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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겨울이 오기 전에 (딤후 4: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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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이 좋으면 모두 다 좋다”는 말이 있다. 오늘은 2006년 마지막 주일이다. 오늘 예배에 성공하여, 한해를 성공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란다. 오늘이 한해의 마지막이 아니라, 인생의 마지막이라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겠는가? 하나님께 칭찬을 들을까요? 아니면 책망을 들을까요?

  지금부터 약 90년 전, 처녀항해 중 침몰되어, 무려 1천5백여 명의 운명을 앗아갔던 비운의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의 유품이 언젠가 인양돼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 바가 있다. 910여 점의 각종 유품 가운데, 손잡이에 영어로 RLB 라고 이니셜이 새겨진 여행용 가죽 가방이, 가장 큰 관심을 모았다.

  이 속에는 다이아몬드, 사파이어, 토파즈, 황금반지, 은으로 만든 만년필, 금화가 가득 담긴 지갑 등이 쏟아져 나왔다. 컴퓨터 조회 결과, 가방주인은 로버트 L. 백우스 부부로 밝혀졌다. 이들 부부는 사고 직후 구명보트로 탈출한 사람임을 알고, 당국은 그 후손들을 찾아, 문제의 가방을 전해주었다.

  이 여객선이 왜 침몰되었을까? 여객선의 호화스런 분위기에 흥분된 승객들은, 쌍쌍이 어울려 먹고 마시고 춤을 추다가, 이 기쁨을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알려야겠다고, 무전실로 몰려 들어갔다. 한밤중까지 무전은 계속되었고, 무전실은 마침내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때 다른 배들로부터, 지금 타이타닉 항로에 거대한 빙산이 떠 있다는 무전이 계속 보내졌음에도 불구하고, 무전실에서는 이 긴급무전을 받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이 배는 빙산과 충돌하여, 캐나다 남쪽 70km 깊이 4천m 해저에 가라앉고 말았다.

  지금 이 교회당 안에는 수없는 전파들이 가득 차 있다. 어디에 사이클을 맞추느냐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고 영상이 달라진다. 무전실에서 어떤 소리를 먼저 들어야 하고, 어떤 소리는 나중에 들어야 하는지를 분간했더라면, 이처럼 엄청난 사고는 당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내 뜻을 하나님께 전달하기 보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경청의 시간이다. 한해의 마지막 예배시간을 돌이켜 보면, 아쉬움도 많고, 후회되는 일도 많다. 연말은 뭔가 야단스럽게 하나님께 요구하기보다는, 조용히 고개를 숙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할 시간이다.

1. 마지막이 오기 전에 오라

9절에는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고 했다. 21절은 특별히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고 했다. 그렇다면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는, 간절한 전보를 보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1) 사도 바울은 자기의 최후가 임박했음을 예감했기 때문이다(6).

자신이 관제로 부음이 되고, 떠날 기약이 가까워졌음을 스스로 깨달았다. 자신이 세상을 떠나기 전, 순교하기 전에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를 보고 싶었고, 또 최후로 만나서 부탁할 말씀도 있었다.

(2) 겨울에는 지중해를 항해할 수 없기에, 특별히 겨울 전에 오라고 재촉했다. 가을에 배가 떠나지 않으면, 겨울을 지나서 적어도 넉 달 후에야, 다시 배가 지중해를 항해할 수 있었다. 만일 디모데가 가을에 오지 못하면, 겨울이 지난 후에 로마에 올 수밖에 없었다.

  바울은 그 기간 동안에,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기에, 겨울 전에 오라고 부탁했다. 스위스의 심리학자요 내과의사인 ‘폴 투니어’(Paul Tournier)는 ‘인간의 치유’에 대한 많은 책을 썼다. 그의 책 가운데 ‘인생의 四季’라는 책이 있다. 인생도 자연처럼, 사계절이 있다고 하였다.

① 인생의 봄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성장하는 계절로서, 인격형성을 위해 노력하는 청소년시절이며 ② 여름은 인간이 성숙해지는 계절로, 가정을 이루고 직장을 가지는 계절이며, 인생의 목표달성을 위해, 열심히 왕성하게 활동하는 계절이다.

③ 인생의 가을은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며, 인생을 정리하는 계절이며, 이 계절은 추수하는 계절,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심판의 계절이며, 따라서 지난날의 잘못을 반성하고 회개하는 계절이라고 한다.

④ 인생의 겨울은, 죽음을 준비하는 계절이다. 어떻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느냐가 중요하기에, 죽음을 준비하는 계절이며, 또한 죽은 후에 부활을 기다리는 계절이기도 하다. 마치 춥고 긴 겨울에, 따뜻한 희망에 찬 봄을 기다리듯이, 새로운 생명, 부활을 기다리는 계절이라고 하였다.

  인생의 겨울을 준비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나는 추운 겨울이 싫어요’하면서, 겨울을 막을 수 없다. 오는 겨울을 막으려고 하기보다는, 겨울을 준비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한다. 전도서 3장을 읽어보면, 만사에 기한이 있다고 하였다.

  항해할 수 있는 때가 있고, 항해할 수 없는 때가 있다. 여행할 수 있는 때가 있고, 여행할 수 없는 때가 있다. 일할 때가 있고, 일할 수 없는 때도 온다. 공부할 수 있는 때가 있는가 하면, 공부할 수 없는 때도 온다. 성공과 실패는 기회를 바로 포착하여, 할 일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있다.

  봄은 씨를 뿌리는 때다. 씨를 잘 뿌리면, 그 해에 많은 수확을 얻지만, 씨 뿌릴 때에 씨를 뿌리지 못하면, 그 해 농사는 실패로 돌아간다. 학생시절은 공부할 때다. 공부할 때 공부를 잘하고, 학문과 기술을 닦으면, 인생에 유익한 생활을 할 수 있다.

  21C에는 실력이 없으면, 갈 곳도 오라는 곳도 없다. 재산을 물려받아도, 지켜나갈 지혜가 없다. 개미와 베짱이동화를 기억하시고, 실력을 키우시기 바란다. 만사에는 기회가 있다. 인생은 곧 기회다. 기회가 지나기 전에, 할 일이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시간을 관리하는 지혜를 잃어버렸다.

  슬기 있는 다섯 처녀들은, 기회가 있을 때에 기름을 많이 준비했다. 신랑이 더디 왔지만, 넉넉히 기름을 준비한 까닭에, 문제가 없었다. 그렇지만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불은 준비했지만, 기회 있을 때에 기름을 충분히 준비 못했다가, 신랑이 더디오니까 불은 꺼졌다.

  그때서야 기름을 구하러 나갔고, 그 사이에 신랑이 왔고, 손님은 다 들어가, 문은 닫혔다. 미련한 처녀들은 뒤늦게 문을 열어 달라고, 아무리 두드려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기회를 놓쳤기에, 신랑을 결국 맞지 못했다. 우리의 기름은 어떤가요? 충만 한가요? 기름이 떨어진 줄 알고도 사시지 않나요?

2. 기회는 지나간다.

주물공장에 가보면, 쇳물을 일정한 틀에 쏟아 부어 물건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어느 시간이 지나면 쇳물이 굳어 버려서, 틀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때를 맞춰 쇳물은 부어야 제 작품이 나온다.

  회개도 기회가 있고, 성공도 기회가 있다. 주어진 기회를 붙들지 못하면, 기회가 내 것이 아니다. 하루 24시간 동안, 수많은 기회가, 우리 앞을 지나가고 있다. 수없이 많은 엄청난 기회가, 우리 앞을 지나가고 있지만, 붙잡지 못해서 별 볼일 없이,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초대교회 전설에 의하면, 디모데는 겨울이 오기 전에 오라는 스승 사도 바울의 편지를 받고, 즉시 떠나지 못하고, 교회에 쌓여진 잡다한 일을 처리하고 지중해로 나갔더니, 이미 겨울바람에 항해가 중단되었다.

  그래서 이듬해 이른 봄에 스승을 찾아갔으나, 바울은 이미 옥중에서 순교하였고, 디모데는 스승의 무덤을 끌어안고, 울고 또 울었지만, 후회와 한을 풀 수 없었다고 한다. 바울 성당 옆에 가면 바울의 묘가 있다. 놀랍게도 바울의 관 밑에, 디모데의 관이 있다.

  이는 디모데가 끝까지 믿음의 아들로서, 마지막 시신까지도 바울의 곁에 있기를 원하였던, 그의 심정을 담았다. “내가 살아도 스승 곁에서 살고, 죽어도 우리 스승 곁에서 죽으리라. 그리고 천국에서 스승을 만나리라” 이 심정을 가지고, 디모데는 일생을 살았다.

  속히 오되 겨울 전에 오라는 바울의 부름에 디모데가 응답했더라면, 디모데는 스승 바울의 영력을 갑절이나 받아, 디모데의 영향은 초대교회에서 더욱 컸을 것이다. 기회는 언제나 순간이기에, 앞에 있을 때 붙잡아야지, 지나고 나면 붙잡지 못한다(기회의 신은 앞머리는 풍성한데, 뒷머리는 대머리).

  미국의 나이아가라 상류에서, 죽은 칠면조 한 마리가 떠내려 오고 있었다. 그때 그 상공을 날던 독수리가 그것을 보고, 잽싸게 내려와 고기를 뜯어먹으면서, 함께 떠내려갔다. 계속 뜯어먹으며 내려가는데, 폭포에 가까이 오자, 물살이 점점 빠르게 흘렀다. 독수리는 혼자 중얼거렸다.

  “나는 하늘의 왕이야. 이 폭포는 전에도 수 차례 왕래했던 곳이 아닌가? 설령 폭포에서 떨어지더라도, 그 순간 날아도 늦을게 없지.”하며, 계속 고기를 뜯어먹었다. 마침내 폭포 아래로 떨어지려는 순간, 날아오르려고 날개를 폈으나, 날카로운 발톱이 칠면조 살과 뼈에 박혀서, 쉽게 날 수가 없었다.

  결국 때는 이미 늦었다. 독수리는 결국 날지 못하고, 폭포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겨울이 오기 전에, 너는 어서 오라”고 부탁했다. 활동하기 불편한 겨울은, 내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다가온다. 인생에는 겨울이 찾아온다.

  따라서 겨울이 오지 않도록 기도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고, 오히려 겨울에 대비하시는 지혜를 구하시기 바란다. 바울이 이렇게 말할 당시의 나이는, 약 70세로 추측된다. 그는 이제 인생의 겨울을 맞이하였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었다고 하였다(딤후4:6).

  관제로 부음이 되었다는 말은, 제단에 피를 쏟아 부었다는 뜻이다. 피를 쏟아 붓는 순교의 제사로, 이미 자신을 드렸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13절에, “내가 두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라” 점점 추워짐을 느끼면서, 이런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옷을 가져오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그는 육신적인 의미에서만, 겨울을 맞지 않았다. 그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고독한 겨울을 맞이했다. (딤후4:10-11)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주위에 있는 이들이 모두 가버린 뒤, 혼자 겪는 외로움이 바울을 더욱 춥게 만들었다. 혼자 겪는 외로움이, 그를 더욱 더 춥게 만들었다. 특별히 그는, 자기의 인생을 반성하며, 마가를 데려오라고 말한다. 저가 자신에게 유익하다고 말하고 있다.

  마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예수님을 믿었고, 사도 바울이 제1차 전도여행을 떠날 때에 따라 갔었다. 그러나 도중에 병에 걸려, 보름정도 꼼짝 못하고 고생했다. 이때 사도 바울은, 마가를 간호하느라고 애를 썼을 뿐만 아니라, 그를 위하여 주야를 가리지 않고 기도하여 주었다.

  그런데 마가는 병이 겨우 완쾌되자, 무슨 까닭인지 사도 바울과 동행할 것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그때 바울은 몹시 섭섭했다. 그 후에 2차 전도여행을 다시 떠나려 할 때, 마가는 바울을 찾아와서, 동행하겠다고 간곡히 부탁하게 되었다.

  마가가 이번에는 도중하차하지 않고, 끝까지 동행하겠다고 아무리 맹세하여도, 사도 바울은 끝내 허락하지 않고 거절하였다. 이 일로 이번에는 마가의 마음이 상했다. 이제 겨울이 다가오고, 최후의 날이 가까워오자, 바울은 마가와의 일을 괴로워하며, 매우 마음 아파했다.

  그래서 마가를 만나서 화해하고, 또 그를 격려해 주고 싶었기에, 마가를 데려오라고 부탁하였다. 우리 인생의 겨울이 다가올 때, 꼭 만나야 할 사람이 누구인가? 찾아가서 화해하고 용서해 주어야 할 사람이 누구인가? 서로의 잘못을 가리기 전에,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음은 사실이다.

  꼭 만나서 화해하고, 용서해 주어야 할 사람은 없나요? 사도 바울은 그것이 나의 일에 유익하다고 했다. 아픔을 정리하자. 남아프리카의 바벰바 부족사회에는, 반사회적인 범죄행위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데, 혹시 그런 행위가 일어날 경우, 규범에 어긋한 행위를 한 사람을, 마을 한 가운데에 세운다.

  그때 모든 부족원은 하던 일을 멈추고, 그 부족원 주변으로 모인다. 어린아이도 빠지지 않고 모두 모인다. 모여든 모든 부족원은, 그 부족원을 둥그렇게 에워싼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가운데 세워진 부족원이 그동안 베풀었던 선행을, 한 가지씩 말한다.

  그래서 그의 좋은 성격과 능력, 선행, 친절한 행위 등, 모두 빠짐없이 열거한다. 거짓말을 하거나, 과장하거나, 우스갯소리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 의식은 며칠 동안 행해진다. 부족원 모두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의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어, 칭찬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된다.

  그에 대한 불만과, 무책임하고 반사회적 행위에 대한 비판은,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부족원 전체가, 부족원의 칭찬거리를 다 찾아내면, 의식이 끝나고 즐거운 축제가 벌어진다. 잘못을 저지른 부족원은, 다시 부족의 일원으로 환영받으며 돌아오게 된다.

  이처럼 부족원 모두가 참여하는 긍정적 형태의 심판은, 잘못을 저지른 부족원의 자존심을 최대로 살려주면서, 그가 부족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살도록 만드는 효과를 갖게 된다. 이 색다른 심판 때문에, 이 사회에선 범죄가 없다. (브라이언 카바노프, 아주 특별한 우표 한 장)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후4:8) 용서의 첫 단계는 상대방의 실수와 허물을 덮어주어야 한다. 어떤 심리학자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상대방의 허물과 잘못을 알고도 상대방을 덮어주려 할 때, 상대방은 비로소 고백을 하게 된다”고 하였다.

  노아가 술에 취한 적이 있다. 옷을 다 벗어 던지고 잠을 자는데, 아들 함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떠들며 아버지를 힐난했다. 그래서 함은 저주를 받았다. 그 다음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기 위하여, 등을 지고 뒷걸음질 쳐들어가,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주어, 축복을 받았다(창9:25-27).

  이 겨울이 오기 전에 김장독을 덮듯이, 노아의 하체를 덮듯이 덮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덮어 주자.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았듯이, 나도 이웃에게 용서를 선언하자! 어떻게 설 수 있는가?

3. 말씀 앞에, 서야 할 시간

또 바울은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고 했다. 이 가죽 종이는 성경이기에, 성경을 가져오라고 하였다. 지금은 인쇄술이 발달하여, 성경책을 갖고 다니기가 편하다.

  그러나 그 당시의 성경은, 가죽 두루마리로, 너무 무거워서 갖고 다니기 불편하였기에, 안면 있는 집에 부탁해 놓고 다녔다. 임종이 가까워짐을 느낀 바울은, 이제 맡겨 놓은 성경책을 가져오라고 부탁하였다. 임종이 가까워 오니, 이 성경을 다시 한 번 더 보아야겠다는 말이다.

  지난 1년의 삶을, 말씀 앞에 세워 보아야 할 시간이다.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이고, 남겨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 앞에까지 가지고 갈만한, 뭐가 좀 남아 있나요? 허무인가? 성경을 가지고 오너라. 성경의 거울 앞에 서 보고 싶었다.

  겨울이 다가올 때, 과연 무엇을 하고싶나요? 하고 싶은 말을, 소리 질러 해보고 싶나요? 아니다. 오히려 귀를 열고,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겨울이 가까이 올수록, 더욱 성경을 열심히 읽어야 하겠다.

  죽음이 가까이 오면 이것저것, 해야 할 일도 많이 있지만, 그 모든 것보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하겠다. 아무리 바빠도 사도 바울처럼, 멀리 둔 성경책을 찾아다가, 좀 더 진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 이 해의 마지막 시간들 속에서, 조용히 말씀 앞에 무릎을 꿇어 보자.

  성경을 가까이 하자. 거기에 겨울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자. 겨울을 아는 사람은 영적인 일에 힘쓴다. 영원한 세계 하늘나라를 준비할 줄 안다. 말씀이 능력이다. 그 말씀으로 천지가 창조되었고, 그 말씀 앞에 귀신은 놀라 도망가고, 그 말씀 안에서 새 역사가 일어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14절은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라고 말씀한다. 구리 장색이란, 구리로 우상을 만드는 자를 말한다. 우상을 만들어 장사하는 사람이 사도 바울로 인하여, 장사에 막대한 손해를 보았기에, 바울을 심히 괴롭혔다.

  바울의 목회사역을 방해하던, 원수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를 괴롭히던 사람들에 대해 “주께서 그 행한 대로 저희에게 갚으시리니”하며 하나님께 맡겨 버렸다. 내가 더 이상 미워할 필요가 없었다. 주께서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너희도 저희를 주의하라”고 얘기할 뿐이다.


  우리 조상들의 역사에 보면, 자식들에게 원수를 갚아달라고 유언을 하고 죽는다. 그래서 자식들은 원수를 갚느라, 일생을 모두 허비해 버리고 만다. 이 얼마나 허망한 인생인가? 우리에게도 인생의 겨울이 다가 오고 있는데, 아직도 남을 비판하거나 원망하지 말자.

  결론이다.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어서 오라. 기회가 지나기 전에 오서 오라고 하였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는 지나가고 있다. 말씀 앞에 서보고, 화해와 용서의 삶을 살자. 우리의 잘못된 부분을 고쳐서, 새해에는 바른 길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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