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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원수를 사랑하라 (눅 6:2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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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를 사랑하라.
눅 6:27-38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양심을 주셨습니다. 양심은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비추어주는 거울입니다.
그런데 딤전 1:19 착한 양심, 1:5 선한 양심, 3:9 깨끗한 양심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양심이라는 말에 이미 좋은 마음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바울은 착한 양심, 선한 양심, 깨끗한 양심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죄로 인하여 이미 양심이 더러워져 있고 오물이 붙어서 하나님의 뜻을 비추지 못하게 되어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모님을 칼로 죽이고 휘발유로 불을 지르는 세상에 바른 양심을 찾을 수 없습니다.
타락된 양심은 이제 우리들에게 바른 기준을 제공해 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에게 기준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습니다.
성경이‘아니다’하면 아니고, 성경이‘옳다’하면 옳은 것입니다.
성도는 성경에서 하라고 하는 것을 해야 합니다. 하지말라고 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주님께서 주시는 귀한 생명을 말씀을 진리의 말씀으로 받고 순종하므로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예수님은 복있는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있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 주린 사람, 우는 사람입니다. 이 말씀은 세상적인 사고방식과 정반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참된 행복이 소유욕, 부요함, 배부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말로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을 마음 속에 모신 사람입니다.
가난하고 주린 심령이 복된 것은
빈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찾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마태는 그의 복음서에서 여러 가지 교훈을 설명하지만 누가는 핵심적인 교훈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청년들 제자훈련 공부를 하는데 매 주 숙제를 냅니다. 주일 낮 예배 목사님 설교의 요점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누어 보면 본문도 같고 제목도 같은데 내용은 다릅니다.
똑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기록하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누가는 본문에서 사랑에 대한 주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 듣는 너희들에게 이르노니
이 말씀을 듣는 대상은 건성으로 대강 한 귀로 듣고 흘려 버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귀를 세우고 경청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이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닙니다. 형제들 간에 동료들 간에 사랑이 아닙니다. 부자간의 사랑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사랑은 보통 사람들이 하는 사랑, 그 이상의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도저히 사랑받은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아무 조건이 없이, 보상을 바라지 않고, 아낌없이 주는 사랑입니다.

▣ 누가 원수인가?
구체적으로 누가가 원수는 27절에서 30절의 행동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27하 - 미워하는 사람,
28 - 저주하는 사람, 모욕하는 사람,
29 - 뺨을 치는 사람, 겉옷을 빼앗는 사람,
30 - 구걸하며 가진 것을 빼앗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행동을 다한 사람도 원수가 되고 이 중 한 가지만 한 사람도 원수가 됩니다.
이런 일을 당한 사람들은 개인적인 원수를 사랑해야 합니다.

▣ 원수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선대하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넓은 의미에서 선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행위대로 마땅히 받아야 할 대접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정반대의 행위를 해 주는 것.
누가는 이것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나를 저주하는 사람이 나에게 돌려받을 대접은 저주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이런 사람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모욕하는 사람 (모욕은 저주보다 더 심각한 행동입니다. 욕 몇 마디하는 것보다 모욕이나
굴욕감은 훨씬 감당하기 어렵다.)이런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상황이 변하는 그 변화에 따라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방법도 다릅니다.
뺨을 치는 사람에게는 다른 뺨을 돌려댑니다. 구걸하는 사람에게는 속옷까지 줍니다.
강탈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거져 줍니다.
이처럼 사랑은 상황의 변화에 따라 그 참 모습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선으로 악을 이기도록 영적인 투쟁 방향을 바로 잡아 주셨습니다.
악한 자를 악으로 갚으면 또 다른 악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원수를 감화시킬 때 진정한 의미에서 승리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원자탄>의 주인공 손 양원 목사님은 자기의 아들 동신이와 동인이를 죽인 원수를
양아들로 삼아서 목사로 세웠습니다.
성경에 다윗을 보면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 왕을 끝까지 선대합니다. 결국 다윗은 선으로
악을 이기고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 사랑의 원칙이 있습니다.
【눅 6:3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 말씀을 황금률이라고 부릅니다. 복을 받게 되는 법입니다. 원수 사랑을 하는 원칙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죄악 된 본성이 있습니다.

◈ 남에게 칭찬 듣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남을 칭찬해 주기를 싫어합니다.
남에게 무시를 당하면 속이 상해서 씩씩거리고 잠을 못 잡니다. 그러면서 남을 칭찬해 주지 않습니다.

◈ 자기는 인정을 받기를 원하면서 남을 인정해 주기를 싫어합니다. 어찌나 싫어하는지 죽기보다 더 싫어합니다. 오죽하면 칭찬합시다. 라는 프로가 생겼겠습니까?

◈ 우리 교회가 사랑이 많고, 우리 교회가 좋고, 우리 교회가 부흥된다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다른 교회가 부흥되고 은혜스럽다고 들리면 배가 아픕니다.

◈ 우리들은 선물 받기를 좋아하면서 선물 주기를 싫어합니다.

◈ 자기는 판단 받기를 싫어하면서 남을 판단하는 데는 굉장히 빠른 선수입니다.

◈ 섬김 받기는 좋아하면서 남을 섬기기를 싫어합니다.
이는 타락한 본성 때문에 끊임없이 시기하면서 불평하며 갈등 속에 살아갑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남에게 대접 받기는 원하면서 대접하기는 싫어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 알렉산드리아의 위대한 유대인의 철학자 필로(Philo)는 “
자기 자신이 당하기 싫어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행하지 말라”

☞ 헬라의 웅변가 이소크라테스(Isocrates)는 “
타인의 손에 의해서 괴로움을 당하여 그대가 분개하게 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행하지
않도록 하라

☞ 공자가 “생애를 걸어서 실천해야 할 규율이 있다고 한다면 한마디로 말해서 어떠한 일일까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러한 말이 있다면 호혜주의(互惠主義)가 아닐까? 자기 자신에게 원치 아니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행하지 말라
그러나 이런 말들은 소극적입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남으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겠다는 이기주의에 기초한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적극적으로 남을 대접하라고 하십니다. 내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하십니다.

◈ 어떤 책에 보니까 인간관계는 메아리와 같다고 했습니다.
이쪽에서 말하는 대로 되돌아오는데 몇 배가 되어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이쪽에서 “야호!”하면 저쪽에서 “야호,야호,야호”합니다.
또 이쪽에서 “이 나쁜 놈아!”하면 저쪽에서 “이 나쁜 놈아, 나쁜 놈아, 나쁜 놈아”하고 되돌아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대한 태도가 결정됩니다.

성도 여러분 어떤 상황 속에서도 이 원칙을 기억하시며 행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이 복된 삶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활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먼저 자존심을 꺾어야 합니다. 가장 어려운 적은 내 자신입니다. 이 자존심만 꺾으면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바울은 롬 12:10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예수님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고 하십니다. 대접하시되 먼저 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섬기고 먼저 존경하고 먼저 사과하고 먼저 대접하시기 바랍니다.

▣ 사랑이 아닌 것

32-34절까지를 표준 새 번역으로 읽어 드리겠습니다.
(32)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
죄인들도 자기네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33) 너희는 좋게 대하여 주는 사람들에게만 너희가 좋게 대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 죄인들도 그만한 일은 한다.
(34) 도로 받을 생각으로 남에게 꾸어 주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죄인들에게 꾸어 준다.

사랑하는 사람만을 사랑하는 것, 잘 대해주는 사람에게 잘 대해주는 것,
도로 받을 생각으로 꾸어주는 것은 예수님이 명령하는 원수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받을 자격을 완전히 갖춘 사람을 베푸는 행동입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나도 좋고 너도 좋은 호혜주의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안 믿는 사람과 분명히 다른 것은 안 믿는 사람들은 나쁜 일을 하지 않는 것 까지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데 있습니다.

(35) 그러나 너희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좋게 대하여 주고, 또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러면 너희는 큰 상을 받을 것이요, 너희는 가장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은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36)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 예수님께서 설교하신 평지 설교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사랑하고 싶은 사람뿐만 아니라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사랑하라는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살면 그 이상의 축복이 있습니다.

(37)“비판(批判)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38)“주라 그러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우리는 손을 움켜쥐고 싶습니다. 겨우 잡은 것을 놓치고 싶지 않아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주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고 하십니다.
채워 주시는데 하나님이 친히 후히 되어 주시고, 거기다가 누르고 또 흔들어 그리고
넘치도록 하여 가득 채워 안겨 주리라 하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그래도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계속하여 괴롭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사랑할 수 있습니까?
그들을 선대하며 축복하며 기도해 줄 수 있습니까?

방법은 단 하나 우리가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 마 18:24-33절에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종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달란트는 작은 금액이 아닙니다. 그 당시 최고의 단위입니다. 6000데나리온입니다. (3억)무게로는 금 34㎏입니다. 노동자가 한 20년 가까이 일해야 모을 수 있는 돈입니다. 한 푼도 안 쓰고 ...
어느 종이 일만 달란트 빚을 졌습니다. 갚을 길이 없었습니다. 엎드려 절하며 당장 갚으라는 주인의 어명에 떨면서 갚겠다고 하니 주인이 불쌍히 여겨 그 빚을 몽땅 탕감(蕩減)하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탕감 받은 종이 나가서 제게 100데나리온 -한 데나리온은 일일 품삯입니다.-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을 갚으라 하매 동관이 엎드려 참아 달라며
갚겠다고 애원을 해도 허락지 않고 빚을 갚을 때까지 옥에 가뒀습니다.
이런 소식을 주인이 전해 듣고 저를 불러다가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며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에게 붙였다는 비유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모두 다 하나님 앞에 일만 달란트 빚을 진 자입니다. 우리 모두 다 하나님의 원수였고 진노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원수 된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게 하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롬5:8) 이제 우리는 나 혼자만 아는 죄, 부끄러운 죄까지 알려지면 큰 일나는 죄까지 모두 다 용서 받았습니다.

◈ 스테반은 자기를 향하여 돌을 던져 죽이는 사울을 향하여 기도했습니다.
무릎을 꿇고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소서”예수를 믿는 이를 잔해하고 핍박하고 돌을 들어 치는 원수를 향하여 기도를 했더니 그가 후에 뉘우치고 회개하고 돌아와서 기독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명한 바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엄청난 구원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원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내게 상처 주는 사람들을 계속 사랑할 수 있습니다.

목회를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불성실하고/ 양들을 괴롭히고/ 교회에 덕을 끼치지 못하는 성도들을/ 보면 화가 납니다. 용서할 수 가 없습니다. 분노가 올라옵니다.
어떤 밤은 잠을 이루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마음을 간신히 잡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그 사람보다 훨씬 더했다. 나는 너를 용서해 주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오랫동안 참았는지 생각해 보아라”
저는 그 밤에 저의 교만을 회개했습니다. 저를 축복하신 하나님의 큰 사랑에 감사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여러분들에게 넘치도록 경험되시기 바랍니다.
이 사랑으로 우리들의 원수를 사랑하며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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