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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늘 문을 여시고 언약을 주시는 하나님 (창 28:15~17, 히 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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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이 한참일 때에 어느 젊은 전투기 조종사가 한 여성과 펜팔을 하게 되었습니다. 격렬한 전쟁이 주는 허무함, 출격 때마다 느끼는 불안과 긴장 가운데서도 조종사는 그 여자가 보내는 편지에서 위로를 받고 삶의 용기를 가지곤 했습니다. 전장에서 편지를 받는 것이 그에게 가장 기쁜 일 중의 하나였습니다. 마침내 전쟁이 끝나고 두 사람은 편지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만날 약속을 했습니다. 그는 기차를 타고 미리 약속한 역에 내렸습니다. 그녀는 약속한 역에서 꽃 한 송이를 들고 있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대합실에는 늘 머리 속에 상상하던 예쁜 여인이 아니라 한 뚱뚱한 여자가 꽃을 들고 서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아가씨가 아니라 아줌마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렸습니다. 조종사는 크게 실망이 되어 모르는 체 그냥 지나갈까 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러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녀에게 다가가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그 순간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금 전에 웬 예쁜 멋쟁이 아가씨가 내 손에 이 꽃을 쥐어주면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오면 건너편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달라고 했어요.” 이 이야기는 잘 아시는 ‘사랑의 약속’이라는 단편 소설의 줄거리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약속을 잘 지킵니까?

  사람은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본성이 신실치 못한 데가 있습니다. 그리고 주변 여건이 변화되어 약속을 지키려고 하여도 지키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반드시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절대적 존재가 아니라 여건에 따라 얼마든지 변하는 상대적 존재입니다. 나폴레옹은 “약속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은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극히 인간적인 소리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인간과의 관계에서 약속을 언약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그 언약은 반드시 지키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절대적 존재이기에 가능하십니다.

  언약이란 히브리어로 ‘브리트’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쪼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희생동물을 잘라 두 줄로 두고 그 사이에 언약자가 지나감으로 언약을 체결합니다. 언약이란 두 사람 사이의 관계적 약속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어길 수 없습니다. 만약 어기면 짐승처럼 자름을 당한다는 뜻입니다. 창세기 15장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맺으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상속자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아브람은 자신의 늙은 종이 자신의 상속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늘의 뭇별과 같이 후손이 많아질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하시고 아브람에게 희생을 드릴 짐승을 가져오라고 하셨고 아브람은 그 짐승들을 쪼개었다고 합니다. 언약의 표시였습니다.

  밀러(R C Miller)라는 분은 성경의 수평적 이해를 다섯 개의 ‘C’로 해석하였습니다. 창조(Creation), 언약(Covenant), 그리스도(Christ), 교회(Church), 완성(Consummation)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성경을 보면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 66권은 ‘약속 모음집’이란 말이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은 그 이름이 낡은 약속, 새 약속이란 말입니다. 성경에는 약속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명 설교가 스펄젼은 성경에는 32,500가지의 다양한 약속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한 무지개 언약 외에도 다양한 언약, 약속이 있습니다.

  야곱에게 하늘을 여시고 하늘에 닿은 사닥다리를 보이신 하나님은 야곱에게 보이시려고 하늘을 여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광경을 처음 제자인 나다나엘에게도 보이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하늘 문이 열리는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을 언약하시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과 언약을 맺으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네가 누워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선수적 약속입니다. 야곱의 요청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제적인 언약입니다. 성경의 언약은 언제나 하나님의 선수적 사랑이 그 동기입니다.

  야곱에게 하신 언약의 내용을 보세요. 얼마나 다양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얼마나 사람에게 필요하고 적절한 언약인지 모릅니다. 첫째는 “땅을 주리라”는 것입니다. 땅은 중요한 삶의 터전입니다. 동양적 관념에서 땅은 중요합니다. 땅이 중요한 정착농경민족은 현주소 외에 본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는 “자손이 번성하리라”는 것입니다. 자손의 번성은 성경에는 축복의 한 방편으로 설명합니다. 셋째는 “복의 근원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축복을 나누어주는 축복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복음성가에 “당신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축복의 통로, 당신을 통하여 열방이 주께 돌아오게 되리”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정말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이 축복입니다. 넷째는 “너를 지키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보호자가 된다는 것은 유랑민에게 절대적 은총입니다. 다섯째는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귀소본능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은 귀소본능이 가장 발달했다고 합니다. 이번 추석에도 많이들 고향으로 가겠지요? 여섯째는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가장 든든한 힘, 동반자, 후견인이 되겠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든든한 말씀입니까?

  홍수 이후의 무지개 언약은 하나님과 백성의 가장 중요한 언약입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언약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 교회, 사회가 사실은 ‘언약 공동체’입니다. 가정에도 서로의 언약이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서로의 언약이 있습니다. 사회에도 약속이 얼마나 많습니까? 대통령도 취임할 때 “국법을 준수하고”라고 선서합니다. 그런데 이런 언약을 파기하게 되면 지지율이 14%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가지 언약이 아니라 필요한 모든 것, 감당할 수 없는 많은, 각종 좋은 것으로 언약하십니다. 우리의 매일 삶에서 보면 하나님이 온갖 풍성한 것으로 언약을 맺으신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풍성한 하나님의 언약이 발견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히브리서 8:6에는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언약을 맺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언약은 그 중보자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언약의 중보자이십니다.

  성만찬을 베푸실 때 예수님은 포도주 잔을 드시고 ‘언약의 피’라고 하셨습니다. 몸을 쪼개어 친히 언약의 상징이 되셨습니다. 피를 흘리므로 언약의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이렇게 몸과 피를 주심으로 확실한 언약이 되셨습니다.

  에베소서 2:12에는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라고 합니다. 그리스도 밖에서는 언약의 외인입니다. 그러나 2:19에는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합니다. 언약의 중보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언약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언약의 통로가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리빙스턴은 16년의 아프리카 선교에서 27번이나 죽을 뻔했습니다. 한쪽 팔은 사자에게 물려 못쓰게 되었습니다. 그의 공을 기려 글래스고 대학교가 박사학위를 수여했습니다. 그는 인사말을 통해 청중에게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가겠다”고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말도 다르고, 풍습도 다르고, 적대시하고, 생명의 위협도 있지만 예수님께서 ‘보라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하신 그 든든한 말씀 때문에 힘을 얻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야곱과 언약을 맺으신 때는 야곱이 가장 어려울 때입니다. 가장 외로울 때입니다. 마음 가득이 자책감을 가질 때입니다. 가장 어려울 때입니다. 우리에게도 그렇습니다. 가장 어렵고 힘들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약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십니다. 복음성가 가운데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인생의 어려운 순간마다 주의 약속 생각해보네. 내 맘 속에 믿음 잃지 않고 말씀 속에 위로를 받네. 주님의 도우심 바라보며 모든 어려움 이기도다. 흘러가는 순간순간마다 주님 약속 새겨 봅니다”. 정말 가사가 은혜롭습니다. 인생에 어려운 순간이 닥칠 때마다 주님의 약속을 새기며 힘을 얻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야곱과의 언약은 확실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야곱은 땅을 차지했습니다. 자손이 번성하였습니다.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부자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어느 한 순간도 하나님은 야곱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언약하신 것을 그대로 이루셨습니다.

  아브람과 하나님의 언약은 창세기 15:18에는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라고 합니다. 창세기 17:7에는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아브람과의 그 언약은 이삭에게 전승됩니다. 창세기 26:3에는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이삭에게 말씀합니다. 이삭에게 주신 언약은 야곱에게 전승됩니다. 창세기 28:13에는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언약은 낱낱이 이루어집니다.

  야곱과 70명의 가족이 애굽에 살게 된 다음 430년 후에, 4대 만에 언약을 이루어 노예이었던 백성들을 이끌어내어 가나안으로 가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기 6:5에는 “이제 애굽 사람이 종을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을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모두 기억하고 어기지 않고 이루십니다.

  왜 언약은 반드시 이루어집니까? 하나님의 신실성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민수기 23:19에는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고 하십니다. 사무엘상서 15:29에는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고 하십니다. 영원불변하신 주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한번 순금은 영원한 순금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변함이 없는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은 왜 약속을 어깁니까? 사람은 이익에 따라 심경의 변화를 일으킵니다. 환경에 따라 주변의 변화를 일으킵니다. 누구나 약속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을 이행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약속은 어렵고, 약속의 이행은 쉽습니다. 하나님께 왜 약속이 어려운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하는 전제 때문에 약속이 어렵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일화가 남아 있습니다. 왜 링컨이 술을 마시지 않았는지 아십니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어머니와 약속을 했습니다. 어머니와 술을 마시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그 후로 링컨은 한번도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약속의 사람이었습니다. 참으로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두 친구가 산길을 가면서 서로의 우정을 약속했습니다. 절대로 이 우정이 변치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숲에서 곰이 한 마리 나왔습니다. 한 친구는 다른 친구를 버려두고 혼자서 약삭빠르게 나무 위에 올라가 피신하였습니다. 다른 친구는 피할 겨를이 없어 죽은 척하면서 엎드려 있었습니다. 곰이 오더니 얼굴도 핥아보고 냄새도 맡아보고 지나갔습니다. 마치 곰이 친구의 귀에 대고 뭔가 말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나무 위에 올라갔던 친구가 죽은 척했던 친구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곰이 귀에 대고 뭔가 말하던데 뭐라고 하던?” 그 때 친구가 말했습니다. “저렇게 의리 없고, 약속 지키지 않는 친구랑 놀지 말랬어”.

  우리 교회의 초대 목사님이셨던 게일 목사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부채를 갚아야 할 날이 자꾸만 연기되면 이자만 더욱 늘게 되고 끝내 갚지 않으면 법정에 서는 죄인이 된다. 마찬가지로 약속 이행을 자꾸 연기하면 신용할 수 없는 존재라는 이자가 커지고 끝내 약속을 어기는 사람은 자신의 인격을 파괴하는 결과를 맞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약속이행은 인격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언약의 이행은 하나님다움입니다. 찬송에도 말하듯이 “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 불변하시니 그 나라 가기 까지는 늘 보호하시네”입니다.

결론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순례자’는 실제로 코엘료가 가톨릭의 신비단체에서 순례했던 경험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프랑스의 생장피에드포르에서 포르투갈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순례한 이야기입니다. 페트루스라는 안내원을 따라 순례의 길을 함께 갑니다. 팜플로나에 갔을 때에 그 곳의 한 늙은 농부가 작은 성당을 가리키면서 설명합니다. “사랑이 여기서 살해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수백 년 전, 산티아고 순례를 하던 아키텐의 펠리시아 공주가 콤포스텔라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 정착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녀는 진정 사랑 그 자체였습니다. 재물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병든 사람을 돌봐주었습니다. 왕은 그녀의 오빠인 기예르모 공작에게 동생을 데려올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오빠가 데리러 갔지만 공주는 거절하였습니다. 절망한 공작은 작은 예배당에서 공주를 칼로 찔러 죽였습니다. 정신을 차린 공작은 자신의 저지른 죄를 깨닫고 로마에 가서 교황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교황은 속죄의 의미로 콤포스텔라 순례를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이곳을 지나던 공작은 공주와 똑같은 충동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공작은 긴 여생을 가난한 사람을 볼보며 지났습니다. 코엘료는 이것을 “회귀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결국 언약은 보혈에 얽힌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이야기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해답을 볼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 것은 보지 못하고 문제만 보기 때문입니다. 문제 때문에 하나님과의 언약을 보지 못합니다. “나무 때문에 숲을 보지 못한다”라는 속담이 바로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바라보면 문제는 저절로 우리 앞에서 사라져버릴 것입니다.

  문제를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세요. 어려움과 고통을 넘어 온갖 아름다운 색깔의 무지개 언약을 보세요. 언약은 사랑의 약속입니다. 언약에 사로잡힌 자는 사랑에 사로잡힙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언약을 베푸시기 위하여 하늘 문을 여십니다. 하늘을 우러러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을 보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이 신실한 언약 안의 삶을 사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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