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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눅 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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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5:1)'라고 하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열광적인 무리들을 실감 있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귀에 디베랴바다 혹은 갈릴리호수로 더 잘 익숙해진 게네사렛 호숫가(동서의 폭이 12km, 남북의 길이가 20km, 면적이 144㎢)에서 예수님께서는 고기잡이 하는 어부 중의 한사람인 시몬의 배에 올라가서 육지에서 조금 띄게 하신 뒤에 무리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예기치 못하게 예수님을 만난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의 가르치는 말씀에 청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했습니다. 이때 시몬이 말하기를 "밤이 맟도록 수고하였으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했습니다.

Ⅰ.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 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는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신성(神性)에 대하여 증거함과 동시에 예수님의 전재성(前在性)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과 함께』란 말은 성자 예수님의 격위가 성부와 동일하심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는 말은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과 따로 계시는 완전하신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말씀(로고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제나 하나님의 계시자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장 3절에 『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은 곧 생명입니다. 요한복음 1장 4절에 『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
요한복음 7장 16절에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7장 29절에 『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니라 하신대』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8장 25절에 『 저희가 말하되 네가 누구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30절에 『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라고 했습니다.

1) 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본문 5장 1절에 『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수가에 서서』라고 했습니다.
본문 5장 3절에 『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서더니』라고 했습니다.
시몬은 예수님께 자신의 배를 제공했습니다. 예수님은 시몬의 배를 강단으로 하여 가르치실 때 시몬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에 시몬은 자신의 생각과 의지마저도 예수님의 말씀 앞에 포기할 정도로 은혜를 받았습니다.

2) 이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본문 5장 5절에 『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수용하는 내적믿음입니다. 믿는 것을 행동화하는 것이 온전한 믿음입니다.
야고보서 2장 22절에 『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7장 20절에 『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3) 이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본문 5장 4-5절에 『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했습니다.
'말씀에 의지한다'는 말은 '말씀에 근거하여'라는 의미입니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요한복음 2장 5절에 『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시몬 베드로의 순종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베드로에게 도무지 믿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고기잡이를 해본 경험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그의 직업은 목수였기 때문입니다. 대대로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이 하고 살아온 베드로의 경험으로는 고기가 잡히는 최적의 때는 밤인데 지금 이 시간은 아침이기 때문입니다. 그물을 내리는 물의 깊이는 적당한 깊이가 좋은데 깊은 데로 가서 던지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얻은 경험들은 중요한 노하우(Knowhow)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앞에 인간의 경험이나 지식은 절대화 시킬 만큼 가치 있는 것은 못 됩니다. 성도들은 때로는 자기 포기에 따르는 결단과 역설적인 논리의 실천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4) 이 말씀을 지켜 행하면 기적을 봅니다.
본문 5장 6절에 『 그리한즉…』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그물을 깊은 데에 내렸다는 단축형 의미입니다.

(1) 에운 것이 심히 많은 포만의 기쁨입니다.
본문 5장 6절에 『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에운 것이 심히 많다'는 말은 그물 안에 고기가 가득 쌓였다는 말입니다.
'찢어지는지라'고 하는 말은 실제로 두 갈래로 찢어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욕심을 낼 수도 없고, 더 이상 욕심을 낼 필요도 없고 더 이상 욕심을 내었다가는 모든 고기를 잃을 정도로 꽉 찬 상태입니다.
이렇게 순종(obedience)은 항상 풍성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래서 순종의 가치를 사무엘상 15장 22절에 『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2) 혼자서만 누릴 수 없는 기쁨입니다.
본문 5장 7절에 『 이어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달라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고 했습니다. 밤이 맟도록 수고해도 얻은 것이 없는 동무들과 함께 맛보는 만선(滿船)의 기쁨입니다.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복입니다. 복 받은 사람과 함께 하는 자도 복이 됩니다. 창세기 39장 2-3절에 『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넘쳐서 주위로 흐르는 복입니다.
이것은 장차 시몬 베드로를 통하여 예수님께로 나아올 택자들이 많다는 묵시적인 교훈입니다.

Ⅱ. 그 말씀은 인생들의 삶의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1) 그 말씀에 자기절대가 파괴되어야 합니다(삶의 방법).
본문 5장 8절에 『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신뢰와 축복은 동시적일 수도 있습니다. 5절에 보면 예수님의 돌발적인 명령에 대하여 시몬은 기꺼이 순종했습니다. 여기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자신의 자아와 자존심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제는 시몬이 주님을 완전히 신뢰하도록 하셨습니다. 함께한 자들도 일반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시몬의 인간적인 경험과 지식이 예수님의 말씀 앞에 완전히 무력화 되어서 그 절대의 자리가 바뀌어지는 순간입니다.

2) 그 말씀에 바른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삶의 가치).
지금까지는 시몬이라는 이름으로 언급되었는데 8절에 와서는 베드로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제는 시몬 베드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란 이름의 뜻은 반석입니다. 베드로는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1) 예수를 주라고 했습니다.
본문 5장 8절에 『 …주여…』라고 했습니다. 주여 '퀴리오스'는 하나님과 동의어로서 사용되었습니다. 예수 선생(Master)에서 "주여"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6절에 『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했을 때 주님은 시몬 베드로를 향하여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라고 했습니다(마16:17). 그리고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고 하셨습니다. 본문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주'라고 고백할 때 얻은 이름이 베드로입니다.

(2) 자신을 죄인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5장 8절에 『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했습니다. 죄인 '하말톨로스'( )는 누가에게 있어서 두 가지로 취급되었는데 하나는 이교도라는 신분 때문에 유대의 종교단체에서 추방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베드로의 경우는 예수님의 무한하신 권능 앞에 상대적으로 나약한 자신의 추하고 고집스러운 죄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주요 그리스도시라'는 것과 자신이 '죄인이라'고 고백한 것은 예수님과 바른 관계가 회복된 것입니다.

3) 보은적(報恩的) 삶의 행동화가 교회운동으로 성화 되어야 합니다(삶의 목적).
본문 5장 10-11절에 『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고 했습니다.
『 취하리라』는 말은 70인 역에서는 '위험에서 생명을 건져낸다'는 뜻으로 사용되었고 여기서는 더욱 선명하게 구령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 저희』라는 말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데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은 야고보와 요한에게도 미쳤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능동적으로 따르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이 일을 하기 위하여 자기 일을 버렸습니다. 이들은 이제 이 땅의 교회운동을 위하여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8절에 『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1장 24절에 『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1장 23절에 『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4장 12절에 『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1장 18절에 『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귀는 마치 회오리바람이 골짜기에 소리를 울리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그저 지나가게 하고 잡아두지 않으면 시비도 함께 사라진다. 마음은 마치 연못에 달빛이 비치는 것과 같으니 텅 비게 하고 잡아두지 않으면 사물과 나를 모두 잊게 된다.'(耳根 似飇谷投響 過而不留 卽是非俱謝 心境 如月池浸色 空而不着 卽物我兩忘, 이근 사표곡투향 과이불류 즉시비구사 심경 여월지침색 공이부착 즉물아양망).
'마음을 비우는 것이 모든 일을 가능케 한다.'는 채근담에 나오는 옛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독일의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에게 제자들이 찾아와서 성공의 비결을 묻자 그는 빙그레 웃으며 'S=T+J+C'라는 국적불명의 공식을 내놓았습니다. S는 성공(Success)이고 T는 말(Talk) 자기주장의 말을 많이 하지 말라는 것이고 그리고 J는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이라는 생각으로 즐겁게(Joy) 생활하는 것이고 C는 긍정적으로 여유 있는(Composure) 시간을 가지라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게네사렛 호숫가에 가셨습니다. 여기에는 두 배를 가지고 밤이 맟도록 고기를 잡았으나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배에서 나와 그물을 씻고 있는 어부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이야말로 마음을 비우고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던 사람입니다. 이들은 적어도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잡이로 잔뼈가 굵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모두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에 붙잡히는 순간에 기적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8장 47절에 『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인생의 전부입니다. 들어야 됩니다. 순종해야 합니다. 지켜 행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심히 많은 포만의 기쁨을 맛볼 것입니다. 혼자서만 누릴 수 없어서 우리의 골육과 친지들과 함께 기쁨을 얻을 것입니다. 내 자신이 형통하게 되면 함께 하는 자가 다같이 형통함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이 결코 자비롭거나 사랑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자신의 의지에 관계없이 자신과 함께 하는 자들이 자연스럽게 받는 복입니다. 이 복은 자신의 주위와 함께 하지 아니할 수 없는 복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운동의 속성이자 축복의 법칙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속에 인간의 삶의 방법과 가치와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절대가 파괴되는 삶입니다. 주님과의 바른 관계가 회복되는 삶입니다. 주님에 대한 보은의 행동화가 그의 몸 된 교회운동으로 성화되는 삶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속에 축복과 기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변함없는 주님 자신의 선언입니다.
(강구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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