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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이성이 주는 교훈 (수 7: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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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프랜시스 후꾸야마(Francis Fukuyama)의 세계적 베스트 셀러
`트러스트(TRUST)`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우리말로도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어요. 트러스트.
이 책에서 말합니다. 국가경쟁력은
  그 나라의 자본과 기술, 지식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이것은 문화적 요인, 사회적 요인에 근거한다고 말합니다.
문화적 요인, 사회적 요인이라는 말은
    바로 신뢰성, 정직성입니다.
얼마나 서로 믿는 사회인가?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인가?
    믿을 수 있는 관계인가에 따라서
    그 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가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서울대학교에서
대한민국 국민 3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 사람의 78%가
한국에서는 정직하게 살아서는 제대로 살 수 없다고 대답을 했고
그 중에서도 대부분이 10대 20대들이라고 합니다.
이 통계에 의하면 이 나라가 얼마나 부도덕 하고 부정직한지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어느 국가든 사회든 Trust - 정직이 없는 공동체는
이렇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교훈의 말씀입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를 정복한 여세를 몰아
        그 다음 성 아이를 공략할 작전을 세웠습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을 정복할 때처럼
      정탐꾼들을 아이 성에 보내 그 땅을 살펴보게 하였습니다.
정탐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정탐꾼들은
`아이 성은 약하니 모든 백성이 함께 갈 것 없이,
    이삼천 명만 보내어도 이길 것이라`고 보고를 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정탐꾼들의 말대로
        삼천 명만의 군대를 보내어 아이를 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아이성 사람들에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아이성 패배가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살펴봄으로
    신앙의 승리자로 살아가는 내일교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아이성 전쟁의 패배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1. 아이성 전쟁의 패배의 원인이 무엇입니까?(1-5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을               
    하나님의 은혜로 무너뜨리고 난 후 아이성을 정복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상외의 패배를 경험하게 됩니다.
여호수아 장군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일한 패배를 안겨주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인간적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건입니다.
아이성은 여리고성에 비하면
그야말로 아이성의 이름 그대로 아이같이 약하고 보잘것없는 성입니다.
그런데 뜻밖에 아이성 정복은 참담한 패배를 경험해야 했습니다.
원인 없는 성공과 실패가 없듯이 아이성 싸움의 실패의 원인이 무엇인가?
실패의 원인을 1절에서 한마디로 이렇게 말합니다.
1절 [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
바친 물건 때문에 범죄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수6:18-1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하여 분명한 경고의 말씀을 주었습니다.
18절 [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려워하노라 ]
모든 전리품을 손대지 말고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여호와의 곳간에 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히브리 말로 ‘훼렘’ 이라 했습니다.
훼렘의 의미는
  첫째 하나님께 내 소유다 드려서 헌신 봉사하는 것과 
  둘째, 죄와 완전한 단절을 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에 들어온 모든 물건은
          죄와 단절되어야 하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죄와 이스라엘 백성이 섞이는 것은 싫어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간이 탐심으로 인하여 이 말씀에 불순종하고 숨겨 두므로
    이것이 화근이 되어 아이성 싸움의 실패의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문제를 아간 한 사람의 범죄로 보지 않고
      이스라엘 전체의 범죄로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내 한 사람의 잘못이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곳입니다.
이렇게 공동체 안에 범죄가 들어오니
    이스라엘이 넘어질 일을 자행하는 것입니다.
물론 지도자 여호수아는 나름대로 전략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2절에 사람을 보내어 아이성을 먼저 정탐하러 보냈습니다. 
정탐하러 가던 사람들의 보고가
난공불락 여리고 성도 손쉽게 무너뜨렸는데 아이성 쯤이야 하고는
3절에 [ 백성을 다 올라가게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4절 이하에 삼천 명쯤 올라갔다가 삼십 육 명이 죽고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되었더라고 합니다.
            완전히 전의마저 상실한 것입니다.   
이렇게 죄가 들어오고 안 되려고 하면 자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순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힘을 믿고 의지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지난번 911 테러 사건 후
    역사가 가운데서는 미국이 이런 어려움을 당하게 된 것은
    바로 자만심 때문이었다고 지적합니다.
소련이 붕괴 된 후 미국을 향하여 초강대국이라고 말을 합니다.
일본에 의해서 진주만을 폭격 당했지만
    본토는 한 번도 당하지 않았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찍부터 미국을 향하여 테러를 하겠다는 경고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감히 미국 본토를 건드릴 수 있겠는가? 하는
    안일함과 교만이 많이 있었습니다.
미국은 세계의 모든 것을 잡고 있다고 해도 틀림이 없습니다.
    정치 군사 경제 모든 것을 잡고 있습니다.
그 중에 경제를 대표할 수 있는 건물
      세계무역 센터 (World Trade Center) 쌍둥이 건물인데
각각 자살 비행기 한 대의 폭격을 맞고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군사의 힘을 대표로 하고 있는
    미국방부(펜타곤) 건물이 주저 않고 말았습니다.
미국 펜타곤 건물은 모든 재난을 다 생각하고 지은 건물이기 때문에
    어떤 것이라도 막을 수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사건을 통하여서 깨닫는 것은 아무리 크고 강한 나라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미국이 이렇게 당할 수 있다면
    우리 대한민국과 개인 또한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아이성의 실패는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의지하고 과신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전10:12절 [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 
섰다 하면 넘어집니다. 가졌다 하면 넘어집니다.
능력 있다 하면 넘어집니다. 지혜 있다 하면 넘어집니다. 똑똑하다 하면 넘어집니다.
잠언16:18절 [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
그러므로 늘 승리 이후를 조심하십시오.                   
응답 이후를 조심하십시오. 발전 이후를 조심하십시오.
확장 이후를 조심하십시오. 성취 이후를 조심하십시오. 
이것 때문에 자만하고 교만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하나님의 도움으로 살고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산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아무리 큰 것이라도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능히 할 수 있지만
아무리 적은 것이라도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이성 패배 후 여호수아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2. 아이성 패배 후 여호수아의 행동은 어떠합니까?(6-9절)

분명히 이길 수 있는 싸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아이 사람들에게 힘없이 무너지고 돌아왔습니다.
싸움에서만 진 것이 아니라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되었더라고 합니다.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 고함지르던 사기마저 다 잃어버렸습니다. 
분명히 승리할 수 있는 싸움에서 패배하자
    여호수아는 무슨 문제가 있음을 직감했습니다.
그래서 10절에 여호수아는
    즉시 장로들과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그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왜 실패하게 되었는지를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위기가 오고 실패가 왔을 때, 주저하지 말고 방황하지 말고       
사람들을 좇아다니며 위로를 구걸하지 말고
      하나님께 즉시 무릎을 꿇고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실패 이후에
하나님이 베푸시는 새로운 기회를 찾는 첫 번째 방법인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잘 못되거나 실패했을 때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우리들이 지혜롭지 못해서 실패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우리들이 나태하고 게을러서 또는 영적인 분별력이 없어서
        판단이 흐려짐으로 고난과 실패가 오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실패한 것보다 실패한 것에 대한 반응입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어떤 일이 잘못되거나 실패했을 때,
그것이 자신의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재수가 없어서 또는 운이 나빠서 실패했다고 말들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이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 줄 몰라서 하는 말들입니다.
이 말속에는 자신의 실수나 잘못은 덮어두고
그 실패의 원인을 남에게서 찾아내려는 극도로 이기적인 의식이 숨어 있습니다. 
이런 말들은 무속인들이나 쓰는 말입니다.
`재수가 없어서, 운이 나빠서`
어떤 사람은 일이 잘못되거나 실패한 사람을 위로한답시고
  `운이 없어서 그랬다고 생각해` 그러니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잊거나 포기하라는 것이지요.
그러면 그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것은 위로가 아닙니다.
오히려 불신앙을 획책하는 말인 것입니다.
일이 잘못된 그 원인을 분석하고 다시는 그러한 실패를 거듭하지 않도록
    격려하고 일으켜 세워주는 것이 진정한 위로인 것입니다.
성도의 대부분 일이 잘못되어지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무슨 문제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이 성 정복에 실패한 원인은
    하나님이 떠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왜 하나님이 떠나셨습니까?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아간`이 훼렘을 훼방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어
    이스라엘은 아이 성 정복에 실패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가면 신호를 주십니다.
    어떤 경우는 건강을 통해서, 어떤 경우는 자녀를 통해서,
    어떤 경우는 사업의 부진을 통해서, 어떤 경우는 이웃 사람들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도록 신호를 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하면 징계와 심판이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어 당하는 실패를 극복하는 비결은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패의 자리에서 서있습니까? 낙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나아가 무릎 꿇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어찌할꼬? 하고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자신의 처지와 잘못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패 그 후에 새롭게 열어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세계를 꿈꾸며     
삶을 회복하여 다시금 복된 삶을 사는 주의 백성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여호수아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통곡하며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우리들이 아이성에서 패했습니다.
이곳으로 인도하시고, 패하도록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왜 이곳으로 인도했습니까?
  이방 모든 사람들이 우리들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거룩하신 이름이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우리들은 수치를 당하지만
그러나 당신의 이름은 천하만국이 조롱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여호수아는 자신들의 문제를 하나님에게 고하고 있습니다.
    진실할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있습니다.

진실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반드시 응답과 대책이 있는 줄 믿습니다.

3. 하나님의 응답과 대책은 무엇입니까?(10-13절)

여호수아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10절에 [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하여 하나님 앞에 엎드려도
먼저 책망하시는 분이 아니라
먼저 위로 하시고 격려하시며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먼저 위로 나중 책망
선 사과 후 변명 -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문제가 무엇인지 지적해 주십니다.
11절 [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언약을 어기었나니
    곧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여
        자기 기구 안에 두었느니라 ]

1) 아이성의 패배의 주범은
      바친 물건을 도적질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언약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실패의 원인은 문제가 잘못되기 이전에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긴데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자세히 묵상해 보면
    6절 이하에 여호수아가 하루 종일 하나님 앞에 엎드렸지마는
      문제가 잘못된 것만 이야기 했지
      진정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범죄를 하였다.
      하나님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너희가 잘못했다.

어느 목사님이 후원 선교사님이 큰 교통사고를 당한 병원에 심방 갔습니다.
차가 전복되는 큰 사고이었지만                     
    그래도 생명에는 지장 없고 치료하면 완치할 수 있는 사고였습니다.
선교사님이 목사님에게 하는 말이
` 목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저를 좀 더 훈련시키시려고
      죽음 문턱에서 생명을 건져 주셨습니다` 합니다.
그때 목사님이 하는 말이
“ 선교사님, 우리 하나님이 그리 우매하신 분이 아닙니다.
  선교사 훈련시키려고 큰 교통사고 나게 해서 죽음에 문턱에 붙일까요?
  내가 보니 선교사님이 법규를 어기고 과속을 했네요.
  하나님이 다음부터는 과속하지 마라 고 하십니다.” 

그래요 잘못은 자기가 하고
    그기에 하나님의 뜻을 같다 부치는 것은 우매한 일인 것입니다.
맥시루카르란 사람이 이런 말을 합니다.
“ 우리는 상사에 호감을 사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아첨을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윤활유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거짓말이라 합니다.
우리는 칭찬 얻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화장을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극적효과라 부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가짜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칭찬받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분에 넘치는 생활을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성공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위선적인 삶이라 말씀합니다.”

2) 12절에 [ 그 바친 것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
도적질 한 것을 멸하라고 합니다.
회개는 이렇게 행동이 뒤따라야 합니다.
잘못된 것을 깨달아서면 돌이켜야 합니다.
    제할 것은 제하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보상해야 할 것은 보상해야 합니다.
 
3) 13절에 [ 스스로 성결케 하여 내일을 기다리라 ] 고 합니다.
여호수아에게 보이신 하나님의 뜻은 성결케 하라는 것입니다.
  성결케 한 후에 뜻을 펼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성결입니다.
성결해야만 내일이 있습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세상에서 성공하기를 원하십니까?
성결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십시오.
무엇보다도 먼저 여러분 중에서 죄를 척결하십시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 하나님께 복 받기를 원하는 자는 먼저 성결해야 합니다.
일찍이, 하나님을 섬기는 법도를 성경이 증언하는 데, 출28:36절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제사장들이 쓰는 관 전면엔 정금판을 붙였는데
    그 위에는 `여호와께 성결`이라 써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슥14:20절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왕의 왕이 되시는 세상을 그리며 예언하길
`그 날에는 말방울에 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다`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교인이라고 뭐가 다르냐?` 하는 비난입니다.
우리 교인들이 기도는 크게 하는데, 착한 일도 많이 하는데
  성결하게 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러다 보니, 착한 일도 다 잊고 세상은 우리를 보고
    `별 다른 것이 무엇이냐` 비난합니다.
이제 우리가 세상을 대하여 무엇을 보여 주어야 합니까?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성결한 자로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교회 다니는 것으로 다 이룬 줄로 생각지 맙시다.
    직분을 받은 것으로 다 이룬 것으로 생각지 맙시다.
우리가 성결케 될 때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더해지며 속하게 되며,
    하나님의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구세군 창립자 <윌리암 부tm>의 말을 기억합시다.
`가치의 혼란과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에
    구세군이 줄 수 있는 마지막 대답은 성결이다` 한 점을 말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모든 백성이 모인 자리에서 `하나님께 바쳐진 물건`을 찾아내고,
범죄하여 모두를 고통스럽게 한 당사자를 찾아내 벌주므로
      다시는 이런 망령된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경계하라 하셨습니다.

4. 아간의 잘못이 우리에게 주는 신앙적 교훈은 무엇입니까?(14-21절)

14-18절에 보면 
아침 일찍이 여호수아는 백성들을 모두 모으고 지파대로 나아오게 해서
    범인 색출을 위하여 제비를 뽑게 합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아주 자세히 범인색출의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7-8절에서
유다 지파에 세라 족속이 뽑혔고 세라 족속 중 삽디가 뽑혔고
삽디 가족 중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이요
        삽디의 손자요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뽑혔더라. 
왜? 성경은 이렇게 아간이 범죄한 사실을                 
만약 오늘날 이런 명단 공개가 나오면 인권침해라고 난리가 날 거예요.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이렇게 족보까지 들먹이며 명단공개를 합니까?
1) 죄는 이렇게 철저히 가려낸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은폐를 하고 살아도 죽을 때가 되면 진실해 집니다.
  왜? 하나님 앞에 서야하기 때문입니다.
몇 해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성철 스님이 있습니다.
그분은 결혼 직후 처자식을 버리고 집을 떠나서
    산 속에 들어가서 수행을 시작했습니다.
부모가 찾아와도 수행에 방해가 된다고 만나지를 않았습니다.
기거하는 곳에 철조망을 쳐 놓고
  십 년 동안 사람들과의 일체 만남을 끊고 살았습니다.
십 육 년 동안 솔잎가루와 쌀가루만 먹고살았습니다.
팔 년 동안 눕지 않고 앉아서 잤다고 합니다. 엄청난 고행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기 전에 마지막 남긴 열반송이라는 게 있습니다.
    `나는 평생 무수한 사람을 속였으니
      그 죄업이 하늘에 가득 차 수미산 보다 더하다.
      산채로 지옥에 떨어져 그 한이 만 갈래니
    한 덩이 불덩이 푸른 산에 걸려 있다`
한 평생 동안 무지무지하게 많은 사람을 속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죄업이 하늘에 가득 차서
    그 결과 산채로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죽을 때 솔직해지는 법입니다.
  그는 평생의 수행과 고행이 헛된 것임을,
    그리고 많은 사람을 속이는 행위였음을
        마지막 죽음 앞에서 솔직히 인정한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 직전에 하나님 앞에서가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십자가 앞에서 회개하면 살길이 열릴 줄 믿습니다.

2) 다른 각도에서 한 번 생각해 보면
  동시대 사람이지만 기생 라합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인물입니다.
아간은 유다 지파의 족장으로서
      얼마든지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살아갈 수 있는 배경입니다.
그러나 아간은 하나님의 축복보다 눈앞에 이익 때문 훼렘을 훼방하다가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온 이스라엘에 피해를 주었고
    온 가족이 멸절당하는 불운을 초래하게 됩니다.
그러나 라합은 하나님을 선택했기 때문에
  자기 자신 뿐만이 아니라 온 집안과 자손들이 복을 누리게 됩니다.
여호수아가 아간에게 네 행한 일을 내게 고하고 숨기지 말라고 합니다.
그럴 때 20-21절에서 아간이
[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여 여차 여차 행하였나이다 ] 하고 고백하기를
[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아간이 노략한 물건은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 백 세겔,
    그리고 오십 세겔이 나가는 금 덩어리였습니다.
은과 금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의 욕심을 자극하는 원초적인 보석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또한 본문에 나오는 시날의 외투는 아름다웠다고 했습니다.
유대 랍비들의 전승에 의하면
`시날` 땅에서 생산되는 외투들은 자주색을 띤 고급 옷으로
    왕들이 입던 옷이라고 합니다.
아간은 그만 그 화려함에 도취되어 생긴 탐심으로 인하여
    죄를 짓고 말았던 것입니다.
죄의 유혹은 화려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죄의 결과는 너무나 어둡고 비참합니다.
그런데 마귀는 죄의 결과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습니다.
    마귀는 속이는 자입니다. 죄의 결과는 사망인데,
하와에게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네가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근사하고 흥분되는 일입니까?
하나님처럼 된다는데 무얼 주저하겠습니까?
    그러나 이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속임수인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말에 속아 넘어가고 있습니다.
백화점들은 고객들의 주머니에서
  더 많은 돈을 끄집어내기 위해 갖가지 묘안을 짜냅니다.
어떤 백화점의 지배인이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더 많은 돈을 끄집어내는 방법을 고안해냈습니다.
처음 매장에 들어서면
    아주 향이 진한 커피를 끓이는 냄새를 온 매장에 가득하게 합니다.
    손님들이 그 냄새를 맡으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입니다.
2층에 올라가면 빵 굽는 냄새를 매장 가득히 흘려보냅니다.
    역시 손님들은 기분이 좋아집니다.
커피 향과 빵 굽는 냄새에 기분이 좋아진 손님들은
    자기가 예상한 것보다 많은 물건을 고르고 산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고, 정신을 흐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도 마귀는                                  <11>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이 정욕을 물리치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여호수아는 사자를 시켜 아간의 장막 안에
        감추었던 옷과 금, 은을 찾아오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아간과 금 은 외투뿐만이 아니라
      그 자식과 짐승들 까지 아골 골짜기로 끌고 가서
      돌로 치게 하고 불사르게 합니다.
그리고 그 곳 이름을 오늘날 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고 합니다.
이렇게 아간의 결말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이겠습니까?   
5. 아간의 결말이 우리에게 주는 경고의 메시지는 무엇입니까?(22-26절)
아골 골짜기는 죄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아간은 아골 골짜기에 깊이 묻혔습니다.
그제야 하나님은 그 극렬했던 진노를 그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로 실패케 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죄악은
      아골 골짜기에 깊이 묻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골 골짜기를 오늘까지 남겨두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간과 같은 탐욕의 범죄를 짓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골고다 언덕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들이
    다시는 죄의 노예가 되지 않기를 다짐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어야 합니다. 
아간이 묻힌 아골 골짜기에 나를 장사 지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를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와 사망을 다 짊어지시고 대속물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나의 모든 저주를 대신 지시고 죽으셨습니다.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죄와 저주와 사망의 사슬을 풀어 주셨습니다.
아골 골짜기의 저주는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끝났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어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악이 씻기었습니다.
이제 십자가를 붙드시기 바랍니다. 십자가 앞에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흠뻑 적셔지는 은혜가 임하기를 소원합니다.
(김성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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