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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3.1절] 예레미야의 나라사랑 (롐 32: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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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였느니라 이르시기를 보라 네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네게 와서 말하기를 너는 아나돗에 있는 내 밭을 사라 이 기업을 무를 권리가 네게 있느니라 하리라 하시더니 여호와의 말씀같이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시위대 뜰 안 내게로 와서 이르되 청하노니 너는 베냐민 땅 아나돗에 있는 나의 밭을 사라 기업의 상속권이 네게 있고 무를 권리가 네게 있으니 너를 위하여 사라 하는지라 내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줄 알았으므로 내 숙부의 아들 하나멜의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는데 은 십칠 세겔을 달아 주되 증서를 써서 인봉하고 증인을 세우고 은을 저울에 달아 주고 법과 규례대로 인봉하고 인봉치 아니한 매매증서를 내가 취하여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과 매매증서에 인친 증인의 앞과 시위대 뜰에 앉은 유다 모든 사람 앞에서 그 매매증서를 마세야의 손자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부치며 그들의 앞에서 바룩에게 명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 증서 곧 인봉하고 인봉치 않은 매매증서를 취하여 토기에 담아 많은 날 동안 보존케 하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이같이 말하노라 사람이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 하셨다 하니라

예레미야의 별호는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의 주신 사명을 따라 당시에 죄악과 어리석음에 젖은 이스라엘 백성과 왕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 미움을 받아 소외당하고 이로 인하여 흘린 눈물로 인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는 어느 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을 이스라엘에 선포하였는데 이스라엘이 범죄한 대가로 하나님이 징계하셔서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할 것이며 왕 시드기야는 포로로 잡혀갈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를 들은 시드기야 왕은 대노하여 하나님의 선지자인 예레미야를 체포하여 왕궁의 시위대 뜰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예레미야가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에 그의 예언의 말씀대로 바벨론은 침략을 감행해서 유다의 수도가 곧 함락될 위기가 왔습니다. 그때에 감옥에 있는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네 사촌이 자신이 가진 땅을 사라고 하면 그것을 구입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과연 며칠 후 사촌인 하나멜이 예레미야를 찾아와 아나돗에 있는 자기의 땅을 사라고 제안하였고 예레미야는 이미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으므로 그 땅을 은 17세겔에 구입하고 매매증서를 써서 인봉하여 자신의 제자인 바룩에게 보관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멸망을 앞둔 유다에게 소망의 말씀을 예언하였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이같이 말하노라 사람이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 하셨다 하니라(렘 32:15)

오늘은 3,1절 기념주일입니다. 지금은 우리나라가 정치 경제 외교 그리고 북핵으로 인한 위기의 때입니다. 우리는 예레미야같은 마음으로 이 나라를 사랑하고 위하여 기도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예레미야의 나라사랑의 모습을 소개하며 3.1절을 맞고자 합니다. 말씀을 들으시고 예레미야처럼 이 나라를 사랑하고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소망을 파는 사람 하나멜을 바라봅시다.

하나멜은 약삭빠른 사람으로 요즘 언어로 말하자면 현실감각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당시 바벨론은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어서 성의 함락은 시간 문제고 그럼으로 유다의 멸망은 기정 사실화 되었던 때입니다. 그리고 자기 땅이 있는 아나돗은 이미 적의 수중에 들어가 있었으니 그 땅은 아무 소용이 없는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쓸모없는 땅을 속여서 약삭빠르게 팔아 버리자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감옥에 있는 사촌 예레미야를 찾아와 사라고 권유했습니다. 적군의 수중에 들어있는 아무 가치 없는 땅, 그것을 남도 아닌 사촌에게 팔겠다는 생각, 거기다가 사촌은 감옥에 갇혀있는 사람, 이모든 것이 하나멜의 생각이고 행동이니 참 야비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하나멜은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는 남의 형편이나 처지를 전혀 생각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목적을 멋지게 성공시켜 받은 은 17세겔을 들고 한없이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수완과 머리를 칭찬하며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자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영적인 면에서 실패자였습니다. 그는 한 뙈기의 땅을 판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과 소망을 팔아먹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주변에 믿음을 가졌건 안 가졌건 간에 이런 사람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정말 불쌍한 사람입니다. 현재의 작은 육적 이익만 볼 줄 알지 미래나 소망이나 더 큰 것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작은 이익을 귀하게 여기는 자는 영적 실패자입니다. 오늘의 작은 이익 때문에 하나님이 축복하실 내일을 값없이 여기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이 약삭빠른 하나멜 같은 사람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하겠고 또한 그렇게 행하지도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영원한 소망을 비싸게 투자하여 살 줄 아는 영적인 눈을 가지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문 사자성어(四字成語) 중에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말이 있습니다.
원숭이들을 기르는 사람이 매일 간식으로 도토리를 주는데 원숭이들에게 아침에 도토리를 세 개 주고 저녁에 네 개 주겠다고 했습니다. 원숭이들은 모두 적다고 아우성을 치며 불평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그러면 아침에 네 개 주고 저녁에 세 개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원숭이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고 합니다. 성경에 이런 원숭이 같은 삶을 산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롯은 눈에 보이는 소돔 성이 좋아 보여 떠나지 말아야할 복의 근원인 아브라함을 떠났습니다.
그는 그 결과 멸망당하는 소돔성에서 구사일생으로 구원받았지만 아내를 잃어버리고 두 딸과 불륜의 관계로 자식을 낳아 암몬과 모압이라는 저주받은 백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가롯 유다는 손에 쥐어지는 은 삼십이 그 복된 사도의 직분보다 더 크게 보이는 눈 때문에 자신의 스승을 팔아 버리는 파렴치한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은 삽십은 써보지도 못하고 목을 매었는데 그 줄이 끊어져 배가 터져서 죽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에서는 배가 고파 팥죽 한 그릇에 하나님이 주신 장자의 명분을 팔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자신이 값없이 여긴 대가로 장자의 명분과 축복을 야곱에게 빼앗기고 20년을 한 맺힌 삶을 살았습니다. 이들은 모두 눈앞의 작은 이익을 위하여 무한대의 내일과 하나님의 축복인 소망을 팔아버린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천주교회에 처음 등록한 성도가 교리 교육을 받다가 신부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신부님 어떤 사람은 손을 들고 기도하고 어떤 사람은 손을 내리고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는데 어떻게 기도해야 되겠습니까?”
그랬더니 신부님이 대답하기를 “쪽 안 팔리면 손을 올리고 기도하시고 쪽 팔리면 손을 내리고 기도하십시오” 라고 대답하더랍니다. 기도같이 귀한 것을 어찌 쪽 팔리고 안 팔리는 것에 비유가 되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3.1운동은 자신의 희생보다 먼 미래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꽃을 피운 운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의 작은 욕구를 크게 보고 믿음과 하나님의 뜻을 작게 보는 실수를 범하지 마시고 내일 주실 하나님의 축복을 가장 크게 보고 나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순종의 사람 예레미야를 본받읍시다

너는 베냐민 땅 아나돗에 있는 나의 밭을 사라 기업의 상속권이 네게 있고 무를 권리가 네게 있으니 너를 위하여 사라 하는지라 내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줄 알았으므로 내 숙부의 아들 하나멜의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는데 은 십칠 세겔을 달아 주되 증서를 써서 인봉하고(롐32:8-9)

에레미야가 사촌 하나멜의 아나돗 땅을 살 이유는 전혀 없었습니다.
1) 그는 감옥에 있는 처지입니다.
왕에게 미움을 받아 갇혔으니 전쟁에 지면 적군에게 죽을 것이고 이기면 왕에게 죽을 처지였습니다.
2)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였습니다.
선지자인 그에게는 세상적 목적이 되는 땅이 필요치 않아 그 땅을 살 필요가 없었습니다.
3) 전쟁 중에는 부동산이나 땅보다 현금이나 귀금속이 필요한 때입니다.
4) 그 땅은 이미 적군에게 점령된 곳의 땅이니 산들 재산권을 소유할 수가 없습니다.
5) 이스라엘의 멸망을 하나님이 그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니 그 땅을 산들 자기 것이 아니고 바벨론의 것이 될 것입니다.

이런 모든 이유를 볼 때 예레미야는 땅을 살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그 어려운 처지에서 사촌에게 속아가며 그 땅을 산 것은 바로 하나님의 명령 때문이었습니다. 사회적인 여건으로나 개인의 필요성으로 보나 그가 사야할 필요가 없는 땅이지만 그 땅을 비싼 값으로 산 것은 순종의 모습을 우리에게 가르치는 본받을만한 행동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예레미야의 순종을 본받으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냐하면 순종하는 자에게는 반듯이 하나님이 좋은 것으로 축복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어느 날 결혼명령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습니다. 그런데 그 명령이 너무도 힘든 음란한 여인을 취하여 결혼하라는 것입니다. 호세아는 그 명령에 순종하여 고멜이라는 여인을 취하여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2남 1녀를 낳았는데 한결같이 이름을 저주스런 이름으로 지으라고 하나님이 명하셨습니다. 호세아는 그것도 순종하여 그 이름대로 이스르엘 로루하마 로암미라고 지었습니다. 그 이유는 당시의 이스라엘이 음란하게 다른 신을 섬기고 있어서 그것을 깨닫게 하시려는 뜻이 있었습니다. 자녀를 낳고 나자 아내 고멜은 다른 남자를 사랑하여 그를 따라 가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남자가 그녀를 버리자 창녀촌에 들어가 몸을 팔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돈을 가지고 가서 그녀의 빚을 갚고 다시 데려와 살라고 명하셨습니다. 호세아는 눈물을 흘리며 그녀를 찾아 빚진 돈을 갚고 그녀를 데리고 가정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용서와 회복의 메시지를 그에게 주셨습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 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호 6:1-3)

호세아에게 이런 일을 하라고 명하시는 것은 이스라엘의 현재의 죄악과 그로 인한 고난,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용서하시고 싸매 주시며 이른 비와 늦은 비로 축복하실 것을 알고 믿어 바른 길을 가라는 뜻을 호세아가 친히 행동으로 행하여 보여주므로 이스라엘을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이 어려운 일을 호세아는 묵묵히 행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순종입니다.
전 재산 한끼 식량을 드린 사르밧 과부, 귀한 아들을 드린 아브라함의 순종, 그리고 감옥에서 땅을 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한 예레미야 같이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소망을 비싸게 사는 예레미야를 본받읍시다

내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줄 알았으므로 내 숙부의 아들 하나멜의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는데 은 십칠 세겔을 달아 주되 증서를 써서 인봉하고(롐32:9)

예레미야의 순종의 이면에는 진실한 믿음이 동행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하게 믿었고 오늘의 고난이나 육적인 소욕 보다 미래의 소망을 가치 있게 여기고 그것을 위하여 모든 것을 서슴없이 투자하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사촌의 제의를 허락하여 감옥에 있고 살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땅을 산 것은 하나님이 앞으로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는 믿음, 즉 소망을 산 것이었습니다. 곧 바벨론에 멸망하지만 다시 회복하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나라 사랑이 이런 행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마음 이 행동이 바로 나라사랑이고 3.1정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들으시며 예레미야 같은 미래적 영감이 충만하시고 그 믿음으로 이 나라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기도하고 충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울은 로마로 압송되는 죄수였습니다. 손에는 수갑을 차고 그를 지키는 군졸이 뒤따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탄 배가 무서운 풍랑을 만났습니다. 그로 인하여 선장을 비롯하여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이 절망하고 두려워하여 음식도 먹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자신이 직접 음식을 먹으며 그들을 이끌었습니다. 수갑을 찬 그를 무엇이 이렇게 당당하게 하고 평안하게 하였겠습니까? 그는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위하여 하나님의 종들에게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실 것이라는 미래적 영감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사회는 하나멜 같이 약삭빠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사람이 잘사는 사회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오래가지 못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이기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앞의 이익을 추구하는 근시안적인 삶을 살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영원한 사명을 위하여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예레미아는 소망의 값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미련한 유다 백성들에게 알게 하고자 남의 나라 땅이 되는 하나돗의 땅을 비싼 값으로 산 것입니다. 그리고 그 행동은 지극한 나라 사랑으로부터 우러난 행동이었습니다. 이런 지극한 나라 사랑이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3.1운동입니다. 맨몸으로 총칼을 든 일본 경찰 앞에 담대히 섰던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독립선언문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 제일 먼저 잡혀죽기를 자청한 용감한 나라 사랑이 오늘의 이 나라를 이루게 하였고 이 시대에 기독교인들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이지선 양은 사고로 전신에 55%의 화상을 입고 치료의 아픔이 너무도 커서 엄마에게 투정을 하며 엄마가 이 고통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랬더니 엄마가 “그럼! 그럴 수만 있다면 천번도 만번도 네 고통을 대신 감당할 수 있지” 라고 대답하며 우시더랍니다. 그 울음을 보며 엄마의 뜨거운 사랑을 느꼈고 거기서 자기 대신 고통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참 사랑을 깨달았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의 병실에서 무려 17명이 죽어 나가는 끔찍한 모습을 두려움 속에 바라보며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자신이 치료되고 화상으로 끔찍한 모습으로 교회에 갔더니 어린아이들이 “어 저기 괴물 봐라 괴물 봐!” 하더랍니다. 그래서 지선 양은 “하나님 그래도 제가 사람으로 보이게 해주세요” 하나님께 기도했답니다. 그런데 3년후에 또 교회에서 어떤 아이가 지선 양을 보고 “엄마 저기 이상한 사람 왔어” 하더랍니다. 그래서 괴물에서 이상한 사람으로 불리게 되었으니 하나님이 기도를 응답해 주셨다고 감사기도를 드렸답니다. 한번은 사우나에 갔는데 지선양의 울퉁불퉁한 몸을 보고 한 할머니가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냐 얼마나 애썼냐 그런데 신통하게 얼굴은 하나도 안 다쳤구나” 하시더랍니다. 사우나 수증기와 노안으로 잘 안보여서 하신 말씀이지만 하나님이 응답해 주셨다고 기뻐했답니다. 이지선양은 사고 후에 “지선아 사랑해”라는 글을 써서 그것이 책으로 나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 책에서 자신의 옛 얼굴사진이 나왔는데 너무도 예쁘고 아름다운 처녀였습니다. 그런데 지선 양은 옛날로 돌아가고 싶지않다고 합니다. 사고 전에는 멋있는 남자 만나서 잘먹고 잘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었는데 지금은 온몸이 일그러지고 얼굴이 일그러져서 흉하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했기 때문에 행복하답니다. 이 모습이 바로 소망을 가진 자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놀라운 소망을 팔아버린 약삭빠른 하나멜의 실패의 삶을 우리는 살지 맙시다.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철저하게 순종한 예레미야의 삶을 우리도 배워 행하십시다.
그리고 소망과 믿음을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귀하게 여기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투자하여 살 수 있는 미래적 영감을 가지시고 이 민족 이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고 헌신하고 희생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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