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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벧전 1: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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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화가 라파엘의 명화 중에“거룩한 가정”이란 그림이 있습니다. 이 그림은 마리아와 요셉이 그려져 있고 아기 예수님이 부모님과 함께 있는 그림입니다. 흔히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그릴 때 각 인물의 머리 뒤에 성자임을 표시하는 후광을 그립니다. 그런데 라파엘은 이 그림에서 후광을 각 개인의 머리에 그리지 않고 부모와 예수님을 포함한 그 전체에 큰 후광을 그려 넣었습니다. 라파엘의 의도는 거룩한 가정, 즉 하나님의 사랑 속에 안겨 있는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표현하려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섬기는 성도는 예수님과 함께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오늘의 본문인“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모든 것들이 오염되었습니다. 십오륙 년 전만 하더라도 해외여행을 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그곳에서는 수돗물을 먹지 않고  물을 별도로 사서 먹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수돗물을 먹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깊은 지하에서 뽑아 올린 생수를 사서 먹거나 아니면 정수기의 물을 마십니다. 물이 오염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만 그렇습니까? 공기도 오염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염되지 않은 맑은 공기가 있는 곳을 즐겨 찾습니다. 식물도 오염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염되지 않은 무공해 식물을 선호합니다. 이처럼 환경이 오염되었습니다. 환경만 그렇습니까? 인간은 더욱 그렇습니다.  오염된 인간의 모습에 대하여 하나님은 탄식하시기를“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예레미야 17:9)하셨습니다. 인간의 윤리와 도덕이 땅에 떨어진지 오래이며, 불법과 불의와 거짓이 난무한 세상 속에 우리들은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타락한 인간 사회의 모습에 대해 성경은 예언하시기를“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디모데후서 3:1~5) 고 하셨습니다.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디모데후서 3:5) 는 것은, 사람들이 오염되지 않은 물과 공기와 식물을 찾듯,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세상 죄악에 오염되지 않기를 바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말씀하시기를“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 1:15~16)라고 하셨습니다.

一. 왜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할까요?

1.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 1:16)는 것은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피조물인 인간 즉 성도의 의무입니다. 성도의 본분입니다. 본분에 충실한 사람은 윗사람에게 인정을 받습니다. 이로 인해 그 사람의 앞길이 열립니다. 하물며 하나님이시겠습니까?

일본 역사상 가장 출세한 사람으로 도요도미 히데요시(풍신수길 1536-1598)를 곱습니다.그는 빈민 농가의 아들로 태어나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전국시대 영주인 오다 노부다가의 휘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맡은 일은 신발지기였습니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보잘 것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히데요시는 최선을 다했습니다.“신발을 지키는 일은 누구라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제일가는 신발 지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야.”이렇게 생각하고 제일가는 신발지기가 되려고 노력하던 중, 어느 추운 겨울날 양주인 노부나가의 신발을 품에 끼고 몸으로 덥혀 놓았습니다. 그 정성이 노부나가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이놈은 쓸만한 하인이구나.그렇다면 이번에는 말 지기를 시켜 보자.” 신발지기에서 말 지기로 승진한 히데요시는 기쁜 마음으로“아무도 할 수 없는 훌륭한 말 지기가 되어야지.”하고 말과 함께 잠자리를 같이 했습니다.“여봐라. 누구 없느냐? 말을 끌어내라.”고 하면 한 밤중이라도 노부나가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즉시 달려 나왔습니다. “네, 히데요시가 말을 대령했습니다.” 어디 하나 나무랄 데가 없이 손질이 잘 되어 있었고 수족처럼 움직이는 히데요시가 노부다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좋다. 이번에는 회계책임을 맡아 보거라!”이렇게 말단의 신발지기로 시작한 히데요시는 말 지기, 회계책임자를 거쳐 마침내 일본 전국을 통일한 최고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이가 우리에게는 호감이 가지 않는 임진외란을 일으킨 장본인 입니다. 하지만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의 삶의 자세는 본 받을 만 합니다.

사람 앞에도 이러한 사람이 복을 받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명령이겠습니까?“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 1:16)하신 하나님의 명령 따라 거룩하게 살고자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2. 거룩해야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2:14에“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한 분이십니다. 이처럼 거룩하신 하나님은 사람을 찾으시되 거룩한 사람을 찾아 복을 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거룩 즉 성결함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자격이며 복을 받아 누리는 첩경입니다.

이사야 59:1~2에 말씀하시기를“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성결하지 아니하면 즉 거룩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과 가까이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할 때의 어느 목사님의 경험담입니다. 그 목사님의 어린 아기가 어느 날 그만 교회의 깊은 화장실에 빠졌습니다. 죽음의 위험에서 간신히 건져냈습니다. 하지만 더러운 오물을 뒤집어쓴 그대로는 도저히 품에 안을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물로 여러 번 씻은 후에야 그 아기를 부둥켜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곧 우리들이 거룩해야하는 이유입니다. 이처럼 거룩해야, 성결해야, 깨끗해야만 하나님과 교통할 수가 있습니다. 

3. 거룩해야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 여호수아서 3:5절에“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시한 내용입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마른 시나이 사막지대를 40년간 여행한 후 요단강까지 왔습니다. 이 요단강만 건너면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땅에 도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요단강 건너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 한 말이“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고 한 것입니다. 요단강 건너편에는 가나안 일곱 족속들이 살고 있었고, 이 땅을 점령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강을 건너는 것이 큰 문제였습니다. 강물은 강둑이 넘치도록 흐르고 있는데 수십 만 명에 이르는 이스라엘 군대가 건널만한 장비는 전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40년 동안 메마른 사막을 지나온 그들에게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이 요단강 도강작전을 두고 번민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따라 이수라엘 백성들은 성결케 했습니다. 그 다음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비로운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흐르던 강물이 갈라져 마치 벽처럼 쌓이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갈라진 마른땅으로 이스라엘 군대가 건넜습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강을 다 건너자 강물은 다시 옛날처럼 흘렀습니다.

이 말씀을 볼 때 거룩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가 나타남을 알 수 있습니다. 비유로 말씀을 드리면, 사랑스러운 어린 자녀가 밖에서 놀다가 배가고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들어오자마자 엄마를 부르며 빨리 먹을 것을 달라고 아우성을 칩니다. 그런데 아이의 손에는 먼지투성입니다. 이 경우 아이가 아무리 배가고파 먹을 것을 달라고 때를 쓴다 할지라도 어머니는 그 아이의 손에 음식을 쥐어주지 않습니다. 반드시 먼저 거치는 절차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물로 손을 씻는 것입니다. 그 후에 사랑스러운 아이의 손에 먹을 것을 쥐어 줍니다. 까닭이 무엇입니까? 더러운 손에 먹을 것을 쥐어 주는 것은 어머니의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먼저 스스로 정결하게 씻으라고 하셨습니다.“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디모데후서 2:20~21)하셨습니다. 이처럼 거룩함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으며,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는 조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복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베드로전서 1:15)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아 누리는 자격인 것입니다.

4. 거룩해야 최후의 심판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날마다 발전하고 있습니다. 점점 더 편리하고 넉넉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옛날에 비해 꿈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통수단이 그렇고, 통신 수단이 그렇고, 정보수단이 그렇습니다. 모든 생활환경이 그렇습니다. 이렇게 편리하고 좋은 세상이 언제까지나 계속 발전하며 유지되는 것이 아님을 성경은 밝히고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이 떠나가고 이 세상이 사라지며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지며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펼쳐지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베드로후서 3:10~14)하셨습니다. 지구의 종말 즉 최후의 심판의 날,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그 심판이 도리어 영광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며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C. S 루이스는 말하기를“천국을 지향하면 세상을 덤으로 얻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지향하면 둘 다 잃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아니라 천국을 지향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미련한 사란은 둘 다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했습니다. 두 주인을 섬기면 두 주인에게서 배반을 당합니다. 한쪽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일입니다. 천국을 지향하는 사람은 그곳의 자격인 거룩한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二. 어떻게 해야 거룩한 자가 될 수 있을까요?

1.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의 공로를 믿고 회개해야 합니다.

사람의 몸이나 옷에 묻은 더러운 것은 물로서 깨끗하게 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과 행동의 더러운 것은 무엇으로 씻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십자가의 피의 공로를 믿는 길밖에 없습니다. 요한일서 1:7에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피의 공로를 믿고 회개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거룩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깨끗한 자,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피의 공로를 믿는 사람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는 복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이사야 1:18) 하셨습니다.

2.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게 됩니다.

디모데전서 4:5에“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가까이 하며,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영혼의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영혼의 양식입니다. 히브리서 4:12에“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병든 영혼을 고치는 치료의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약한 영혼을 튼튼하게 하는 운동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낙심한 심령에게 소망과 용기를 주므로 승리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시편 1:1~3)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마치 냇가에 심긴 나무가 가뭄을 모르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인간이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며,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내게 오셔서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 속에 숨겨진 죄와 허물과 실수를 깨닫게 하십니다. 이렇게 생각나는 모든 것들을 내어놓고 뉘우치며 회개할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깨끗하게 하십니다. 성결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성결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공급해주시는 것입니다.

천로역정의 저자인 존 번연은 기도에 대해 말하기를“기도는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그만 짓도록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죄가 인간으로 하여금 기도를 그만 두도록 할 것이다. 왜냐하면 기도는 영혼의 방패요, 하나님께는 희생 제물이요, 사탄에게는 채찍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3.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시편 122:6~9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강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이 있을지어다 내가 내 형제와 붕우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 평강이 있을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네 복을 구하리로다.”하셨습니다.

사람은 무엇을 가까이하며,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격이나 언어나 삶이 결정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가 이것을 증명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예루살렘(교회)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강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이 있을지어다.”(시편 122:6~7)라고 하셨습니다. 학교를 멀리하는 학생이 공부를 잘 할 수 없듯, 교회를 멀리하는 사람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는 단순한 인간단체가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골로새서 1:18에“그리스도는(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고 하셨습니다. 비록 허물 많고 부족한 사람들이 모인 곳일지라도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펼치는 곳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위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헌신하며 봉사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 헌신, 봉사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 봉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축복을 약속하시기를 시편 122:6~9에“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강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이 있을지어다 내가 내 형제와 붕우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 평강이 있을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네 복을 구하리로다.”하셨습니다. 평강과 형통의 축복을 거듭 약속하셨습니다. 왜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축복을 하실까요? 그 이유를 밝히시기를“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네 복을 구하리로다.”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집 즉 교회를 위해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축복하시면 그 사람은 또다시 교회를 위해 헌신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5:2에“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과실을 잘 맺는 나무를 더 잘 맺도록 하기 위해 더 잘 관리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농사의 상식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축복하시는 이유가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평안을 위해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나를 기준으로 생각하지 말고 상대방을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양보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부흥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오직 영혼구원입니다. 교회의 사명을 가리켜, 예배가 우선이다. 구제가 우선이다. 교육이 우선이다. 친교가 우선이다. 등의 말을 하지만, 아닙니다. 영혼구원이 최우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승천하실 때에 남기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태복음 28:19~20)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힘써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30년을 목회하면서 신앙잡지 <Pulpit>까지 발행한 스피노스 조디아티 목사는 살아있는 교회와 죽어가는 교회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살아있는 교회는 교실, 주차장 들 늘 공간의 문제가 있다. 죽어가는 교회는 공간을 염려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교회는 항상 변화한다. 죽어가는 교회는 늘 똑같다. 살아있는 교회는 아이들과 소년 소녀의 재잘거리는 소리로 늘 시끄럽다. 죽어가는 교회는 죽은 듯이 조용하다. 살아있는 교회는 언제나 일꾼이 부족하다. 죽어가는 교회는 일꾼을 찾을 필요가 없다. 살아있는 교회는 언제나 예산을 초과해서 쓴다. 죽어가는 교회는 은행에 잔고가 많다. 살아있는 교회는 새 얼굴 이름 알기가 어려워 애를 먹는다. 죽어가는 교회는 해를 거듭해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살아있는 교회는 선교사업이 활발하다. 죽어가는 교회는 교회 안에서만 움직인다. 살아있는 교회는 주는 자로 가득 차 있고, 죽어가는 교회는 받으려는 자로 차 있다. 살아있는 교회는 믿음 위에 운행되고, 죽어가는 교회는 인간적 판단위에 운행된다. 살아있는 교회는 배우고 봉사하기 위하여 바쁘고, 죽어가는 교회는 편안하다. 살아있는 교회는 활발히 전도하고, 죽어가는 교회는 점점 굳어가 석회화한다."

우리 효민교회가 더욱 살아 움직이는 교회가 되도록 모든 성도님들은 교회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올해에 교회에서 맡은 일에 기꺼이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영광을 받으신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풍성한 축복을 내리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죄인입니다. 죄를 범했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죄인의 말로는 영원한 멸망 즉 지옥의 형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들의 죄를 사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 얻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리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무엇입니까?

첫째,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믿고, 지난날의 죄를 뉘우쳐 회개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하며 그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항상 기도하는 것입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세상 유혹을 이기고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며 이러한 사람에게 축복하십니다.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익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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