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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화평케 하는 자 (마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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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이중적 사랑은진리의 양극과 음극 같은 것입니다.
두 극이 모두 연결되지 않으면,우리는 동력을 갖지 못합니다.
한 사람의 믿음은 그것이 사회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면무익한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하고하나님의 화평을 가진 자라면,
우리는 화평케 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빌리 그래함의 ‘희망’ 중에서-

우리가 누리는 최고의 특권? 바로 하나님의 아들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언제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컫는 줄 아십니까?
바로 화평케 하는 자가 될 때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형제와 화목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자녀라 인정받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화평케 하는 것,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과목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화평케 하는 자란 어떤 사람을 말합니까?
1. 화평케 하는 자란 어떤 사람을 말합니까?
`화평케 하는 자`란 `화평을 만드는 자`, 즉 peace maker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peace maker가 되어야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peace maker가 되려면 peace가 무엇인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peace란 헬라어로는 <에이레네>`로서
      화평, 평화, 평강, 평안 등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평화에는 두 가지 평화가 있습니다.
팍스(pax)와 샬롬(shalom)이 그것입니다.
팍스는 로마인들이 추구하는 평화였는데
    물질이나 법, 또는 힘으로 세상을 평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로마는 이 팍스를 실현하기 위해 무력으로 땅을 정복했고 지배했습니다.
로마는 하루도 피를 흘리지 않는 날이 없었고
    결국 그 힘과 물질에 의해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반해 샬롬이 의미하는 평화는                     
    로마 식민백성인 히브리 민족의 것으로 내적이며 정신적인 것입니다.
히브리인들은 건강한 자나 성공한 자는 물론 병든 자나 실패한 자들과도         
샬롬’이라는 인사를 기꺼이 주고받았습니다.
`샬롬`이라는 말은 강한 종교성을 가지고 있는 단어로서
      우호적 관계를 묘사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샬롬은 하나님과 바른관계, 사람과의 바른관계, 물질과의 바른관계를 말하는데
    바로 영범강의 축복을 말합니다.
오늘날 믿는 자들이 구해야 할 평화는 팍스가 아니라 샬롬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 팔복을 말씀 하시면서
    거의 마무리 시점에서 이 peace maker에 대해서 말씀을 하실까요?
그 이유는 그만큼 peace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problem maker가 되기는 쉬운데
              peace maker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팔복의 가르침을 마무리하기에 앞서서
    peace maker가 되기를 촉구하면서
`심령이 가난한 자들아, 애통하는 자들아,
온유한 자들아,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아,
긍휼히 여기는 자들아, 마음이 청결한 자들아
이제까지 일러준 복된 교훈에 더하여 할 말이 있는데
      너희는 peace maker가 되라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내가 너희에게 가르친 말을 들은 너희들아 !
    이제는 peace maker로 서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이 필요한 사람은 바로 peace maker입니다.

그럼 왜 우리가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2. 왜 우리가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1) 주님의 명령이요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골3:15절 [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가 먼저 peaceful man이 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peace maker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고후5:17-18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들에게 화목케 하는 직책]을 주셨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 화목케 하는 사신으로 보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불화하고 있다면 그건 사명에 충실하지 못한 것입니다.

신학자 <스튜어트>는                             
[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물질적인 것은 남기고 간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우리들의 마음속에 평화를 남겨두고 가셨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평화의 사신이 되어야 할 것을 말한다.

2) 우리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은 평강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사9:6 예수님은「평강의 왕」이라 합니다.
    예수님이 다스리는 나라는 바로 평화의 나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롬14:17「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니라.」
그러므로 예수 믿는 신자들은 먼저 평강의 사람 희락의 사람
      peaceful man, joyful man 이 되어
      peace maker, joy maker가 되어야 합니다.
내게 강 같은 평화, 내게 샘솟는 기쁨이 넘치는 사람 되시기 바랍니다.
넘치는 평화와 기쁨을 퍼 주는 peace maker, joy maker가 되시기 바랍니다.

3) 화평은 하나님과 바른관계의 표식이기 때문입니다.
마5:23-24절에
[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아서 예물을 드리라 ]
형제와 화목을 이루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면서 예배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씀이 시사하는 바는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며 예배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그보다 우선적으로 할 것이 형제와의 화목,
      즉 peace를 이루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럼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내가 힘써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3.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내가 힘써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해야 화평케 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까?

1) 먼저 자신의 마음에 평화를 찾아야 합니다.
  화평케 하는 peace maker가 되자면
      먼저 자신의 마음에 평강이 있어야 합니다.
(1) 참된 마음의 평강은 하나님과 막힌 담이 무너져야 한다. 
진정한 peace maker가 되려면 우선적으로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어야합니다.
그러므로 욥22:21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교훈합니다.         
[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
사람이 제일 먼저 화목하여야 할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그래야 참 peace maker가 될 수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먼저 하나님과 화평해야합니까?
그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원수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롬5:10절을 보시면
[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아담의 타락 이후로 이러한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계속해서 그런 처지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담`이 쳐졌습니다.
이런 세상이 시작 된지 얼마 못 가서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하나님과의 화평이 깨어졌기 때문에 일어나는 비극이었습니다.
평화의 기초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한 가운데서 누리는 평안이 없으면
      세상에서 참 평화를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인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면,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도 서로 간에 온전한 관계를 이룰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과의 막힌 담을 헐고
    하나님과 화평의 교제로 악수를 하여야합니다.

어떻게 하나님과 화평할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가능해집니다.
롬5:10절을 다시 보시면
[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  이라고 합니다.
엡2:13-14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즉 하나님과 관계회복이 되어야 마음에 평화가 있습니다.
    그 역할을 예수님이 담당하셨습니다. 롬3:25절 화목제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화목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인하여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시인할 때,
    예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평안을 나의 것으로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십자가는 하나님과 나와의 막힌 담뿐만이 아니라
  너와 나와의 막힌 담도 허는 능력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 프란체스코는 어느 날 우물에서 물 긷는 여인을 보았습니다.
물통에 물을 가득 담은 뒤                           
    작은 나뭇조각을 물위에 띄우고 어깨에 메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왜 물항아리에 나뭇조각을 띄우고 갑니까?”
그녀는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고 있군요?
    항아리가 흔들려도 물이 넘치지 않게 하려는 것이죠”라고 대답했습니다.
프란체스코는 거기서
“격노가 일어날 때, 마음의 동요가 일어날 때,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띄우면 되겠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합니다.
분노와 갈등, 시기같은 마음의 동요가 일어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과 인내를 생각하면
    평안을 찾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2) 성령의 열매라는 것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갈5:22「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와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미국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존 스타인벡(1902∼68)의 중편소설         
<진주>는 우리에게 크나큰 교훈을 줍니다.
키노와 그의 아내 조안나는 어부였습니다.
그들은 어느 날 크고 값진 진주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가난이 끝나고 이제 행복한 삶만 남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큰 진주를 찾았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온 동네에 퍼지니
동네 사람들은 그 진주를 보기 위해 늘 키노의 오두막집을 기웃거렸습니다.
하루는 키노 부부가 몸이 아파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이전에 그들의 아이가 다쳤을 때는 쳐다보지도 않았던 의사가
몇 번씩이고 그의 집을 찾아와 과잉친절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도회지의 진주 장사들은 그 진주를 헐값에 사기 위해서             
폭력배를 동원해 그들 부부를 협박하기까지 했습니다.
심지어 밤중에는 강도가 침입하기도 했습니다.
키노는 진주를 지키기 위해 격투까지 벌여야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진주를 깊은 바다 속에 다시 던져버리고 맙니다.
물질은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교훈하는 이야기입니다.
참 평안은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습니다
      화평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져야 합니다.
3) 인간관계에서 화평을 깨뜨리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화평을 이룬 사람들은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이웃과의 화평을 이루기 위해 움직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었다고 하면서 이웃과의 화평을 이루지 못한다면
      하나님과의 화평은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바 있는 함마슐트(Hammarskjold)씨는     
독실한 크리스천으로서 세계평화를 이룩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다가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를 위해 사고 현장에서 그분의 시체를 찾는 중에
    그분이 들고 다니던 조그만 손가방 을 찾아냈습니다.
그런데 국제연합 모든 나라의 평화를 조정하던 
그 유엔 사무총장의 가방 속에서 무엇이 발견되었느냐 하면
유명한 유대인 신학자 <마틴 부버>(martin Buber)가 쓴
`나와 너`(I and Thou)라고  하는 책을
자기 나라 말로 번역하고 있던 원고 뭉치였다고 합니다.
`나와 너`의 평화를 이룩하기 전에 국제 평화를 이룩할 수가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과 나와 화해하기 전에
참된 평화를 이룩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 함마슐트씨는
자기 나라의 국민을 위해 그 책을 번역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화해하기 전에 나와 너와의 화해가 될 수 없고
나와 너와의 화해 없이 세계평화를 이룩할 수 없습니다.

화평은 그냥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peace maker가 되어야 진정한 화평은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peace maker 노릇을 할 수 있을까요?
첫 번째로 생각해 볼 것은 이웃과의 화평은
      `하나님 안에서의 거룩한 교제`를 도모할 때 가능합니다.
이 일의 급선무는 복음전파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가
어찌 하나님 안에서의 거룩한 교제를 나누며 서로 화목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를 믿어야 거룩한 교제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 어떻게 생겨납니까?
복음을 전해주어야 듣고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롬10:14-15절에서
[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평은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 안에서 거룩한 교제를 나누며 화목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누가 진정한 peace maker가 될 수 있는가 하면
복음을 전하는 자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경험을 해보셨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복음을 전하여 믿지 않는 사람을 전도할 때,
      그 상대에게 얼마나 애정을 쏟습니까?
그래서 이것. 저것 다 치다꺼리 해주고 달래주고 위로해주고 그럽니다.
그러니 거기에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고,
          구원이 있고, 찬송이 있고, 거룩한 교제가 있을 수 밖에는요.

그런데 마귀는 어떠하든지 우리 가운데 화평을 깨뜨려 놓으려고 합니다.
어떻게 깨뜨려 놓으려고 합니까?
4. 대인관계에 화평을 깨뜨리게 하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우리의 신앙생활 평안을 누릴 때만이
    모든 것에 기쁨이 있습니다.
아2:15절에 [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아라 ]
우리의 화평을 앗아가는 작은 여우가 무엇일까요?
먼저 내 마음에 평안을 뺏으려고 하는 작은 여우를 잡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의 평안을 뺏는 작은 여우는
1) 시기 질투입니다.
구전되는 유대 민화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천사가 한 여자에게 나타나
“내가 너를 축복하겠다.
그리고 네가 원하는 친구 한 사람에게는
너에게 주는 축복보다 갑절로 많은 축복을 주겠다.
어떤 축복을 원하며 어떤 친구를 갑절로 축복해 주기 원하는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그 여자의 머릿속에 평소에 질투하던 여자가 떠올라
그 여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천사님, 제게 주실 축복을 갑절이나 더 줄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바라는 축복은 한 쪽 눈이 머는 것입니다. ]
질투는 우리로 하여금 질투하는 대상 외에
      어느 것에도 집중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질투의 감정은 일상에서 느끼는 행복과 정상적인 삶,
          올바른 가치관을 파괴시켜버립니다.
이웃의 기쁨과 행복이 나의 기쁨과 행복이 될 수 있을 때라야
    비로소 우리는 참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약3:16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 

2) 용서치 못하는 마음
빌4:4-5절
[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
3) 탐심이 마음의 평안을 뺏어갑니다.                   
눅12;15절 [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아니하니라 ]
스위스에 <헨리 듀낭>이라는 은행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오래 전부터 나폴레옹을 만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은행장으로서 세계적 거목이었던 나폴레옹을 만나고 싶어 했었고
또한 프랑스와 스위스의 경제  협력의 기회를 가져 보기 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한번 말로만 듣던
        나폴레옹 황제를 만나보고 싶어 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드디어 프랑스로 나폴레옹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마침 전쟁터로 출정을 나가고  파리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듀낭은 거기에서 실망하지 않고 자기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전쟁터까지 나폴레옹을 만나러 쫓아갔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그는  황제를 만나지 못하고
오히려  전쟁터의 아수라장과 치열한  전투와
      그리고 죽어 가는 부상병들만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폴레옹을 만나 경제적인 부와  명성을 얻어 보겠다고 하는 꿈은 사라졌으나   
그는 전쟁터에서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새로운 꿈 하나를  간직합니다. 그
것은 평화에 대한 꿈이었습니다.
또한 전쟁 등으로 부상당하여 고통 하는 자들을 돕기 위한
    무엇을 만들어야겠다고 하는 꿈을 꾸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저 유명한 적십자사이고,
결국 그는 첫 번째의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한 인간이 부를 포기하고 가진 꿈이
      마침내 실현되어서 적십자가 탄생한 것입니다.

4) 특히 공동체의 화평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헬라어로 <악마-디아블로스>는 중상자 비방자 험담자란 뜻입니다.
남을 비방하고, 욕하고, 모함하고, 거짓말하고, 악한 말을 하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마귀가 시키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을 좇아
    사랑의 말, 진리의 말, 존중의 말,
    위로의 말, 긍정적인 말 살리는 말을 합니다.
어디서든 생명의 복음, 예수 사랑을 전하는 Peace-maker가 되시기 바랍니다.

화평케 하는 자가 누리는 복이 무엇입니까?
5. 화평케 하는 사람이 누리는 복이 무엇입니까?
[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축복을 받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인정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복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 줄 아십니까?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시1:6「대저 의인은 길은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우리가 화평케 하는 자가 될 때에
    너는 내 아들이다 하나님이 인정해 주십니다.
그리고 이웃이 인정해 주고 세상 사람들이 인정해 줍니다.
어떻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라는 사실 - 주위로부터 인정받고 있습니까?
영화 「불수레」의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스코틀랜드의 육상선수 에릭 리델은
중국에서 20년 동안을 선교사로 사역하였는데,
마지막 2년은 세계 2차 대전으로 인해 일본군 수용소에 갇혀 지냈습니다.
참기 힘든 수용소의 환경 속에서 사람들 사이에서나 그룹들 간에
    참을 수 없을 정도의 분노가 끓어오를 때마다
    그들 사이에서 화평케 하는 자로 그는 알려져 있었습니다.
리델의 삶은 모든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어느 날 리델이 점호에 나타나지 않자 일본군 경비가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럴 때 한 사람이 대답하기를 에릭이 몇 시간 전에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경비는 잠깐 주춤하더니 이렇게 물었습니다.
“리델은 예수 믿는 사람 아니었지?
리델은 일본어를 전혀 몰랐고 경비병도 영어를 전혀 몰랐습니다.
그들이 유일하게 직접 만날 수 있었던 순간은
    하루에 두 차례 의무적인 점호시간 뿐이었습니다.
그런 리델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경비병이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는 수용소 안에서 싸움을 해결하던 리델에게서 그리스도를 보았던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다툼을 해결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인입니다.
집에서, 직장에서, 혹은 학교에서 일어나는 다툼을
우리가 어떤 식으로 해결하느냐에 따라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아시시 성자 프란시스의 기도문 첫 구절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따라 합시다 !
(김성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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