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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 (마 5: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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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5-13-16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

(마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마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 되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 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현재 너희들의 존재는 소금과 같은 존재이며, 빛과 같은 존재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소금이 되고, 빛이 되려고 애쓰다가 탈진 상태 내지는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있다.

결혼 적령기가 된 자매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다.
-“결혼해야 될 때가 됐군요.”
-“아니예요. 저는 아직도 멀었어요.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라면도 제대로 끓이지 못해요.”
10년이 지났는데도 그 자매는 결혼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또 어떤 사람이 물었다.
-“자매님 결혼이 너무 늦었군요. 큰일났네. 더 늦기 전에 결혼해야지..”
-“아니예요. 저는 아직도 멀었어요. 제대로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이 자매는 앞으로도 결혼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할 것이다. 고등학교를 갖 졸업한 어떤 자매가 어찌어찌하다가 결혼을 했다. 주변 사람들이 말하길..
-“밥이나 제대로 할지.., 애나 제대로 키울지 걱정이다 걱정...”

그러나 5년이 지난 후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요리도 잘하는 가정주부가 되어있었다.
10년 후 그 자매는 학부형이 되었고, 시부모님도 잘 모시는 며느리가 되었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신분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예수님께서 이미 선언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소금이 덜 됐어, 나는 아직도 빛이 못돼!” 이런 태도는 교만이요 일종의 불순종이라 할 수 있다.

전도사 시절, 공부는 잘 했으나 가정이 어려운 학생이 있었다. 나는 그 학생에게 육사에 진학하도록 권면했다. 그러나 그는 군인이 되기에는 체구가 좀 작았고 약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합격했다. 그 이듬해 5월 태능에 있는 육군사관학교를 방문했다.
그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사관생도의 제복과 그의 목소리, 말투와 태도가 힘이 있었고 방정했다. 불과 생도가 된지 두 달 밖에 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는 근심 걱정이 많고 나약한 고3학생이 아니라 육사생도의 신분이 되었고, 그의 신분에 맞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구차한 변명은 신앙생활에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는다.
- 저는 이제 교회 나온지 1년 밖에 되지 않았어요. 성경도 잘 몰라요.

연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분을 말하는 것이다. 소금이 되고 빛이 되려고 애쓰는 일도 중요하지만 먼저 자신이 소금과 같은 존재라는 사실, 빛과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1.너희는 세상의 소금

소금은 두 가지 주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맛을 내는 기능이며 또 하나는 부패를 방지하는 기능이다.

1)소금이 없으면 음식의 맛을 낼 수 없다.
옛날 페르시아제국의 어느 왕에게 공주 3명이 있었다. 큰 딸이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 저는 이세상의 모든 황금보다 아버지를 더 사랑합니다.” 아버지는 큰 딸의 말을 듣고 흡족해 하였다. 둘째 딸이 말했다. “아버지, 저는 이 세상의 보석보다 아버지를 더 사랑합니다. 역시 흡족해 했다. 막내 딸이 말했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를 소금같이 사랑합니다.” 왕이 섭섭해 하였다. 옆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왕궁의 요리사가 다음 날 아침 식사에 소금을 넣지 않고 음식을 준비하였다. 음식을 먹던 왕이 화를 버럭냈다.
“아니 음식이 왜 이모양이야!” 그때 요리사가 답변했다. “폐하, 어제 셋째 공주님께서 소금같이 사랑하신다는 말씀을 기억하시는지요?”

그리스도인은 음식의 맛을 내는 소금과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잘못된 관념에 사로 잡힌 사람들이 많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재미없다라고 말한다. 술도 안마셔, 담배도 끊어, 노래방도 맘대로 못가... 안 믿는 사람들은 세속적인 관점에서 재미를 말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이미 신분이 달라졌다. 인생의 맛을 쾌락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가치관을 바꿔야 한다. 예)없는 듯하면서도 그 분위기를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들.

2)방부제 역할
생선이나, 김치를 절일 때 소금이 들어간다. 왜 넣는가? 상하지 않고 오래 보존하기 위해서이다. 신자들이 세상의 소금이라 함은 세상의 도덕적 타락과 부패를 방지해야 할 사명과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역할을 잘 감당치 못하고 있다.

오늘날 장사를 하거나 기업하는 사람들이 탈세와 편법 안하면 사업이 안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탈세와 편법 안쓰고 대그룹을 일궈낸 사람이 있다. 이랜드그룹의 박성수 사장이다. 그는 법대로 해서 정말 사업이 안되는가 시험해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망하지 않았다. 그의 목표는 사업이 잘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대로 정직하게 하는 것이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 그리스도인들이 맛을 내지 않는다면 존재가치를 상실한 것과 같은 것이다. 복을 많이 받지 못했다고 상심하고 불평할 것이 아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가를 심각하게 생각하기 바란다.
예)유대교에서는 배교자가 다시 돌아오면 회당 앞에 엎드렸다고 한다. 그리고 말하기를 나를 밟고 지나가시오.

1)세상이 더 이상 추해지지 않도록 방부제 역할
2)세상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살맛나게 만드는 사람들이 바로 나 자신이요 우리이다.


2.너희는 세상의 빛(14절)

빛의 특성을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어두움을 밝히는 기능을 한다.
어두운 곳을 밝히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신분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성경주석학자인 윌리암 핸드릭슨, “예수 그리스도는 태양, 그리스도인은 달”이라고 말했다. 박쥐신자가 되지 말라. 직장에서나 친구들에게 “나는 이제 예수 믿는 사람이오.” 선언하라.

(마 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신앙생활을 모범적으로 잘하는 어떤 자매가 목사님에게 찾아왔다. 그 자매는 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고민을 목사님에게 털어 놓았다.
- “공장을 그만 두려고 해요. 제가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 더 이상 그곳에서 직장생활을 못하겠어요.”
- “자매님,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 알고 있나요?”
_ “예”
- “빛은 어디에 필요한가요?”
- “어두운 곳에 필요하지요.”
- “자매님, 그 공장은 어두운 곳이기에 빛과 같은 자매님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경건에 대하여는 상당히 염려하며 신경쓰고 있지만 세상으로 나가서 빛을 비추려는 노력은 상당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교회당 안에서는 당당한데 교회당 밖으로만 나가면 불빛이 보이질 않는다.

한스 큉이라는 천주교의 교회학자는 이런 말을 했다.
“사제들이나 목사들이 교회를 향하여 파송된 성직자라면 평신도들은 세상을 향하여 파송된 성직자이다.”

자동차에 밧데리를 충전해야 시동이 걸리듯이 주일날 예배로 모였을 때 든든하게 많이 충전을 시키라. 충전이 덜 된 상태로 나가니까 불빛이 희미해지는 것이다. 주일날 은혜를 사모하는 열린 마음으로 나와서 예배에 집중하고, 서로 성도간 풍성한 교제를 나누고, 성경말씀도 배우는 일에 힘쓰기 바란다. 충전도 되기 전에 쌩하고 달려나가지 말고...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했다.
엡5: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2)빛은 인도자의 역할을 한다.
항구의 등대나 공항의 인도등은 밤에 비행기나 배가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하도록 인도하는 기능을 한다. 등대지기는 항상 불을 잘 밝혀야 한다. 자신의 감정이나 생활의 문제로 그 자리를 떠나거나 불을 밝히지 않는다면 이미 등대는 그 기능을 잃어버리는 것이 되는 것이다. 등대지기가 불을 밝히는 것은 사명이다. 배들이 안정하게 목적지를 향하여 갈 수 있도록 불을 밝혀야 한다.
예)등대의 기름을 나눠준 등대지기 이야기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에게 길을 분명하게 밝혀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불평하고 비판하기 전에 내가 먼저 불을 밝힐 수 있도록 닦고 수리해야 한다. 인생이 가야할 길을 분명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생명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우리의 영혼의 포구인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며 방향을 제시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말이다.

사42:6-7,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3.오늘 말씀이 주시는 교훈

1)희생
1700년대 프랑스는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었다고 한다. 혁명과 반혁명의 반복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러나 같은 시대에 영국은 달랐다. 부패하기는 영국이나 프랑스나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28대 대통령이었던 윌슨(1856-1924)이 프랑스와 영국의 역사를 대조하면서 이런 흥미로운 관찰을 했다.
“무엇이 그 시대의 영국과 프랑스를 다르게 만들었는가? 사람들이 부패한 것은 마찬가지 였다. 그러나 영국에는 존 웨슬레와 조지 휫필드같은 사람이 있었다.“

그 시대에 대한 부담을 안고 조용히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며 살고 있었던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은 부패한 영국을 영적 각성을 통해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위대한 업적을 남기지 못한다 할지라도 조용히 어두운 곳을 비추는 빛과 같은 사명을 감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이 필요하다.

서울 어느 교회 주변의 주민들이 일요일만 되면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원인은 교인들이 타고 온 차량들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 동네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은 간단하다. 차를 가지고 오지 않고 걸어오든지 버스를 타고 오는 것이다.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모범
(행 20:35)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마 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그리스도인들이 명심해야 할 사항이 있다. 세상 가운데 드러난 존재라는 사실, 세상이 우리를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들은 범죄 행위를 해도 그리스도인들 만큼은 정직하기를 원하고, 희생하기를 원하고 모범을 보이길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만약 그들과 같이 행동하고 그들과 함께 어울려 주면 그들이 좋아 할 것 같지만 결과는 반대로 나타난다.
“당신이나 나나 다른게 뭐야?”

소금이 되려고 애쓰지 말라. 빛이 되려고 애쓰지 말라. 이미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다. 우리의 작은 섬김과 희생, 모범된 삶이 모습이 딱딱한 그들의 마음을 녹이며 감동을 주는 것이다.

16절,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아프리카에서 선교사역을 감당하던 어느 선교사님이 그곳에서 충성스럽게 사역을 마치고 죽었다. 원주민들은 그의 무덤 앞에 다음과 같은 비문을 새겨 놓았다.
“당신이 올 때 이곳은 어두움이더니 당신이 떠나간 지금 우리는 빛 가운데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에 대하여 이렇게 예언했다.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리스도께서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 달리사 물과 피를 다 쏟으셨기에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았고, 우리가 새생명 가운데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천지의 주재가 되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너무 인색하지 않기를 바란다. 조금은 어리석어 보이고, 조금은 손해 보는 듯 살기 바란다.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녹아지며 맛을 내는 소금과 같은 성도가 되기 바란다.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어두움을 몰아내며 빛을 비추는 빛과 같은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가 되길 바란다.
(원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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