습니다. 죽음의 공포가 있습니다. 때에 제사장은 하나님과 만나게 해 줍니다. 징검다리였습니다. 물론 소, 양, 비둘기라는 생명을 바침으로만 가능했습니다. 제사장은 인생의 고민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하나님, 그가 그만 이러이러한 죄를 지었습니다. 그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가 죽어야지요. 그러나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 여기 송아지(양, 비둘기)를 잡아 피를 드립니다. 이를 받으시고 그를 용서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그 짐승을 받으시고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사장의 임무입니다. 그는 자기 삶이 없습니다.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사장을 아무나 쉽게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고로 그 위임식 절차도 좀 까다롭고 복잡합니다. 제사장은 백성 편에서 늘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백성을 사랑합니다. 성경에 예수님은 선한 목자라 했습니다.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린다고 했습니다.

맺는 말 :

저는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물론 성막 규모에 비하면 제사장 숫자는 많습니다. 200만 영혼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오직 영적인 일만 하라고 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의 십일조로 삽니다. 오직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철저히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합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성전에서 다른 불을 사용했습니다. 현장에서 죽이신 것입니다. 그만큼 영적 책임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임직식(위임식) 절차가 복잡합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임을 알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늘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늘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백성들의 영적인 면을 살펴야 합니다. 또 건강문제까지 챙겼습니다. 거의 백성들의 삶 전반을 책임진 사람입니다. 이 시대 목사도 그런 사람입니다. 목사가 목사 본연의 일을 잘 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편합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집니다. 한 주간도 주안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2006.4.2-충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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